[상상사전] ‘싸가지’

▲ 함규원 기자

문화대혁명 시기 중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학교 교실마다 초상화 5개가 걸려있었는데 앞쪽 칠판 위에는 마오쩌둥, 뒤쪽 벽에는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스탈린이 주인공이었다. 머리칼 길이로 남녀를 구분하곤 하던 한 소녀가 귀를 뒤덮을 정도로 풍성한 마르크스의 머리칼을 보고 “얼굴 가득 수염이 자란 게 이상하긴 하지만, 마르크스는 여자다”라고 주장했다. 감히 위대하신 마르크스 동지를 보고 ‘여자’라고 한 죄로 소녀는 반혁명분자로 몰렸다. 어린 아이의 순진무구한 상상력이 마르크스를 욕보인 ‘싸가지’없는 언행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한 소녀를 곤궁에 빠뜨린 장본인 마르크스는 살아생전 싸가지 없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선배 철학자들도 싸잡아 비난했다.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세계를 해석해왔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 그는 또 “부르주아의 몰락은 필연”이라며 자본가들의 미래를 저주했다. 자신의 철학을 따르는 추종자들과는 선을 그어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만의 잣대로 세상을 해석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 마르크스가 타인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 이야기를 삼키는 예의와 배려에 충실한 인물이었다면, 우리는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성찰할 기회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마르크스의 유명한 책 이름을 빌려 <21세기 자본>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지난 300년 동안 부의 집중과 소득 불평등이 가속화하고 있다며 도발적 처방을 내놨다. 다시 자본주의의 불평등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지 않기를 바라는 한국의 일부 경제학자들은 “71년생 아들뻘 학자가 내놓은 논리”라며 피케티를 비하했다. ‘젊은 놈이 싸가지 없다’는 논리다.

‘싸가지 없다’고 말하는 자는 주로 누구인가? 누구보다 큰 사회적‧경제적 특권을 누리는 이들이 지배적 이데올로기의 표준에 부합하지 않는 태도를 ‘싸가지 없다’고 규정한다. 자유로운 상상력과 혁명적인 사상을 입막음하려는 말일 때가 많다.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얌전히 공부하는 대신 깃발을 들고 거리에 나왔던 68세대가 사용했던 구호 중 하나는 ‘상상력에게 권력을!’이었다. 자기만의 관점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변화를 꿈꾸는 이들이 기존 권위에 도전하는 것은 필연이다. 싸가지가 없으면 어떤가? 싸가지를 문제 삼아서 진보의 싹을 잘라버리는 것보다는 낫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 댓글 달고 책 받자!
단비뉴스가 댓글 이벤트를 엽니다. 1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기사를 읽고 댓글을 달아주시는 독자 중 매주 두 분에게 경품을 드립니다. 1등에게는 화제의 책 <벼랑에 선 사람들>, <황혼길 서러워라>, <동네북 경제를 넘어> 중 1권을, 2등에게는 커피 기프티콘을 드립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