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표현의 자유’
알다시피 최인훈 소설 <광장>의 화두는 ‘광장’과 ‘밀실’이다. 공적인 공간과 사적인 공간은 인간다운 삶을 위한 필수공간이지만, 둘 사이는 거리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인간을 두 공간 어느 한쪽에 가두어 버려도 삶의 질은 추락한다.
보수 편향의 정치 지형도에서 좀 색다른 소리를 내던 정치집단의 밀실이 여지없이 짓밟히고 있다. 통합진보당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 결정이 내려진 뒤 진보세력에 대한 압수수색 선풍이 불고 있는 것이다. 보수언론이 보도하면 극우단체가 고발하고 검찰과 경찰이 즉각 수사에 착수하는 패턴이 반복된다.
수사기관의 카카오톡 사찰 의혹은 한 사례에 불과하다.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는 23일 기자회견에서 “수사기관의 카카오톡 압수수색으로 개인정보가 유출됐다”며 “국가와 다음카카오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과 헌법소원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와 대화를 나눈 3000여 명의 개인 정보가 털렸다는 것이다. 불투명할 것이라 믿고 안심했던 밀실의 벽은 알고 보니 밖에서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벽이었다.
밀실은 불투명해야 한다. 열린 공간인 광장과 달리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공권력에 의해 모든 일상이 낱낱이 감시되는 사회라면, 사적인 공간의 표현조차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2009년 검찰은 PD수첩 작가의 7년 치 이메일을 압수수색해 현 정부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 내용을 공개했다. PD수첩 제작진의 광우병 보도 관련 명예훼손 혐의 입증과 무관한 사적 이메일이었다. 이 과정을 지켜본 사람들은 사적 영역에서조차 자기검열을 거친 뒤 말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국가가 본보기로 한두 명에게 강제력을 행사한 뒤 전체 국민을 겁먹게 하여 복종을 유도하는 것이다. 결과는 ‘표현의 자유’ 위축이다.
말할 수 있는 자유는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는 자유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시민은 통치의 주체이자 객체다. 시민이 자율적 통치자의 역할을 수행하려면 표현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 미국 수정헌법 제1조가 ‘표현의 자유’로 시작하는 까닭은 모든 사람이 자기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 한병철은 <투명사회>에서 “전면적인 투명성은 정치를 마비시킨다”고 했다. 정보 공유 차원에서 ‘투명성’이 미덕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지나친 투명성은 오히려 민주주의를 훼손한다. “자율성은 투명한 평등이 아니라 타인에게서 이해되지 않는 바를 받아들인다는 것, 곧 불투명한 평등을 뜻한다.”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의 말이다. 개인의 내밀한 영역은 함부로 침해되지 않도록 지켜져야 하며, 이러한 불투명성에서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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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뉴스 지역농촌팀 함규원 기자
권력이 아니라 시민의 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