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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지지 않는 사회의 병리현상
[상상사전] ‘어장관리’
2014년 12월 04일 (목) 18:39:38 이청초 기자 doublecho24@gmail.com

   
▲ 이청초 기자
“어항 속에 갇힌 고기들보다 어쩌면 내가 좀 더 멍청할지 몰라. 네가 먹이처럼 던진 문자 몇 통과 너의 부재중 전화는 날 헷갈리게 하지.”

빈지노의 <아쿠아맨> 가사처럼 ‘어장관리’라는 말은 요즘 젊은이들의 연애 방식을 잘 보여준다. ‘어장관리’는 실제로 사귀지 않지만 마치 사귈 것처럼 친한 척하면서 자기 주변 이성들을 동시에 관리하는 행태를 뜻하는 유행어다. ‘썸’이라는 말은 사귀기 전에 서로 알아가는 시기를 뜻하고, ‘그린라이트’는 호감이 있는 정도를 뜻하는 속어다. 모두가 서로 죽고 못 사는 예전의 사랑 방식과는 다르다. 요즘 청춘들은 어장에 갇힌 물고기 신세가 되지 않기 위해, 또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밀당’을 하고, ‘썸남∙썸녀’를 만들어 또 다른 어장을 관리하곤 한다.

서로에게 부담 갖지 않고, 사랑에 책임지지 않으려는 태도가 이런 신종 연애방식을 낳았다. 그 이면에는 ‘세상이 요구하는 기준을 따라가기도 버거운데, 사랑 운운하고 있는 건 감정의 사치이자 낭비’라는 생각이 깔려있다. 상대를 위해 희생하고 양보하는 동안 세상에서 내가 희생되고 낙오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어장관리’나 ‘썸타기’ 수준의 연애방식이 생겨나는 건 자연스런 결과일지 모른다.

요즘 청춘들은 이런 말에 맞춰 자기 삶을 재단하는 모습도 보인다. 독일 철학자 헤르더는 인간이 언어를 통해 이성을 갖는다고 했다. 관념이나 상상이 말을 생산하는 게 아니라 말이 사고를 생산해 현실을 장악한다는 의미다. 연애 신종용어들은 요즘 연애 세태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며 등장했지만 이제는 그 반대가 되고 있다.

상당수 젊은이들은 자기 연애방식이 ‘어장관리’인지 ‘그린라이트’인지 프로그램이나 커뮤니티를 통해 묻고 결정한다. 자신이 직접 겪어야 할 경험을 질문 한 줄, 말 한 마디로 만들어 띄운 뒤 누군가가 재단해주길 기다리고, 타인의 말에 의존해 본인이 져야 할 결정의 책임을 회피한다. 책임에 대한 버거움이 ‘어장관리’나 ‘썸타기’를 만들어냈지만 이젠 그 말로 책임에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독일 철학자 니체의 말처럼 이런 언어는 실재를 사라지게 하고, 본질을 은폐하는 장치가 되곤 한다. 연애용어가 탄생하게 된 배경, 곧 ‘연애 말고도 감당해야 할 일이 벅차도록 많다’는 사회적 맥락은 사라지고, 자신이 처한 현실을 말 속에서 용인하도록 하는 것이다. 닭이 먼저인지 알이 먼저인지 불분명해진다. 본질은 흐려져 해결책 모색은 더욱 멀어진다.

악순환을 끊을 방법은 나도 잘 모르겠다. ‘사랑에 돌직구를 던져라’, ‘상처를 오롯이 견뎌내라’고 하기에는 사회가 너무 변했다. 하지만 ‘어장’이나 ‘썸’이라는 말 뒤에 숨어 우리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으면 한다. 세태에 편승해 ‘피해자 코스프레’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책임지기 싫은 세태를 만든 건 남이 아니라 우리 자신들이다. 누구나 사랑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해주는 사회, 소신껏 사랑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에 조금씩 힘을 보탤 수는 없을까? 사회를 사랑하는 게 곧 개인을 사랑하는 일인 줄은 알 것 같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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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초 기자]
단비뉴스 전 편집부장, 청년팀
한 번 문 건 놓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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