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민주주의’

▲ 함규원 기자
드디어 나는 아버지보다 나이 많은 아들이 되었다. 이십 대 중반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는 사진 속의 젊은이로 남아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처음 만나던 시절,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분노와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식 없이 쏟아내던 아버지의 눈빛에 반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대학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열정적이고 순수한 청년이었다.

민주화운동을 탄압하는 독재정권에 맞선 저항은 대개 실패로 끝났기에 아버지는 무력하고 외로웠을 것이다. 어느 봄날,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짧은 편지 한 장을 남기고 민주주의를 외치며 스스로 몸에 불을 붙였다고 한다. 아버지는 어머니 몸에 생명이 싹트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아버지는 열사가 되었다.

나는 역사의 수레바퀴가 잘못된 방향으로 움직일 때, 그것이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온몸으로 배우며 자랐다. 그리고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해 얼마나 많은 헌신이 필요한지도. 근현대사 수업을 듣던 고등학교 때, ‘민주주의는 수많은 사람의 피와 땀으로 성취한 위대한 업적’이라는 교과서 글귀 밑에 내가 아는 열사들과 아버지의 이름을 조용히 적어 내려간 적이 있다. 나는 울 것 같은 심정으로 열사들이 엮어온 역사를 배웠다.

역사는 행동하는 소수에 의해 움직이는 법이라지만, 열사들의 피로 이루어진 진보가 옳은 것일까? 더 많은 사람이, 더 다양한 목소리로, 같은 지점을 향해 나아갔다면, 아버지는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지 않았을지 모른다. 옳다는 신념으로 함께 싸우기에 그들은 비겁했던 게 아닐까?
 
내가 아버지보다 더 늙어 맞는 첫 계절, 사람들은 다시 광장에 몰려나왔다. 300명이 넘는 생명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지켜본 시민들은 ‘가만히 있지 않겠다’며 행동에 나서고 있다. 광화문에서는 주말마다 집회가 열리고 팽목항을 찾는 이도 이어진다. ‘젊은 아버지’가 살아있다면, 나에게 무슨 말을 할까? 역사의 진보가 죽음으로써 가능한 것만은 아니라고, 그러니 쉽게 포기하거나 체념하지 말라고 할까?

나는 열사의 아들이다. 그러나 나는 살아남아 애쓸 생각이다. 여전히 싸워서 지킬 것들이 있으므로, 나 같은 평범한 시민들이 많다면 열사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므로.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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