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신념’

▲ 박진우 기자
명절에 그들을 본 기억이 없다. 할머니 생신 때도 그들은 오지 않았다. 어쩌다 볼 때면 ‘영원한 생명’에 대해 설명하며 나에게 전도하려 했다. 그들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었다. 난 언제나 전도당하는 게 싫었다. 설득되지 않으면 연민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는데 나는 오히려 그들에게 연민을 느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실 때,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그들에게서 사람 냄새를 맡을 수는 없었다. 아무리 사촌 형과 동생이라도 상종하기 싫었다. 

부모님 대화 속에서 오랜만에 그들 소식을 들었다. 군대에 가지 않아 감옥에 갔다고 했다. 들어간 지 6개월이 지났으며 1년 뒤에야 나온다고 했다. 둘 다 공익판정을 받았기에 고작 4주만 군사훈련을 받으면 되는 일이었다. 4주간 드는 ‘총’이 그들을 군대가 아닌 감옥으로 향하게 했다. 그 잘난 종교 때문에 스스로 감옥을 선택했다는 사실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나라면 총을 들고 말 텐데……

그들은 감옥에서 나온 지금까지 취업하지 못하고 있다. 취업시기가 한참 지난 사촌 형은 ‘여호와의 증인’이 많이 다닌다는 ‘모 학습지’에서 일하다 그만뒀다. 사촌 동생은 수도권의 꽤 좋은 공과대학을 나왔는데도 취업원서조차 들이밀지 못한다. ‘군대’ 대신 ‘감옥’을 선택한 결과는 처참했다. ‘빨간줄’이라는 낙인이 찍혀 밥벌이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말 나라면 총을 들고 말 것이다. 

내 사촌 형제들을 포함해 1만7000명이 넘는 ‘여호와의 증인’이 법정에 섰다. 그들은 단지 ‘성경’의 말씀에 따랐을 뿐이다. 그들에게는 종교가 곧 삶이다. 삶의 기준이며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다. 그래서 그들은 군복무도 거부하고, 선거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국기에 대한 맹세 따위는 하지 않는다. 증인들에게 유일한 통치권력은 하느님이다. 그들에게 군대에 가는 행위는 성경에 적힌 ‘사랑’에 대한 배반이며, 하느님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할 의무를 저버리는 행위다. 

내 사촌 형제들은 그 종교를 믿음으로써 자신과 부모의 생일을 기념하는 일도 관뒀고 그 종교가 금하는 순대를 먹는 것도 포기했다. 2년간 내무반 생활 대신 철창 안 삶을 선택했다. 그들이 군대에 가지 않으므로 얻은 피해 또한 심각하다. 그럼에도 그들은 끝내 총을 들지 않았다. 남을 죽이는 짓을 연습하는 데 동참을 거부하는 것. 그리고 교리에 따라 평화를 추구하는 것. 그게 그들의 ‘신념’이자 ‘정의’다. 나라면 총을 들고 말텐데.....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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