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황윤정 기자

▲ 황윤정 기자
외국인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 시선은 모순적이다. 외국인이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고, 매운 한국 음식을 곧잘 먹으며, 한국인들의 생활 습관이 몸에 밴 것을 보고는 “한국 사람 다 됐다”며 반가움과 함께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한편으로 외국인 관광객의 눈에 비친 한국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 하면서, 보편적이고 선진적이라고 인식되는 그들의 기준에 맞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나는 ‘우리 혈통’ 중심이고, 다른 하나는 ‘우수 혈통’ 중심이다.

자문화 중심주의와 서구 중심주의를 탈피하지 못한 채 이뤄지는 한국의 다문화주의는 진정한 다문화주의가 아니다. 먼저 ‘단일성’을 강조하는 자문화 중심주의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다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TV 프로그램에서는 ‘베트남에서 시집와 고생하는 착한 농촌 며느리’를 주로 다룬다. 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한국 남성의 배우자 부족을 해결하는, 우리 내부의 결핍을 채우는 부품으로 보는 시각과, ‘우리 식구’로 들어온 며느리라는 가부장적 시각이 결합돼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다문화 정책 또한 그 편협함이 드러난다. 다문화 프로그램은 이주 여성을 위한 한국어교육, 김치 담그는 법 배우기, 한국문화 배우기 등에 그친다. 이는 다문화정책이 아닌 ‘한국문화 동화’를 추구하는 단일문화정책과 다를 바 없다. 한국의 가족 제도에 편입한 이주여성과 그 자녀만을 대상으로 한 다문화주의는 이주노동자와 외국인 유학생, 외국 국적 동포 등으로 확장되어야 진정한 의미의 다문화를 실현할 수 있다.

서구 중심 시각은 ‘우리 혈통’이 ‘우수한 혈통’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잘 살 수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학자들은 한국인의 서구 중심주의가 강제된 개방과 일제 식민체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해석한다. 조선시대 개화파였던 박정양과 유길준 등은 19세기 후반 미국에 다녀온 뒤 흑인을 노예로 부리는 백인종의 우월성을 찬미했다고 한다. 이후 일본의 지배를 받으면서 백인에 대한 인종적 열등감을 넘어서기 위해 또 다른 강자인 일본을 추종하는 ‘친일파’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서구중심주의는 서구 열강이 형성한 세계질서 아래 지속된 것으로, 식민 잔재들과 함께 청산돼야 할 유산이다. 서구가 주류라는 생각은 비서구를 자연스럽게 비주류로 만든다. 서구를 보편적 기준으로 인식할 때, 비서구인들은 한국사회 내 영원한 이방인으로 남는다. 다문화주의는 한 사회 내 여러 문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서로 다른 문화의 고유 가치를 존중하는 것이 핵심이다. 

인종과 민족의 접촉이 빈번하게 이뤄지는 오늘날 ‘나’와 ‘너’의 구분은 문화적 갈등 해소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나’와 ‘너’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서는 첫째, ‘공통 혈통’이라는 상징조작을 형성하고 이를 사회통합의 도구로 삼는 일을 그만둬야 한다. 둘째, 서양문명이 누리는 보편성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관용’의 정신을 갖추어야 한다. 관용은 다른 피부색과 민족성을 가진 이들이 단순히 ‘공생’하는 것을 넘어, 타자의 신조나 행동을 용인하며 ‘상생’하게 하는 핵심 개념이다. 

관용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닌 가슴으로 이루는 것이다.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는 “문화 제도의 중요성은 유용성이나 필연성과는 관계가 없다”고 했다. 문화에 ‘실용’과 ‘합리’를 따지는 시도는 어리석다는 것이다. 우리의 다문화는 계산기를 두드려 가며 강제로 심어놓은 다문화는 아닌지 생각해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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