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특강] 곽윤섭 '한겨레' 선임 사진기자
주제: 21세기 포토저널리즘

“뉴스란 눈으로 본 것을 다른 이에게 전하는 겁니다. 직접 확인한 게 아니면 뉴스가치가 없지요.”

25년째 <한겨레> 사진팀에서 일하고 있는 곽윤섭 선임기자는 사진기자답게 뉴스를 정의했다. 입사 초, 그는 ‘사진과 영상은 글 기사를 설명해주고 보완해주는 수단’이라 배웠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글 기사가 사진을 보조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미지에는 언어와 문화가 달라도 함축된 의미를 전달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 <21세기 포토저널리즘>주제로 강연 중인 <한겨레> 곽윤섭 사진기자. ⓒ 박동국

15,000년 전의 ‘사진기자’가 전달한 메시지

프랑스 몽티냐크 마을에서 발견된 라스코 동굴 벽화는 15,000년 전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 남긴 벽화지만 현대인이 보아도 사냥하는 장면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이미지를 통해 ‘현장을 목격한 사람’이 ‘현장을 보지 못한 사람’에게 알리려 한 메시지가 시공을 초월해 전달된다. 곽 기자는 이런 면에서 “이미지가 언어보다 우월하다”고 말했다.

‘A’와 ‘가’라는 글자를 보자. 이 문자를 사용하지 않는 언어문화권에서는 이 글자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알 수 없다. 선형문자(선과 같이 가늘고 긴 문자)는 특정 언어 문화권 내에서 약속된 코드로 다른 문화권은 해독하지 못하는 배타성을 가진다. 반면 ‘象(상)’이라는 글자는 코끼리의 형상을 떠올리게 한다. 비선형문자인 한자나 이집트 상형문자는 이미지를 본떠 글자만으로 어떤 뜻인지 해석이 가능하다.

곽 기자는 학생들에게 중국 운남성 소수민족인 나시족의 동파문(东巴文)을 보여주며 무슨 뜻인지를 물었다. 한 학생이 “아이를 낳은 것 같고, 그 옆은 기뻐서 노래하고 춤추는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과연 그 문자는 아이를 출산한 뒤, 아이가 장수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노래하고 춤추는 내용이었다. 처음 접하는 문화권의 언어인데도 해독이 가능한 것은 사물을 본떠 만든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곽 기자는 “보도사진도 언어와 문화를 초월해 의미를 전달함으로써 눈으로 본 것을 보지 못한 사람에게 전하는 뉴스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한다고 설명했다.

한∙일 월드컵은 무엇으로 기억되나

“아무리 명문이라도 사람들은 며칠 지나면 잊어버립니다. 하지만 사진 한 장은 평생 기억에 남죠.”

곽 기자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신문의 헤드라인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우리가 기억하는 건 헤드라인이 아닌 붉은 악마, 박지성과 히딩크의 포옹, 반지에 키스하는 안정환, 안톤 오노를 흉내 낸 이천수 등을 찍은 사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문자는 쉽게 잊히지만 사진은 평생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포옹하던 히딩크 감독과 박지성 선수. 사진은 평생 기억에 남는다. ⓒ 동아일보 자료사진

곽 기자는 “사진이 때로는 글보다 큰 영향력을 갖는다”고 말했다. 1945년 태평양전쟁의 분수령이 된 이오지마 전투에서 승리한 미군이 성조기를 스리바치산 정상에 꽂는 장면을 <에이피>(AP)통신 조 로젠탈이 사진으로 담아 본토에 보도해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신문 1면에 실린 이 사진은 전쟁에 불안해하던 미국인들에게 희생정신과 용기를 북돋아주었고 전쟁이 승리로 끝날 것이라는 확신과 자부심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그러나 사진이 연출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최초의 성조기 게양은 조악한 파이프에 조그마한 국기를 매단 엉성한 모습이었는데 이 장면을 놓친 로젠탈이 좀 더 극적으로 보이기 위해 국기 게양을 다시 요청했던 것이다. 더구나 연출 중 미군 여섯 중 넷이 일본군의 총에 맞아 죽었다. 그래도 이 사진은 아직까지 미국인들에게 ‘승리의 이미지’로 남아있다. 연출 사진이었지만 보도 사진의 파급력이 영속적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사진을 한 번 읽어보세요. 등장인물, 배경을 보고 연결해보세요.”

곽 기자는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한국일보> 고명진 기자가 찍은 사진 ‘아! 나의 조국’을 보여주며 말했다. 마스크를 쓴 젊은이들이 태극기를 들고 있고, 그 앞에서 어떤 남자가 웃통을 벗고 달려가고 있다. 환호하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웃통을 벗고 앞으로 뛰쳐나가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사진이 보여주는 상황을 이해해보라고 했다.

그는 “태극기는 대한민국의 상징으로서 비록 시위를 하지만 우리는 국가에 대항하는 반동분자가 아니고, 대한민국을 위해 시위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으며 “옷을 벗은 이유는 비폭력으로 나라를 위해 시위한다는 진정성을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은 설명 없이도 상황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기자가 전문기자보다 유리한 이유

2009년 155명을 태운 여객기가 엔진 고장으로 미국 뉴욕 허드슨강에 불시착해 생사의 갈림길에 놓였으나 기장의 침착한 판단으로 전원이 살아남은 ‘허드슨강의 기적’은 한 시민의 사진 한 장으로 더욱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사고 당시 페리를 타고 지나가던 제니스 크럼스는 강에 불시착한 항공기를 <에이피>나 <로이터> 사진기자들이 오기 전에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트위터에 올렸다. 이 사진은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로 급속하게 퍼졌고 이를 접한 모든 사람들은 기적을 바라는 마음으로 사고를 당한 이들의 생존을 빌었다.

▲ 시민이 촬영한 사진이 전 세계 신문에 실린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때로는 일반 시민이 찍은 현장 사진이 전문 사진 기자의 사진보다 당시 긴박한 상황을 더 잘 드러내기도 한다. ⓒ 박동국

뒤늦게 도착한 사진기자들도 당시 상황을 찍었으나, 사진에는 긴박함이 없을뿐더러 뉴욕 허드슨강인지, 바다 한가운데인지 분별이 어려운 정보가치가 낮은 사진이었기 때문에 전 세계 신문은 크럼스의 사진을 크게 보도했다. 곽 기자는 시민기자가 통신사 기자의 사진을 눌러버린 이 사례를 두고 “기자가 아닌 크럼스가 기자 일을 한 것처럼, 모든 사람은 기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기자는 현장에서 사진만 찍어야

“기자는 현장에서 천장에 붙은 파리 같습니다. 단순히 현장을 기록하는 투명인간이어야 하죠. 연출이 필요한 인터뷰 사진을 제외하고 기자는 어떤 상황에도 개입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기사 마감을 지키기 위해 상황에 개입하고 연출합니다. 미국에서 이런 행동은 사실상 조작입니다. 사실이 밝혀지면 언론계에 다시는 발도 못 붙이죠.”

그는 다른 기자들과 달리 사진에 연출을 허용하지 않아 기자 초년 시절부터 선배들과 동료들의 미움과 질시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한국 언론이 조작한 사진을 신문에 싣거나 기자가 상황에 개입하는 것을 관례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2010년 연평도 포격 사건 때 신문 1면 사진이 대표적 사례다. 당시 언론들은 여행객 최용문씨가 연합뉴스에 제공한 현장 사진을 실었다. <조선일보>는 포토샵으로 연기의 색을 진하게 바꾼 사진을 지면에 실었다가 누리꾼들 지적을 받았다. 그러나 <조선>은 “후보정을 과하게 한 것 같다”며 사실상 사진 조작에 대한 책임을 회피했다.

2005년에는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이 주미대사로 재직하다 한국으로 소환된 일이 있었다. 포토라인에 서있던 중앙일보 한 사진기자가 홍 회장 앞에서 구호를 외치는 민노당원에게 달려들어 진압을 시도해 문제가 됐다. 석 달 뒤 그 기자는 “현장질서를 어지럽히는 시민을 정리했다”는 해명을 내놓았다. 하지만 곽 기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현장 정리는 기자의 몫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회사에서 시켜 그런 행동을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더라도 부끄러운 행동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소녀 노리는 독수리’라는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고 자살한 사진가 케빈 카터 이야기를 한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알려진 것과 달리 그는 소녀를 구하지 않았다는 비난 때문에 자살한 것이 아닙니다.”

카터는 1994년 퓰리처 상을 받은 뒤 좋은 언론사에 취업했지만 이후 작품성 있는 사진을 찍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았고, 알코올중독과 마약중독, 그리고 이혼의 괴로움으로 자살했다. 언론계와 대중은 일반적으로 그가 사진에 대한 비난과 그에 따른 중압감을 이기지 못해 자살했다고 잘못 알고 있다.

곽 기자는 “사진기자의 임무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통해 아프리카 수단 지역의 기아를 알리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아니면 어떤 사람이 죽는 상황이라면 그 사람을 구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사진촬영에 집중하는 것이 사진기자의 본분”이라고 강조했다.

찍을 자유, 찍히지 않을 권리

“제 이름 그동안 신문에 많이 나왔습니다. ‘<한겨레신문> 사진부 곽윤섭 기자가 경찰 방패에 맞아 전치 2주의 상처를 입었다’ 같은 기사로요.”

곽 기자는 취재가 허락된 시위현장 같은 공공장소에서 경찰이 사진 촬영을 방해하거나 막는다면 적극적으로 사과를 받아내고 언론을 통해 알려야 한다고 했다. 기자 본인을 위해서뿐 아니라 다른 기자들이 같은 피해를 입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 사진 촬영시 주의해야 할 점을 설명하는 곽윤섭 기자. ⓒ 박동국

우리 국민은 헌법에 의해 표현의 자유와 행복추구권을 보장받는다. 그래서 광장, 공원, 대학 캠퍼스, 해수욕장, 노천시장, 국회 본회의장, 야구장 같은 공적인 장소에서 촬영하는 것은 누구에게든 허락된다. 공적인 장소에서 경찰이 불법으로 기자의 촬영을 막는다면 일단 임기응변으로 재주껏 피하고 원하는 사진을 몰래라도 찍은 뒤 정식으로 항의하라는 요령도 공개했다.

하지만 울타리가 쳐진 공간(교도소, 중고등학교 운동장 등)이나 가정집, 청와대 집무실, 학교 강의실 등은 함부로 찍으면 안 된다. 특히 미성년자는 사진을 촬영하려면 학교장과 부모의 허가가 모두 있어야 한다. 이럴 경우 담임선생에게 부탁하면 처리가 쉽다. 다만 학교에 국가적 위기를 초래할 전염병 등이 도는 것과 같은 특수 상황에서는 저작권과 초상권에 대한 판단을 뒤로하고 기자는 일단 찍어야 한다. 보통 옆모습 정도까지는 별 무리 없이 넘어간다고 했다.

판례상 유명인을 포함하는 공인(연예인, 재벌가와 그 가족, 대학교수, 언론인, 방송인 등)을 공적인 장소에서 만났을 때는 사진을 마음껏 찍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사진을 수익 목적으로 판매하려면 피사체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일반인 사진을 보도에 사용했다가 사진설명이 사실과 달라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해 배상한 사례도 있어 주의할 필요는 있다. 길거리에서 공연하는 사람이나 마스크를 쓰지 않고 큰길에서 시위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유롭게 찍어도 된다.

일반인을 찍어야 하는 때는 기자가 일부러 플래시를 크게 터뜨려 상대가 사진에 찍히는 것을 알게 해 암묵적 동의를 얻거나 직접 동의를 구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사진을 찍는 순간에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며 상대가 찍지 말라고 거부 의사를 밝혔을 때는 찍지 말아야 한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1학기 <저널리즘특강>은 조상호, 고승철, 김현대, 황호택, 이영돈, 선대인, 오연호, 박태균, 곽윤섭 선생님이 강연을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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