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특강] 박태균 중앙일보 식품의약전문기자
주제 ② 식품∙건강∙과학기사 바로 쓰기

“과학기자 되고 싶은 분 있어요? 한번 손들어 보세요. 아무도 없나요.(웃음)”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는 특이한 이력을 가졌다. 원래 서울대에서 수의학을 전공했지만 <중앙일보> 식품의약전문기자로 뽑힌 뒤 공중보건학 박사 과정까지 거치면서 줄곧 전문기자의 길을 걸어왔다. 한국식품기자포럼을 이끈 데 이어 지난 8월에는 한국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을 창립해 회장을 맡는 등 식품의약 관련 커뮤니케이션 활동에도 열의를 쏟고 있다.  

▲ 강연 중인 <중앙일보>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 황종원

과학기자가 단역에서 벗어나 주인공이 되려면 

정∙경∙사(정치∙경제∙사회부) 중심으로 돌아가는 언론 환경에서도 박 기자는 과학전문기자의 영역을 모색하고 싶었다. 한국 언론계에서 과학 분야는 뿔뿔이 흩어져 있다. 과학기자는 정부 부처 출입만 하더라도 미래창조과학부, 환경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으로 나뉜다.  

전문성을 요구하는 분야이다 보니 웬만한 과학기자는 대학이나 연구소 등에서 나오는 연구성과 발표자료나 받아쓰는 단역이 되기 십상이었다. 그의 고민은 여기서 출발했다.  

“앞으로도 쉽지 않을 거 같은데, 과학전문기자가 신문의 단역에서 주인공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또 아무도 대답이 없자, 박 기자는 대중의 관심이 적은 것이 바로 과학 저널리즘의 현주소라며 특강을 시작했다.  

과학기사도 ‘인물’에 초점을 맞춰라 

“우리나라는 이공계가 대학 진학에서 반 이상을 차지하잖아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과학면에 관심이 없어요. 고등학교 졸업하면, 길어야 대학 전공 끝나면 그걸로 이공계 분야 관심은 끝인 거죠. 사회에선 과학이 재미없는 걸로 생각하는데……”  

대중이 과학 자체에도 관심이 적은데 과학기사에 흥미를 가질 수 있을까? 그러나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 바로 과학 저널리즘이 떠맡아야 할 임무이기도 하다. 

그는 2002년 일본의 노벨상 동시 수상자 두 사람을 소개하며 과학기사에서 흥미를 이끌어내는 요인을 설명했다. 한 사람은 도쿄대 유명 교수로 이름을 떨쳤던 고시바 마사토시, 또 한 사람은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던 다나카 고이치였다. 누구에게 대중은 더 관심을 보였을까? 바로 고이치였다. 그동안 연구 성과와 관계없이 ‘신선한 인물’에 관심이 쏠렸고, 엄청난 분량의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또 한 사례는 지난 4월 일본판 황우석 사태라 불리는 오보카타 하루코 박사의 논문조작 사건이었다. 서른하나라는 젊은 나이와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에 대중이 흥미를 느꼈다. 그녀는 지난 1월말 국제학술지인 <네이처>에 모든 장기로 변화할 수 있는 만능세포인 ‘STAP 세포’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짓으로 밝혀졌지만, 그녀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 ‘인물’ 중심의 과학 기사가 흥미를 이끌어낸다는 대표적인 예가 된 오보카타 하루코 박사. 젊은 나이에 미모를 지닌 그는 아직도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다. ⓒ KBS 뉴스 화면 갈무리

우리나라도 그랬다. 황우석 사태가 터지고 나서 사람들은 제목만이라도 과학기사를 즐겨 봤다. 계속해서 나오는 기사에 처녀생식, 배아줄기세포 등 생소한 용어가 일반인들에게 알려졌다. 과학기사도 ‘인물’, 곧 스토리를 기반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간다는 것이다.  

과학 기사, 그 치명적 실수 

박 기자는 대중에게 홀대받는 과학기사가 주연이 되려면 세 가지를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첫 번째는 언론이 허풍을 떠는 것이다. 그는 1999년에 벌어진 Y2K 관련 보도와 다이옥신 보도 파문을 예로 들었다. 

Y2K에서 Y는 Year(연도), K는 1000(Kilo)에서 따온 것으로, Y2K는 2000년을 뜻한다. 1999년 당시 전세계 언론은 ‘밀레니엄 버그’라 하여 2000년에 진입하면 연도를 00으로 인식하는 컴퓨터에 장애가 일어나 큰 재난이 발생할 것이라는 추측보도들을 쏟아냈다.  

컴퓨터를 사용하는 모든 업무가 마비돼 비행기가 떨어지고 극심한 경제 혼란이 발생할 것이라는 보도까지 나왔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득을 본 건 Y2K 방지 프로그램을 만든 백신 개발자들이었다. 특정 이익집단의 목소리를 검증하지 않고 기사로 생산해 퍼 나른 기자들에 대한 대중의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자꾸 이슈화해야 자기 영역이 확보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이런 이들이 무식한 기자들에게 특정 사안을 대단히 중요한 것처럼 가치를 부여하니 기사가 점점 커지는 거죠. 국민들을 위해서는 아무 도움이 안 되고, 기술을 판매하는 업자와 과학자들에게만 이득이 돌아가죠.” 

두 번째는 과학과 신문의 궁합을 억지로 맞추는 것이다. 신문의 원칙은 사람을 그리는 건데 과학 분야에서는 사람이 중심이 되기 어렵다. 무엇보다 신문은 늘 ‘새로운 것’을 갈구하는데 과학 분야에서는 똑같은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거다. 

세 번째는 과학의 난해함이다. 신문과 방송은 중고등학교 학력의 삼사십대 여성이 이해할 수 있는 정도로 제작한다는 무언의 규칙이 있다. 일반인의 과학 지식은 고등학교 교재를 이해할 수 있는 수준도 되기 어렵다. 대학 때 과학 쪽을 전공하지 않은 대다수가 고등학교 수준에 머물러 있고, 그때로부터 멀어질수록 그 지식은 점점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GMO(유전자재조합식품)가 무엇인지를 구구절절 설명하기에는 한정된 지면에 간결하게 쓸 것을 요구하는 신문기사와 맞지 않는다.  

▲ 박태균 기자의 강연을 듣고 있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생들. ⓒ 황종원

“뛰어난 기자는 모두 뛰어난 과학 기자” 

그렇다면, 박태균 기자가 말하는 뛰어난 과학 저널리스트는 어떤 사람일까? 그는 “왕성한 호기심, 열정, 취재력, 균형감각 같은 저널리스트의 기본적 능력이 필요하다”며 “뛰어난 저널리스트는 모두 뛰어난 과학 저널리스트”라고 말했다. 일반 저널리스트와 과학 저널리스트의 경계가 그렇게 크지 않다는 것이다.  

이공계 출신과 인문사회계 출신 중 누가 과학 저널리스트가 되는 데 유리한지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답했다. 각자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공계 출신이면 취재원이 안심하고 답변할 수 있고, 인문사회계 출신은 모르는 만큼 더 열심히 하려고 한다는 얘기다. 그는 “대부분 과학기사들이 일반적인 과학 지식만 있으면 기사를 풀어가기 어렵지 않아 전공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과학 저널리스트는 어려운 과학을 쉽게 설명해줘야 해요. 게다가 논평이나 비판도 해야 합니다. 이제는 과학계의 폭주를 제어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해요.”  

과학 연구 성과를 인물 중심으로 써서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는 것은 과학기사의 기본이다. 박 기자는 연구비의 출처가 어디인지 밝히는 것도 과학기자가 꼭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설탕이 몸에 좋다는 연구 성과를 보도하기에 앞서 연구비 지원기관이 설탕 판매기업은 아닌지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기자는 “과학 기사를 쓸 때 지면에 담을 수 없는 정보를 독자가 직접 확인하도록 배려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기사 말미에 홈페이지 주소를 공개하거나 연구 담당자의 번호를 알려주는 식이다. 어려운 지식을 인포그래픽으로 쉽게 설명해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는 과학 저널리즘이 조금 더 어려운 영역일 수는 있지만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 데 더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도전해볼 만한 분야라고 강조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1학기 <저널리즘특강>은 조상호, 고승철, 김현대, 황호택, 이영돈, 선대인, 오연호, 박태균, 곽윤섭 선생님이 강연을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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