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특강] 이영돈 PD (전 채널A 전무)
주제: ‘먹거리 X파일’을 낳은 기획의 힘

“이거(미더덕) 뭔지 알겠어요? 잘 모르겠지? 거봐, 나만 헷갈리는 거 아니잖아.”

이영돈 PD는 테이블 위를 가리키며 “우리가 흔히 미더덕인 줄 알고 먹는 ‘오만둥이’와 미더덕을 구분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스타 PD’답게 녹화 전 예민하고 깐깐하지 않을까 했지만, 견학 온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생들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분위기를 풀었다.

▲ 녹화 준비를 하는 <먹거리 X파일> 스태프들. ⓒ 김성숙

녹화장에서는 미더덕도 분장을 한다

지난 4월 14일 저널리즘특강에서는 채널A <먹거리 X파일>을 3년째 이끌며 전국에 착한 먹거리 열풍을 일으킨 이영돈 PD를 만났다. 특강은 녹화현장 견학으로 시작됐다. 드라마 촬영 현장의 주인공이 여배우라면, <먹거리 X파일> 녹화장의 주인공은 음식이다. 모든 스태프들이 스튜디오 한 가운데 놓인 음식을 중심으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날 음식은 ‘미더덕’. 조연출은 음식이 화면에 보기 좋게 잡히도록 접시를 이리저리 옮겼고, 작가는 분무기로 미더덕에 물을 뿌리며 ‘분장’을 했다.

이영돈 PD는 프로그램 진행자이자 CP(책임프로듀서)다. 그만큼 프로그램 전체 흐름을 파악하고 조율하는 ‘무게중심’ 역할을 했다. 촬영 중에도 대본, 화면, 소품 등을 즉석에서 바꾸는 일이 많았다. 대본을 연습하면서는 “저 멘트 해도 되냐”며 불필요하거나 공감이 떨어지는 멘트를 빼고 더하기를 반복했다. 이날은 ‘장 찍어먹는 문화’ 편을 함께 촬영했는데, “머스타드와 겨자 소스의 차이가 뭐냐” “겨자 소스가 짠 맛이 나냐”며 일일이 스태프들의 확인을 거쳤다. 그때마다 작가와 연출부의 표정이 긴장으로 굳어졌다.

▲ 녹화하기 전 화면 구도를 확인하는 스태프들. ⓒ 김성숙

이영돈 PD를 대표하는 이미지인 ‘먹는 장면’ 촬영 시간. 일반 음식점에서는 쉽게 맛볼 수 없는 미더덕회를 먹어봤다. 칼로 미더덕을 가르자 안에 꽉 차있던 물이 터져 나왔다. 이 PD가 음식을 맛있게 먹자 만족스러운 그림을 찾은 듯, 촬영된 화면을 지켜보던 연출자의 굳어진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다음으로 들른 부조정실에서는 장시원 PD가 녹화를 총괄 지휘하고 있었다. 장 PD는 ‘인이어’(in ear)를 통해 스태프들과 진행자에게 지시를 내렸다. 방송제작은 끊임없이 의견을 교환하고 선택을 하는 ‘협업’의 과정이었다.

‘슈퍼스타K 5’가 고전한 까닭

견학을 마치고 본사 6층 회의실에서 이영돈 PD의 특강이 이어졌다. 그는 KBS, SBS를 거치며 <마음> <그것이 알고 싶다> <생로병사의 비밀> <소비자 고발> <추적 60분> 등 고발 프로그램을 주로 맡았다. 그는 “기획은 결국 어젠다(agenda)를 만드는 것”이라며 PD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했다.

대형 프로덕션, 포맷 제작 회사, 콘텐츠 투자·배급 회사. 제대로 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입니다.”

이 PD는 우리나라에 대형 프로덕션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소규모 프로덕션이 즐비하다 보니 방송사가 갑이고 제작사가 을인 관행이 깨지지 않는다”며 "이런 관행을 깰 수 있는 게 대형 프로덕션"이라고 했다. 곧 대형프로덕션에서 인턴 제도를 통해 인재를 선발하고, 창의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제대로 된 콘텐츠를 만들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 이영돈 PD의 강의를 듣고 있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 ⓒ 김성숙

이어 “머리 좋은 사람들이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포맷을 개발할 수 있는 포맷 회사도 중요하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콘텐츠를 확보하고 방송된 콘텐츠를 전문적으로 배급하는 ‘콘텐츠 투자 배급 회사’다. “방송사 3사나, 종편에서 이 세 가지를 한꺼번에 하니 주먹구구식이 되는 거”라고 지적했다.

“요즘은 스토리텔링의 시대인 것은 확실합니다. 이야기가 중요하지요.”

이 PD는 스토리가 없다면 사람들 이목이 집중되는 살인사건을 다뤄도 주목을 받을 수 없다며 스토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일례로 <슈퍼스타K 5>가 고전한 이유 중 하나로 스토리텔링의 실패를 꼽았다. 노래도 잘하면서 스토리를 가진 사람을 발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인간 역전’을 보여줄 수 있는 스토리를 가졌느냐가 핵심이라고 했다.

평범한 사람이 천재처럼 생각하는 법

“사람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심리적 근접성’이 중요해요. 피부에 와 닿는 주제죠.”

심리적 근접성은 자신의 주변에서 발생하는 일일수록 마음에 와 닿는 것을 의미한다. 칠레에서 지진이 발생해 2만명 사상자가 발생한 것보다 개가 차에 치인 모습을 가까이에서 본 것이 심리적 근접성이 높다는 뜻이다. 그는 “심리적 근접성을 높이기 위해 내가 화면에 자주 등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PD는 <바이블 루트>라는 4부작 다큐멘터리에서 직접 요단강을 건넜다. “요단강을 살아 건넜다는 것은 기독교 신자들에게 깊은 느낌으로 다가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특정 단어를 들으면 무언가를 떠올린다. ‘독도’라는 단어를 들으면 ‘우리 땅’을 떠올리는 것이 그 예다. 이러한 반응을 통해 떠올린 생각이 ‘선입관’이다. 이 피디는 “평범한 사람이 사고를 확장하려면 의도적으로 선입관을 버리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 인생에 정말 도움이 안 되는 애인이 있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지금 생각해 보니 걔한테 정말 좋은 면이 있을 수도 있는 겁니다. 생각해 보니 손은 정말 예뻤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세상이 달라 보일 거예요. 이게 창의성을 개발하는 과정이고요.”

기획 아이디어를 얻기에 가장 적합한 곳은 인터넷이 아니라 서점이다. ‘아날로그식 접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PD는 “서로 다른 책 제목을 의도적으로 연결하는 연습을 하다 보면 직관적으로 기획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고도 했다.

‘먹거리 X파일’이 하고 싶은 진짜 이야기

천연 젤라또 가게 ‘에쎄레’는 산지 직송한 제철 과일만 사용한다. 식품 첨가물도 넣지 않는다. 그러나 <먹거리 X파일>에 방송되기 전 에쎄레의 하루 매상은 2만9천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방송 출연 후 매상은 500~600만원으로 늘었다.

▲ 이영돈 PD는 기획은 '선입관을 무조건 거부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말했다. ⓒ 김성숙

‘이영돈 표’ 기획은 의제를 던지고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는 <먹거리 X파일>이 고발을 통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하며 강의를 마무리했다.

“착한 사람이 잘살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보여주는 거죠. 이거는 굉장히 큰 의제거든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저널리즘특강>은 조상호, 고승철, 김현대, 황호택, 이영돈, 선대인, 오연호, 박태균, 곽윤섭 선생님이 강연을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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