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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왜 독재가 반복되나
[저널리즘스쿨 인문교양특강] 이택광 경희대 교수
주제 ① 먹고 사는 문제와 욕망의 정치
2014년 02월 27일 (목) 13:17:05 박세라 이성제 기자 sera1862@gmail.com

어떠한 진술과 사실에도 진실은 있다. 부분적 진실을 통합하고 총체적으로 사고하는 활동을 통해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 문화비평가이기도 한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데이터와 사실 관계를 비판적으로 검토해서 부분의 진실을 모아 꿰는 것이 문화비평의 방법론”이라고 말했다.

그는 “‘욕망의 지도’를 가지고 한국 사회 엘리트들을 분석했다”며 “한 사회의 지배적 욕망에 대해 마이너(minor)한 욕망이 정체성 투쟁을 벌이는 것이 모든 사회의 원리”라고 말했다. 결혼제도를 통해 사회에서 인정받으려는 동성애자들의 활동이 좋은 사례이다. 이렇게 주류 집단의 욕망을 하위 집단이 갖게 된다. 그는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의 경제성장 담론들이 어떻게 작동해 왔고, 지배집단의 욕망이 어떻게 사회 구조를 만들었는지 설명했다.

독재라도 좋다, 잘 먹고 잘산다면

잘 먹고 잘사는 것이 행복의 조건이라는 ‘먹고사니즘’은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이데올로기다. 정치와 경제를 분리하고, 경제를 우선시하는데, 이 교수는 먹고사니즘이 박정희 시대에 만들어졌다고 분석한다. 박근혜 정부를 출현시킨 고정 지지층 40%는 ‘먹고사니즘’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 이택광 교수가 한국사회의 '먹고사니즘'에 대해서 강의하고 있다. ⓒ 손지은

“한국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거는 국민이 어디 있을까요? 태국은 왕이 다스리는 입헌군주국이고,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서는 정부 비판과 시위가 용납되지 않습니다. 북한은 말할 것도 없이 중세 모습이고 일본은 천황을 모시고 있죠. 아시아 국가들은 경제적으로 발전했지만, 민주주의는 독재 정권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중요한지도 잘 모르고요. 아시아에서 민주주의에 목숨 거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어요.”

그런데 민주주의는 문제가 많은 정치체제이다. ‘민중에 의한 통치’인 민주주의에서 모든 민중이 권력을 가진다면, 누가 다스리고 누가 다스림을 받아야 할까? 사회복지 제도가 무한히 확대된다면, 재원을 충당하는 시민은 누구이고, 혜택을 받는 시민은 누구일까? 민주주의는 내부에 모순을 가지고 있다. 철학자 플라톤도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알고 보면 과두제”라고 말했다.

   
▲ 플라톤은 국가 구성원의 자유와 기본권을 보장하는 직접민주주의 체제를 찬성했지만 아테네에서 실현될 가능성에는 의문을 가졌다. ⓒ 위키피디아

독일 법철학자 칼 슈미트는 한 걸음 더 나간다. 민주주의에서는 헌법에 따라 국민을 다스리는데 헌법은 재구성될 수 있고, 옳고 그름은 대법관들의 해석으로 자의적으로 결정된다. 완벽하지 않은 측면이 있는데, 이를 토대로 누군가를 적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칼 슈미트가 “민주헌정제는 독재”라고 꼬집는 이유다. 민주주의는 헌법 질서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을 포용하지 못하고,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이석기 사태’가 좋은 예이다. 이 교수는 민주주의의 또 다른 한계를 지적한다.

“민주주의에서 어떤 지점에 이르면 누군가가 대표로 결정해야 합니다. 그 결정 방식은 결국 독재로 귀결돼요. 점심이나 저녁을 먹으러 가서 짜장이냐 짬뽕이냐를 결정해야 하는데, 의견이 다르면 결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나서서 정리하면 빨리 결정됩니다. 편리하죠. 독재는 효율성을 줍니다. 민주주의가 확대될수록 독재가 오기 쉬워지는 거예요.”

독재는 근대국가의 특징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민주주의의 주체인 ‘국민’이 없었고, 왕들이 나라를 다스렸다. 부르주아 사상을 가진 조선 개화파들은 고종으로 대표되는 봉건세력과 싸워서 졌기에 근대화를 이루지 못했다. 이들이 이루지 못한 근대화를 근면・자조・협동으로 이뤄낸 것이 박정희다. 우리가 ‘독재 체제’, ‘대통령’ 하면 떠올리는 첫 번째 인물도 박정희다. 이 교수는 “박정희는 근대성 자체이고 한국 사회의 경제논리”라며 “민주화와 독재가 배치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게 유신”이라고 말했다.

빌붙어 성공한 대한민국과 말 안 듣는 박정희

“박정희 전 대통령은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 베트남을 버리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습니다. ‘자주국방’을 내세운 배경입니다. 이를 위해 중화학공업이 필요했고, 효율적인 정책 수행을 위해 유신을 선포한 겁니다.”

미국에 박정희는 골치 아픈 독재자였다. 한미 관계에 회의적인 태도를 자주 보였고, 자주국방을 내세우며 핵무기를 개발하고 미국과 거리를 뒀다. 정권 말까지 주한미군 문제 등으로 갈등을 겪었다. 박정희는 만주 군관학교를 나온 사람이었지만, 그의 친형이 미 군정 반대 시위를 하다 처형당하면서 미국에 대한 반감에 공산주의자가 된 적도 있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지배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민주주의 시스템과 경제 제도를 함께 수출했습니다. 경제가 안정되면 민주주의가 이뤄진다는 ‘개발이론’이 있었고, 미국이 이를 실천한 거죠. 이와 달리 우리나라는 숟가락을 얹는 방식으로 일을 해왔어요. 남의 것을 베끼고 우리 식으로 만들었습니다. 민족주의가 내세우는 자주・독립을 실현하면 북한처럼 되는 거예요. 구한말 지식인들의 이상이 구현된 나라지만, 웃기는 나라가 됐잖아요. 남한은 그 반대입니다. 병자호란에서 강화를 맺자고 하던 주화파이고, 실용주의자죠.”

   

▲ 이 교수는 박정희 정부가 핵무장 국가로 가기 위해 중화학공업을 육성했고, 그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유신을 선포했다고 설명했다. 자세한 내용을 담은 책으로는 이 교수가 추천한 <유신과 중화학공업: 박정희의 양날의 선택>이 있다. ⓒ 교보문고

이 교수는 “역사적으로 한국이 성공했을 때는 대국에 빌붙어 있을 때였다”고 말했다. 몽고, 중국 등 제국에 공물을 바치고 국방을 제공받았는데, 이는 약소국이 나라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스코틀랜드와 영국의 관계와 유사하다. 스코틀랜드는 영국 국호를 달고, 영국은 외교와 국방을 맡는다. 그는 “일반적으로 한국사회에서 ‘상식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우리는 이들을 탈이념, 탈정치 세력이라고 불러왔다”고 덧붙였다. 박정희는 이들과 달리 미국의 입김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미국은 한국을 소비자 국가로 만들어 자국 상품을 팔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박정희는 제조업을 발전시키고 국력을 강화하려 했어요. 차관으로 중화학공업을 지원했습니다. 경유 지원을 받은 북한이 핵무기를 만든 것과 비슷합니다. 79년 지미 카터 미 대통령이 방한했는데,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지 않았어요. 굉장히 이상했습니다. 그리고 카터 대통령은 인권문제를 제기합니다.”

당시 미국은 우리나라의 환율을 올리려고 했다. 고환율은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수출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박정희는 환율이 오르면 수입품 가격이 오르고, 물가가 덩달아 올라 서민들 삶이 어려워진다고 우려했다. 이 교수는 “박정희는 대중에게 신경을 썼다는 것이고,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민중의 마음을 동원해야 했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적을 만들고 공포감을 조성했지만, 이 방식은 박정희 체제 이후 통하지 않게 된다.

우파가 시청광장에서 성조기를 흔드는 이유

전두환 군부가 집권하면서 박정희 체제와 단절하게 된다. 군사정권은 지속됐지만, 경제 패러다임이 바뀐 것이다. 경제기획원-재무부-상공부의 3각 체제에서 경제기획원으로 정책 주체가 옮겨갔는데, 경제기획원에는 신자유주의의 주요 이론을 만들어낸 시카고학파 출신이 많았다. 미국의 지원도 한몫했다. 이 교수는 “박정희 체제의 해체를 이끈 것은 고위 관료들, 대통령 측근들이었다”며 “한국 관료들의 일관된 모습 속에서 한국 사회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 고위 관료들은 경력만 보면 굉장히 훌륭한데 다들 머리가 비어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내가 해봤는데 말이야’하는 경험주의가 팽배한데, 아랫사람들을 시켜서 해보고 막연히 아는 것이에요. 그런데 MB는 직접 해봤잖아요. 박정희와 싸운 운동권 출신이었고요. 그래서 ‘해봤는데 말이야’가 관료들에게 먹혔던 것이죠. 이러한 경험주의에는 성찰하는 힘이 전혀 없습니다. 사안에 대한 집중력과 암기력이 뛰어날 수는 있어도 종합적 판단력은 찾아볼 수 없어요. 그렇다면 판단은 누가 하는 걸까요?”

   
▲ 2013년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발표자료에 따르면 2013년 4월 기준 미국 내 한인유학생은 10만여명이다. 한국은 중국 다음으로 미국내 유학생이 많다. ⓒ 미주 중앙일보

이 교수는 한국의 파워엘리트들은 상층부 인물일수록 미국과 가깝다고 말했다. 미국 고위층에 네트워크가 있다는 말이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 가는 것도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그는 우리나라 지식인들이 대선 출마만 하면 미국을 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봤다. 판단하는 ‘브레인’이 미국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 사람들이 하고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며 “좋고 나쁨을 떠나 이것이 한국의 구조”라고 말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노무현 정부 때 우파 시국집회이다.

“성조기랑 태극기를 들고 시청광장에 몰려나와 ‘미국이 구세주’라고 외쳤습니다. 많은 사람이 비웃었는데, 저는 현실감이 확 느껴졌어요. 시위에 나온 사람 중에는 한국에서 잘나가는 엘리트들이 있었습니다. 영국 철학자 알베르토 토스카노의 <광신>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광신은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아니한 것’을 말합니다. 책은 좌파의 광신을 다루는데, 한국에는 우파의 광신이 있어요. 한국에 미국이란 존재가 신적 존재, 광신인 것이죠.”

혈통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에서 미국에 대한 숭배는 인종 숭배가 아니다. ‘부’에 대한 숭배다. 잘 사는 나라에 대한 동경은 박정희가 구체화한 “잘 살아보세”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이는 박정희의 발명품이라기보다 한국인의 삶을 지배해온 중심 생활철학에 가깝다. 이 교수는 “한국만큼 유물론적인 나라가 없다”며 “철학자 탁석산 선생도 <한국인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꼽은 것이 물질주의였다”고 말했다. 우파에게 박정희는 조선의 개화파들이 하지 못한 근대화를 해낸 인물이자 잘 사는 나라를 만든 구세주이다. 그는 “박정희에 대한 광신적 태도는 지식으로만 없앨 수 있다”고 덧붙였다.

MB는 왜 미국에 ‘자기소개서’를 냈을까

“미국 아마존 사이트에서 ‘이명박’으로 검색하면 나오는 책이 하나 있습니다. 자서전으로 낸 책인데 자신이 뭘 해서 뭘 성공시켰다는 ‘성공사례’들이 다 적혀 있습니다. 자기 인품을 적은 게 아니에요. 마치 이력서 같아요. 근데 이걸 한국에서 출판 안 하고 왜 미국에서 냈을까요?”

이명박 전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한 유명한 말이 있다. 박정희 이후 역대 최고 정책으로 꼽히는 ‘북방정책’은 무너진 공산권에 우리 기업들이 치고 들어가 시장을 선점하는 정책이었다. 이 덕분에 삼성, 대우 등 대기업이 급격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역대 최고의 정책을 두고 이 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누가 기억해 주느냐 말이야.” 이 교수는 이 발언과 4대강 사업 등에서 이 전 대통령의 ‘꿈’을 읽어냈다.

“MB가 꿈꾼 것은 조지 부시가 되는 것이었을 겁니다. 미국 대통령은 임기 후 공적 지위를 이용해 로비스트가 되는데, 대통령을 할 때 만든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것이지요. 개인적으로 엄청난 영광이고, 세상이 멸망하지 않는 한 영생하는 권력일 겁니다. 박철언 씨도 이를 꿈꾸고 북방정책을 펼쳤지만,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습니다. 안철수 의원도 좋은 대학 나오고 항상 최고였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여럿 있습니다. 거기서 최고가 되고 싶겠죠. 그래서 정치를 하는 것이고, 이것이 한국의 경제 발전과 결합이 돼 있는 겁니다.”

   
▲ 미국 최대 인터넷 서점 '아마존 (http://www.amazon.com)'에서 판매 중인 이명박 대통령의 자서전. 이 교수는 한국의 파워엘리트와 미국의 네트워크를 설명하며 이를 한국사회의 구조라고 말했다. ⓒ 아마존닷컴

이러한 한국 핵심지도층들의 모습을 두고 그는 “개인적인 욕망의 실현과 공적 체제의 구성・운영이 밀접하게 연결돼있는 것이 우리나라”라고 말했다. 이러한 사회구조는 “전두환 정권 이래 관료들에 의해 견고하게 만들어졌고, 이 구조가 깨지지 않는 한 한국 사회는 바뀌지 않을 테지만, 정권이 바뀌더라도 바뀌기 힘들 것”이라며 “엘리트들이 말하는 세계화가 이런 모습이자, 지금까지 한국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남미 독재자들은 남들이 알아주든 말든 ‘내 배만 부르면 돼’라고 생각했지만, 우리나라 파워엘리트들은 이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문화적 요소를 가지고 설명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긴 한데요, 이러한 구조를 교육 시스템에 심고, 중산층에 이데올로기에 심었죠. 개천에서 용 나는 시스템이 만들어진 겁니다. 이 둘을 통해 중산층은 로또 당첨되듯 상류층으로 진출할 수 있었어요. 이런 것이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시스템인데, 이제 물적인 한계에 도달했다고 봅니다. 교육과 부동산이 더는 중산층에게 단물을 제공할 수 없게 된 겁니다.”

기업이 헤게모니를 쥐면서 맞이한 한국의 민주화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이 시스템은 평등주의를 전제한다. 한국에서는 ‘김밥천국’에서도 갈비탕을 먹을 수 있지만, 고급 한정식집에서도 갈비탕을 먹을 수 있다. 같은 갈비탕이지만, 사람들은 돈만 벌면 더 좋은 곳에서 갈비탕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면 저 사람들처럼 누릴 수 있다는 ‘평등’에 대한 확신이고, 자본주의가 혁명을 통제하는 방식이다.

“파워엘리트들의 정교한 통치 기술에 의해 만들어진 방식이 아니라 굉장히 주먹구구로 이뤄졌습니다. 구성되는 방식도 너도나도 ‘잘 살아보세’라는 이데올로기 위에서 무정부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졌고요. 정치가 정지된 상태, 흔히 말하는 권위주의 정부 아래서 행해진 것입니다. 경제만 어려워지면 효율적인 독재에 대한 요청이 일어나는 이유이고, 박근혜 정부가 도래한 배경입니다.”

불행히도 박근혜 정부는 대중의 이해관계를 대변하지 않는다. 전두환 체제 이후 관료들이 대변해온 것은 기업의 이해관계였고, 지금 정부, 이전 정부에서도 마찬가지다. 과거 북방정책은 삼성을 키우는 역할을 했고, 박정희 체제에서 만들어진 중화학공업의 혜택들도 기업들이 나눠 가졌다. 민주화 세력이 낳은 정부들은 문화•윤리적인 가치에 중점을 뒀지만, 방식만 달랐지 기업의 이해관계를 대변했다. 이 교수는 “한국 민주화의 핵심은 기업에 헤게모니가 넘어가는 과정”이었다며 “박정희로 대변되는 국가적 권력에서 기업이 해방되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민주화는 시장의 자유였다.

“시장이 만들어지면서 시장을 통해 소비주의가 들어왔습니다. 소비주의는 대중의 욕망, 즉 도시 중산층들이 생기게 되고, 자기들의 욕망을 소비주의를 통해 보여주는 방식으로 바뀌게 됩니다. 80년대 강남이 개발되고 아파트 붐이 일어나면서 대중들이 도시로 몰려듭니다. 민주화가 촉진되는 겁니다. 그런데 파워엘리트들의 통치술에 어설픈 구석이 많았어요. 이 때문에 한국에서 대중정치가 굉장히 발달하게 되고,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 누리꾼들은 쇠고기 파동 당시 세종로 사거리에 설치된 컨테이너 박스로 만든 바리케이드에 명박산성이라는 별칭을 붙였다. 이 곳은 촛불집회기간에 다양하게 활용됐으며 주로 시민들이 집회와 시위 피켓 등을 붙이는 곳으로 사용됐다. ⓒ 오마이뉴스

한국이야말로 정치가 잘 작동하는 곳이다. 대중들이 폭동을 일으키면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는 싱가포르와 달리, 우리나라는 ‘명박산성’을 쌓고, 대중들도 그 선을 넘지 않는다. 다만 박근혜 정권이 시대착오적인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이 문제다. 권위주의 통치에는 적이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의 ‘종북몰이’는 이와 관련되는데,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이 교수는 “경제 위기로 작아진 파이를 자기들끼리 차지하기 위해 권위주의 통치를 내세우고 있다”며 “이러한 ‘생계형 독재’는 박정희 체제와 다르다”고 말했다.

“박정희는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를 명분으로 독재했습니다. 국가를 떠받치는 것은 국민이고, 국민의 복지를 위해서 정권을 잡았다고 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기업을 압박하려고 했지만, 집행할만한 의지와 능력이 부족해 보입니다. 경제민주화 공약부터 후퇴하고 있고, 1년 동안 ‘댓글 논쟁’에 진전이 없습니다. 구조적 이유로 실패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파워엘리트들과 공조해왔던, 그들에게 순응해왔던 중산층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가 남아있는 문제입니다. 그것이 미지수이고, 이 부분의 변화에 따라 한국 사회가 바뀔 거라고 봅니다.”

자기계발 이데올로기에 대한 성찰, “안녕들 하십니까”

박근혜 정부는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화두로 등장했다. 이제까지 한국사회를 이끌어온 성장 담론과는 다른 ‘사회에 대한 담론’이다. 사회는 18세기 서양에서 등장한 개념으로, 공화주의에 대한 피로 속에 확립됐다. 통치자는 인민의 대리자이기 때문에 정책이 마음에 안 들면 정치가를 끌어내릴 수 있다는 것이 공화주의의 핵심인데, 마음에 안 들 때마다 통치자를 타도하는 ‘계속되는 혁명’을 초래한다.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는 자성 속에 ‘연대(Solidarity)’라는 개념이 탄생합니다. 복지 담론의 철학이죠. 우리나라에서 정치에 대한 피로는 공화주의에 대한 피로를 뜻합니다. 이를 대체하기 위해 나온 사회 담론은 우리나라에서 복지와 경제민주화로 구체화해서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박근혜 정부가 약속한 가장 중요한 것이었죠. 기업 중심의 국가 정책과 상충합니다. 경제민주화 공약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경제민주화 후퇴, 복지공약 폐기라는 말들이 지지를 얻으면, 박근혜 정부가 무너지는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지난해 12월 고려대 경영학과 학생의 대자보 '안녕들 하십니까'는 전국적인 운동으로 확산됐다. ⓒ 위키피디아

사회에 대한 요청은 개인의 안위와 연결되는데, 이는 자기계발 담론과도 이어져 있다. 자기계발 담론은 적은 월급과 실업 상태를 자본주의 발전이 아닌 ‘내 탓’으로 돌린다.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스펙’을 많이 쌓으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자기계발에 몰두하지만 지치고 지쳐 결국 현실을 알게 된다. “나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 너도 힘들구나.” 근면과 자조 등 자기계발 담론이 ‘힐링’을 거쳐 사회, 연대 담론으로 찾아온 이유이다. 이 교수는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는 사회, 연대 같은 개념들이 대단히 중요할 것”이라며 “‘안녕들 하십니까’ 사태에서도 그것이 발현되고 있다”고 보았다.

보수와 진보가 피곤해지는 ‘욕망의 정치‘

“우리 사회는 기존에 있던 분석 틀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단계로 진입했습니다. 시장 자유주의가 도입되면서 물적 토대가 민주화하는 과정을 겪었는데, 반드시 좋다고 볼 수 없어요. 철학자 알랭 바디우가 언급했듯이 사물들이 상대적 가치체계에 빠지는 겁니다. 신라면을 먹는 사람과 안성탕면을 먹는 사람이 싸울 필요가 없는 거예요.”

욕망은 공유할 수 없다. 내가 꾸는 꿈이 상대방 꿈일 수 없는 것이고, 누구도 같은 꿈을 꾸지 못한다. 욕망의 정치는 공동 의제를 설정할 수 없는 것 같지만, ‘안녕들 하십니까’ 사태처럼 폭발적으로 확산되거나 돌발적으로 출현할 수 있다. 그 결과는 가치 상대성으로 흡수된다. 철도파업을 지지했던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김무성 의원이 붙일 수 있고, 기업 사장님이 열심히 일하라며 붙일 수 있다. 이 교수는 “이러한 현상은 하나의 이념으로 설명할 수 없다”며 “점점 더 빈번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자들이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는, 골치 아파지는 시대가 됐다”고 덧붙였다.

가치상대성 속에 모든 이념이 녹아내리고, 각자의 욕망에 토대를 둔 정치가 이뤄진다. 진보 진영에서도 뾰족한 수가 없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시애틀에서 일어난 반자본주의 운동도 이 맥락에 있는데, 사건을 지켜본 영국 신문 <가디언>의 칼럼니스트 나오미 클라인의 지적이 상황을 잘 드러낸다. ‘시애틀에 10만이 모여 시위하는데 지도부는 각자 알아서 판단하자며 해산했다. 결국,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욕망의 정치는 이렇게 허무한 결론만 남기는 것일까? 이 교수는 미국 정치학자 낸시 프레이저를 언급하며 강의를 마무리했다.

“낸시 프레이저는 욕망의 정치가 지닌 에너지를 공공성의 민주화로 가져가자고 말합니다. 공공성을 확장하자는 겁니다. 우리 사회는 잘 돼 있어요. 기자, 칼럼니스트들이 공동체적인 생각들을 가지고 있고, 아직 저널리즘적 정신이 살아있다고 생각해요. 독재를 거쳤기 때문일 겁니다. 사회에 대한 요구들이 정치적 의제로 설정되고, 정치의 영역을 확장해가는 방향으로 간다면, 한국 상황이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언론의 역할, 지식인의 역할이 크다고 보는데, 그러한 것들이 잘돼야 합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인문교양특강I>은 정희진, 진중권, 안광복, 주일우, 천정환, 이상수, 이택광 선생님이 강연을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의를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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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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