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특강] 고승철 나남출판 사장
주제: 언론인 되기와 출판인 되기

“몇 년 전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에 왔을 때 한국기자들 아무도 질문을 안 했다면서요? 어떤 사람이 기자 출신인 저보고도 그걸 물어보면서 면박을 주기에 얼마나 얼굴이 뜨거웠는지 모릅니다.”

파주출판도시의 나남출판사에서 열린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에서 고승철 사장 겸 주필은 한국 기자들이 소심해졌다며 안타까워했다. <경향신문> 파리특파원과 <동아일보> 출판국장 등으로 언론·출판계 경력이 다양한 고 사장은 강의 내내 예비언론인들에게 아낌없이 조언을 건넸다. 

▲ 고승철 <나남 출판> 사장이 강연중이다. ⓒ 이대용

여기자 팔라치의 호메이니 공략법

고 사장은 몇 달 전에도 기자들이 질문하지 않는 사례를 경험했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님이 문학선집을 낸 기념으로 간담회를 한 적이 있습니다. 질의응답 시간이 되자 조용하더군요. 민망할까 봐 아무개 기자분 질문 좀 해주시죠 하니까 사양하더군요. 질문 기회가 있으면 바로 해야죠. 가벼운 주변거리라도 물어볼 게 많잖아요.”

공격적 자세로 질문을 던지는 것이 기자의 기본임을 그는 강조했다. 고 사장이 제시한 본보기는 전설의 여기자 오리아나 팔라치(Oriana Fallaci)다. 이탈리아 출신인 그는 베트남전과 아프가니스탄 내전, 걸프전 등 분쟁지역 전문기자로 활약했다. 그의 인터뷰 방법은 상대방에게 매우 곤란한 질문을 던져 당황하게 한 뒤 그 상황을 이용해 진면목을 파악하는 식이었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로서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호메이니(Ayatollah Ruhollah Khomeini) 앞에서 차도르(이슬람교도의 여성이 입는 전통적인 민족의상)를 벗어 찢은 일화는 유명하다. 고 사장은 이와 같은 자세를 배우라고 당부했다.

“기자생활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의식’이라고 보거든요. 뭘 취재할 것인지, 자기 관심분야는 무엇이며 앞으로 어떤 전문성을 가져야 할 것인지에 대해 최소한 두 가지 정도 핵심주제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 관심분야를 갖고 전문가를 계속 만나고 자료도 찾아야 전문 저널리스트가 될 수 있습니다.”

고 사장이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된 계기는 흥미롭다. 대학 시절 그는 권투를 좋아하던 혈기왕성한 청년이었다.

▲ 팔라치는 호메이니에게 차도르를 왜 입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  oriana-fallaci.com

열혈복서, 기자가 되다

“관장에게 신인왕전에 나가보라는 권유를 받을 정도였죠. 하지만 경기와 기말고사 기간이 겹치는 바람에 몇 번 마음만 먹다가 그만뒀어요. 선수로는 뛰지 못했지만, 우리 체육관 선수들 도와주러 경기장에 자주 갔습니다. 엄청나게 경기를 현장에서 많이 봤죠. 그런데 경기 내용과 다른 엉터리 기사가 많이 보였습니다.”

자신이 관람한 경기의 스코어까지 신문에 다르게 나온 적도 있었다. 승부조작 의혹이 짙은 경기를 본 것은 결정타였다. 오늘 경기에서 패한 외국인 선수가 이름을 바꾼 채 1주일 후 KO승을 거두는 일을 목격한 것이다. 신문사에 항의해도 기자들은 무시했다. 그때부터 그는 ‘우리가 읽고 있는 기사가 이런 식으로 엉터리로 보도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후 고 사장은 관전하는 시합마다 꼼꼼히 수첩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때 <일간스포츠>가 제일 영향력 있었는데 신문에다 투고하니까 얼굴 사진하고 크게 실어 주더라고요. 우쭐해서 잡지 같은 데도 복싱기사를 꽤 썼습니다. 독자들한테 피드백도 오니 재미가 생기더군요. 졸업 무렵 친구들은 대기업체나 은행 갈 때 저는 신문사를 가자고 결심했습니다.”

대기업 임원을 거쳐 소설가가 되기까지

IMF 사태가 일어날 때 고 사장은 경제부 기자로 일하고 있었다. 기자로서 전혀 그 사실을 예측하지 못한 데 회의를 느꼈고 언론계를 떠났다. 그는 1년간 효성그룹 임원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경영실적에 대한 압박감과 갑을 관계에 있는 관료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일이 힘겨워 임원을 그만두고 언론계로 돌아왔다.

“편집국에 쭉 있다가 광고국 부국장 자리로 갔습니다. 광고국에 가면 글을 안 쓰지 않습니까? 글을 안 쓰니까 금단현상이 생기는데다 ‘글을 쓰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생기더라고요. 그러다 우연히 장편소설 공모를 보게 됐어요. 소설에 대해 별 조예도 없지만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에서 장편소설을 한번 써보았는데 당선통보를 받았습니다.”

고 사장은 2008년 <서재필 광야에 서다>로 데뷔했다. 장편 <은빛까마귀>와 <개마고원>은 그의 대표작이다. 독자들이 드라마나 영화로도 만들면 좋겠다는 의견까지 보내왔다. 실제로 몇몇 방송국과 영화사에서 이를 추진했지만 국외를 넘나들며 촬영해야 하는 엄청난 예산 때문에 모두 포기했다.

▲ 고승철 사장이 쓴 소설<개마고원>. ⓒ 나남 출판
“소설을 한 번 쓰니까 저널리스트에 대한 매력이 좀 떨어지더만요. 언론인이 나이가 들수록 현장에 나가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소설을 쓰기로 작정하고 정년퇴직보다 앞당겨 은퇴했습니다. 그리고 집필실을 하나 얻어 소설을 썼습니다. 원고를 다 완성해서 나남출판사에 왔죠. 그 책이 <은빛까마귀> 입니다.”

출판의 미래는 여전히 희망적이다

막상 출판업계에 몸담았지만 시장 현실은 어렵기만 했다. 하지만 고 사장은 책 수요는 존재할 것이고 좋은 책은 계속 팔릴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고 사장 같은 편집자는 출판 과정에서 작가와 소통해서 좋은 책을 만드는 구실을 한다. 저자가 보내온 원고를 받아보고 완성도를 높이는 일이 가장 중요한 업무다.

“아니 월급 받아가면서 남들 책 읽기도 전에 원고부터 먼저 보니까, 특히 좋은 원고 보면 얼마나 좋습니까? 첨단지식 정보를 원고 상태에서 보고 교수나 학자 같은 전문가와 토론한다는 것은 장점입니다. 반면 한국 출판사들은 규모가 작고 채산성이 높지 않아 급여가 안 좋다는 단점도 있어요. 하지만 그걸 감수하고서라도 출판사에 오는 이가 많습니다.”

기성 출판사 취직이 어렵다면 개인이 직접 1인 출판사를 차릴 수도 있다. 신분증을 들고 구청에 가서 출판사 등록신청을 한 뒤 등록세 1만8천 원을 내면 출판사 등록이 완료된다. 편집과 같은 기타 작업은 대행을 활용하면 된다. 관건은 좋은 컨셉트와 그에 걸맞은 좋은 원고 확보다. 출판사 창업은 자기가 매체를 하나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Press’라는 단어가 출판도 되고 언론도 되듯이 고 사장은 이것 또한 언론활동이라고 했다.

소설과 언론 둘 다 진실을 찾기 위한 도구

고 사장은 “때로는 소설이 언론보다 더 진실에 가까이 접근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취재원이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발언을 조작하거나 과장한다면 언론은 숨겨진 진실을 찾기 힘들다. 지나가버린 일을 뒤늦게 확인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가공의 진실’로 불리는 소설은 상상력으로 숨겨진 것을 밝힐 수 있다. 지어냈지만 진짜 진실은 창작 속에 있을 수 있다. 고 사장은 밀란 쿤데라가 쓴 <커튼>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많은 사람이 커튼에 비친 상을 보고 이게 진실 또는 사실이라고 믿는다. 커튼 뒤에 있는 진짜 물건 대신에 투영된 그림자만 보고 그림자를 사실 또는 진실로 믿는다.’ 이게 언론 보도일 겁니다. 취재원들이 말하는 것이나 자기 눈에 비친 관찰 결과 같은 거 말이죠. 문학적 상상력 이게 엉터리일 수도 있지만 사실 확인이 안 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걸 통해서 메꿀 수 있습니다.”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이 '나남출판사'에서 고승철 사장의 강연을 듣고있다. ⓒ 이대용

깨어있는 지식인으로서 자기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책을 많이 봐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기자가 미래에 대한 통찰력과 분석력을 갖기 위해서는 꾸준히 공부해야 된다는 당부의 말로 강의를 마무리했다. 고 사장은 언론인 출신 소설가 이병주의 소설 한 구절로 저널리즘과 아카데미즘의 관계에 대한 그의 생각을 대신했다.

“저널리즘이 오늘에 생긴 일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도 아카데믹한 교양의 바탕을 가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 저널리즘은 하루살이가 될 수밖에 없고, 아카데믹이 저널리스트의 프레시한 감각을 가지지 못하게 되면 동맥경화증에 걸린 강단철학(講壇哲學)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를 버린 여인>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저널리즘특강>은 조상호, 고승철, 김현대, 황호택, 이영돈, 선대인, 오연호, 박태균, 곽윤섭 선생님이 강연을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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