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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책’과 ‘책이 만든 나’의 35년 우정
[저널리즘특강] 조상호 나남출판 회장
주제: 언론 의병장의 꿈
2014년 04월 02일 (수) 14:57:02 이대용 조창훈 기자 nakedjochang@gmail.com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저널리즘특강>은 조상호, 고승철, 김현대, 황호택, 이영돈, 선대인, 오연호, 박태균, 곽윤섭 선생님이 강연을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우리는 언론과 출판을 구분해 말하지만, 사실 언론과 출판의 경계는 명확하지 않다. 방송이나 인터넷신문까지 포함하는 ‘언론’을 영어로 ‘프레스(press)’라 불러온 데는 언론이 출판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신문이나 잡지 모두 활자로 조판한 것 위에 종이를 대고 눌러야 인쇄가 됐으니까. 언론이 비교적 짧은 기간에 요약된 정보를 제공한다면, 출판은 더 긴 기간에 많은 양을 전달한다는 점 등에서 좀 차이가 있을 뿐이다.

   
▲ 파주 출판도시 활판공장에서 문선(文選)과 조판(組版)작업이 진행중이다. ⓒ 위쪽부터 파주출판도시, 활판공장 홈페이지

<나남출판> 조상호(64) 회장의 생각도 그렇다. 조 회장은 본인을 ‘출판 의병장’이 아닌 ‘언론 의병장’이라 칭한다. 그는 군부독재 시절 학생운동을 하다 ‘출판저널리즘’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이후 사회과학 서적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에 의미 있는 책들을 35년째 내고 있다. 

제도 언론이 거대한 조직을 가진 관군이라면, 출판은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끈질기게 저항하는 의병을 닮았다. <나남출판>은 특히 언론 분야 책들을 많이 내 저널리스트의 일탈을 막고 한국 저널리즘에 표준을 제공하는 구실을 해왔다. 좋은 작가를 키워내고 상을 만들어 노고를 보살피는 일도 해왔다. 

파주출판도시 나남출판 사옥에서 열린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에서 조상호 회장은 그의 인생사가 함축된 자서전 <언론 의병장의 꿈>을 펼치며 강연을 시작했다. 평생을 출판과 언론에 바친 ‘노 의병장’의 고함은 언론인 지망생들의 머리 위에 내리치는 죽비 소리였다. 

   
▲ 강연 중인 <나남출판> 조상호 회장. ⓒ 이대용

“출판인은 대개 자신의 업적이 도서목록으로 남습니다. 판사가 판결로 발언하듯이 출판사는 발언을 도서목록으로 합니다. 저는 처음 출판을 시작하면서 사상과 자유가 편견 없이 교통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꿈꿨습니다. 출판사가 낸 첫 책이 <지성의 열풍 지대>입니다. 지성과 야성의 조화라는 화두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던 젊은 날들을 보냈기 때문인 듯합니다.”

조 회장은 학생 운동권 출신이다. 박정희 군부체제를 비판했다. 지하신문 발간과 제적, 도피와 군생활이라는 곡절을 거쳤다. 그가 ‘출판저널리즘’을 택한 이유도 사회를 바꿔보겠다는 생각과 잇닿아 있다. 일종의 우회로였다. 그는 지성의 힘이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나무를 심으면 손자대에라도 과실을 거둘 수 있다’는 독림가의 말을 굳게 믿었다.

   
▲ <나남출판>에서 낸 <뉴미디어와 정보사회>는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했다. ⓒ 교보문고

언론학의 개척교회 목사가 되어

<나남출판>이 설립된 뒤 10여 년간 집중했던 분야는 학술서적이다. 조 회장은 특히 언론학 분야에서는 ‘개척교회 목사의 심정’으로 책을 만들었다고 했다. 아직도 언론학도의 필수 개론서로 꼽히는 <매스미디어와 사회>(현재 <뉴미디어와 정보사회>)는 나남신서 118번이다. 

“신문방송학이란 천막교회를 만들었는데 우연히 시류와 잘 만났는지 신문방송학이 인기를 끌더군요. 당시 신문방송학은 불모지였습니다. 현장의 신문인, 방송인은 전문분야가 없어서 지적 콤플렉스가 있기도 했어요. 우리는 신문방송학 학술서적뿐 아니라 현직 언론인들의 글도 책으로 펴냈습니다. 의과대학을 보면 대학이란 아카데미와 병원이란 현장이 있듯이 신문방송학이란 아카데미즘과 언론이란 현장을 아울렀지요. 저의 공로가 있다면 이 부분입니다.”

<토지>와 뉴저널리즘 

<나남출판>은 소설가 박경리와 인연이 깊다. <나남출판>은 사회과학서가 중심이었는데 오랜 고민 끝에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과 <토지>를 출간했다. 조 회장이 20여 년간 박경리 씨와 쌓은 인연 덕분이었다. ‘토지 마을’로 불리는 하동 평사리 지리산 자락에서 ‘토지문학제’를 처음 연 이도 조 회장이다. 그는 <토지> 발행이 사회과학 출판사가 돈을 벌기 위해 문학작품을 출판한 것이 아니라 ‘뉴저널리즘’의 하나라고 말한다. 뉴저널리즘은 ‘객관 보도’라는 형식의 틀을 깨고 소설가의 기법과 방식까지 동원해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는 저널리즘을 말한다.

“작가가 이 시대를 온몸으로 보듬고, 치열하게 살지 않고서는 ‘역사로서의 소설, 소설로서의 역사’를 창조해낼 수 없는 일입니다. 뉴저널리즘의 표상이 되는 존 리드의 <세계를 뒤흔든 열흘>은 1917년 러시아 혁명을 그립니다. 러시아 혁명 당시 레닌그라드의 포성이 울렸다는 것은 구소련의 타스통신사나 미국의 AP통신이 보도한 적이 없습니다. 존 리드 때문에 알려졌습니다.” 

   
▲ 매년 10월 경남 하동에서 열리는 토지문학제. ⓒ 하동문화관광

그는 이 맥락에서 한국에서 <토지>는 뉴저널리즘과 같다고 말했다. 

“<토지>는 사위이기도 한 시인 김지하가 매번 감옥에 가던 60년대와 70년대를 그립니다. 그냥 하동 평사리에서 서희가 무엇을 했고 안 했고는 껍질입니다. 자유를 향한 길목에는 이율배반의 자비와 잔혹이 그리고 질기고 한 많은 인연이 있습니다. 굼소의 귀마동에서 서희와 길상의 타는 목마름이 사랑으로 승화합니다. ”

나를 키운 것은 수많은 저자들과의 인연

강연 도중 조 회장은 뜬금없이 “좋은 총각 소개해주십쇼”라고 물어보라고 했다. 한 여학생이 그렇게 묻자 “그럼 너는 좋은 처녀인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이영희 선생님께서 언론에서 독일 통일 사례가 나올 때마다 ‘그럼 우리나라는 서독만큼 통일 준비를 했고 민주주의를 안정시켰느냐’라고 하셨다”며 “우리는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려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이 나남출판사 조상호 회장의 강연을 듣고 있다. ⓒ 이대용

"결국, 출판이고 언론이고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저자를 만나는 일이든 취재원을 만나는 일이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나’를 따져봐야죠. 내 결론은 ‘내가 좋은 사람이 돼야 한다’였습니다."

그는 “좋은 사람, 좋은 저자들 옆에 계속 있으면서 많이 배워왔다”고 회고했다. 

"어느 날 가까이 지낸 교수가 제게 이러더군요. 조 대표 학생운동하고, 박정희 반대하고 그 틈바구니에서 언제 책을 읽었겠느냐는 의문이 들었었는데 박경리 선생님 앞에서 기도 안 죽고 추임새를 잘 넣는 것을 보고 감탄했다고요. 저도 책을 팔려면 온종일 공부하고 책을 읽어야 했습니다. 그 중에 몇 문장이라도 건지면 공부가 된 거지요. 최초의 독자이자 최초의 수학(受學)을 하는 셈이지요. 저는 이 저자들을 통해 많이 성장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이 파주 출판단지의 출판공정을 구경하고 있다. ⓒ 이대용

미셸 푸코를 국내에 알린 오생근 서울대 명예교수, 현재 활발한 기고를 하는 송호근 서울대 교수, 예술과 인문학에 환경학까지 아우르는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 등은 조 회장이 젊은 시절부터 우정을 나눴던 이들이다. 서로가 이름을 알리기 이전부터 맺어왔던 인연들이 지금껏 이어져 왔다고 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절벽 밑 야생화처럼 스스로 갈고 닦을 것을 부탁했다. 벌과 나비가 먼 길을 찾아오려면 꽃 향기가 짙어야 한다며 자신만의 향기가 가득한 사람이 되라고 힘줘 말했다. 조 회장이 사람을 강조한 것처럼 <나남출판>의 신조는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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