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에너지 현장을 가다] 지열 ② 경남 양산 부산대병원

지난해 9월 6일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부산대학교병원. 초가을이지만 아직 늦여름의 후텁지근한 열기가 감도는 건물들 사이로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재활병원에 들어서자 딴 세상처럼 시원한 냉기가 감돌았다. 재활병원 내 수영장에서는 운동치료 중인 환자 두어 명이 길이 25미터(m)에 레인 4개인 풀에서 첨벙첨벙 헤엄을 치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다른 환자와 가족들도 건물 밖의 더위는 모른다는 듯 편안한 표정이었다. 이 건물은 100% 지열을 이용한 냉방으로 여름 내내 전기료 걱정 없이 환자와 가족, 의료진이 더위를 잊을 수 있게 해주었다.  

▲ 한방병원 외에도 재활병원, 뇌신경센터, 치과병원은 100% 지열로 냉난방하고 있다. 어린이병원과 대학병원은 부분적인 지열냉난방을 도입했다. ⓒ 박일규

재활병원 외에 뇌신경센터, 치과병원, 한방병원도 100% 지열냉난방이 이뤄지고 있다. 또 부분 지열시스템을 가동하는 건물을 포함하면 병원 전체 냉난방 중 43~48%가 지열로 이뤄진다고 윤정태 시설관리팀장은 설명했다. 각 건물의 지하에는 냉난방을 위한 지열 공급관과 환수관, 냉온수 공급관, 지열순환펌프 등이 줄지어 설치돼 있다. 열원을 전달하는 히트펌프는 이날도 굉음을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재활병원 건물 옆쪽으로 6천 평(19,835제곱미터(㎡))쯤 되는 나대지가 보였다. 이 부지 밑으로 150~200미터(m) 깊이에 수직밀폐형 지중 열교환기가 6m간격으로 600공 매장돼 있다고 한다. 

태양열, 풍력보다 지열 냉난방 안정성 높은 편  

부산대병원의 지열냉난방시스템 용량은 총 1800냉동톤(RT)(7,000킬로와트(kW))에 이른다. 국립대학인 부산대는 정부의 대형 공공건물 신재생에너지의무화 정책에 따라 지난 2005년에 지열시스템 도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2008년부터 어린이병원, 대학병원, 치과병원, 한방병원 등에 지열냉난방을 가동했고 2011년에는 재활병원과 뇌신경센터에 설비를 추가했다. 시설투자예산은 총 58억원, 설비는 지열전문기업 코텍엔지니어링이 맡았다. 당시엔 국내에서 지열을 대규모로 시공한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처음 공사한 어린이병원은 50RT, 대학병원은 130RT 규모로 부분적인 지열냉난방을 도입했다. 이들 건물의 효율이 높게 나타나자 치과병원, 한방병원, 재활병원, 뇌신경센터는 지열 100% 냉난방을 자신 있게 추진할 수 있었다. 

▲ 냉난방을 위한 지열 공급관과 환수관, 그리고 지열 순환펌프들이 가지런히 줄지어 있다. ⓒ 박일규

지열냉난방 덕에 부산대병원의 에너지비용은 획기적으로 줄었다. 지난해의 경우 100% 지열로 가동한 한방, 치과병원은 1년 동안 1㎡당 1만1147원을 전기요금으로 냈다. 화석연료를 함께 사용한 대학병원과 어린이병원이 1㎡당 4만1606원을 낸 것과 비교했을 때 약 75%의 절감효과가 있었다. 

부산대 병원은 지열 외에 태양광, 태양열도 활용하고 재사용수도(중수도)와 빗물 재활용시설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이 중에서도 지열냉난방의 효율이 가장 높다고 윤 팀장은 설명했다. 

▲ 한방병원에 설치된 지열 냉난방 시스템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부산대병원 윤정태 시설관리팀장. ⓒ 박일규

“지열은 한 번 설치하면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효율이 높습니다. 수명이 40~50년 이상이거든요. 2008년에 설치된 지열냉난방시스템은 아직 한 번도 고장이 나지 않았습니다.”

부산대병원에 지열시스템을 설치한 코텍은 2007년 서울 상암동의 IT센터와 2009년 강원도 평창의 알펜시아리조트 등에서도 대규모 지열공사를 완료했다. 코텍 민경천 기술연구소장은 “2005년 당시 국내 지열회사들의 인력구성과 기술수준이 매우 열악했기 때문에 미국 지열회사인 워터 퍼니스(Water Furnace)로부터 1년간 기술지도를 받고 사업을 시작했다”며 “일반적으로 지열은 기존 냉난방시스템 대비 60~70%의 에너지비용을 절감하기 때문에 건축주의 만족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 치과병동 냉난방을 위해 설치된 냉온수 펌프가 줄지어 있다. ⓒ 박일규

서울지하철, 제2롯데월드 등 대형 지열설비 확대 추세 

지열의 효과가 확인되면서 도입 사례도 점점 늘고 있다. 서울시는 지하철 9호선 3단계(종합운동장~보훈병원)구간에 지열냉난방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하고 지난해 2월 7개 역에서 공사를 시작했다. 지하 180m까지 구멍을 뚫어 연중 15℃내외로 유지되는 땅속 온도를 활용하는 수직밀폐형 방식이다. 이 구간의 지열냉난방시스템 총용량은 580kW로 전체 냉난방용량의 약 9%에 해당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연간 134메가와트아워(MWh)의 전기사용량 절감효과가 생길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는 일반가정 37가구가 1년 간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으로, 약 1600만원에 해당한다는 설명이다. 화석연료를 쓰지 않고 지열냉난방을 하는 만큼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이 57톤(t) 감축되는데, 이는 소나무 1만1400그루가 1년 동안 흡수하는 양과 같다고 한다. 서울시는 2016년 3월까지 지하철 9호선 3단계 구간에 지열냉난방시스템을 완공하고, 향후 경전철에도 지열냉난방을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롯데그룹이 짓고 있는 서울 잠실의 123층, 555m 규모 제2롯데월드 건물에도 3000RT(약 1만549kW) 규모로 지열냉난방시스템이 도입된다. 이는 건물 전체 냉난방용량의 약 4.3%를 감당하는 것인데, 주로 지하 6층에서 지상 11층의 저층부시설에 활용된다. 제2롯데월드의 지열시스템 설치비는 약 100억원이며, 시공은 부산대병원을 맡았던 코텍엔지니어링이 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에너지이용합리화법 개정으로 공공기관 신축건물의 신재생에너지원 설치의무가 강화됨에 따라 세종시 등의 공공건물에 특히 지열시스템이 활발하게 도입되고 있다. 지난 6월말 준공한 국립세종도서관은 건물 전체 에너지소비량의 32.95%를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하고 있는데 이중 지열냉난방이 87.49%를 차지한다. 또 세종시 정부청사 건물에도 5000RT(1만9400kW)이상의 지열냉난방설비가 도입됐다. 이는 1222가구가 1년간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과 맞먹는다. 

우리나라 암반구조 지중 열교환에 유리 

강원대학교 이진용 교수에 따르면 1년 내내 일정한 땅속 온도를 이용하는 지열시스템은 사계절이 뚜렷해서 여름철(23~27℃)과 겨울철(-6~7℃) 기온 차이가 큰 우리나라에 매우 적합한 에너지원이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은 또 우리나라에 화강암 등 결정질 암반이 많고 지하 10m 정도 내려가면 지하수가 존재하기 때문에 냉난방을 위한 지중 열교환에 유리하다고 지적했다.

▲ 2013년 6월 기준 지열냉난방 설치 누적용량은 501MW다. ⓒ 에너지관리공단

강원대학교 지질학과가 2012년 4월 발표한 지열시스템 이용현황을 보면 국내 지열원 펌프 누적 설치개수는 2002년 2개에서 2011년 11월 965개로 급격하게 늘었다. 이는 총 시설투자비의 50%를 보조하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정책에 힘입은 결과다. 에너지관리공단에 따르면 2013년 6월 기준 지열냉난방 설치 누적용량은 501MW다. 이 중 공공건물 의무설비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역지원사업이 약 63%, 민간주택 및 건물지원이 37%를 차지하고 있다.


석유, 천연가스 등 주요 에너지원을 대부분 수입해 쓰는 ‘자원빈국’이면서도 에너지소비 증가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인 한국. 심각해지는 기후변화와 후쿠시마 사고 같은 핵재난을 막으려면 화석연료와 원전 의존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생산을 늘려야 하지만, 현실은 아직 거북이 걸음이다. 반면 독일 등 유럽 선진국에서는 햇빛, 바람, 지열 등 ‘토종 청정에너지원’을 이용한 전력생산이 이미 원전 비중을 넘어섰다. <단비뉴스>는 남보다 한발 앞서 신재생에너지를 도입한 국내의 현장들을 찾아 실태를 점검하면서,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를 획기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와 대안을 함께 모색한다.(편집자)

* 이 시리즈는 주한 영국대사관 기후변화 프로젝트의 취재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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