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스쿨 인문교양특강] 이상수 철학 강사
주제 ② 제자백가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초등학교 때 암막상자에 어떤 물건이 있는지 알아맞히는 실험해본 적 있으시죠?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흔들어 보거나 손을 상자에 넣어보기도 하고···. 자연현상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던 고대인들에겐 하늘의 뜻이 그런 ‘암막상자’였죠. 그들은 천명을 알아내려고 거북이 배딱지로 점을 치기 시작합니다.”

▲ 갑골문은 거북의 배딱지나 소의 넓적다리뼈에 새겨진 글자이다. 중국 고대인은 갑골을 이용해 '길흉화복'을 판단했다. ⓒ 중국 은허박물관
철학자 이상수 강사는 중국 고대 은나라 이전에 전설로만 존재했던 ‘하’나라 시대를 역사로 바꾼 ‘갑골문’ 이야기로 강의를 시작했다. 갑골문은 거북의 배딱지나 소의 넓적다리뼈에 새겨진 글자이다. 중국 고대인들은 나라 대사를 치르기 전, 제사를 담당하던 정인(貞人)을 통해 하늘의 뜻을 묻는 점을 쳤는데 그 기록이 ‘갑골문’이고 이를 통해 중국 고대인의 세계관을 알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점괘는 왜 그럴듯해 보일까

하지만 갑골점으로 합리적인 ‘정답‘이 나올 리 만무했다. 거북이 배딱지를 불에 구웠을 때 생긴 균열 모양으로 길흉화복을 판단하는 것은 우연에 기댄 점술에 불과했다. 이 강사는 “그럼에도 ’정인 실명제‘가 있어 정인들은 자신의 점술에 대해 책임을 져야 했기에 갑골점의 불확실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대책을 세워야 했다”며 “그때부터 왕의 덕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덕치‘나 길흉이 공존한다는 ’전화위복‘이란 개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바탕으로 등장한 새로운 점서가 바로 <주역>이다. <주역>은 갑골점과 달리 어떤 상황에 점을 쳐도 점괘가 그럴듯하게 나온다. ‘덕치’나 ‘전화위복’과 같은 전제조건을 깔고 조건문 형식으로 작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길흉이 공존했던 주역의 점괘는 인간으로 하여금 무엇이 하늘의 뜻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했다. 천명이 정해져 있지 않은 시대를 맞아 ‘표준’을 둘러싼 인간의 사유가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이상수 강사는 “수천 년 전 제자백가 시대는 오늘날까지도 세상의 규칙과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며 제자백가 시대를 연 등석(鄧析)을 소개했다.

▲ 이상수 철학 강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에서 제자백가의 정신을 오늘날 어떻게 되살릴 것인지를 설명했다. ⓒ 박준용

등석은 춘추시대 정나라의 대부로, 공자보다 약 30년쯤 전에 활동했고 정나라의 정치가 자산과 팽팽한 논쟁을 벌인 변론가였다. 그는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는 식의 '양가론’(兩可論)을 주장했는데 다음 일화가 <여씨춘추>(呂氏春秋)에 전해진다.

어느 부잣집 자제가 물에 빠져 죽었는데, 그 주검을 아랫마을 어부가 건져냈다. 부자의 유가족은 어부를 찾아가 대가를 지급할 테니 주검을 돌려 달라고 요구했다. 어부가 엄청난 금액을 제시하자 유가족은 저명한 변론가였던 등석을 찾아가 사정을 설명했다. 등석은 유가족에게 “어부가 주검을 팔 곳은 당신네뿐이니 기다리면 값은 저절로 싸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주검을 건진 어부도 등석을 찾았다. 등석은 어부에게 “유가족이 그 주검을 살 수 있는 곳은 당신뿐이니 안심하고 기다리면 가격은 오를 것”이라고 답했다.

양가론은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사태를 모두 취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등석은 한 사안을 두고 동시에 의뢰를 받자, 어느 한쪽을 포기하기보다는 모순과 궤변을 늘어놓으며 이제까지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던 규범을 뒤흔들었다. 이상수 강사는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식 논리가 펼쳐지면 세상은 새로운 공리나 규범을 만들어내기 위한 거대한 논쟁에 휩싸이기 마련”이라며 “등석을 거대한 논쟁의 시기가 시작했음을 알린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등석이 규칙의 허점을 파고들어 그것을 깨려고 했던 사례도 《여씨춘추》 <이위>편에 실려있다. 등석이 기존 규칙을 무시하고 자신만의 법조문을 세상에 내걸자(縣書) 정치가 자산은 문서를 내걸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자 등석은 문서를 돌려보았다(致書). 문서도 돌려보지 못하게 하자, 등석은 문서를 다른 물건에 붙여서 보았다(倚書).

이 강사는 등석의 상황과 유사한 예로, 웹툰 <마음의 소리> 153화 ‘나는 착하다’ 편을 언급했다.

“웹툰의 주인공은 사이가 나쁜 두 친구를 화해시킬 자리를 마련합니다. 하지만 두 친구는 마주 앉아있다는 걸 불쾌해 하죠. 그래서 주인공은 둘을 나란히 앉혀줍니다. 화가 난 친구들은 상대와 말을 섞는 게 싫다고 하자 주인공은 친구끼리 문자로 대화하게 하죠. 더 화가 난 친구들은 서로 ‘친구’로 엮이는 게 싫다고 해요. 그랬더니 주인공이 둘 사이를 ‘연인’이라고 소문낸다는 내용입니다.”

▲ 조석의 <마음의 소리> 153화 '나는 착하다' 편은 등석의 '양가론'을 잘 보여준다. ⓒ 웹툰 <마음의 소리>

등석은 규칙의 허점을 파고들어 그것을 깸으로써 지배계급의 규칙에 억눌려 있던 백성의 입을 최초로 열 수 있게 만든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등석은 지배규칙을 파괴하고 양가론적 입장을 펼쳐 “법질서를 혼란시켰다”는 죄목으로 자산에 의해 처형됐지만 그런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제자백가 시대가 본격적인 서막을 열 수 있었다.

국정원 대선개입 논란, ‘공자’가 필요하다

“<논어>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음악이라는 게 종 두드리고 북 치는 것이겠는가, 예라고 하는 게 복장(服裝)의 숫자겠는가?’ 당시에는 ‘예’가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원리였어요. 주나라 예법 절차는 계급에 따라 옥과 비단의 숫자에만 신경 쓰는 형식주의였죠. 공자는 그간의 개념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며 개념을 재정립하기 시작해요. 한 예로 공자 이전의 ‘군자’는 지배계급만을 뜻했지만 지금은 ‘자기 수양을 쌓은 사람’이란 뜻이 됐죠.”

이 강사는 지금까지 공자가 추앙받는 이유를 “무엇이 옳고 그른지 혼란이 오는 시기에 그간 옳다고 받아들여졌던 규범이나 표준을 재규정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논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장 먼저 규칙을 새롭게 만들려 했던 철인이 ‘공자’라는 것이다. 이 강사는 “그런 고심의 흔적들이 보이는 문장이 바로 ‘조화롭되 같지 아니하고(和而不同), 두루 사귀되 단짝을 만들지 아니하며(周而不比), 남이 나를 몰라주더라도 성내지 않아야 한다(不知而不溫)”라며 “유사한 개념을 구분하고 재정의함으로써 새로운 개념과 질서를 만들려고 한 것에 큰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공자가 위대한 또 다른 이유는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이 강사는 말했다. 공자는 세상에 숨어있는 자와도 소통하기 위해 끊임없이 그들과도 만나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은자들은 되레 그런 공자를 비판했지만 공자는 이에 굴하지 않고 ‘인간과 함께하는 일’을 자신의 천명으로 여겼다.

“요즘 인터넷상에서 유행하는 ‘종북 자가 테스트’ 아시죠? 한쪽에서는 국가의 녹을 먹은 사람들이 댓글 수천만 건씩 달며 대선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노란색만 좋아해도 ‘종북’이라는 테스트가 나오고 있으니, 황당 그 자체죠.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모두 노자나 장자처럼 무위도식하며 숨어 살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엉망이 될지도 몰라요.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이끌어 가고자 했던 공자 같은 태도가 필요해요. 바로 그런 점이 2000년이 지난 지금도 공자를 중국사상의 중심에 서 있게 만든 이유죠.” 

 

▲ 상대방 이야기를 '틀린 것'으로 폄하해 듣지 않으려는 태도가 종북몰이를 낳았다. 이를 풍자한 것이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셀프 종북 테스트'이다. ⓒ 슬로우뉴스, 위키피디아

이 강사는 보수와 진보가 나뉘어 각종 사안마다 논쟁으로 들끓고 있는 지금, 우리 사회를 엿보는 데 제자백가 시대보다 더 좋은 시대는 없다고 말했다. 특히 한쪽 상황에만 매몰되어 상대방 의견을 들어보지도 않으려는 태도에 대해 공자의 방법론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공자의 방법론은 ‘어떤 것도 절대적인 것을 두지 않겠다‘로 요약할 수 있다. 공자는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도 없고, 그러지 않아야 하는 것도 없다(無適也, 無莫也)”며 “오직 ’올바름‘만 있을 뿐(義之與比)”이라고 말했다. 이어 “양 극단을 두들겨 모든 입장을 드러내겠다(叩其兩端而竭焉)”고 했다. 이는 오늘날에도 상당히 객관적인 방법론으로 통용될 수 있다.

노자, 그 역설적인 말의 매력

“길을 길이라 말하면 늘 그러한 길이 아니고 이름을 이름 지으면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노자> 첫머리의 이 발언은 노자의 핵심사상인 ‘아이러니’ 즉 역설적 가치를 잘 보여준다. 노자가 쟁론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갑론을박하는 대신, 이름 붙이는 행위 자체를 반성한 이유는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으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이름’으로 잠시 세계를 붙잡으려 하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오늘의 강물은 어제 발을 담그던 그 강물이 아닌 것이다. 이 강사는 이런 역설적인 상황은 살면서 누구나 겪어봄 직한 일이라고 말했다.

“형제 중에 자신이 13번째라는 대학 친구가 있었어요. 무당이던 어머니는 이미 일흔을 훌쩍 넘었죠. 하루는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어머니께서 머리에 쪽을 지고 화장을 매우 짙게 하고 계신 거예요. 매우 추한 모습일 수 있는데 오히려 아름다움을 느꼈어요. 자기 일을 위해 그런 거니까요.”

길흉화복도 예외일 수 없다. 노자는 “액운은 행운에 의지하고(禍兮! 福之所倚), 행운은 액운에 기댄다(福兮! 禍之所伏)“며 “복과 화, 행운과 액운이 서로 기대고 있다”고 했다. 이를 잘 나타낸 사자성어가 ‘새옹지마(塞翁之馬)’이다. 노자는 이어 길흉화복이 닥쳐올 때 상반되는 징조도 함께 나타난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이 복을 받았지만 교만하고 자만하다면 이는 앞으로 닥쳐올 화의 징조가 되고 반대로 재앙이 닥쳐도 역경을 헤쳐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면 이는 복을 받는 전환점이 된다는 것이다.

‘큰 모습은 갖춰진 꼴이 없다’며 줄곧 역설의 가치를 논하던 노자가 갑자기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며 대기만성을 꺼내 들었다.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태도를 바꾼 것일까? 이 수수께끼는 1973년 중국 후난성 마황퇴에서 비단 글이 발견되면서 풀렸다. 대기만성(大器晩成)이 ‘대기면성’(大器免成)으로 밝혀졌다. 해석하면 ‘큰 그릇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뜻으로 노자의 역설적인 목소리가 다시 이어진다.

▲ 정선의 그림 <노자출관>(왼쪽)과 노자 <도덕경> 1장. ⓒ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노자의 말은 모호하고 명쾌하지 않다. 역설적인 가치는 매력적이지만 논리적으로 보면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과 반대되는 중국 철학의 특징이라고 이 강사는 말했다. 그렇다면 이런 노자의 ‘아이러니’가 우리 사회에는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

"노자의 주장으로 개인의 자유가 크게 넓어졌다고 볼 수 있죠. 우리가 기존에 주어진 질서에 순응만 해야 한다면 사실 갈 길은 하나밖에 없어요. 시험 점수를 잘 받아 일류 대학을 가고 대기업에 취직하는 거죠. 하지만 세상이 말하는 성공이 진짜 성공이라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이 아닐 수 있어’라고 노자가 말해주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개인의 자유 신장 면에서 노자는 큰 공이 있는 거죠."

상대방을 인정하는 ‘덕쟁’이 필요한 시기

이상수 강사는 “묵자가 제자백가 여러 사상 중에 오늘날 사회주의와 같다”고 말했다. 묵자는 조직적으로 활동했고 그 집단에는 10대 강령도 있었다. 그중 가장 핵심적 가치는 ‘겸애’(兼愛)였다. 겸애란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고 이로움을 서로 나누라는 뜻이다.

묵가는 서양 논리학에 가장 접근했던 중국 고대사상이다. 10대 강령 중에 ‘지혜로운 사람을 받들라’는 ‘상현’(尙賢)은 당대 지식인인 ‘철인’이 사회를 이끌어야 한다는 플라톤의 ‘철인통치론’과 유사한 부분이다. 이는 계급차별을 지지하는 게 아니라 모르는 사람은 아는 사람에게 배워야 한다는 의미다.

묵자는 “컴퍼스에 들어맞는 것을 동그라미라 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동그라미가 아니라고 한다”며 “동그라미와 동그라미가 아닌 것은 정확하게 알 수 있다”고 말했는데,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동일률’과도 같은 이론이다. 그뿐 아니라 서양 근대의 사회주의와도 근접해 있는 대목이다. 묵자의 이상주의는 마르크스가 자신의 이론을 ‘과학적 사회주의’라 칭한 것처럼 과학적 표준을 추구한 모습이다. 강령 ‘상동’(尙同)은 사회주의의 전체성과 비슷하다. ‘한 나라의 사상은 통일돼야 한다’는 사회주의의 ‘주체사상’과 연결 지어 생각할 수 있다.

▲ 병법서를 쓴 손자는 전쟁보다는 평화를 원한 '평화주의자'였다. ⓒ 위키피디아

“손자는 우리가 <손자병법>으로 잘 알고 있죠? 물론 손자는 병법가이고 장군이지만 사실 그는 평화주의 정치사상가예요. 평화학 연구자 ‘요한 갈퉁’도 평화학의 창시자를 ‘손자’로 꼽더군요.”

<손자>의 첫 편은 바로 ‘계’(計)이다. 손자는 전쟁이 한번 발발하면 국가의 엄청난 물자가 들어가고 인명피해가 많이 발생할 수 있으니 적과 나의 역량을 계산해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대와 적수가 되지 않으면 절대 싸우지 말라는 것이다.

가장 치료를 잘하는 의사는 혼수상태에 빠진 사람을 살리는 의사도 아니고, 병이 조짐을 보이자마자 치료를 하는 의사도 아니다. 병이 발생하기 전에 예방하는 의사가 진정한 명의다. 손자는 전쟁도 이와 같다고 봤다. 그는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보다는 싸우지 않고 적을 굽히는 것이 가장 좋다고 했다. 군사를 쓸 때 나라를 부수는 것보다 온전하게 삼키는 것이 최선이라 주장했다.

손자는 자기 휘하 병사만 아낀 게 아니라, 천하를 아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군사사상가인 손무가 최선으로 친 전쟁은 총과 칼이 서로 부딪치는 전쟁이 아니라 머리와 지략으로 싸우는 전쟁이었다. “온전함으로써 천하를 다투라”는 천하를 모두 차지하겠다는 ‘야심’으로 봐선 안 된다. 그가 말하고자 한 점은 천하를 보호하고자 하는 그 마음이다. 그는 진정한 평화주의자다.

거북이 배딱지로 점을 치던 인간은 점차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 스스로 사유하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 제자백가가 있다. 이들은 혼란의 시기 각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규범’을 주장했지만 누구 논리가 더 타당한지를 두고 싸우지 않았다. 오히려 누가 더 마음그릇이 넓은가를 두고 경쟁했다. 중국 고대 중원에서 벌어진 ‘덕쟁’의 모습이다. 철학자 이상수 강사는 “‘덕’은 언어로 가둘 수 있는 개념이 아니며 오히려 세상과 부딪히며 끊임없이 자기 스스로와 싸울 때 얻어지는 역동적인 것”이라며 우리 사회에 고대 중원의 ‘덕쟁’을 투영해보았다.

▲ 서양에 아고라(광장)의 논쟁이 있다면 고대 중국에는 중원의 '덕쟁'이 있었다. 이분법으로 갈라진 우리 사회에서 상대방을 인정하는 '덕쟁'은 논쟁을 보완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 이상수

“우리 사회가 좌·우파로 혹은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로 갈라질 때, 중국 고대에서 벌어졌던 덕쟁은 우리에게 더 넓은 스펙트럼을 제공해줄 수 있어요. 서양의 논리학으로 사람 마음을 설복시키지 못하는 부분도 있거든요. 그래서 우리 사회 문제에 중국의 덕쟁을 대입했을 때, 더 잘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거로 생각해요. 논쟁과 덕쟁은 서로 보완할 수 있는 삶의 도구입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인문교양특강I>은 정희진, 진중권, 안광복, 주일우, 천정환, 이상수, 이택광 선생님이 강연을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의를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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