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스쿨 인문교양특강] 이상수 철학 강사
주제 ⓵ 주장은 어떻게 사실이 되는가
1908년 노르웨이 사업가 니콜라이 무스타드는 그림 한 점을 샀다. 그는 그것을 고흐의 작품이라 생각했으나 당시 프랑스 대사는 모사품이라 판정했다. 무스타드는 그 길로 그림을 다락방에 보관했다. 그가 사망한 1970년 그림에 대한 감식이 한 번 더 이뤄졌지만 역시 모작판정을 받았다.
그림은 다른 사람에게 판매되었고, 새로운 주인도 1991년 ‘반 고흐 미술관’에 진품 감정을 의뢰했다. 이번에도 모작판정이 내려졌다. 이 그림은 이렇게 모작으로 남는 듯했다. 하지만 2년 뒤 미술관에서 재감정을 요청하면서 상황이 뒤집어졌다. 100여년 만에 <해질녘 몽마르주에서>이 진품 판정을 받은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정교한 위작은 ‘진품’이다?
“제가 뭉크의 <절규>를 패러디한 작품을 그리고, 뭉크의 작품이라고 주장하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아마 애교로 봐주시겠죠. 하지만 실력 있는 사람이 마음먹고 모작을 만들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그 작품이 진짜인지 아닌지 판단하실 겁니까?”

철학자 이상수 강사는 진품이라는 ‘주장’이 어떻게 ‘사실’로 판명될 수 있는지 설명했다. 그림 감정은 작가의 사인이 있는지, 화풍이 일치하는지 등의 방법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사인도 있고 화풍도 똑같다면, 물감과 캔버스의 탄소연대를 측정하는 방법이 있다. 이런 조건들이 만족되면 그 작품은 진짜라고 인정받는다.
“<해질녘 몽마르주에서>의 화풍은 고흐의 것과 일치한다고 확인됐어요. 붓 터치의 각도까지 일치했고, 고흐는 그림에 색을 입히기 전에 연한 물감으로 밑칠을 하는데 그런 특징도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사인이 없어서 백여 년 동안 진품 판정을 못 받았습니다. 나중에 캔버스와 물감의 연대까지 측정한 결과 진품이라고 인정받게 됐습니다.”
하지만 만약에 <해질녘 몽마르주에서>가 모작이라면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현재 우리가 진품 여부를 판정하는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모작이 나온다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 강사는 “억울하지만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인코그니토>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림을 위작하는 사람에 관한 영화인데, 이 사람이 작정하고 램브란트의 그림을 그려요. 그리고 진짜라고 주장합니다. 이걸 판명하려고 램브란트 전문가들이 가는데, 이들도 진품이라고 판정을 내립니다. 사기꾼이 사기를 치더라도 세상에 나와 있는 기준을 모두 만족시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이길 수가 없어요.”

실제로 이런 예가 있다. 인간과 유인원 사이에는 진화론적으로 중간 고리가 없다. 1910년대 영국에서 그 중간고리인 필트다운인(piltdown man)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화석이 발견됐다. 필트다운인의 존재는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화석은 40여 년간 박물관에도 전시됐다. 하지만 그 화석은 지질학자 도슨의 위조품이었다.
사실 증명이 게임에서 승리한다
사실은 그 자체로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사실임을 증명하지 못하면 사실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래서 이 강사는 이를 증명하는 과정을 일종의 게임이라 말했다. 게임에서 이겨야 사실을 쟁취할 수 있다. 게임에서 진다면 필트다운인을 진짜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거짓도 사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게임의 법칙이 정당한 것이냐, 게임이 도덕적인 것이냐 하는 건 문제되지 않는다.
O.J. 심슨 사건이 그랬다. 1994년 미식축구 스타였던 심슨의 전 아내와 그녀의 남자친구가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피 묻은 가죽장갑 한 짝이 현장 근처에서 발견됐다. 다른 한 짝은 심슨의 개집에 떨어져 있었다. 심슨의 침대 밑에서는 피에 젖은 양말도 발견됐다. 당시 검사는 “심슨을 살해혐의로 기소해서 스무 번쯤 유죄판결을 받을 만한 증거를 확보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심슨은 형사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초동수사를 담당했던 마크 펄만(Mark Fuhrman)이 문제였다. 심슨의 변호인단은 그에게 최근 N단어(Nigger를 뜻함)를 쓴 적이 있냐고 질문했다. 펄만은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변호인단은 그가 예전에 했던 인터뷰 녹음을 틀었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펄만은 N단어를 사용함은 물론 흑인을 잡아넣기 위해서라면 증거를 심어놓기까지 했다는 말도 했다.
펄만이 처음 찾아냈던 증거들은 모두 오염됐다. 만약에 심슨이 무죄인데 인종주의자 펄만이 증거를 심어놓은 것이라면? 의심이 제기되었고 심슨에겐 무죄가 선고됐다. 검찰이 제기한 주장을 심슨의 변호인단이 깼고, 경찰은 변호인단의 무죄주장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지 못했다. 심슨이 이겼고 그는 무죄라는 사실을 쟁취했다.
목소리 크다고 이기는 건 아니다
심슨에게 무죄를 선고한 법체계는 정당한가? 이 강사도 룰이 합리적이지는 않다고 말했다. 인종차별, 종교차별 등 세상에서 뜯어 고쳐야 할 룰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 룰을 바꾸려면 게임에서 이겨야 한다. 거짓을 거짓으로 밝히기 위해서는 그것을 증명할 실력이 있어야 한다.
“실력이 이겨야 정의가 승리하고, 사기꾼들의 가면을 벗길 수 있습니다. 심슨 사건 얘기를 더 해보죠. 아까 형사재판에서는 무죄를 선고 받았다고 했는데 민사재판에서는 유죄를 선고 받습니다. 유족들이 새로운 증거를 찾아냈기 때문이죠.”
현장에는 피투성이 신발자국들이 수십 개 찍혀 있었다. 신발은 이탈리아 수제화 모델이었다. 사이즈는 305mm. FBI 조사에 따르면 그 모델은 299켤레가 팔렸다. 심슨은 그 신발에 대해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어떤 행사장에서 그 신발을 신고 돌아다닌 사진이 증거로 제출됐다. 이를 근거로 그에게는 몇 백만 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지 못했다면 심슨은 영원히 무죄였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도덕적 주장에 따라 나오지 않는다. 실력에 따라서 증명된다. 그래서 이 강사는 실력을 기르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여러 분들이 사회에 나가서 부닥칠 문제들은, 목소리를 높인다고 사실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그건 하나의 게임입니다. 그림의 진위 판정에서 조건들을 충족해야 하고, 심슨 사건에서 유죄냐 무죄냐가 새로운 증거를 제기하는 것에 좌우되는 것처럼, 여러분은 자신의 주장을 증명할 근거들을 갖춰야 합니다. 정의를 실현하려면 실력이 필요합니다. 게임에서 이길 실력이 있어야 해요.”
“억울해도 별 수 없다”
이 강사는 실력을 기르기 위해선 원재료(raw material)을 잘 다룰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라면 자신이 취재한 내용이 사실(fact)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하고, 의사라면 환자의 병이 무엇인지 진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판단을 뒷받침해줄 근거(reference)들을 수집해야 한다.
“그리고 그 근거들은 타당(validity)해야 합니다. 게임의 룰을 만족시켜야죠. 일단 룰을 만족시키고, 게임에서 이긴 다음에야 룰을 허물어뜨릴 수 있어요. 새로운 룰을 만드는 건 마지막에야 할 수 있습니다.”
룰을 바꾸는 과정은 지난하다. 영화 <버틀러>에서는 흑인차별을 없애기 위한 흑인들의 투쟁과정이 나온다. 그들은 일부러 백인전용 구간에서 음식을 주문한다. 끌려가서 맞더라도 그 행위를 반복한다. 백인에게 폭력을 휘두르지는 않는다. 그러면 룰을 위반하고 게임에서 지기 때문이다. 흑인들은 그런 식으로 수백년 동안 싸웠다.
“예전에 축구 선수 지단이 상대편 마테라치 선수를 폭행한 사건이 있었죠? 마테라치가 지단의 누이동생을 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단은 퇴장당했고 마테라치는 살아남았습니다. 룰을 어겼으니 그는 진 겁니다. 심정적으로 지단이 안됐지만 게임에서는 진 거예요. 이마트의 노조 와해 문건도 이와 비슷하죠. 사측에서 고용된 사람은 노조원에게 시비를 걸고 폭행을 유도하고, 폭행을 당하면 고소합니다. 거기서 폭행을 휘두르면 그 사람은 지는 거예요.”

당신이 게임을 만들어라
룰을 바꾸는 데는 지혜도 필요하고 참을성도 필요하다. 룰 자체가 불합리하지만, 이 강사는 “억울해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것이 세상이고, 게임이기 때문이다. 게임에서 이길 수 없으면 별 수 없다. 정의를 실현하려면 무엇보다 실력을 길러 이겨야 한다.
이긴 다음 궁극적 목표는 우리 위주의 새로운 룰을 만드는 일이다. 경영학자 마이클 포터도 ‘룰 만들기’, 곧 ‘샅바싸움’을 강조한다. 가령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 등이 핵무기를 보유한 상황에서 핵확산을 금지하는 것은 그들의 룰이다. 이종격투기에서 상대는 총∙칼 다 쓸 수 있고 우리는 맨 몸이다. 이 상황에서 새로운 자기방어를 위한 룰이 필요하다.
“남편에게 대든 이유로 코와 귀가 잘린 아프가니스탄 여성이 <타임>지 모델이 된 적이 있었죠. 이런 종교적 차별뿐 아니라 우리 세상의 룰은 뜯어고쳐야 할 점이 수도 없이 많아요. 눈감고 있을 뿐입니다. 물론 불법∙탈법을 해서라도 목적을 이룬다는 것은 아닙니다. 룰 브레이커가 될 수 있고 새로운 룰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깁니다.”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인문교양특강I>은 정희진, 진중권, 안광복, 주일우, 천정환, 이상수, 이택광 선생님이 강연을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의를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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