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에너지 현장을 가다] 지열 ① 전남 성산종돈장

전라남도 장성군 군청에서 차를 타고 20분 정도 나가면 한적한 농촌마을 성산리가 나온다. 마을 입구에서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는 좁은 길을 따라 5분 정도 더 달리니 성산종돈장이 보였다. 지난달 10일 성산종돈장에는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조류인플루엔자(AI) 때문인지 축사 인근의 농가 마을은 인적이 드물고 조용했다. 종돈장 오재곤(52) 대표는 오랜만에 찾아간 <단비뉴스> 취재팀에게 감염 우려 때문에 사육장에 들여보낼 수 없다고 양해를 구했다.

올겨울 성산종돈장 일대의 최저기온은 마이너스 7.3℃를 기록했다. 하지만 축사의 돼지들은 아무 걱정 없이 포근한 겨울을 보낼 수 있었다. 기온이 20℃ 아래로 떨어지면 이 종돈장에 설치된 지열난방시스템이 자동으로 돌아가 훈훈한 온기를 유지해 주기 때문이다. 성산종돈장은 지난 2012년 겨울부터 지열냉난방시스템을 도입해 전기료 부담을 크게 줄이며 돼지를 키우고 있다.  

지열 냉난방으로 더위와 추위 걱정 잊어 

취재팀이 종돈장을 처음 방문했던 지난해 8월 24일에는 늦여름이라 지열냉방이 가동되는 사육장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다. 축사에 들어서자 비좁은 통로를 중심으로 양쪽에 어미돼지들이 각각 가로 220센티미터(cm) 세로 60cm정도로 구획된 사육장 공간을 차지하고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통로 밑바닥과 사육장 벽면에서 찬바람이 나와 실내온도는 25℃를 유지했다. 새끼를 밴 엄마 돼지들이 모여 있는 곳에는 머리 쪽으로만 찬바람이 나왔다. 축사 안에는 총 300돈이 서늘한 바람을 쐬며 꿀꿀거리고 있었다.

▲ 새끼돼지들이 어미돼지 젖을 먹고 있다. ⓒ 조수진

축사 입구에 있는 13평 남짓의 기계실에서는 지열냉난방 모니터와 냉·온수 순환펌프가 돌아가는 모습 등을 볼 수 있었다. 모니터는 지열냉난방을 가동했을 때 낮은 온도의 열을 높은 온도로 전환하는 히트펌프(heat pump)를 거쳐 실내 온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여준다. 사육장 밖에는 300평(992제곱미터(㎡)) 남짓한 땅이 있는데, 이 부지를 150m 깊이로 파고들어가 지중 열교환기를 설치했다고 한다. 땅속 깊은 곳은 사계절 내내 평균 15℃의 중·저온이 유지되는데, 지중 열교환기 시스템을 통해 여름에는 서늘한 공기를 건물 냉방에 활용하고, 겨울에는 바깥의 찬공기에 비해 따뜻한 지열을 난방에 활용하는 것이다. 약간의 전기만 있으면 이 시스템이 가동되므로 냉난방에 들어가는 에너지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 냉온수 순환펌프들이 기계실에 놓여 있다. ⓒ 조수진

돼지를 키우는 축사의 경우 특히 여름에 지열냉방 효과가 크다. 돼지는 34℃에서 30분 이상 지나면 다 죽을 정도로 더위에 약하다. 사람은 땀을 흘려 체온을 조절하지만 돼지는 숨을 쉬거나 소변을 통해 약간의 조절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돼지 사육에 적정한 18~20℃를 맞춰주기 위해서는 냉방이 필수지만 전기에어컨을 가동하는 경우 축사의 비용부담이 너무 커서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지열냉방을 처음 가동한 지난 여름에는 2012년보다 전기를 훨씬 적게 쓰고도 돼지 사육 두수가 늘어나 아주 만족스러워요. (우리가 돼지고기를 많이 수입하는) 네덜란드나 덴마크는 가장 추울 때가 1℃이고 가장 더울 때가 25℃라 돼지 키우기에 아주 좋은 조건이거든요. 우리나라는 온도차가 심하니까 이를 적정수준으로 맞추기 위해 시설투자를 했죠.”

전기료 크게 줄고 생산성 높아져

오 대표는 지열냉난방시스템을 설치한 후 전기료 등 에너지비용이 이전에 비해 70~80% 정도 줄었다고 말했다. 또 돼지 사육 두수가 빠르게 늘어나는 등 생산성도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2012년 여름의 경우 어미돼지 5~6마리가 새끼를 낳다 죽었지만 2013년 여름에는 한 마리도 죽지 않았다. 적정한 온도를 잘 유지한 덕이라고 한다. 또 교배를 했을 때 임신에 성공하는 비율인 수태율과 분만 후 발정이 다시 나타나는 발정재귀율도 높아졌다.

“2013년 여름 수태율은 92%로 전년의 87%보다 5%포인트 올랐어요. 열 마리 교배시키면 아홉 마리 이상이 임신을 했다는 말이죠. 여름에는 전국 대부분의 양돈장에서 수태율이 떨어지는데 우리는 온도 영향을 덜 받는 환경을 조성했기 때문에 생산성을 높일 수 있었어요. 발정재귀율도 2012년 여름엔 7~8일이었지만 지난여름은 1~2일 당겨졌어요.”

▲ 실내온도 25℃를 유지하기 위해 위에 뚫려 있는 구멍으로 찬바람이 나오고 있다. ⓒ 조수진

오 대표가 지열냉난방시스템을 설치한 것은 농림축산식품부의 지열활성화 사업을 한국농어촌공사가 위탁받아 시설을 설치하고 관리해 주기 때문에 가능했다. 개별 농가는 일부 투자비를 내고 이 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지열시스템은 약간의 전기만으로 기기를 가동하면 땅속과의 온도차를 이용해 냉난방을 할 수 있으므로 에너지비용이 크게 줄고 탄소배출이 없어 환경친화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지열에너지는 성산종돈장처럼 비교적 지표면에서 가까운 땅속의 10~20℃ 정도 열을 이용해 냉난방에 활용하는 방식이 있고, 지하 몇 킬로미터를 파고 들어가거나 온천지대의 뜨거운 열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지열발전 방식이 있다. 아이슬란드 등 화산지대가 많은 일부 국가에서는 지열발전이 활발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지열발전 사례가 없고 지열냉난방만 활용되고 있다.

▲ 지열원 열펌프 시스템의 냉방원리(좌), 지열원 열펌프 시스템의 난방원리(우). 냉방 상태에서 지열원 열펌프 시스템이 작동할 경우 실내에서 흡수한 열을 지중 열 교환기를 통해 땅 속으로 내보낸다. 반대로 난방 상태인 경우, 지중 열 교환기는 땅 속에서 열을 흡수해 실내에 공급한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 크기로 볼 수 있습니다.) ⓒ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초기투자비와 부지 확보가 걸림돌 

지열냉난방은 에너지비용 절감과 탄소배출 감축이라는 큰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초기투자비가 만만치 않고 일정한 부지면적 확보가 필요하다는 점이 본격적인 확산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성산종돈장의 경우 국비 60%, 지방비 20%의 지원을 받고 본인부담 20%에 해당하는 4천만원을 투자해 시스템을 설치했지만, 영세농가의 경우 이 정도 비용도 조달하기가 쉽지 않다.

농어촌공사 전남지역본부의 강성환 과장은 “녹색성장을 위해 정부에서 농가에 과감히 투자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저변확대”라며 “(경제적으로) 없는 사람들도 지열을 활용할 수 있도록 농가의 부담률을 5%포인트 정도 더 낮추는 등 대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국책연구기관인 지질자원연구원의 송윤호 박사는 지열시스템 설치를 위해 일정 면적의 부지가 있어야 한다는 문제와 관련, “건물을 지을 때 미리부터 땅에 구멍을 뚫고 지중 열교환기를 설치하는 문제를 고려해서 설계한다면 많은 부지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층 건물의 경우 지중 열교환기를 설치할 부지면적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지열냉난방 시스템으로만 작동할 수는 없지만 지열과 태양광 등 다른 (신재생)에너지를 함께 사용한다면 전체적으로 효율을 높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호서대학교 기계공학부 임효재 교수는 “지열에너지는 지속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가장 이상적인 신재생에너지”라며 “장소 제약과 초기투자비 등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지원책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석유, 천연가스 등 주요 에너지원을 대부분 수입해 쓰는 ‘자원빈국’이면서도 에너지소비 증가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인 한국. 심각해지는 기후변화와 후쿠시마 사고 같은 핵재난을 막으려면 화석연료와 원전 의존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생산을 늘려야 하지만, 현실은 아직 거북이 걸음이다. 반면 독일 등 유럽 선진국에서는 햇빛, 바람, 지열 등 ‘토종 청정에너지원’을 이용한 전력생산이 이미 원전 비중을 넘어섰다. <단비뉴스>는 남보다 한발 앞서 신재생에너지를 도입한 국내의 현장들을 찾아 실태를 점검하면서,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를 획기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와 대안을 함께 모색한다.(편집자)

* 이 시리즈는 주한 영국대사관 기후변화 프로젝트의 취재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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