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스쿨 인문교양특강]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주제 ② 예비언론인을 위한 소통의 레토릭

“사람은 논리로 설득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의 수단으로 로고스(논리), 파토스(정서), 에토스(가치)를 제시했는데 우리는 로고스에 치중하느라 더욱 중요한 파토스와 에토스를 간과하는 실수를 합니다.”

서울 중동고 철학교사이기도 한 안광복 박사(철학)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인문교양특강에서 레토릭의 3요소인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를 적절히 이용해 효과적으로 말하고 설득하는 방법을 강의했다. 안 박사는 “로고스에 젖은 사람들은 파토스와 같은 감성을 살리기 쉽지 않다”며 강남 8학군 고등학생이 지방 명문고 학생과 입시면접 경쟁에서 필패하는 이유를 이야기했다.

▲ 안 박사는 레토릭의 3요소인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를 적절히 이용해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 이대용

“지방 명문고 학생들은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하루 종일 친구들과 웃고 떠듭니다. 이 가운데서 파토스가 자연스럽게 훈련됩니다. 반면 학교와 학원 생활을 반복하는 강남 8학군 학생들은 파토스를 훈련할 틈이 없습니다. 면접관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말에 감정을 담아 이야기 하는 것, 즉 파토스가 필요한데 이 능력의 차이가 면접 승패를 좌우하는 겁니다.”

신용카드 해지를 쉽게 못 하는 이유

안 박사는 파토스를 이용한 설득법으로 ECS(Emotional Competent Stimulous)를 소개했다. ECS란 간뇌를 자극하는 감정유발자극으로 ‘위기와 위협, 성적 매력, 친숙하고 익숙한 것’을 포함한다. 그는 “기사를 작성하거나 방송을 할 때 ECS를 통해 독자나 시청자의 감정을 일깨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카드 해지’를 예로 들며 ‘위협’이 어떻게 효과적인 설득을 이끌어내는지 설명했다.

“전화상담원은 ECS를 이용하도록 고도로 훈련받았기 때문에 카드 해지는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그들은 ‘포인트가 3만점이나 있으시네요, 이것도 다 돈인데 해지해서 사라져버려도 괜찮겠어요’라고 말하며 고객에게 위협 자극을 줍니다. ECS를 모르는 사람들은 상담원의 위협에 설득당하여 대개 카드 해지를 포기하게 됩니다.”

▲ KBS ‘미녀들의 수다’의 계단식 세트는 ‘성적 매력’을 강조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 KBS 화면 갈무리

‘미녀들의 수다’에 동원된 시청자 설득법

‘성적 매력’을 이용한 설득은 방송과 광고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안 박사는 대표적 예로 세계 각국 미녀들이 출연했던 KBS ‘미녀들의 수다’를 제시했다.

“계단식으로 세트가 만들어진 탓에 게스트의 얼굴이 클로즈업될 때마다 짧은 치마를 입은 다른 게스트들의 미끈한 다리가 동시에 잡힙니다. 간뇌의 구조상 인간은 살색에 현혹되기 쉬워 이러한 자극은 사람들의 시선을 화면으로 끌어당기게 됩니다. 대학 광고에서 어느 때부터인가 매력적인 학생들이 환히 웃는 사진을 로고 대신 사용하는 것도 같은 논리입니다.”

마지막으로 친숙하고 익숙한 자극 역시 설득력을 높일 수 있는 수단이다. 안 박사는 화재 때 사람들의 대응방안을 통해 이를 설명했다. 그는 “건물 안에서 불이 났을 때 사람들은 평상시에 다니던 곳에 몰려 죽어 있다”며 “비상구가 곳곳에 있는데도 사람들은 항상 익숙한 패턴이 옳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보수에게는 보수 언어로, 진보에게는 진보 언어로 자신의 주장을 펼쳐야 하는 것도 “익숙한 말이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가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기자는 인터뷰 장소에 미리 가야 한다

그는 예비언론인을 위해 레토릭을 인터뷰에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방법도 알려주었다. 그는 레토릭을 짐승언어에 비유했다. 상대를 위협할 때는 가까이 가고 편안하게 할 때는 물러서 있는 짐승처럼 레토릭을 통해 인터뷰 대상자의 심리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인터뷰 장소에 먼저 도착해서 자리를 잡으세요. 인간은 보통 자신이 편안한 자리를 찾아 앉게 되어 있습니다. 자리가 편하면 인터뷰가 원활히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기자에 의해 자신의 공간이 규정된다면 인터뷰 대상자는 편안하게 대화에 응할 수 없습니다.”

그는 “강의를 기사화하는 경우 기자는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청중 속에 기자가 있다고 느끼면 강연자는 스스로 강의 내용을 검열하기 때문이다. 기자는 비언어적 메시지를 포함한 파토스를 적재적소에 발휘함으로써 인터뷰와 기사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지는 게 이기는 것‘이라는 말의 논리

설득에서 에토스와 파토스가 중요하지만 로고스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주장과 주장을 뒷받침하는 충분하고 적절한 근거가 있다면 로고스의 기본인 논리 품새는 갖춘 셈이다. 이에 더해 논리 대칭을 효과적으로 사용한다면 말의 설득력을 높일 수 있다. 안 박사는 “로지컬 심메트리를 기억하라”고 했다.

‘로지컬 심메트리’(logical symmetry)란 인간관계에서 평형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정상적인 인간관계는 상대에게 존경의 말을 건네면 그 상대가 다시 겸양을 표함으로써 균형을 이루게 된다. 안 박사는 “인간관계의 균형을 맞추려는 인간의 특성상 평상시 상대방을 높여놓으면 필요할 때 이를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까지 불균형을 균형으로 맞추기 위해 어려운 부탁을 하더라도 거절할 수 없는 것이다. 기자가 거물급 인터뷰 대상자를 접촉할 때 한 번 거절당해도 포기하지 말고 더욱 자신을 낮추며 지속적으로 인터뷰 요청을 해야 하는 이유다.

‘감정 읽기’가 갈등 해결의 첫 단계

다음으로 로고스에서 중요한 것이 공감과 이해능력이다. 일을 하다 보면 조직 안에서 부딪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갈등을 가장 빨리 풀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공감해주어야 한다.

서비스센터 직원은 고객 전화를 받았을 때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어 ‘죄송합니다’라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은 5분 만에 화난 고객을 진정시킨다. 그 힘은 공감에 있다. 상담원은 “고객님 많이 불편하셨을 텐데 얼마나 속상하신가요”라고 하면서 고객의 이야기를 모두 듣는다. 고객의 이야기가 끝나면 “제가 다 답답한데 어떻게 도와드릴까요”라고 묻는다. 이렇게 공감해주면 전화를 걸어 화를 내던 고객도 누그러질 수밖에 없다.

안 박사는 “감정은 들어주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감정을 들어주는 것은 지는 것이 아니라 ‘너의 감정이 접수됐다’는 의미다. 그래서 상대방이 화났을 때는 물리적으로 설득하기보다는 ‘세 살짜리 어린애가 화낸다’ 생각하고 다독여야 한다. 감정을 다독이면 상대방도 쉽게 진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는 상대방의 요점을 정리해주는 것이 좋다. 이렇게 감정에 대해서는 감정으로 맞서지 않고 감정을 읽어주기만 하면 된다.

▲ 서비스센터 직원은 감정으로 맞서는 대신 감정을 읽어주는 ‘공감’을 바탕으로 고객과 소통한다. ⓒ KBS 화면 갈무리

논리 관성을 극복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사람의 말에는 진정성이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검증하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검증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우선 상대의 감정을 먼저 받아준다. 그 다음에는 사실을 검증한다. 사실을 검증할 때는 육하원칙에 따라 사례를 들어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예컨대 왕따 문제가 고민인 학생에게 누가 너를 괴롭히는지 이름을 얘기해 달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이 밝혀지면 그때부터 사실은 정보로서 가치가 생긴다. 그 후에는 보편화 검사를 한다. 한 사람만의 의견인지 다른 사람도 같은 의견인지를 판단하는 단계다.

보편화 검사 단계에서는 감정 논리를 놓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외부세계와 정기적인 접촉을 해 기준치를 잡아나갈 필요가 있다. 글을 쓸 때 다양한 배경지식을 갖춰야 하는 것처럼 다양한 소설을 읽어 다양한 감정선을 파악하는 게 한 방법이다. 인간사회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선을 파악하고 있어야 상대방이 느끼는 감정을 제대로 수신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상대방을 진정시킬 수 있다.

상대방이 원하는 얘기부터 하라

안 박사는 설득을 할 때 절대 자기 주장을 얘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보다는 ‘논리적 토끼몰이’를 하는 편이 좋다. 상대도 나와 같이 건전한 이성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사실을 나열하는 방법이다. 상대방이 나와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나와 같은 기분을 느낀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이것이 설득의 기본공식이다.

“생활이 엉망진창인 학생에게 ‘너는 진짜 왜 이렇게 엉망진창이냐’고 하면 아이는 도끼눈을 하고 ‘선생님 왜 저를 그렇게 평가하세요’라고 합니다. 이럴 때 ‘내가 일곱시에 교실에 왔을 때 너는 아홉시 반에 계속 들어오더라, 그게 일주일에 네 번이야, 내가 널 어떻게 생각해야겠니, 점심시간에 청소를 하라고 얘기했는데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어, 내가 널 어떻게 생각 해야겠니’하고 사실만 계속 나열하면 아이는 나중에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을 뚝뚝 흘립니다.”

상대가 원하는 이야기를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카사노바의 설득법을 활용한다. 카사노바 패턴의 연애편지에는 상대방에 관한 이야기만 있다. ‘오늘 저녁에 달빛에 다리를 거니는 그대 모습을 보았습니다. 창백한 그대 얼굴이 나의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편안한 잠의 여신이 그대를 행복하게 만들어줬으면 좋겠습니다. 걱정을 담아서 카사노바가’라는 식이다. 설득할 때는 카사노바처럼 상대가 원하는 걸 보고 그것에 맞춰서 자기의 주장을 펴야 한다.

▲ 안 박사의 강의를 듣고 있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 ⓒ 이대용

내용과 서술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드레스코드도 설득의 중요한 요인이다. 아버지는 식구들과 편하게 말을 하다가 회사에서 전화가 오면 ‘예 부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조치한 뒤 전화드리겠습니다’라며 격식 있는 언어로 말한다. 격식 있는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려면 평상시 격식 있는 언어를 사용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면접 준비를 할 때도 편한 복장보다는 면접 보러 가는 복장 그대로 연습할 필요가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근육기억으로 드레스코드를 습득해야 반사적으로 상황에 맞는 페르소나로 변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태권도에서 품새 연습을 하는 것처럼 기본적인 논리 품새도 몸에 배어 있어야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다. 예컨대 엠바고를 건 기사에 관해 누가 묻는다면 ‘몰라요, 얘기 안 하겠습니다’라고 말하기보다 바로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라며 칼을 돌릴 수 있어야 한다. 토론할 때 상대방이 나보다 윗사람인 경우 반론을 하는 대신 상대가 생각하는 대로 이끌어가야 유리하다. 내가 상대를 도와주고 상대가 이기는 소크라테스 대화법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거리 두기를 실천하는 것도 필요하다. 한 가지만 바라보고 있으면 그게 전부인 것 같은 착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

지식인의 자존심 지키는 기자가 되라

안 박사는 마지막으로 언론인이 된 뒤 지식인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론인이 된 뒤 5년, 10년이 지나면 내가 제대로 살고 있나 회의감이 올 수 있습니다. 이 때 자기 영혼을 지키기 위한 철학자의 처방은 내가 이것을 했을 때 과연 바람직한 사람이 될까를 스스로 물어보는 겁니다. 이 말에 자신이 있으면 그걸 하고요. 최종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순간 이 말에 자신이 없다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게 지식인의 자존심입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인문교양특강I>은 정희진, 진중권, 안광복, 주일우, 천정환, 이상수, 이택광 선생님이 강연을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의를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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