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스쿨 인문교양특강] 주일우 문학과지성사 대표
주제 ② 과학과 논쟁

16세기 코페르니쿠스가 주장한 지동설은 당대 사람들을 설득하지는 못했다. 훗날 요하네스 케플러와 같은 천문학자들의 과학적 근거가 뒷받침되며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사실로 인정받는다. 여기서 새롭게 등장하는 과학적 주장과 근거들은 우리가 직접 보고 듣지 못하는 것들이다. 과학자들의 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주일우 문학과지성사 대표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인문교양특강 두 번째 강의에서 과학을 둘러싼 논쟁을 바라볼 때 세워야 하는 가치 판단의 기준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믿을 만한 젠틀맨 찾기

“영국의 젠틀맨(gentleman)이란 말은 사회적 지위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재산의 정도, 계급, 신분적 지위가 담긴 단어죠. 영국인들은 젠틀맨을 이해관계에 얽히지 않고, 어떤 사건에 대해 객관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누군가와 얽혀있지 않다는 건 불가능한데도 그들의 말은 믿을 만하다고 보죠.”

▲ 문학과지성사 주일우 대표는 신뢰성을 지닌 정보를 바탕으로 해야 과학적 논쟁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 이대용

주 대표가 강조하는 건 ‘검증의 틀’이다. 사회적 합의로 도출된 ‘검증의 틀’이 과학의 논쟁을 바라보는 기준이 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검증의 틀은 합의가 있더라도 칼로 물 베듯 구분하기가 어렵다. 검증의 틀 안에서 다양한 이론들이 충돌하면 우리는 또다시 갈등한다. 어떤 전문가의 말을 어느 정도까지 믿어야 되는지 혼란이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뢰를 갖춘 젠틀맨의 사회적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여러분의 누구의 말을 믿나요? 앵커 김주하씨? 조선일보나 한겨레? 아니면 기자 이름에 의존하나요? 저는 어느 시절에 들었던 선생님 말이나 책의 권위에 빌린 말들을 사실인양 믿고 있었어요. 지구의 자전효과로 편서풍이 분다는 사실도 마찬가지죠. 그렇다고 하니까 믿는 거지 책 속의 이론들을 우리가 직접 알 수는 없죠.”

그는 “최근에는 책 만들기가 쉬워져서 책의 권위도 사라지고 있다”며 불확실한 인터넷 정보에 의존하는 위험성에 우려를 표했다. 실제로 충북대 국문과 교수가 김성동 소설가에 대한 글을 쓰다 추리소설 작가 김성종씨 프로필로 잘못 쓴 사례가 있었다. 포털 사이트에 ‘김성동’을 검색하니 ‘김성종’의 정보가 섞여 노출된 것이다. 주 대표는 “많은 사람이 의존하는 인터넷 지식은 당장의 방편이 될 수는 있지만 정확한 내용을 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런 한계를 인식한 포털 사이트 운영진은 고급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 ‘문학과지성사’에 연락을 취했다. 검색하고자 하는 항목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온라인에 게재하기 위해 책을 구입하고 싶다는 거였다. 막대한 비용이 들더라도 사람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감한 것이다. 주 대표는 “개론적인 지식들은 온라인상에서도 정확해야 한다”며 “이런 움직임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정치나 생활과 결합되는 과학 논쟁

그렇다면 과학과 관련된 논쟁에 정답이 있을까? 과학적인 문제는 철학적이고 실질적인 갈등이 맞물려 있어 해결하기 쉽지 않고 확실한 결론을 내기도 어렵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에서 가동하는 입자가속기는 둘레가 약 30km 정도의 거대한 기계예요. 비용도 어마어마하게 듭니다. 이것을 돌리는 목적은 딱 하나, 우주 생성 초기 단계의 환경을 복원하기 위해 입자를 깨서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입자를 발견하는 겁니다. 그 입자 위에 우리가 알고 있는 법칙과 물질들을 더해 인간은 어디서부터 왔는지 알아내겠다는 거죠.”

▲ 포항 포스텍 4세대 방사광가속기(선형)와 3세대 방사광가속기(원형) 조감도. 입자가속기의 일종인 방사광가속기는 전자를 회전시켜 빛을 얻어내는 시설이다. 2015년 완공예정인 4세대 가속기는 1000조분의 1초까지 잡아내는 빛을 만들어 그동안 보지 못했던 물 생성 과정, 광합성 과정 등을 관찰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포착한 순간들을 응용한다면 화학에너지를 대체할 만한 에너지 개발이 가능해진다. ⓒ 포항가속기 연구소 홈페이지

미국에서 빌 클린턴이 정권을 잡는 시기에 입자가속기를 두고 논쟁이 있었다. 이미 조지 H. W. 부시 정부는 사막에 입자가속기를 건설하고 있었는데 클린턴 정부가 예산상의 문제로 제동을 걸었다. 노벨상을 수상한 핵물리학자 ‘스티븐 와인버그’는 <최종 이론의 꿈>에서 ‘우주가 생성될 때 환경과 인간의 기원에 대해 알 수 있다면 돈이 많이 들더라도 아까운 일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세계적 학술지 <피지컬 리뷰 레터즈>(Physical Review Letters)에 최다 논문을 기재한 물리학자가 ‘인간의 근본 물질을 알아내더라도 복잡한 상호작용을 하는 터라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반박한다. 우리가 노력해야 할 점은 손에 잡히는 부분에 더 많은 연구를 하고 헛된 돈을 쓰지 않아야 된다는 것이다.

“물론 논쟁의 초점이 과학에 국한되지는 않았습니다. 부시 정권에서 펼치던 정치적 논쟁과 혼합된 문제였죠.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과학자들의 입장 차이로 비춰지고 상호론(相互論: Mutuality)적 세계관과 전일론(全一論: Holism)적 세계관이 맞붙는 모양새로 논쟁이 불거집니다. 여러분이 기자라면 여기서 누구 편을 들겠습니까?”

거대 프로젝트가 진행될 때마다 논쟁은 늘 있어왔다. 우리나라도 1990년 김대중 정권시절 동강댐 건설로 여론이 나눠졌다. 정부에서는 분과별로 경제∙사회∙문화∙환경을 아우르는 과학적, 문화적 보고서를 냈지만 반대여론에 부딪혀 동강댐 건설계획은 무산됐다.

1년 후 새만금개발사업이 추진되며 또다시 여론이 분열됐고 동강댐 관련 보고서와 비슷한 분량과 논조가 실린 보고서가 나왔다. 앞선 경우와 달리 이번에는 개발이 진행됐다. 주 대표는 “가만히 살펴보면 과학적 논쟁은 단순한 과학적 이슈가 아니라 당시의 세계관과 정치 그리고 우리 생활과 복잡하게 얽혀진 이슈”라고 말했다.

과학 이슈에 대한 가치판단은 언론의 영역

▲ 강의를 듣고 있는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 대학원생들. ⓒ 이대용

‘언론인이 젠틀맨이 돼야 하는가’란 질문에 그는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언론인은 젠틀맨 집단 속에서 논의되는 문제들을 어떤 시선을 가지고 무엇을 봐야 하는지 기준을 정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것은 과학자들의 영역이다. 언론은 과학적 논쟁이 검증의 틀 안에서 논의되고 있는지,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 독자들이 판단할 수 있도록 근거를 주는 데 그쳐야 한다. 이런 언론의 역할이 없다면 인터넷 사이트에서 퍼져나가는 음모론이 사실로 호도될 수 있다.

“어떤 과학적 문제가 중요한가에 대한 논의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과학은 복잡해지는데 의존할 수 있는 건 전문가 시스템밖에 없죠. 기자든 개인이든 통찰이 어려워지고 있는 만큼 과학을 토대로 한 가치 판단을 세우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는 신뢰할 수 있는 ‘젠틀맨’ 그룹을 선별하고 가치 판단의 기준에 따라 과학적 논쟁을 들여다보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세상 어디에도 단순한 과학이나 공학 이슈는 없다며 모든 문제들은 철학적인 근본 문제에서부터 대립하며 논쟁은 거기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말했다. 결국 지엽적으로 보이는 과학 문제는 정치∙사회∙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과학적 논쟁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둬야 한다. 그는 언론인을 꿈꾸는 학생들을 위해 말을 덧붙였다.

“과학적인 문제가 담긴 보도자료, 리포트를 받더라도 그대로 옮기는 기자가 되지는 마세요. 그 배후에 있는 문제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가졌으면 합니다.” 

우연히 등장하는 창조적 순간

박근혜 정부는 융•복합을 강조한다. 타 업계와 정보통신의 교배를 통해 창조적 융합물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 분야와 분야 사이처럼 협업과 관련된 문제들은 인위적으로 몰아넣는다고 해서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나오긴 어렵다. 예산을 지원하는 정부에서는 사업을 통해 즉각적인 성과가 나오길 바라니 제대로 된 결과를 얻을 수 없다. 관련 사업에 대한 지원은 단기간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주 대표는 “융•복합으로 무엇인가를 생산해야만 한다는 생각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과학과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다른 분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의미 있는 것이 우연히 발생하는데 이 우연을 위해서는 범위를 넘나들며 대화할 수 있는 모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 윌슨의 안개상자. 강한 안개가 생긴 안개상자 안에 빛을 쪼여 주면 오른쪽 사진에 나타나듯 입자나 방사선이 지나간 경로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구름상자의 탄생 과정을 아세요? 케임브리지 대학 기숙사에서 옆방 살던 기상학자와 물리학자가 같이 밥 먹고 얘기하다 생긴 거예요.”

▲ 옛 캐번디시 연구소 입구 사진.
윌슨의 구름상자(cloud chamber)는 현대 물리학의 산실인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캐번디시 연구소에서 여러 사람 손을 거치며 발전한 것으로 20세기 입자물리학을 이끌어냈다. 안개상자라고도 불리는 구름상자는 원래 기상학 연구에 쓰이는 도구였다. 기상학자들이 수증기를 집어넣어 비가 내리는 과정을 연구하기 위해 발명한 도구가 물리학으로 건너가 전자의 궤적을 밝혀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만약 19세기 케임브리지 기숙사에서 기상학자와 물리학자가 만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각자 분야에서 연구를 하는 도중 만날 확률도 적고, 물리학자가 기상학자의 논문을 읽을 확률도 낮으니 아마 구름상자는 물리학 역사에 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처럼 창조적 순간은 한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우연히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답을 미리 계산해서 억지로 나오게 하려면 잘 안 돼요. 의미적으로 미끄러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른 분야로 넘어가면서 흩어지고 그것들이 다시 새로운 의미를 얻어가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거죠.”

주 대표는 융•복합을 통해 표현하는 방법이 다양해지는 것은 좋지만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예술가에게 그것은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일 것이다. 그들이 고민해야 할 점은 예술을 어떻게 표현하나 하는 것이지, 어떻게 보여질까가 아니라는 것이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인문교양특강I>은 정희진, 진중권, 안광복, 주일우, 천정환, 이상수, 이택광 선생님이 강연을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의를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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