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이청초 기자

▲ 이청초 기자
재벌가 이복형제간의 재산 다툼이나 경영권 다툼은 드라마의 단골 소재 중 하나다. 혈육지간인데도 재산과 회사지배권을 놓고 서로 적이 되어 죽일 듯 싸운다. 뺏고 뺏기는 암투 과정에서 양쪽 다 상처를 입고, 때로는 회사가 무너질 위기에 몰리기도 한다. 오늘의 남북관계 역시 혈육이지만 적처럼 맞서는 이복형제와 비슷하다. 같은 뿌리이면서 체제의 태생이 달랐고 이로 인해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었다. 그리고 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남북의 현 집권층과 언론이 이런 대립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소통이 어려운 북한은 일단 접어 두고 우리 내부를 살펴보자. 먼저 정부·여당의 대북정책에 문제가 있다. 우리는 지나간 이명박 정부의 실패를 이미 목격했다. 화해와 협력을 위한 전략은 없이 ‘기계적 상호주의’에 얽매인 대북강경책으로 대화채널을 모두 잃은 것이 가장 큰 패착이었다. 북한은 협상의 요구사항을 여러 개로 쪼갠 뒤 한 사안을 처리할 때마다 반대급부를 얻는 ‘살라미 전술’을 줄곧 취해왔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먼저 핵을 포기하면 1인당 소득 3000달러를 만들어 주겠다’는 등 북한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먼저 항복할 것’을 요구하는 조건을 내세워 결과적으로 대화의 판을 깨버리고 말았다. 불행히도 박근혜 정부 역시 이명박 정부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다. 물론 잦은 도발로 신뢰를 깬 북한의 책임이 크지만 점점 더 가공할 위협을 주고받을 만큼 남북관계가 악화한 데는 우리 측의 잘못된 접근 탓도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여기에 국내 보수언론은 남북의 갈등을 부채질했다. 상당수 언론은 안보상황에 대한 냉철한 분석 대신 북한의 전쟁위협과 우리 정부의 대응경고를 중계하며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첨단무기 경쟁과 전쟁 시나리오를 떠들썩하게 소개하는 등 군사뉴스를 흥밋거리로 만드는 ‘안보 상업주의’ 경향도 보였다. 북한의 실정과 인권 문제 등을 자극적으로 고발하면서 북한 지도부를 ‘악’의 프레임으로 부각했다. 이런 보도는 북한 정권을 자극해 개성공단 폐쇄 등 극단적인 선택의 빌미가 됐다.

▲ 오는 20일부터 금강산에서 제19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린다. 2010년 이후 3년 4개월 만에 열리는 상봉길이다. ⓒ KBS <뉴스9> 화면 갈무리

현 정부와 보수언론이 북한을 대하는 태도는 가족보다 적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적대 정책의 결과 자칫 군사적 충돌이라도 일어난다면 그 결과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 경제적 안정을 직접적으로 위협할 것이다. 남북이 경제협력 등을 통해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는 기회도 멀어질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통일은 대박’이라고 뜻밖의 언급을 했지만, 뒤이어 관련 부처가 내놓은 정책들은 여전히 ‘북한을 압박하며 기다리는 전략’에 머물렀다. 대통령의 ‘대박론’에 화답해 최근 보수언론들이 갑자기 통일에 관심을 쏟지만 이 역시 ‘북한에 급변사태가 임박해 흡수통일의 가능성이 높다’는 관점을 반영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엄청난 안보 불안과 정치사회적 혼란을 낳을 수 있는 ‘북한 급변사태’가 ‘통일 대박’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착각일 수 있다. 정말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통일은 적극적인 화해·협력을 바탕으로 남북이 서로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면서 격차를 줄여나가는 장기적 전략으로 가능할 것이다. 그러려면 상대를 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가족으로서 관계를 회복하겠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우여곡절 끝에 남북은 오는 20일부터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열기로 합의했다. 오래 애태워 온 이산가족들에겐 단비 같은 소식이고, 한반도의 평화에도 실낱같은 희망을 주는 성과다. 그러나 국내 보수언론들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육아원 방문 장면을 ‘구둣발 방문’이라고 비난한 것을 문제 삼아 북한은 지난 6일 이 행사를 재고할 수도 있다고 위협했다. 우리의 언론 자유가 북한 때문에 위축되어선 안 되지만, 필요 이상의 자극적인 보도로 살얼음판 같은 남북관계를 깨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남북은 죽자고 싸워야 할 적이 아니라 관계를 회복해야 할 혈육이며, 내상이 깊은 가족의 화해는 조심스럽고도 인내심 있는 노력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을 시작으로 남북협력에 박차를 가하는 정부의 체계적이고도 지속적인 노력, 갈등 조장보다 화해를 지향하는 언론보도가 정착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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