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허정윤 기자

우리가 상식으로 여기고 있는 것 중에서 따지고 보면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인 경우가 꽤 있다.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말로 알려진 ‘악법도 법이다’가 대표적인 예다. 서강대 강정인 교수 등이 쓴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하지 않았다>에 따르면 소크라테스가 이런 말을 했다는 기록은 그 어떤 문헌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서 이 말이 ‘소크라테스의 명언’으로 통하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에 일본 법철학자 오다카 도모오가 형식적 법치주의를 옹호하는 책을 쓰면서 소크라테스의 일화를 잘못 전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제에 이어 군부독재 등 권위주의 정권을 거치는 동안 이 ‘명언’은 우리 사회에서 시민의 저항에 실정법의 족쇄를 채우는 논리로 꾸준히 악용됐고, 최근에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법적 지위를 위협하는 용도로 언급되고 있다.
지난달 21일 서울행정법원에서는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조치의 정당성을 둘러싸고 고용노동부와 전교조가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이 재판은 14년 동안 합법적인 노조 지위를 유지해 온 전교조에 대해 노동부가 지난해 10월 24일 ‘노조 아님’을 통보함으로써 촉발됐다. 노동부는 전교조가 조합원 6만여 명 가운데 9명의 해직교사를 포함하고 있는 것에 대해 “해직자를 조합원으로 둘 수 없도록 한 교원노조법과 노동조합법 시행령을 위반했다”고 문제 삼았다. 이에 대해 전교조는 “군부독재 시절 노조법에 있던 ‘해산명령권’이 단결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폐기됐는데, 법의 하위규정인 시행령으로 노조해산을 강제하는 것은 위헌적”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헌법이 보장하는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등 노동3권은 ‘실업상태에 있더라도 노동의 의사와 능력을 가진 자에게 모두 보장된다’는 점을 들어 노동부의 조치가 부당함을 역설했다.
실제로 금속노조와 공공운수노조 등 국내 대다수 노동조합은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은 노조가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것이므로 이를 제한하는 법규정을 개정하라고 한국 정부에 여러 차례 권고했다”며 전교조 법외노조화 를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노조자문위원회도 “전교조 법외노조화는 한국사회가 OECD가입 당시로 퇴보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경고했다. 국제사회는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한 전교조가 아니라, 해고자가 포함됐다는 이유로 단결권을 부인하는 국내 노동관련법이 잘못됐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가인권위원회도 같은 취지로 법개정을 권고한 일이 있지만 노동부가 수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부, 교육부 등 당국과 일부 보수세력은 ‘악법도 법’이라는 논리로 전교조를 공격하고 있다. 법이 잘못됐다고 해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이를 지키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주장이다. 방하남 노동부장관은 “제도개선의 필요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현행법을 지키면서 하는 것이 법치주의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이처럼 무리하게 법외노조화를 밀어붙이는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독재를 비판한 전교조에 대해 ‘좌경화 교육 등으로 교육현장을 혼란에 빠뜨린 세력’이라고 적대감을 표현해온 박근혜 대통령을 의식한 것이란 해석도 있다.
소크라테스의 생애를 연구한 역사가들은 그가 생애를 통해 부당한 통치에 저항한 사람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추종자들의 탈옥 권유를 뿌리치고 끝내 독배를 든 것도 저항의 한 방식이었다는 것이다. 전교조는 법원이 법외노조 통보 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여 일단은 법적지위를 유지하게 됐지만 앞으로 재판결과에 따라 활동기반이 위축될 수도 있다. 지난 14년간 교육현장을 왜곡하는 ‘촌지’와 ‘0교시 수업’등을 없애고 사립재단의 비리척결과 학생인권 및 복지 신장을 위해 뛰었던 전교조의 조직기반이 크게 약화될 지도 모른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전교조와 함께 시민사회가 되새겨야 할 경구는 ‘악법도 법’이라는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아니라 ‘부당한 통치에 저항하라’는 소크라테스의 진짜 가르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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