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김성숙 기자

▲ 김성숙 기자
독일 퓌센의 노이슈반스타인 성은 깎아지른 절벽 위에 세워져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귀부인 같은 자태를 뽐낸다. 월트 디즈니가 동화의 나라, 디즈니랜드를 만들 때 전세계의 하고많은 성 중에서 이곳을 모델로 한 이유를 알 만하다. 성 밑으로는 툭하면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몽환적 분위기를 더한다. 그러나 뭔가 숨기고 싶은 자에게는 이곳이 비밀 창고로 안성맞춤이었으리라.

히틀러는 이 아름다운 성을 약탈한 미술품 보관장소로 악용했다. 얼마나 많은 미술품을 약탈했는지 나중에 주인을 찾아주는 데만 6년이 걸렸다. 히틀러가 이토록 미술품에 집착한 이유는 ‘결핍’ 때문이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 빈 미술학교 입시에 실패한 적이 있는 히틀러는 그림을 그리는 대신 갖는 쪽을 택했다. 히틀러의 미술품 수집은 결핍을 충족하기 위한 대안이었던 셈이다.

▲ 독일 퓌센의 노이슈만스타인 성. 히틀러는 이곳을 약탈한 미술품 보관장소로 악용했다.

결핍의 대리충족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것이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정의롭지 못한 경우이다. ‘히틀러 컬렉션’은 정상적으로 수집한 게 아니라 약탈한 것이었다. 노이슈반스타인 성에 미술품을 숨긴 이유는 빼앗기지 않으려는 의도였겠지만 한편으로 약탈이 부끄러운 일임을 알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런데 남에게 엄청난 해를 끼치고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개인의 불법행위도 ‘조직의 명령에 따른 것’이라며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거나 조직적 범죄행위도 ‘개인적 일탈’이라며 반성하지 않는다. 나치 전범인 아이히만의 재판을 목격한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국가의 공복으로서 의무를 다했다는 식이었으니까. 영화 ‘변호인’의 악질형사 차동영도 나름대로 국가를 위해 일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국정원과 사이버사령부 등의 대선개입 사건 또한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의 억지와 강변 속에 진실이 안개 속을 헤매고 있다. 비밀 정보기관이라는 안개 속에 몸을 숨기고 불법행위를 해왔으면서도 안개가 물러가려 하자 함께 후퇴하면서 전모를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변호인’에 나오는 당시 공안검사들은 고문은 없었으며 학생들이 공산혁명을 시도했다는 식으로 큰소리치고 있다. 그들도 자연의 섭리를 조금이나마 깨달았으면 한다. 아무리 자욱한 안개도 햇볕이 비치면 이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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