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유선희 기자

▲ 유선희 기자
“진실을 위해 산다는 것은 양심을 위해 산다는 것과 통한다.” 유신독재의 광기가 절정에 이른 1976년, 언론인 송건호 선생은 신학잡지 <기독교사상>에 실린 글에서 기독교인들에게 진실과 양심을 위해 ‘행동’할 것을 촉구했다. 사실 기독교인들이 닮고자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골방에서 기도하는 일에 머무르지 않았다. 예수는 당시의 관습법을 깨고 안식일에도 병자를 고쳤으며, 성전을 더럽히는 상인들의 좌판을 뒤엎고, 지도자들에게 ‘회개하라’고 호통쳤다. 그리고 기득권체제를 위협한 일종의 ‘정치범’으로서 십자가에 못 박혔다. 

양심에 따라 행동한 종교인들의 족적은 우리 현대사에도 뚜렷하다. 1972년 10월 유신을 계기로 일부 기독교인들은 민주주의 회복과 언론 자유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1973년 국내외 기독교 지도자들이 ‘한국 그리스도인 선언’을 통해 유신체제에 저항하기로 다짐한 것이 대표적 예다. 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대표적 용공조작 사건으로 꼽히는 민청학련과 인혁당 사건 진상조사 등에 앞장섰고 1987년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2007년 김용철 변호사와 함께 삼성비자금 의혹을 폭로하는 등 경제정의를 세우는 데도 앞장섰다. 고 김수환 추기경은 독재정권을 질타하고 정의를 촉구하는 강론을 통해 사제들이 용기를 낼 수 있는 토양을 만들었다.

‘불의와 압제가 있는 곳에 횃불을 들고 나서는’ 종교인들의 행동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주민 반대를 무릅쓰고 공사가 강행되고 있는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현장과 경남 밀양 송전탑 건설현장 등에서 신부와 수녀, 목사들은 살을 에는 추위와 공권력의 폭력에 맞서고 있다. 또 많은 사제와 목회자들이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구의 대선개입과 이 사건 진상규명을 방해하는 권력을 비판하며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시국기도회’ 등을 이어가고 있다.

▲ 지난해 12월 16일 대한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은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의혹을 규탄하는 시국미사를 열었다. ⓒ <뉴스타파> 화면 갈무리

안타까운 것은 양심에 따른 종교인들의 행동을 왜곡하고 폄하하려는 세력 역시 맹활약 중이라는 사실이다. 천주교사제단이 국정원 대선개입을 정면으로 비판하자 한 사제의 강론 중 일부 표현을 문제 삼아 “그 사람들의 조국이 어딘지 의심스럽다”며 ‘종북몰이’에 나선 여권과 보수언론의 행태가 대표적이다. 특히 헌법에 ‘정교분리(政敎分離)’ 원칙이 있다며 종교인들은 정치적 발언과 행동을 삼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도 적지 않아 쓴 웃음을 자아냈다. 정교분리는 국민 각자에게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국교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이지, 종교인의 정치적 견해 표명을 금지하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중고생도 아는 내용인데 말이다.  

‘신의 공의로움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는 종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눈앞의 불의를 외면하는 것은 소명을 저버리는 일이 될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불평등해소와 종교인의 사회참여 옹호 등 진보적 발언으로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도 70~80년대 아르헨티나 군부의 ‘더러운 전쟁’에 침묵한 것 때문에 아직까지 비판받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진짜 문제 삼아야 할 ‘정치적 개입’은 재정 비리와 목회자세습 등으로 얼룩진 대형교회들이 막강한 영향력으로 ‘종교인 과세 반대’ 등 집단이기주의를 관철하는 게 아닐까? 2천년전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정말로 닮은 이들은 으리으리한 건물 속의 그들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정의, 양심을 위해 차가운 거리로 나선 사제, 수녀, 목사와 신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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