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김연지 기자

 ▲ 김연지 기자
똥을 눈다. ‘풍덩.’ 똥 떨어지는 경쾌한 소리. 변기 레버를 내리면 물이 세차게 흘러들어 소용돌이치며 내려간다. 내 몸에서 나온 배설물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변기와 배수구는 내 위와 창자를 닮았다. ‘쿠루룩 쿨쿨’ 무엇이 내려가는 소리도 비슷하다. 하얀 변기에는 깨끗한 물이 다시 찰랑거린다. 내 기분도 관장을 했을 때처럼 개운하다.

수세식 변기가 생기기 전, 똥은 으레 밭으로 가는 소중한 자원이었다. 뒷간의 똥을 퍼서 밭에 뿌리면 좋은 거름이 됐다. 동네 골목마다 “퍼~” 소리를 지르며 똥지게를 지고 다니는, ‘똥 퍼주는 사람’이 있던 시절이었다. 사람이 먹은 것은 똥이 되고, 똥은 밭으로 가고, 똥을 영양분 삼아 자란 작물을 다시 사람이 먹었다. 그렇게 모든 것은 건강하게 돌고 돌았다.

물 역시 돌고 도는 것이다. 물은 언제나 어디론가 흘러가려는 속성을 지녔다.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진 물은 한 방울, 두 방울이 모여 개울이 되고, 강을 통해 바다로 흘러가다 다시 하늘로 증발한다. 물은 그렇게 순환한다.

그러나 현대문명은 흐르고 순환하는 물의 속성을 악용해, 되레 자연의 순환고리를 끊어버렸다. 계곡이나 강에서 흐를 운명이었던 물은 변기 속에서 찰랑찰랑 고여 있게 되었다. 변기 속의 물은 사람이 레버를 눌러줘야 흐를 수 있다. 그러나 결국 그 물이 흘러들어 가는 곳 역시 오랜 시간 고여있어야 할 정화조다. 물은 ‘똥’을 통해 이루어지는 자연의 순환을 끊고 스스로도 순환하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만물은 돌고 돈다는 자연의 섭리를 인간이 끊어버린 지금, 그 덕에 인간은 그 어느 때보다 편리하고 쾌적해 보이는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거름이 되지 못한 채 물에 떠밀려간 오물은 어디로 갈 것인가? 본연의 속성을 잃고 흐르지 못하는 물은, 순환되지 않는 자연은 어떻게 될 것인가? 흘러야 하는 이치를 막은 업보는 결국 인간에게 돌아오게 되어있다.

자신의 집에서 나온 배설물을 자신의 밭에 직접 퇴비로 쓰는 것이 위법인 시대다. ‘청결’의 이름으로 ‘편리’를 ‘강요’받는 시대에, 농부이자 판화가인 이철수씨는 “사람의 배설물을 곧장 흙으로 보내는 지혜가 옹색한 위생법에 따귀를 맞는 기분”이라고 했다.

자연은 그를 파괴하는 이들에게 언젠가 복수한다. 개발과 경제성장은 그만한 대가를 치르게 했고 물의 순환고리를 끊어버렸다. ‘한강의 기적’이라고들 칭찬하지만 그 기적은 서울에 사는 이들의 즐거움을 빼앗아버렸다. 물놀이하던 뚝섬의 추억은 사라진 지 오래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는 속담은 이제 옛말이 됐다. 그동안 만만하게 대해온 한강에게 우리가 되레 뺨 맞을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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