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벽'

▲ 김성숙 기자

우리의 일상은 벽과 벽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아침에 눈 뜨면 제일 먼저 천장이라는 벽에 눈길이 멈춘다. 고개를 돌려도 사방이 벽이다. 집 밖으로 나와 잠시 벽에서 벗어났다 싶다가도 고개를 돌리면 다시 벽이다. 사무실에도 학교에도 벽 투성이다. 쳇바퀴 속 다람쥐처럼 벽을 벗어나지 못한다. 온종일 벽에 갇혀 살고 있으니 이제 벽이 옆에 있는지조차 모를 지경이다.

생활 깊숙이 자리 잡은 벽은 보호와 격리라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흔히 벽 안에 있는 사람이 보호받는다고 여기지만 그렇지 않은 때도 많다. 벽을 둘러치면 집이 되는데 이 공간은 대개 안에 있는 사람을 보호하고 밖에 있는 사람은 배제한다. 그러나 감옥의 벽은 죄수를 가둬 그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한다. 감옥은 죄수가 아니라 범죄로부터 보호받고 싶은 사람들이 만들었다.

어떤 이유로도 벽이 세워져서는 안 되는 공간이 광장이다.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수가 같은 목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다. 광장은 소통의 공간이기에 누구나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고대 그리스 시민이 아고라에 모여 토론한 것처럼 오늘날 광장에서도 발언을 하려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얘기를 듣다 보면 공감할 때가 많다. 그러나 광장에서 좀 벗어난 곳에는 전혀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이들도 있다. 그들 또한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어야 한다. 프랑코 만주코는 ‘좋은 광장은 충돌과 화해가 교차하는 곳’이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 광장에는 자꾸 벽이 생긴다. 조금이라도 사람이 모일라치면 그들을 격리하기 위해 벽을 세운다. 공권력은 광장에 모인 목소리를 통제한다. 폐쇄된 광장은 목소리를 삼킨다. 광장의 목소리를 듣고 답을 해야만 하는 이들은 벽 밖에서 침묵한다. 국가정보원 등의 대선개입을 규탄하는 주말 촛불집회가 열리는 서울광장에도 늘 벽이 둘러쳐진다.

지난 주말에는 강추위 속에 10만명이 운집했는데도 집권세력은 그들이 말하는 내용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방송과 보수신문이 그들의 목소리는 전하지 않고 ‘시민불편’만 강조하니 시민의 목소리는 광장을 벗어나지 못한다. 경찰버스로 만든 차단벽보다 언론은 더 높은 장벽을 쌓는다.

그러나 광장의 목소리는 태풍의 눈처럼 스스로 힘을 키울 수 있다. 벽 밖으로 나가지 못한 목소리를 삼키며 공명하다가 결국 벽을 뚫고 퍼져나간다. 봉쇄된 이집트의 ‘타흐리르 광장’도 결국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30년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다. 광장을 일시적으로 둘러막을 수는 있어도 광장의 목소리를 영원히 침묵시킬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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