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스쿨 인문교양특강] 진중권 동양대 교수
주제 ② 디지털 시대 문화현상과 세계관

아리스토텔레스는 천문·기상·동식물 등 자연에 관한 연구인 자연학(physika)을 먼저 배운 다음(meta) 모든 존재 전반에 걸친 근본원리를 배우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그래서 ‘형이상학’으로 번역되는 메타피직스(metaphysics)를 본래 뜻대로 풀이하면 자연학 다음에 배운다는 의미인 '형이후학'이 된다. 그런데 진짜 형이상학이 등장했다. ‘이상’이라는 의미인 그리스어 파타(pata)가 합쳐진 파타피직스(pataphysics)다. 말은 그럴 듯하지만 메타피직스를 패러디한 단어로 ‘사이비 향유’ 곧 ‘농담으로서 철학’, ‘농담으로서 과학’이라는 뜻이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강의에서 디지털 문화의 특성을 설명하는 데 이 개념을 사용했다.

프랑스 극작가 알프레드 제리(Alfred Jarry)가 이 말을 가장 먼저 만들었고,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파타피직스협회’를 만든다. 스페인 화가 후안 미로, 20세기 최고의 작가 마르셀 뒤샹 등이 회원이었다. 작가 호르헤 보르헤스, 움베르트 에코는 파타피지션이라 불렸다. 그들의 소설을 보면 페르시아∙아랍∙라틴어∙중국문헌까지 굉장히 많은 책이 등장하지만 사실은 상당 부분 존재하지 않는 가짜 문헌이다. 실제 저서나 고전들과 이들이 마음대로 만들어낸 사이비 문헌들이 소설에 뒤섞여 있다. 이런 의미에서 파타피지션이라 불리는 것이다.

▲ 후안 미로(왼쪽)와 마르셀 뒤샹은 파타피직스 협회 회원이었다. ⓒ joanmiro.com, Getty

메타피직스가 메타포(metaphor: 은유)를 사용한다면 파타피직스는 은유를 패러디한 파타포(pataphor)를 쓴다. 은유는 비유에 불과하고 가상과 현실이 아주 분명하게 구분된다. ‘그대의 눈은 호수와 같다’고 할 때 눈이 물(H2O)이 아님을 누구나 안다. 그러나 파타포는 다르다. 가상과 현실이 중첩돼 있다.

“체스, 장기는 전쟁의 은유잖아요. 초와 한, 그리고 킹이나 퀸 이런 것들. 장기하고 현실의 전쟁은 완전히 다른 거예요. 이건 하나의 비유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중첩되어있는 상태로 생각해보세요. 거대한 장기판 위에서 미군병사와 탈레반 병사가 전투를 하고 있는 장면. 그게 파타포 상태입니다. 해리포터에서 보신 적이 있을 거예요.”

오락을 하면서 운동효과를 보는 시대

요즘 현실에서 메타포가 파타포로 발전되고 있다. 게임기 ‘닌텐도 위(Wii)’가 대표적 사례다.

“닌텐도 Wii에서 테니스를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럼 실제로 몸을 움직여야 돼요. 가상과 현실이 중첩된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이게 어르신들에게 운동하는 효과가 있단 말이죠. 그런데 닌텐도로 테니스 하는 사람을 옆에서 한번 보면 어떨 것 같아요? 미쳤겠죠. 왜? 우리한텐 중첩된 가상이 안보이잖아요.”

▲ 닌텐도 Wii는 가상과 현실을 중첩시킨다. ⓒ Nintendo

진 교수는 파타피직이 디지털 시대 인터페이스 디자인의 원리가 돼버렸다고 한다. 예를 들어 가상환경에서 항공훈련을 하는 ‘플라이트 시뮬레이터’를 이용하면 현실 비행이 진짜로 가능하다. 전쟁이나 의료 분야에서도 그에 맞는 시뮬레이터를 사용한다. 이것이 확산되는 이유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종사 한 명을 만들기 위해 항공사가 일일이 제트비행기 훈련을 1000시간 시킨다면 엄청난 비용이 들 것이다. 비록 가짜지만 진짜처럼 되어있기에 훈련효과가 있다. 실제로는 디지털 기기지만 아날로그처럼 디자인되는 것이 핵심이다.

“이런 인터페이스에 익숙한 젊은 세대 같은 경우 리얼리티에 대한 관념이 다른 거예요. 가짜와 진짜 구분이 희미해지는 겁니다. 가짜를 마치 진짜처럼 대하는데 아주 익숙하다는 거예요. 한때 지구상에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사피엔스가 공존한 적이 있거든요? 그와 비슷하게 요즘은 문자문화시대 사람들하고 영상문화시대 사람들하고 같이 공존하는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갈등이라는 게 일어나요.”

허경영과 놀아주는 세대

진 교수는 광대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말한다. 미치지 않았는데 미친 척 하는 세습광대와 태어날 때부터 바보인 천연광대. 허경영은 어느 쪽일까?

“젊은이들에게 허경영은 차원이 다른 개그맨입니다. 우리가 텔레비전에서 보는 것은 대부분 세습광대들이에요. 그런데 이분은 천연광대여요. 개그 하는 수준을 보세요. 축지법, 공중부양 이런 걸 누가 합니까? 오로지 이분만이 할 수 있는 개그라는 거죠. 그런데 노인들한테는 의미가 달라요.”

노인들에게 허경영은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나온 사람이다. 자칭 새마을 운동을 최초로 만든 사람이며 박정희 대통령 비서다. 할아버지들에게 진짜 보수는 박정희 대통령의 공화당라인을 잇는 것인데 ‘민주공화당’ 총재인 허경영이 바로 그런 존재다. 실제로 그분들이 돈을 모아 허경영을 선거에 출마시켰다고 한다. 진 교수는 대통령 선거에 나와 9만 표를 넘게 획득한 사람이 축지법과 공중부양을 한다고 말하니까 젊은이들이 열광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허경영은 가짜인데 젊은이들이 왜 열광하고 그걸 믿지?’ 이렇게 문자 문화군에 있는 사람들은 이해를 못한다. 젊은이들은 허경영이 하는 말을 믿어주는 척하면서 한번 놀아보라는 건데 실제로 믿는다고 생각한다. 한 일간지에서는 허경영 신드롬에 대해 전문가에게 진지하게 물었고,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이 계속될 경우 젊은이들의 의존증세가 강화될 위험이 있다’는 진지한 결론을 내린 기사가 나왔다.

“이건 쉽게 말하면 진보∙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진화의 문제에요. 이해를 못하는 겁니다. 문자 세대는 진짜와 가짜, 허구와 현실을 가립니다. 그런 버릇이 있는 거예요. ‘가짠데 왜 현실로 착각할까, 요즘 애들은 멍청해.’ 이런 식인 거죠. 젊은이들은 착각하는 게 아니라 허구를 현실로 대접해주는 거죠. 그건 패러다임 자체가 다르다는 거예요. 배우냐 못 배우냐와 상관없이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사피엔스의 차이와 비슷한 거죠.”

▲ 젊은이들에게 허경영은 광대며 놀이문화다. ⓒ 허경영 미니홈피, 트위터

진짜냐 가짜냐를 꼭 가려내는 분별력의 시대와 가짜도 진짜 대접을 해주는 파타피지컬 시대 이것이 패러다임 차이다. 기성세대들은 ‘허경영 너 왜 거짓말 했어!’ 이렇게 반응하는 반면 젊은이들은 놀아준다. 이것이 문자문화코드와 영상문화코드의 차이다. 허경영은 ‘부시를 만났다’, ‘UN본부를 한반도에 옮기겠다’, ‘IQ가 430이다’라는 주장을 한다. 진 교수는 “그것을 굳이 검증할 필요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광대이고, 내버려두면 되고, 이게 바로 놀이문화”라고 스스로 답했다.

미디어 아티스트 제프리 쇼(Jeffrey Shaw)는 “미래의 인류는 파타피지컬한 종이 될 것”이라고 했다. 옛날에는 육안으로 보는 것만이 세계였는데 이제는 미디어를 통해 매개된 것까지도 하나의 현실로 인정되면서 대중들이 존재론적으로 대단히 중의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요즘 아이들은 진짜와 가짜를 가리는 데 별 관심이 없다. 합성이든 아니든 재미만 있으면 된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뉴스에서 힘든 얘기 들으면 분노하고 현실을 바꿔야겠다 이랬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별로 관심이 없어요. 그렇지 않아도 현실이 비루하다는 것을 다 알기 때문이죠. 폭로가 계속 나오잖아요? 그러면 그냥 무뎌지는 거예요. 오늘날은 서사가 굉장히 큰 힘을 발휘합니다. 광우병 쇠고기, 남양유업 파동처럼 뭔가 코드를 건드리는 것이 있다면 사회적으로 이슈화하거든요. 그게 굉장히 문학적인 거예요.”

촛불집회는 정치와 오락이 결합한 것

2000년 이후 컴퓨터 문화는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이 된다. 컴퓨터가 데스크탑에서 랩탑(노트북), 팜탑(스마트폰)으로 점점 작아지면서 이것이 가능해졌다. 언제 어디서라도 가상세계를 불러다가 현실에 중첩시킬 수 있게 되었다. 네비게이션, 구글 안경 같은 것들이 현실에다 정보의 층을 쌓는 대표적인 증강현실 사례다. 이처럼 사람과 상호작용하는 이미지는 컴퓨터 게임의 이미지와 같다. 지금 젊은 세대들은 텔레비전과 영화 세대가 아니라 컴퓨터게임 세대다. 이전 세대가 이미지를 딱 떨어져서 보려고만 했다면, 요즘 아이들은 이미지를 보면 달려들어서 조작하려고 한다.

진 교수는 촛불시위 때 <칼라TV> 방송을 진행했다. 그는 컴퓨터게임 세대가 <칼라TV>를 시청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채팅 창을 통해 조작하려 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촛불시위 당시 방송을 하고 있는 그에게 ‘지금 화면에 비치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봐주세요’라고 요청이 온다. 그러면 인터뷰가 시작된다. ‘지금 사직동에서 붙었답니다’라는 글이 올라오면 차를 타고 거기로 간다. 진 교수는 이런 것들이 방송의 문법을 네티즌들이 게임 문법으로 바꾼 것이라 한다.

▲ 칼라TV를 진행했던 진중권 교수 ⓒ 진중권

“자기들이 보는 영상을 바꾸고 싶어 하고 그 영상이 지시하는 현실 자체를 바꾸고 싶어 하는 겁니다. 뉴미디어에 맞는 문법이죠. 제가 볼 땐 <컬러TV>가 인기를 끌었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제가 캐릭터가 되고, 카메라가 아이템이 된 거죠.”

진 교수가 방송에서 물 대포를 맞으면 모니터를 통해 시청하던 네티즌이 전자결제를 통해 우비를 퀵서비스로 보내준다. 배고프면 김밥도 퀵서비스로 보내준다. 네티즌에게 도와달라고 했더니 청와대 서버를 다운시키는 일도 벌어졌다. 이런 형태로 시위가 몇 달간 지속됐다. 게임의 문법이 촛불시위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시작과 끝이 있다. 감독이라는 존재 아래 통제가 된다. 하지만 게임에는 끝이 없다. 지휘하는 사람도 없고 각자가 알아서 주체가 된다. 그래서 촛불집회는 정치적인 부분과 오락적인 부분이 결합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진 교수는 분석한다. 이 두 가지가 중첩된 형태이기 때문에 정부와 운동권 모두로부터 촛불집회가 공격받게 된다.

“각하께서는 촛불집회를 너무 위험하게 보는 거예요. 생각해봐요, 거의 100만씩 나왔잖아요. 각하가 깨닫지 못한 건 저 사람들에게 진지한 의도도 있지만 대부분은 놀러 나온 거예요. 이걸 못 보니까 반란세력이고, 과도하게 대응해버린 겁니다. 반면 운동권에서는 이쪽이 너무 진지하지 못하고, 장난스럽다는 거예요. 그래서 공격을 하는 겁니다.”

촛불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에게는 내가 노는 것이 동시에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진지한 정치와 오락의 결합이 아닐까? 이명박 대통령은 위험하게만 봤고, 운동권은 한심하게만 봤다. 하나는 부르주아, 하나는 프롤레타리아 시각이다. 둘 다 산업사회 산물로 대중들이 정보사회 코드로 와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촛불집회를 두고 순수한 사회적 비용낭비라고 평가하고, 운동권에서는 놀다가 사실 얻은 게 없지 않느냐고 했다.

진 교수는 촛불시위에서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무정부적 욕망을 봤다고 한다. 우파의 이데올로기도 거부하고 좌파의 것도 거부하는 이데올로기 자체를 거부하는 순수한 내재적인 즐거움으로서 운동, 시위였다고 평가한다. 함께 하니까 뭔가 된다는 느낌, 동원되지 않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했는데 현실이 바뀐다는 체험까지, 이런 서사가 촛불집회에 있었다.

▲ 촛불시위는 이데올로기 자체를 거부하는 순수하고 즐거운 시위였다고 진 교수는 평가한다. ⓒ 이대용

놀이에서 사이비 종교로 가버린 나꼼수

파타피지컬은 말하는 사람도 가짜라는 걸 알고 듣는 사람도 허구라는 걸 알면서 진짜인 척 해주는 상황이다. 말하는 사람은 가짜라는 걸 알지만 듣는 사람은 가짜라는 걸 모르면 선동이 된다. 말하는 사람도 가짜라는 걸 모르고 듣는 사람도 가짜라는 걸 모르고 믿는다면 사이비 종교가 된다.

진 교수는 나꼼수가 처음에는 파타피지컬하게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선동상황 내지는 사이비 종교 상황까지 갔다고 본다. 그전까지만 해도 하나의 음모론이고 따라서 사람들이 믿는 척만 해주면 괜찮았는데 이걸 진짜라고 말함으로써 상황이 아주 진지해지고 복잡해졌다. “나꼼수가 테크놀로지를 이용하는 측면은 굉장히 진보적이었는데 컨텐츠 측면에서는 상당히 보수적이었죠. 문자문화 이후가 아니라 문자문화 이전의 전설과 설화로 돌아가버린 측면이 있었죠. 그게 제가 비판했던 포인트였습니다.”

그는 나꼼수 현상에서 놀이정신, 유희정신이 사라지면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봤다. 관용을 가지고 합리적인 비판을 해야 되는데 우리 편은 다 용서되고 저쪽은 용서가 안 되는 진영론으로 대중들의 의식이 가버린 것이다.

“예를 들어 곽노현 교육감이 보수주의자였다면 당신들은 어떻게 했을 거냐고 물어보라는 거예요. 선의였다고 용서했을까? 결코 그렇지 않았을 거라는 거죠. 판단기준이 흔들려버리고 진영논리가 돼버리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윤리적 담론이나 정치적 담론 자체가 허무해지거든요. 남은 건 힘과 힘의 싸움밖에 없는 거예요. 그 부분들이 굉장히 안타깝죠.”

진 교수는 이런 현상들을 통해 정치적 의식이 과거와는 달라졌고 그런 관점에서 옛날 산업사회 틀로 지금 정치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미디어는 의식을 재구조화 한다. 그는 미디어가 변함으로써 사람들의 의식구조도 변화했고, 사람들이 관계를 맺는 방식도 변화했다는 말로 강의를 마무리 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인문교양특강I>은 정희진, 진중권, 안광복, 주일우, 천정환, 이상수, 이택광 선생님이 강연을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의를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 이 기사가 유익했다면 아래 손가락을 눌러주세요. (로그인 불필요)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