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박세라 기자
말이 없는 게 매력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연애 경험을 통해 새롭게 깨달았다. 침묵은 관계에 있어 곧 권력이라는 것이다. 남자친구는 싸우면 입을 닫고 전화기를 꺼버렸다. 연애관계에서 상대방을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약자다. 내가 약자일 때 침묵을 지키는 그의 눈치를 보고 분위기를 풀기 위해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하지만 영원한 약자가 되기는 싫었다. 내가 마음 독하게 먹고 이별을 고하자 그가 매달렸다. “헤어지지 말자”는 그의 말에 침묵했고 나는 ‘권력자’가 됐다. 그런데 지금 내게 남은 건 뭔가?
침묵의 법칙은 사적인 관계에만 작동하는 게 아니다.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을 두고 여야가 치고받고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묵묵부답이다. 1년간 기자회견 한번 안 한 대통령이니 국민들의 자포자기를 기다리는 건가? 철도파업 사태에 대해서도 강경대응 지시만 하고 있으니 갈등이 날로 고조될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 대표 시절에도 현안에 관한 질문을 받으면 대개 말을 아꼈다. 그 덕분에 기품있는 지도자의 분위기를 연출하며 말만 많은 정치인과 차별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대통령으로서 침묵의 권력을 고집하는 것은 ‘약금한선(若噤寒蟬)’의 고사성어로 설명할 수 있다. ‘추위에 입 다문 매미’를 뜻하는데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을 비꼬는 말이다.
힘을 가진 자는 침묵할 수 있다. 침묵을 지키는 자는 나름대로 생각이 있거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입을 닫을 수도 있다. 상대방과 더는 말을 섞고 싶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관계의 주체 중 한쪽이라도 소통을 원한다면 침묵을 깨야 한다. 권력을 가진 자는 입을 열고 무슨 말이든 기다리는 상대방과 소통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침묵은 ‘금’이 아니다. 침묵은 권력을 가졌다고 자만하는 자가 누리는 아집인 때가 많다. 박 대통령은 추운 날 입 다문 매미처럼 침묵해서는 안 된다. 국정원, 사이버사령부 등 국가기관의 조직적 은폐와 검찰 수사방해 혐의는 현재진행형이며 침묵으로 벗어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대통령은 막강한 권리를 가졌지만 한편으로 막중한 의무를 지고 있다. 국민의 눈치를 보아야 할 사람은 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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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뉴스 편집부 & 지역농촌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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