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스쿨 인문교양특강] 정희진 여성학 강사
주제 ① 탈식민주의로서 여성주의

“사랑에 불법은 있어도 불륜은 없다”

“혼외자녀가 영어로 뭔지 아세요? 러브 차일드(Love child)예요. 제도권 안에서 태어난 아이는 사랑의 결과가 아니라는 함의의 흥미로운 표현이지요.”

▲ 정희진 강사

<한겨레>와 <경향신문>에서 도발적인 칼럼을 연재하는 여성학 강사 정희진씨는 ‘사랑에 불법은 있어도 불륜은 없다’고 말한다. 혼외정사와 혼외자식도 마찬가지다. 불륜은 문자 그대로 윤리에 어긋나는 행위를 말하는데, 상대방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금품 또는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사랑은 그 대상이 동성이든, 동물이든 나이 차이가 크든 작든 상관없이 윤리적 잣대로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법이 인정하는 ‘합법적 사랑’과 제도권 밖의 ‘불법적 사랑’이 있을 뿐이다. 

오히려 ‘불륜’은 합법적 연인관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사랑 때문에 상처받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다. 배려 없이 이별을 통보하거나 상대방이 더 많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함부로 대하는 것은 물론이고 데이트 폭력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사랑의 윤리학’을 무참히 짓밟는 ‘비윤리적’ 사람이 수두룩하지만 우리는 그 대신 혼외관계를 ‘불륜’이라고 부른다. 

정 교수는 일부일처제 사회에서 혼외관계는 사실 많은 사람들이 겪는 일이며 흔한 인생사라고 설명한다. 혼외관계가 드라마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것도 그 반증이다. 권력은 결혼적령기 남녀의 사랑을 빼고 모두 ‘불법’으로 규정했지만, 인간의 마음이 쉽게 법 테두리 안에 갇힐 리 없다. 그는 사람들이 종교에 빠지는 이유도 사랑에 규제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노숙자나 아줌마가 누군가와 사랑하는 걸 본 적 있어요? 사랑은 자본주의 규칙을 철저하게 따릅니다. 보편적인 것 같지만 돈이 없으면 할 수 없어요. 88만원세대가 연애를 못하는 이유도 이것이죠. 사랑은 중산층 남녀만의 전유물입니다. 대신에 나머지 사람들은 ‘주님’을 짝사랑하죠. 주님은 미워했다 사랑했다 혼자서 마음대로 해도 되잖아요.”

남편이 바람났을 때 모든 여성이 슬퍼할까?

흔히 혼외관계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그 행위가 배우자에게 상처를 준다고 얘기하지만 정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오히려 “모든 배우자가 상처받을 거라고 단정 짓지 말라”고 얘기한다.

“대다수 배우자는 혼외관계 때문에 상처를 받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럴까요? 남편이 떨어져 나갔다고 되레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남편과 바람난 여성에게 ‘너도 한번 당해보라’는 심보로요.(웃음)”

정 교수는 “감정을 제도화하는 것은 폭력”이라고 말한다. 혼외관계 때문에 어떤 사람은 상처를 받기도 하고, 누군가는 후련함에 박수를 칠지도 모른다. 결국 모르는 일이다. 그 때문에 모든 사람이 상처받을 것을 가정해서 국가가 개인의 사적 감정을 통제하는 건 부당하다고 그는 설명한다.

▲ 바람피는 남편 덕분에 자신을 돌아보게 된 여자의 고뇌를 일기형식으로 담은 <위기의 여자> ⓒ Schoenhof Foreign Books Inc.

“시몬 드 보부아르의 소설 ‘위기의 여자’를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주인공은 남편이 바람을 피운 덕분에 다양한 인생과 세계를 발견하게 됐고, 그러다가 진정한 자아도 찾았거든요. 인생은 제도와 통념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돌발변수가 많아요. 제 친구 중에는 치과 의사였다가 어느 날 카레집을 차린 친구도 있고, 이창동 감독처럼 42살에 교사를 그만두고 영화판에 찾아가 조감독 생활을 시작하기도 하고. 결혼 생활이라고 예측한대로만 흘러갈까요?” 

우리가 결혼하는 이유

국가가 간통죄로 혼외정사를 처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혼인서약을 어기고 배우자에게 상처를 준 것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묻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과 다르다. 정 교수는 한국은 철저하게 가족이 아닌 ‘가족제도’를 보호하고 있다고 말한다. 개인이 받는 상처는 그리 중요하지 않고 가족제도를 유지하는 데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본주의와 국가 시스템이 유지되려면 여성의 가사노동과 육아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혼의 ‘불편한 진실’이다.

여성들은 남편이 자기를 평생 지켜줄 것이라고 믿지만, 그는 “영원한 사랑은 없다”고 말한다. 만약 존재한다고 해도 매우 소수라 아무나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라고 말한다. 역으로 영원한 사랑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이용해 서로를 구속한다. 일종의 ‘보험’이다.

“이혼할 자신이 없다면 결혼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결혼 생활은 어떤 돌발상황이 생길지 예측할 수 없지요. 남편이 평생 변함없이 사랑을 주고, 돈도 벌어다 줄 거라고 믿으시나요? 그건 드라마에나 나오는 일이죠.”

진부한 글보다 우익의 봉기 글이 낫다

정 교수는 양성평등에 반대하는 페미니스트다. 그 때문에 스스로를 페미니스트 사이에서 ‘왕따’라고 소개한다. 그는 “양성은 성이 여성과 남성 딱 2개만 있다는 뜻인데, ‘무성’같은 또 다른 성도 존재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처럼 그의 칼럼에는 늘 색다른 시각이 들어 있다. 독특하면서도 논리적이어서 즐겨 읽는 독자가 많다. 가는 곳마다 “글 쓰는 데 얼마나 걸리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 이유다. 

“저는 대중적 글쓰기라는 말을 가장 싫어합니다. 과연 균질적 의미의 대중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여기 모인 사람들도 모두 다른 생각을 하는데 이들을 하나로 묶어 대중이라 규정지을 수 있나요? ‘종북’이라는 단어도 말이 안 됩니다. 북한 사람도 한둘이 아닌데 북한의 어떤 사람을 좇는 건가요. 인도 출신 작가 아룬다티 로이는 자신을 ‘반미주의자’라 부르는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반미’의 뜻이 무엇이죠? 재즈를 반대하는지, 요세미티 국립공원 나무를 싫어하는 것인지. 무엇을 반대한다는 것인지 불분명합니다.” 

정 교수는 상상력 없는 진부한 글을 읽을 때마다 분노한다. 그에게 대중적 입맛을 만족시키기 위한 글은 우익 세력의 봉기 글보다 못하다. 진부함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단순하다. 굉장히 까다로운 독자 한 명을 정해놓고 글을 쓰는 것이다. 그 사람을 만족시킨다면 대중적으로도 통하는 글이다. 여기에 독자를 사로잡을 콘텐츠가 있다면 표현은 쉬운 영역이다. 

표현의 테크닉은 축적된 삶과 생각이 좌우한다. 영화도 다르지 않다. <설국열차>의 봉준호 감독이 대중과 평론 양쪽에서 사랑받는 것도 그만의 정치학과 윤리학 여기에 미학까지 더해졌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불만 많은 사람‘ 즉 인간 본연의 문제와 그들이 사는 세상에 할 말 많은 이가 그것을 잘 표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상처와 고통에서 콘텐츠를 탄생시키는 예술가도 마찬가지다. 

▲ 주인공 문성근은 '바람 안 피우고 마누라한테 못하는 남편보다 바람도 잘 피우고 아내한테 잘 하는 남편이 백배 더 낫다'고 말할 정도로 속물적이다. 편집장이라는 직책을 이용해 미래가 불안한 청년을 심부름꾼으로 부리기도 한다. ⓒ 명필름

“박찬옥 감독의 <질투는 나의 힘> 주인공 문성근은 꿈이었던 소설가를 포기하고 출판사 편집장이 돼요.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괴로움은 남아있지만 그래도 편집장으로서 소설가에게 권력 자랑도 하면서 적당히 속물적으로 살아요. 그가 예술을 포기한 이유는 팔아먹을 만한 상처받은 영혼이 없어서였어요. 파고 파도 끝없는 상처가 존재해야만 예술을 할 수 있으니까요.”

누구에게나 고통은 존재한다. 어떤 인생의 갈림길을 거쳤느냐에 따라 표현할 준비가 된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나누어질 뿐이다. 이성복 시인의 표현처럼 입을 틀어막고 울기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박경리 선생처럼 <토지>라는 대작으로 울분을 토해내기도 한다. 

삼성이 '페미니스트'를 원하는 이유

‘다른 사고’는 좋은 글을 만든다. 특별한 콘텐츠만으로 학벌이나 외국어 능력 등의 스펙을 대신할 수 있는 분야가 지식산업이다. 이는 ‘다름’을 갈망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욕망과도 맞물린다. 대기업 삼성이 타인과 다른 사고를 하는 페미니스트를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페미니즘은 정치학 용어가 아닌 하나의 독특한 사고체계로 인식된다. 

“아이를 일반 고등학교 대신 대안학교로 보냈는데 성적이 낮았는데도 높은 경쟁률을 뚫고 붙었어요. 입학시험에서 자기 꿈을 적으라는데 다른 아이들은 의사, 과학자가 되겠다고 말했답니다. 반면 제 아이는 ‘되고 싶은 사람이 되겠다, 그러나 아직 되고 싶은 사람이 무엇인지 몰라서 이 학교에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고민해 보겠다’고 썼대요. 다른 아이들은 질문에 대답만 했고 우리 아이는 다시 질문을 던진 거예요.”

▲ 정희진 교수는 글의 핵심은 '콘텐츠'라고 설명한다. 좋은 콘텐츠는 비판적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길러진다고 말했다. ⓒ 김혜영

남들과 다른 독특한 사고와 콘텐츠가 주목받는 세상이다. 여기에 보다 다양한 시선으로, 보이지 않는 현상을 가시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물론 다양성의 실현은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자주 쓰는 ‘종합’이라는 표현도 다양성과는 거리가 멀다. 정 교수는 “신문을 종합일간지라 말하지만 인간의 삶을 종합적으로 담아내기란 불가능하다. 누락된 삶과 현상이 훨씬 많다”고 말했다. 우리가 낙태를 28번 한 성매매 여성이나 주민등록증 없는 사람을 만나본 적 없는 것처럼 자신과 다른 계층과는 접촉조차 하지 않는다. 표면에 드러나지 않지만 그 속을 볼 줄 아는 감수성은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조건이다. 

넓은 사고를 구축하는 방법은 ‘사유방식’에서 비롯된다.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뒤쫓거나 통념대로 사는 사람에게는 사유방식이 필요하지 않다. 그저 기성체제가 제시해준 것 이외 관점은 볼 수 없는 무능력자에 불과하다. 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을 훈련하고, 감각과 사유의 지평을 넓히는 것은 그가 말하는 좋은 글쓰기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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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인문교양특강I>은 정희진, 진중권, 안광복, 주일우, 천정환, 이상수, 이택광 선생님이 강연을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의를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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