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슬기 기자

아이를 점지해준다는 ‘삼신(三神)할머니’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비밀이 있다. 바로 그녀가 출산 경험이 없는 처녀라는 점, 그리고 신이 아닌 인간 출신이라는 점이다. 어쩌면 출산을 관장하는 신으로서는 약점일 수도 있는 여건에서 그녀는 동해 용궁의 딸과 실력을 겨뤄 옥황상제에 의해 ‘출산의 신’으로 ‘임명’된다. 신화에 따르면, 그녀는 꽃 키우기 시합에서 출산과 양육을 책임질 잠재력과 가능성을 인정받으면서 경쟁자를 물리친다. 신의 세계에서는 출신도 인맥도 따지지 않고, 오로지 공정 경쟁을 통해 믿음직하고 유능한 ‘삼신할머니’를 탄생시킨 것이다. 

우리 사회는 신화의 모습과 아주 다르다. 공정한 인사를 하는 ‘옥황상제’는 어디에도 없다. 지난 정부에서는 ‘고소영’ 출신, 이번 정부에서는 대선 캠프 출신이 주로 요직을 차지했다. 공정 경쟁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측근 인사’ ‘불통 인사’만 남았다. 청문회에서 여당의원까지 자질 부족을 이유로 반대했던 장관 후보자를 끝끝내 밀어붙였다. 몇몇 전라도 출신 인사를 등용한 점을 들어 ‘지역차별 없는 공정인사’를 홍보하지만, 힘있는 자리는 영남 출신, 특히 경남이 고향인 김기춘 비서실장 취임 후에는 PK(부산경남) 출신이 거의 독차지한다. 

채용방식에 따라 지원자는 그에 걸맞은 준비를 하는 법이다. 실력보다 인맥이, 잠재력보다 출신을 중요시하는 정부인사 시스템 아래서, 줄서기를 하는 ‘요직 지망자’가 많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선 승리 뒤의 전리품을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국정원과 보훈처 등 숱한 기관의 책임자들이 그토록 적극적으로 대선에 개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공직자의 줄서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은 정계 줄서기가 ‘빙산의 일각’으로 드러난 것에 불과해 보인다. 공정한 인사가 이뤄지지 않는 정치 풍토에서, 공직자들은 실력보다 인맥이란 스펙을 쌓으려 할 것이다. 인간 삼신과 경쟁에서 패배한 신의 딸은 저승에서 삼신의 역할을 돕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그리스•로마 신화에는 아테네신에게 직물 짜기 시합을 요청했다가 그 신의 노여움을 사, 거미가 되었다는 아라크네 이야기가 있다. 그것에 견주면, 우리 신화는 신과 인간의 공정한 대결을 중시한다. 패배를 인정하는 미덕도 보여준다. 인류의 원체험을 담고 있는 신화는 혼돈의 시대에 우리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의 원점을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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