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류대현 기자

▲ 류대현 기자
이석기와 김석기를 둘러싼 두 장면은 극단적으로 갈라진 한국사회의 모습을 극적으로 대비시켰다. 이석기 의원의 이른바 ‘내란음모 사건’ 첫 공판이 열린 12일 수원지법에서는 ‘사형’과 ‘석방’을 요구하는 전혀 다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용산 참사에 책임있는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이 사장으로 취임한 한국공항공사에서는 13일 농성을 벌이던 유족 등 8명이 연행됐다. 집회 신고 장소에서 약간 떨어진 공항공사 주차장에서 시위를 벌였다는 이유다.

이석기와 김석기는 이름은 같지만 박근혜 정권의 적과 동지로 운명이 갈라졌다. 박근혜 정권이 이석기 의원에게 어마어마한 혐의를 씌운 데는 충격적 사건을 터뜨려 반대세력 전반에게 타격을 주려는 의도가 끼어든 듯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김석기를 공항공사 사장으로 임명한 것은 용산참사 희생자와 유족들은 적으로, 김석기는 동지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취할 수 없는 조처였다. 수구세력의 시각에서 보면, ‘국가를 전복하려’ 한 이석기는 적이고, ‘국가를 수호하려’ 한 김석기는 동지다.

그러나 그런 피아 구분과 흑백 논리는 약간의 상식만 있다면 성립될 수 없는 궤변임을 알 수 있다. 이석기 의원의 처신에는 문제가 많다고 보지만 내란 음모 혐의에 대해서는 검찰과 변호인단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태이다. 김석기 사장의 기용은 용산 사태 진압 지휘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인간에 대한 예의를 저버린 처사이다. 유족들의 분노와 한을 조금이라도 고려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아니 그들도 국민의 일원이라는 생각만 했더라도 그런 무리한 인사는 하지 않았을 터이다.

보수세력이 시장 논리와 국가 안보를 중시하는 데까지는 나름대로 이해가 간다. 그러나 건전한 상식을 가진 보수라면 보편적 인권을 국가 안보만큼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북한 주민의 인권도 중요시하면서 과잉 진압으로 자국민의 생명을 빼앗은 책임이 있는 사람을 업무 관련성도 없는 기관의 장으로 앉히는 것은 국민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독선이다.

‘당동벌이’(當同伐異)라는 사자성어는 옳고 그름을 떠나 같은 의견이면 한 패가 되고 다른 의견이면 물리친다는 뜻이다. 정의보다 당파성에 의존하는 행태를 가리킨다. 조선시대 붕당정치부터 이어져 온 악습은 지금껏 한국 정치를 농단하고 있다. 진보쪽도 과오가 많았다. 정강정책이 상당히 다른 통합진보당과 민주당이 연대한 것은 세 불리기에만 연연한 결과가 아니던가? 국정원을 비롯한 여러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 등 야당에게 유리한 사건이 계속 불거지는데도 여당과 보수언론의 종북 프레임과 ‘이석기 사태’에 갇혀 정국 주도권을 잃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정의란 승리한 자가 세우는 원칙이다. 과거부터 이어져 온 승자독식의 관행은 대통령제에서 적나라한 실상을 보여준다. 같은 편이냐 아니냐에 따라 특혜 또는 박해가 뒤따른다. 선거 승패에 따라 규칙이 변경되고 다른 편에게 당했던 것을 되갚아주는 행태가 되풀이된다. 한국사회에서 정의는 실종되고 만 건가? 길은 있다. ‘이석기’도 버리고 ‘김석기’도 버리는 것이 바른 길이 될 수 있다. 뒤틀린 진보와 극단적 보수는 배제하고 건전한 보수와 진보가 주도하는 사회가 도래해야 한다. 정의는 회색지대처럼 보이는 곳에 숨어있을 수도 있다.


* 이 기사가 유익했다면 아래 손가락을 눌러주세요. (로그인 불필요)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