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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의 ‘위선’에 도전하다
[마음을 흔든 책] 리어 키스 ‘채식의 배신’
2013년 08월 29일 (목) 20:34:31 이슬비 기자 dnizzle@danbinews.com
   
▲ <채식의 배신> 표지.

“저 고기 안 먹어요.” 누군가 고깃집 회식자리에서 이렇게 말한다면? “유별나게 군다”며 여러 사람의 눈총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채식’은 많은 불편함을 감내해야 하는 일이다. 급식에서 고기반찬을 빼고 나면 김치로 밥을 먹어야 하는 일도 있고, 외식도 자유롭지 못하다. 아무리 고기를 안 먹는다고 해도 쇠고기가 들어간 조미료까지 피하기는 어렵다. 이런 불편함을 무릅쓰고 채식을 하는 이유는 뭘까?

사람마다 이유야 천차만별이겠지만, 채식은 일종의 ‘불매 운동’이다. 자연을 회복시키고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다시 신성하게 만드는 혁명적인 행동이다.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채식은 육식으로 대변되는 남성적 질서를 교란하는 정치적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 페미니즘의 입장에서 채식주의 역사를 재구성한 캐럴 J. 애덤스(Caral J. Adams)는 ‘육식에 부여된 의미가 사나이다움을 함축한다’고 했다. 성(性)정치가 구조화하는 방식은 우리가 동물, 특히 소비되는 동물을 바라보는 시각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20년간 채식을 해온 급진적 환경운동가이자 여성해방론자인 리어 키스(Lierre Keith)도 같은 생각이었다. 돈의 논리에 복종하는 산업경제와 가부장제, 공장제 축산 등에 환멸을 느낀 그녀는 이 세상을 바로잡고자 하는 절박한 갈망에서 채식을 했다. 그렇게 20년을 ‘비건(Vegan), 곧 ‘완전한 채식주의자’로 살아온 그녀가 최근 비건 생활을 청산했다. 그리고 <채식의 배신>(The Vegetarian Myth) 을 썼다.

<채식의 배신>이 설득력 있는 이유는 20년간 채식한 리어 키스의 경험을 근거로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채식주의자들의 영양학적 무지를 꼬집으며 ‘채식이 건강에 이롭다’는 신념을 깬다. 20년간 채식한 저자는 비건 식단 때문에 6개월 만에 저혈당증이 찾아왔고 2년 만에 척추에 엄청난 통증이 생겼다. 그리고 15년이 지나고서야 통증의 원인이 채식에서 비롯된 퇴행성 관절염이라는 것을 알았다. 우울증과 초조감, 식이장애도 20년간 그녀를 괴롭혔다. 원래 인간은 잡식성인데 지나친 채식을 하니 건강이 망가질 수밖에. 생식, 치아 발달, 면역 기능에 관여하는 지용성 비타민도 지방이 있어야만 몸으로 흡수된다. 당을 과도하게 섭취하는 곡물 위주 식사는 오히려 당뇨병과 고혈압을 유발한다는 연구결과도 채식의 위험성을 말해준다.

인간과 비슷한 생물에만 감정을 이입하는 채식주의자의 도덕적인 모순을 비판하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엄마와 얼굴이 있는 것은 먹지 않는다’는 원칙 또한 철저히 인간 중심적 사고가 아닌가? 인간의 얼굴과 비슷하게 생긴 것만 얼굴인가? 식물은 표정도 소리도 없지만 나름의 감정과 방어수단을 지닌 고도의 생명체이고 채식주의 역시 수많은 생명체 파괴 없이는 성립될 수 없다.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의 <육식의 종말>을 읽고 ‘육식의 잔인함’에 공감한 독자라 해도, <채식의 배신>을 읽은 후에는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리프킨은 ’인간의 음식에서 쇠고기를 없앰으로써 우리가 소는 물론 지구를 공유하는 다른 생명체들과 유대감을 다지며, 새로운 인류 의식을 향한 중요한 발걸음을 내디디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를 먹이기 위한 곡물 사료의 재배로 10억 명 이상 인구가 기아로 고통받고, 대규모 사육으로 열대우림이 소실되며 가축의 분뇨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등이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라는 것이 그 근거다.

그러나 리어 키스는 ‘채식 또한 파괴적이며, 채식으로 지구를 구할 수는 없다’고 맞선다. 채식주의자의 식탁에 올라온 식물성 식품은 채식주의자들이 경멸하는 공장형 축산과 마찬가지로 ‘대량 생산’의 결과물이다. 화학비료를 사용해 곡물을 대량 생산하는 것은 조화로운 생태계를 파괴하고, 막대한 농지를 황무지로 바꾼다. 저자는 채식을 통해 기아를 해결하는 것 또한 허상이라고 말한다. 가난한 국가가 굶주리는 근본 원인은 카길 등 곡물 메이저 기업들이 형성한 곡물가격 때문이지, 육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채식주의자들이 대형 할인점을 통해서 공급하는 각종 과일과 채소를 소비하면서 마치 ‘지구를 지키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건 아닐까?

저자가 <채식의 배신>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채식의 거부’가 아니다. ‘지속 가능한 농업’에 대한 고민이며, 잘못된 축산업 관행과 농산물 유통구조의 개선이다. 저자는 개인 경험에 그치지 않고 방대한 연구결과를 토대로 채식 뒤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을 말한다. 책의 내용이 논쟁적인 만큼 책을 덮은 뒤 독자, 특히 채식주의자들의 반론이 예상된다. 그러나 “저자의 채식방법이 잘못됐다”거나 “채식을 그만둔 데 대한 자기 합리화”라는 반론은 꽤 설득력이 있는 저자의 주장을 뒤집기에 부족하다.

채식에 대한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저자가 제시하는 ‘생태론적 세계관’은 곱씹어볼 만하다. 키스는 ‘생명은 죽음을 통해서만 가능하고, 우리 몸은 세상이 준 선물이며, 서로 먹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최고의 자원’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지구와 그 위의 모든 생명을 정직하게 사랑하고 생명의 순환고리 안에 자신을 맡기기로 한다. 어쩌면 채식을 통해 생명의 희생 없이 내 삶을 지속할 수 있다는 채식주의자의 확신은 오만이 아닐까? 다른 존재의 죽음에 기반을 두지 않은 생명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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