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흔든 책] 김현대 '협동조합, 참 좋다'

우리는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된 적이 얼마나 있었을까? ‘어떤 이들은 학점의 노예, 직장인들은 월급의 노예’라는 노래가사가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우리의 현실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곧 신처럼 숭배돼 왔다. 돈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세계 금융위기 이후 신은 죽었다. 1% 자본권력의 횡포 앞에 99%는 분노했다. 돈이 없으면 거리로 내몰리고, 돈을 많이 벌면 쓸 시간조차 없는, 기막힌 현실을 겪으며  ‘자본의 노예’들이 저항하기 시작했다.

요즘 협동조합이 뜨는 이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사람들은 자유방임주의가 결코 자신들을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금융기업의 ‘도덕적 해이’와 재벌기업의 ‘문어발식 경영’으로 빚어진 자본 축적의 위기는 서민들에게 대부분 전가됐다. 더 이상 고통을 감내할 수 없는 서민들이 이제 변혁을 요구하고 있다. 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지렛대의 하나로 떠오른 것이 바로 ‘협동조합’이다.

▲ <협동조합, 참 좋다> 책 표지.

올해는 ‘세계협동조합의 해’다. 지난 12월 1일부터 우리나라에서도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됐다. '협동조합기본법'에 따라 다섯 명만 모이면 누구나 금융보험업을 제외한 농업•육아•유통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 지금까지 협동조합 관련법은 8개 개별법으로 쪼개져 있는데다 일부 영역에 한해서만 300~1000명 이상 모였을 때 협동조합을 세울 수 있었는데 이번에 법이 정비되면서 문이 활짝 열렸다. 

법은 시행됐지만 아직도 협동조합에 대해 모르는 이가 많다. 법만 시행되고 교육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언론인 셋이 협동조합에 대한 취재보고서인 <협동조합, 참 좋다>를 지난 7월 펴냈다. 김현대 <한겨레> 기자, 하종란 <KBS> PD, 차형석 <시사IN> 기자가 저자다. 전 세계 협동조합 기업을 소개하고, 우리나라에 적용할 수 있는 방안도 내놓았다.

금융위기에도 끄떡없는 ‘협동조합 기업’

세계 금융위기가 유럽을 휩쓸 때,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은 대표적인 두 기업이 있다. 스위스의 ‘미그로’와 네덜란드의 ‘라보방크’다. ‘미그로’는 스위스 소매기업 1위 업체다. 스위스 내에 600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미그로’는 스위스의 대표적인 협동조합 기업이기도 하다. 스위스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인 코트리브 투트바일러가 1925년 취리히에서 사기업으로 설립했다가 1941년 개인소유였던 미그로 주식을 모두 협동조합 출자금으로 전환했다. 스위스 국민에게 자신의 기업을 통째로 기부한 셈이다. 지금은 스위스 인구 700만 가운데 200만이 미그로 조합원이다.

미그로는 더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해 세계시장을 넘보지 않는다. 대신 은행이나 주유소, 여행, 레저에 이르기까지 스위스 안에서 조합원의 편익을 더할 수 있는 수많은 분야로 거미줄처럼 사업을 확대해나간다. 그리고 사업마다 조합원과 그 지역사회에 철저히 뿌리내리는 전략으로 일관한다. ‘지역으로부터, 지역을 위해'라는 딱지를 붙인 농산물이 미그로의 정체성을 말해준다.

▲ 스위스의 1위 소매업체 '미그로'(위)와 네덜란드 최대 금융기업 '라보방크'는 협동조합이다. 유럽을 휩쓴 세계 금융위기에도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아 주목받았다.

네덜란드의 ‘라보방크’가 추구하는 목표는 ‘가능한 한 작게, 가능한 한 많은 이들이 이용하는 것’이다. ‘라보방크’는 141개 지역 은행을 둔 금융기업이다. 네덜란드 농업 금융의 84%, 저축의 41%, 주택담보대출의 30%, 중소기업 분야 금융의 38%를 차지한다. 전국 각지 라보방크는 100년 전부터 지역사회의 농민과 깊은 유대관계를 맺어왔다. 지역 농민을 속속들이 알았고, 신뢰를 기반으로 거래했다.

라보방크는 자신들을 141명의 어머니(지역 라보방크)와 1명의 딸(중앙 라보방크)이라고 비유한다. 중앙회가 장악한 우리나라 농협의 경영 구조와 사뭇 다르다. 각 지역의 라보방크들은 독립적으로 관리•운영되며 조합원들이 이사회를 구성한다. 이사들은 무급으로 활동한다. 중앙 라보방크는 지역의 라보방크들이 선출한 중앙대표회의와 경영자문회의의 통제를 받는다. 중앙과 지역의 건강한 견제와 책임, 신뢰를 기반으로 한 라보방크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은행 평가에서 3~6위 사이를 오르내린다.

FC바르셀로나는 17만 조합원이 주인

우리는 협동조합하면 떠올릴 수 있는 게 농협이나 생협, 한살림이 고작이지만 세계적으로 협동조합 기업은 상당히 많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나 알고 있는 명문 구단 ‘FC바르셀로나’도 협동조합이다. 홈페이지에는 구단주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17만 주민이 주인이고, 그들의 출자로 이뤄진 협동조합이다. 6년 임기 구단 회장도 17만 조합원이 직접 선거로 뽑는다.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FC바르셀로나, 에이피(AP), 선키스트, 제스프리의 공통점은 '협동조합'이다.

‘선키스트’는 118년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의 대표적 협동조합 기업이다.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의 6000여 감귤 생산농가가 힘을 합쳐,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세계적 경쟁 시장에서 해낸다.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키위 브랜드인 ‘제스프리’도 협동조합이다. ‘제스프리’는 1970년 이후 1990년대 후반까지 키위 농가들이 줄파산하는 홍역까지 치른 끝에 어렵게 세상에 이름을 낸 고난의 산물이다. 수출업체가 난립하면서 끝없는 가격 인하 경쟁이 벌어졌고, 결국 품질 악화와 농가 소득 하락의 만성적인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적자생존식 무한 경쟁의 막다른 골목까지 몰린 키위 농가들이 선택한 대안이 협동조합이었다. 제스프리 브랜드 하나로 수출을 통일하자는 합의를 마침내 이뤄냈다. 키위농가들이 100% 소유한 제스프리 브랜드가 아니면 누구도 뉴질랜드 키위를 수출할 수 없도록 아예 법으로 못박았다.

이 외에도 세계적인 통신사 에이피(AP)가 협동조합 기업이다. 프랑스 최대 은행인 크레디아그라콜과 독일의 데체트방크도 협동조합 은행이다. 유럽 최대 청과물 도매 회사인 네덜란드의 그리너리, 덴마크 양돈산업의 90%를 장악한 대니쉬 크라운, 이탈리아 최대 우유 생산업체인 그라나롤로도 공동출자로 세운 협동조합 기업이다. 캐나다의 아웃도어 장비 판매업체 엠이시(MEC)도 협동조합 기업이다.

‘1주 1표’가 아닌 ‘1인 1표’로 운영되는 협동조합 기업은 이처럼 세계적으로 상공한 사례가 많다. 일부 사람들은 협동조합을 사회주의와 연결 짓기도 한다. 하지만 협동조합은 정치와 관계없이 협동하는 조직일 뿐이다. 이 책에서도 협동조합이  ‘다른' 사업 운영 방식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아주 성공적이고, 사람이 중심이 되고, 위험이 적은 사업 방식이다.

▲ 이탈리아 볼로냐의 감자협동조합 코메타에서 일하는 여성 농민들. ⓒ <한겨레> 김현대 기자

원주는 우리나라 협동조합의 ‘원조’

이탈리아에 볼로냐가 있고, 스페인에 몬드라곤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강원도 원주가 있다. 몬드라곤은 1956년 스페인 바스크 지역 소도시 몬드라곤에서 시작한 협동조합 복합체다. 스페인에서 10위 안에 드는 대기업으로 성장해, 255개 사업체에 8만5천명을 고용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도 해고 없는 성장을 지속하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볼로냐도 몬드라곤도 시작은 미약했다. 규모와 역사에서 견줄 바는 못 되지만 원주는 맹아 단계를 벗어나려는 우리나라 협동조합의 희망이다.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소처럼 뚜벅뚜벅 ‘한국형 협동조합 생태계'의 새 역사를 열어가고 있다.

원주에는 원주의료생활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우리동네의원’이 있다. 원장 선생님은 환자들과 보통 이삼십분씩 대화를 나눈다. 시시콜콜한 집안 이야기도 들어주고 묻기도 한다. 원주의료생협은 2300여 조합원의 출자금으로 세워졌다. 조합원이 환자이자 출자자, 곧 주인이다. 원주의료생협 사무국이 있는 건물 지하에는 유기농산물을 파는 원주한살림이 있다. 대한민국 유기농을 상징하는 한살림생협 전국 1호점이다. 한살림은 농민 조합원이 생산한 안전한 농산물을 중간 단계 거치지 않고 판매한다. 소비자 조합원들은 믿고 구매한다. 조합원이 늘면서 원주의료생협과 한살림의 살림살이도 나아지고 있다.

원주에서는 2003년에는 8개 단체가 모여 원주협동조합운동협의회를 조직했다. 2009년에는 열아홉 개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이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로 진화했다. 네트워크에 소속된 회원이 3만5천명으로 원주 인구 32만의 11%이고, 연간 총매출액 184억원에 고용인원이 388명에 이른다. 원주에서 협동조합원이 되면 먹을거리를 사고, 아플 때 치료받고, 아이를 맡기고, 필요한 돈을 빌리는 일을 ‘네트워크' 안에서 모두 해결할 수 있다.

협동조합의 성공 요인 제1장은 ‘협동'이다. 조합원이 공동 행동을 하고, 그 조합원의 협동조합끼리 또 협동하는 것이다. 원주는 우리나라 협동정신을 이어가는 구심점이다. 원주에서 뿌린 협동조합의 씨앗이 전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 덴마크에서는 주민들이 발전협동조합을 만들어 풍력발전소를 짓고(사진 위), 청년들이 도시꿀벌협동조합을 만들어 도시 양봉을 한다. ⓒ <협동조합, 참 좋다> 내부 사진

사회갈등•청년실업 문제 풀 ‘열쇠’

덴마크 코펜하겐 동쪽 앞바다로 5km가량 달려나가면 거대한 풍력 발전기 스무 대가 줄지어 하늘을 가른다. 이 풍력발전기의 주인은 미델그룬덴 발전협동조합이다. 발전소 설립 자금을 출자한 8600명 코펜하겐 시민 조합원이 풍력발전소를 건설했다. 덴마크 에너지 사업의 협동조합 소유 방식은 유럽에서도 성공 모델로 평가된다. 협동조합 방식을 이용해 국가 공공정책의 계획 단계서부터 주민들 의사를 수렴하고 반영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덴마크 풍력발전기는 대개 바다 한가운데 있다. 관리와 비용상 어려움이 있는데도 풍력발전기를 바다 가운데 짓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발전기 소음 때문에 벌어지는 님비현상 때문이다. 이 지역에서 풍력발전기를 세우려 할 때도 처음에는 주민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이런 반발에 중재자로 나서 해결한 것이 지역 주민을 중심으로 이뤄진 협동조합이다. 조합원인 주민은 환경보호에 기여하면서 돈도 벌 수 있으니 좋고, 국가에서는 별다른 반발 없이 발전 시설을 유치할 수 있었다. 협동조합을 통해 정부와 국민이 상하관계가 되는 게 아니라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고,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이다.

이 책에서는 ‘도시 양봉’을 하는 청년도 소개한다.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에서 양봉사업을 주도적으로 추진한 스물아홉 살 올리베르 막스웰이다. 막스웰은 시내에 벌통을 놓는 것이 재미있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해서 이 일을 시작했다. 노숙자, 실업자, 사회부적응자, 이민자 등 노동시장에서 자리잡기 어려운 사람들을 양봉가로 길러내서 노동시장에 다시 복귀시킬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다. 2011년 꿀을 가공 판매하기 위해 도시꿀벌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열다섯 명 조합원으로 출발한 양봉 협동조합은 환경과 경제를 살리고,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을 추구한다. 요즘 덴마크에는 막스웰처럼 협동조합에 관심을 두고 일하는 젊은 청년이 꽤나 많다고 한다. 그들은 사람을 부자로 만들기보다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한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을 추구하는 게 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의 선구자인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 자마니 교수는 “경쟁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타인을 이겨야 자신이 승리하는 경쟁과 협력적 경쟁이 그것이다. 나도 이기고 너도 이기는 경쟁, 함께 일하면서 둘 다 이기는 경쟁이 협력적 경쟁”이라고 강조했다.

자본의 노예 아닌 주인으로 사는 길

▲ UN이 정한 '세계협동조합의 해' 로고와 슬로건 'Cooperative Enterprises Build a Better World(협동조합 기업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 ⓒ 유엔(UN)

협동조합에서 추구하는 게 바로 ‘공동선’이다. 주식회사 같은 자본주의 기업은 ‘전체선’ 을 추구한다. 덧셈이 적용되는 전체선에서는 한두 사람의 후생이 0이 되더라도 전체의 후생을 그 이상 끌어올릴 수 있다면 선한 일이 된다. 하지만 곱셈에서는 어느 한 사람이라도 0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전체 곱셈의 결과가 0이 되고 마는 탓이다.

우리에게는 자본의 ‘노예’가 아닌 ‘주인’으로 살 권리가 있다. 돈을 조금 적게 벌더라도 함께 주인이 돼 사는 행복한 삶을 꿈꾼다. 억압적인 정치와 자본에 대항하기 위해, 인간이 서로 사랑하고 서로가 서로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사랑과 유대가 권력과 맞서 싸우는 방법이다. 사랑하고 신뢰하려면 주인으로 서는 것이 출발이다. 협동조합은 바로 우리가 주인이 되는 결사체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는 불교 경구가 있지만, 어느 장소에서든지 주체적일 수 있다면 그 서는 곳은 모두 참된 곳이 되지 않을까? 우리가 주인이 돼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고 연대하면서 살아가는 공동체, 협동조합이 ‘참 좋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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