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흔든 책] 월러스틴 ‘세계체제 분석’

신자유주의는 왜 몰락할 수밖에 없는가

20세기 후반을 조망할 수 있는 두 가지 핵심어로 세계화와 테러리즘을 꼽는 사람도 있다. 이들의 견해에 따르면 개별 민족국가 경계를 넘어 하나 된 ‘지구촌’을 표방하는 세계화는 우리가 달성해야 할 최종 지향점이다. 반면 테러리즘은 자유와 평화라는 보편적 가치를 해치는 폭력적 수단이다. 둘은 자기 꼬리를 문다는 뱀 우로보로스(Ouroboros)처럼 서로 맞물리며 현대사회의 명암을 드러낸다.

▲ 핵심부-주변부 관계의 기본 메커니즘을 보여주는 순환모형.

이와 같은 생각을 대표하는 슬로건이 있다. 영국 수상 대처의 ‘TINA’다. 세상에 ‘다른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는 것이다. 세계화는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요구이며 이에 역주행하는 테러리즘은 가차없이 박멸해야 한다는 말이다.

소련 붕괴 후 ‘역사의 종언’이란 표현까지 나왔던 사실을 고려하면 이런 생각은 일견 합리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두 현상이 모두 세상이라는 퍼즐의 한 부분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제도와 사회적 현상에도 사람처럼 역사가 있다. 특정 현상의 기원과 진행과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이유다. 그렇지 않다면 그 현상이 보다 큰 밑그림 안에서 어떻게 자리매김하는지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나무 한 그루를 관찰하면서 마치 숲을 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질 위험이 있는 것이다.

▲ 세계체제 분석 표지. ⓒ 당대

이매뉴얼 월러스틴(83) 예일대 교수의 문제의식도 여기서 출발한다. 월러스틴은 <세계체제 분석>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총체적인 관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보기에 오늘날 우리는 근대가 곧 자본주의 자체라는 등식에 휘말렸다. 그 결과 자본주의 시스템의 모순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사회적 양극화와 국제적 착취 구조에 그대로 빨려 들어간다. 문제점이 수면 위로 드러났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은 상태다. ‘세계체제론’은 이처럼 전 세계적 착취 구조를 지닌 자본주의의 모순을 직시하고 격파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지적 산물이다. 특히 서구 열강이 어떻게 자신을 중심으로 ‘착취의 위계질서’를 만들어내는지 규정하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자본주의, 그 끝없는 탐욕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뿌리는 1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에 부분적으로 자리잡고 있던 자본주의는 시간이 지나면서 팽창하여 지구 전체를 뒤덮는다. ‘세계경제(world-economy)’가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세계는 다양한 정치적 구조, 언어, 문화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에는 이런 환경적 제약을 뛰어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게 하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임금노동’이나 ‘시장’이라는 개념이 그렇다. 하지만 가장 독보적인 특징은 따로 있다. 끝없는 자본의 축적이다. 여기서 ‘끝없는(endless)’이라는 표현은 중의적이다. 하나는 한도가 없다는 의미에서 ‘무한하다’는 뜻이다. 다른 하나는 축적 이외에는 목적(end) 없이(less), 곧 ‘맹목적’인 상태라는 말이다.

끝없이 자본을 축적하기 위해서는 유사독점체제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생산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제품을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조건이 붙는다. 하나는 제품을 구매할 충분한 수요가 존재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유사독점을 보증해 줄 주체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바로 국가다. 다른 경쟁자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국가가 개입을 해줘야 안정적인 유사독점체제 유지가 가능하다. 지적재산권이나 특허권을 제정해 독점을 보증하거나 연구 및 개발 비용을 지원하는 행위가 여기에 포함된다.

▲ 세계 경제의 위계질서를 나타내는 다이어그램. 푸른색이 핵심부, 녹색이 반(半)주변부, 노란색이 주변부이다.

역설적이게도 자본주의 시스템의 부작용이 드러나는 지점도 바로 이 부분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자본주의 내에서 국가의 개입은 더 많은 부를 획득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하지만 국가 간 힘은 동등하지 않다. 국력의 차이로 자연스레 헤게모니를 쥔 국가가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전체적인 이익이 헤게모니를 가진 국가의 기업, 시민, 정부에 집중된다. 결국 경제활동으로 얻은 이익의 상당량을 흡수하는 핵심부(선진국)와 여기에 종속된 주변부(후진국)로 세계가 양분된다. 세상은 ‘더 발전한’ 서구가 앞장서 주도해야 하며, ‘덜 발전한’ 나머지는 식민지이거나 반식민지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다보스 정신’ 대 ‘포르토 알레그레 정신’

역사적 체제는 저마다 수명을 지니고 있기 마련이라고 저자는 역설한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모순이 심각할 정도로 악화했을지라도 절망할 필요는 없다. 중세 봉건제도가 더 효율적인 부의 축적수단을 찾아 자본주의로 이행했듯, 난관에 봉착한 지금의 자본주의도 다른 시스템으로 전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분기점이 1968년 혁명이다. 68혁명은 두 가지 이유로 발발했다. 미국 패권주의에 대한 거부와 기존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실망이다. 이에 따라 자본주의 세계경제를 떠받치던 정치적•문화적 버팀목이 무너졌다는 게 저자의 관점이다. 억압받는 민중은 역사가 더 이상 자신의 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들은 더 이상 미래의 영광을 위해 현재의 불만을 감수하라는 목소리에 설득되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체제 안정에 공헌해 온 ‘억압받는 자들의 낙관주의’의 일각이 무너진 것이다.

▲ 이매뉴얼 월러스틴 예일대 교수.

68혁명 이후 보수주의자들은 전략을 수정한다. 기득권 유지에 위협을 느낀 것이다. 그래서 전통적인 경제학 모델인 발전주의를 폐기하고 새롭게 들고나온 개념이 세계화다. 세계화는 상품과 자본의 자유로운 흐름에 모든 국경을 개방할 것을 핵심으로 요구한다. 이론적으로는 ‘신자유주의,’ 정책적으로는 ‘워싱턴 컨센서스’라 칭했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은 이 이론을 보급하기 위한 장이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무역기구(WTO)는 ‘워싱턴 컨센서스’의 주요 집행관이다. 여기에 반발하여 생긴 모임이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WSF)이다. 이후 세계체제 국면은 다보스 정신과 포르토 알레그레 정신의 투쟁으로 넘어갔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제 우리에게는 선택만 남았다.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다. 다보스와 포르토 알레그레. <세계체제분석>은 체제의 이행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더 나은 선택을 하는 것을 돕기 위해 쓰인 책이다. 물론 역사는 누구의 편도 아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50%의 확률로 바람직한 세계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 이 시점에서 저자라면 어떤 선택을 할지 슬쩍 궁금해진다. 다행히 저자는 얼버무리는 대신 확실하게 대답했다. 대처가 아닌 포르토 알레그레의 슬로건을 빌려서.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Another World is Poss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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