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흔든 책] 김윤상 외 '토지정의, 대한민국을 살린다'

'팍스로마나'라 불리는 세계제국 로마의 몰락은 토지로 인한 사회갈등에서 시작됐다. 기원전 73년 광산 노예 출신인 검투사 스파르타쿠스 주도하에 대규모 노예반란이 일어났다. 그 배후에는 대토지 소유제도에 의해 강제로 토지를 뺏긴 농민들의 지지가 있었다. 

당시 로마의 힘은 자영농에 기반한 강력한 군사력에 있었다. 하지만 일부 특권층이 토지를 사유화하면서 자영농은 몰락했고 그 자리를 노예제 대농장 라티푼디움이 대신했다. 이는 로마의 최대 강점이던 군사력의 쇠락을 불러왔다. 넘치는 부로 인한 대토지 소유자들의 타락과 군대의 붕괴는 5세기경 천년제국 로마가 쓰러지는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됐다.

▲ 로마의 노예반란을 배경으로 한 미국드라마 <스파르타쿠스: 복수의 시작> ⓒ 공식페이스북

 기원전 6세기 전성기를 누리던 그리스도 귀족들이 토지 대부분을 소유하면서 사회갈등이 발생했다. 토지를 뺏긴 자영농들의 경제적 기반은 붕괴됐다. 이는 그리스의 조세기반을 약화시키고 군사력의 토대를 흔들었다. 이처럼 토지문제는 천하를 호령하던 제국들의 몰락에 영향을 끼칠 만큼 중요한 것이었음을 역사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작 현대의 경제정책과 경제학에서는 토지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고 있다.

토지는 모든 인간이 공평하게 활용해야 할 자원 

김윤상•조성찬•남기업 등 6명의 저자들은 <토지정의, 대한민국을 살린다>에서 토지를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 주류경제학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이들은 '토지정의시민연대', '토지+자유연구소' 등에서 활동하며 한국 사회 문제의 핵심이 토지에 있음을 꾸준히 역설해 온 전문가들이다. 저자들은 전세대란과 같은 주택문제, 증세•감세 논란, 개발사업으로 인한 갈등을 포함한 각종 사회문제가 일어난 것은 토지의 중요성과 독자성이 간과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들은 토지를 '사람이 생산하지 않은 것으로, 모든 인간이 공평하게 부여받은 유일무이의 자원이고 삶의 근거'라고 정의했다. 또 자본과 달리 토지는 재생산이 불가능해 한 사람의 토지소유는 타인의 손해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자본의 가격은 그것을 생산한 자의 노력과 비용에 비례하지만, 토지의 가치는 도로•공원•관공서 등을 설치하는 정부의 노력이나 자연경관이 얼마나 수려한가에 따라 결정된다. 저자들은 토지가 갖는 이 같은 특성 때문에 토지를 자본과 구별해 독자적으로 다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이들은 자본과 달리 외부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토지가치, 즉 토지 소유자의 노력과 관계없이 발생하는 '불로소득'을 사유화하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고 말한다. 19세기 영국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존 스튜어트 밀도 토지를 통해 이익을 얻는 것은 불로소득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주들은 일하지 않고도,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도, 혹은 절약하지 않고도 잠자는 가운데 더 부유해진다. 전 사회의 노력으로 발생하는 토지 가치의 증가분은 사회에 귀속돼야 하며 소유권을 갖고 있는 개인에게 귀속되어서는 안 된다."

자고 있는 동안 부자가 되는 토지불로소득의 주인들

우리나라는 토지 문제로 인한 사회갈등이 첨예한 나라다. 행정수도 이전문제, 용산참사, 4대강 사업 등도모두 그 이면에 토지불로소득 문제가 개입돼 있다. 저자들은 행정수도 이전의 경우 주변 지역의 부동산 가격 상승을 기대한 찬성 측과 수도권 땅값과 아파트값이 떨어질 것을 두려워한 반대 측의 대립으로 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행정도시 예정지인 연기군의 땅값은 2004년과 2005년에 걸쳐 45% 이상 상승했다고 한다.

▲ 전세대란과 같은 주택문제의 핵심은 토지불로소득 사유화에 있다. ⓒ 진희정

2009년 1월 용산 역세권 주변 개발사업과 관련해 보상을 요구하던 철거민 다섯 명과 경찰특공대원 한 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참사도 그 배후에는 토지 개발이익이 존재한다. 2001년 용산 개발사업 발표 당시 평당 700만 원 정도 하던 땅값이 2008년에 평균 8000만 원으로 상승했다.

토지를 소유한 조합원과 개발에 참여한 개발업체들은 천문학적 개발이익을 얻게 된 반면, 사업지구 내에 주거가 있던 임차인들과 세입상인들은 폭력적인 방식으로 배제됐다. 저자들은 "토지 불로소득이 있고 그 불로소득을 소수가 독식하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용산이 될 수 있고 참사의 현장으로 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4대강 사업도 마찬가지다. 4대강 보가 설치된 여주 이포 주변의 땅값은 사업 전에 비해 다섯 배 이상 폭등했다. 평창은 지난해 7월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됐다. 최근 한국방송 <시사기획 창>과 재벌닷컴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전•현직 고위공직자, 재벌기업 총수일가는 물론 언론사 사장과 연예•스포츠 스타까지 평창 주변 땅을 대거 사들였다고 하니 개발예정지의 상당수가 외지인의 손에 들어간다는 저자들의 주장에 수긍이 간다.

우리나라 상위 20%계층이 토지 90% 이상 소유

개발사업 등으로 발생하는 토지불로소득은 우리나라 부동산 문제의 본질이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집값 상승으로 부동산은 부를 증식하기에 가장 좋은 자산이 됐다. 상위 20% 계층이 우리나라 전체 토지의 90.3%를 소유했다는 통계청의 '토지 10분위별 소유세대 현황'은 부의 양극화 일면을 잘 보여준다.

▲ <토지정의, 대한민국을 살린다> 표지.

저자들에 따르면 이러한 양극화를 해소하고 부를 공정하게 분배하기 위해서는 토지불로소득을 공공이 환수해야 한다. 즉 토지보유에 대한 세금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19세기 경제학자 헨리 조지도 그의 저서 <진보와 빈곤>을 통해 사회가 진보하더라도 빈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와 경기불황이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이유는 모두 토지불로소득이 지주에게 귀속되기 때문으로 보았다. 그는 정부가 지대(land rent)를 모두 환수한 후 지대 수입을 최우선적인 재정수입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지정의, 대한민국을 살린다>는  정치권의 증세•감세 논쟁이 토지의 독자성을 간과해 토지를 일반물자와 똑같이 보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토지 위에서 생활한다는 사실, 토지는 일반 물자와 구별된다는 사실, 토지불로소득을 많이 환수할수록 경제는 더욱 확장된다는 사실을 상기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오늘날 진보와 보수 모두 이것을 놓치고 있다."

생산보다 토지에 투자하는 기업...세부담 대폭 늘려야 

기존의 감세전략은 토지 투기를 부채질하는 토지세까지 감세 목록에 포함시켜 시장 참가자가 토지 투기에 관심을 갖도록 만들었다. 금융기관의 자금도 생산적 투자가 아닌 토지 투기로 흘러가도록 부채질했다.
증세를 주장하는 쪽도 서구 복지국가 역시 토지세를 많이 거두지 않았다는 것을 근거로 삼아 토지세 강화에 소극적이고 소득세와 법인세 강화에 적극적이다. 반면 저자들은 토지세를 많이 거두는 대신 법인세와 소득세를 감면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하면 부동산을 많이 소유한 재벌, 이윤추구보다 토지불로소득 추구에 재미를 봤던 기업들의 부담은 커진다. 즉 기업은 토지불로소득이 아닌 생산적인 투자를 통해 고용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토지세로 인해 투기가 줄어들면 부동산시장은 안정된다. 즉 무주택자, 실업자 등 하위계층의 내 집 마련은 수월해지고, 신규 기업은 시장 진출기회가 늘어나게 된다. 또한 토지세로 토지불로소득을 환수하면 그로 인해 마련된 재정으로 복지분야 지출을 늘릴 수 있다. 

선거를 앞두고 최근 새누리당은 법인세와 소득세율을 현행대로 유지한다는 방침을,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법인세와 고소득층의 소득세 부담을 높이는 내용의 조세개편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어느 정당도 일반적 상품과 다른 토지의 특성에 주목하고 관련 세금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뚜렷하게 보이지 않고 있다. 지금이라도 <토지정의, 대한민국을 살린다>의 메시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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