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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보다 무서운 우리의 주거 현실
[영화] 집을 둘러싼 결핍과 욕망의 대결, ‘숨바꼭질’
2013년 08월 23일 (금) 21:33:58 박채린 기자 cpfmsl@naver.com

“언제부턴가 우리 동네에 이상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남이 살고 있는 집에 몰래 들어와서 몸을 숨긴 채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였다.“

영화 <숨바꼭질>은 재개발이 예정된 회색 빛 아파트촌을 배경으로 쓸쓸한 목소리의 내레이션이 흐르면서 시작된다. 오래 전에 연락을 끊은 형이 실종됐다는 전화를 받고 한 남자가 형이 살았다는 아파트를 찾는다. 그는 우연히 집 현관마다 적혀있는 이상한 표식과 함께 형의 집이 옆 집과, 옆집은 또 다른 옆집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 아파트를 다녀 온 뒤 자신이 사는 고급아파트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 '숨바꼭질' 포스터 ⓒ NEW

<숨바꼭질>은 개봉 10일만인 지난 23일에 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같은 날 개봉한 <감기>와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를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역대 스릴러 영화 중 최단기간에 300만 고지에 올랐다. <숨바꼭질>은 제작비만 100억 원이 든 <감기>를 가뿐하게 제친 25억 원짜리 저예산 영화라는 점에서 영화의 흥행 요인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쫓고 쫓기는 자가 원한 그것,  최단기간 300만 돌파 요인

<숨바꼭질>의 힘은 단순한 데서 출발한다. 우선 결핍과 욕망에서 비롯된 인간의 근원적 불안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화는 우리가 가장 안전하다고 여기는 ‘집’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은 곳이라는 사실과 함께 안정감이 상실된 집에서 괴물이 되어버린 사람을 치밀하고도 오싹하게 보여준다. 그 남자 성수(손현주 분)는 자신의 집을 노리는 자를 찾아 낡은 아파트를 파헤치고, 성수가 찾는 그 사람은 성수의 집으로 숨어든다. 두 사람은 치열하게 대립하지만, 결국 그들이 얻고 싶은 건 하나다. 성수는 예전처럼 자신의 집을 안전한 곳으로 되돌리는 것이고, 성수의 집에 숨어든 사람도 최소한의 안전망이 갖춰진 집을 갖고 싶어 한다.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집에 대한, 안정에 대한 욕구를 영화는 정확하게 건드렸다.

쫓는 자와 숨어든 자의 숨 막히는 숨바꼭질이 더 무섭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 공포가 우리와 먼 곳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재개발지역에 사는 아동이 빈집에서 성폭행을 당하고, 서울 도심 한가운데 있는, 불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임대주택에서는 4개월 동안 9명이 죽어나갔다. 하루아침에 뒤바뀔 정도로 허술한 나라의 정책은 집값 상승을 부추기고 소형주택 전세 가격도 2년 전보다 2천만 원이 오를 정도로 치솟았다.

   
▲ 박근혜 대통령의 주택 정책인 행복주택을 홍보하는 포스터 ⓒ 인터넷 화면 캡쳐
도심 외곽 그린벨트를 풀어 싼 아파트를 공급하겠다던 보금자리주택 정책은 애초 32만 가구 공급을 목표로 했지만 10만여 가구를 공급하는 데 그쳤다. 박근혜 정부의 행복주택 정책은 아파트 20만 호 건설을 추진하고 있지만 예산 부족으로 부지조차 선정하지 못했다. 영화의 주 배경인 동대문구 한 아파트는 1970년대에는 ‘연예인 아파트’로 불릴 정도로 유명했다고 한다. 꺼질 줄 모르는 재개발 열풍에 대한 의문도 지우기 어렵다.

우리 가까이에 있는 ‘불안’이라는 감정을 제대로 건드렸다는 점이 <숨바꼭질> 흥행의 일등공신이라면 우리 눈엔 보이지 않는 공신도 있다. 다른 곳에서 찾기 어려운 사회적 메시지를 영화가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주택정책은 물론 여러 사회 현안이 뉴스로 쏟아져 나오지만 제대로 보도하고 비판하는 언론은 많지 않다. 절실한 문제제기조차 주류사회에 먹혀들지 않는 나라에서 <숨바꼭질>은 기존 언론에 대한 불만을 풀어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박스오피스 1~4위 점령, 한국영화가 먹히는 이유

이례적으로 박스오피스 1~4위를 한국영화가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가벼이 넘길 수 없다. 차별에 분노한 꼬리칸 사람들 이야기를 그린 <설국열차>, 시민의 안전을 시청률과 맞바꾼 언론을 다룬 <더 테러 라이브>는 지금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과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렵다. 2위를 차지한 <감기>는 치명적 바이러스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과정에서 국민 안전을 내팽개친 국가의 모습을 고발하고 있으며, 폐쇄 문제로 시끄러웠던 진주의료원에서 촬영됐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 시계방향대로 '숨바꼭질', '감기', '더 테러 라이브', '설국열차' 포스터 ⓒ 인터넷 화면 캡쳐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경찰에 연락하지 않는 주인공의 모습이나 연약한 여자가 건장한 남자와 대등하게 싸우는 장면 등은 개연성이 부족해 보여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손현주, 전미선, 문정희 등 연기파 배우들의 열연과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관객들 눈을 스크린에 묶어 두기에 충분하다. 뿐만 아니라 대낮에도 음침함을 만들어내는 아파트촌의 배경과 음악, 쉽게 눈에 띄지 않지만 <숨바꼭질>에 어울리는 두 주인공의 아파트 구조도 영화 보는 맛을 더한다. 두려움과 잔인함을 동시에 표현한 문정희의 눈빛 연기와 “우리 집이야”라고 외치며 불타 죽는 그녀의 마지막 장면은 영화가 끝나고도 오래 남았다.

허술한 주택정책과 커져가는 빈부격차, 지켜지지 않는 정책과 보도해야 할 것을 보도하지 않는 언론……. 귀신도 안 나오는데 호러영화보다 무섭고,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영화는 1시간 47분으로 끝난다. 그러나 상영관의 불이 켜지고 영화관을 나와도 일상의 풍경은 여전히 어두침침하다. 불안한 마음으로 서로를 쫓고 쫓는 이곳 대한민국은 아직도 숨바꼭질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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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채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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