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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욕망, 고통과 절망의 '숨소리'
[씨네토크] 복지시설 장애여성의 현실 담은 독립영화 ‘숨’
2012년 07월 22일 (일) 23:48:07 엄지원 기자 umjidasom86@hanmail.net

, , . 떨어지는 물방울 사이로 설거지에 열중한 여주인공의 모습이 비춰진다. 머리카락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 얼굴 대신 카메라는 그녀의 바쁜 손놀림을 따라간다. 그릇을 헹구는 그녀의 손은 능숙하게 움직이지만 뒤틀린 손의 모양새가 시선을 끈다. 주인공 수희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카메라는 서둘러 일을 마치고 부엌을 나서는 이 작고 깡마른 여성을 바쁘게 뒤쫓는다. 기껏해야 한두 발치 뒤에서 찍었을까. 화면은 그녀의 발걸음에 맞춰 아래위로 흔들리고, 가쁜 그녀의 숨소리까지 생생히 담아냈다.

이윽고 수희는 지적장애인인 남자친구 민수의 손을 끌고 보일러실로 향한다. 문밖에 민수를 세워둔 채, 수희는 문틈으로 새어드는 햇빛을 조명삼아 정성껏 립스틱을 바른다. 흔들리는 손으로 조심조심 입술을 칠한 후 거울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데이트를 앞둔 여느 여인의 눈빛과 다르지 않다. 이 순간만큼은 가장 아름다워 보이고 싶은 마음.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긴 후 그녀는 마침내 민수를 보일러실 안으로 들인다. 둘은 사랑을 나눈다. 열렬한 관계가 끝난 후, 립스틱이 붉게 번진 수희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난다.

   
▲'보일러실 데이트'를 즐기는 수희와 민수. ⓒ <숨> 캡쳐화면

특별한 여자의 평범한이야기 

독립영화 <>은 장애인 복지시설에서 일어난 실화를 토대로 장애인 여성이 살아가는 척박한 현실과 그녀가 꿈꾸는 삶, 주변의 편견과 횡포를 그렸다. 담담한 시선으로, 그러나 섬세하게. 지난 2010년 제작된 <>은 함경록 감독의 첫 번째 장편영화로 로테르담, 바르셀로나, 후쿠오카 국제영화제 등 여러 영화제에 초청됐고 브뤼셀유럽영화제 황금시대상, 시네마디지털서울 버터플라이상을 수상하며 관심을 모았다. 지난 16일 끝난 ‘2012년 원주여성영화제에서는 폐막작으로 초청돼 상영회와 함께 감독과의 대화를 가졌다.

문득 여성장애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장애인이라고 하면 보통 시사고발 프로그램 같은 방식으로 어둡게 다뤄지거든요. 왜 그들은 항상 피해자이고, 약자로만 비춰질까 궁금했어요. 여성장애인, 그들의 일상을 들여다보자. 그들의 일상이 과연 우리와 어떻게 다르고, 또 같은가. 아무도 가보지 않은 곳에 카메라를 비춰보고자 하는 취지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일까. 영화 <>은 장애인들의 일상 깊숙이 파고들어 그 안에 자리하고 있는 보통사람으로서의 욕망을 끄집어낸다. 주인공 수희, 정확히는 그녀의 숨소리를 통해서다. 실제 뇌성마비 장애인인 박지원이 연기한 수희는 장애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대신 숨소리로 모든 것을 표현했다. 숨겨두었던 립스틱을 꺼내 바르거나, 십자가 목걸이를 걸 때, 그리고 민수와 사랑을 나눌 때의 숨소리는 밥 먹고 일 할 때의 숨소리와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 그녀는 숨소리를 통해 여자로서의 희망과 고통, 욕망을 연기했다.

   
▲민수와의 결혼식을 앞두고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는 수희. ⓒ <숨> 캡쳐화면

첫 촬영 때 헤드폰을 쓰고 소리를 듣는데, 처음에는 수희의 숨소리가 그냥 거칠게 느껴지더라고요. 근데 가만히 듣고 있으니까 이 장면에서의 숨소리와 저 장면에서의 숨소리가 미묘하게 달랐어요. 숨소리에서 감정이 느껴졌습니다. 숨소리만으로도 감정이 표현된다는 게 놀라웠죠. 한글 영화제목을 으로 정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장애인 인권, 그 보이지 않는 폭력

그러나 수희의 행복은 길지 않았다. 그녀가 민수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면서부터 주변 상황이 모두 변하기 시작했다. 수희를 지속적으로 성폭행해온 시설운영자인 목사는 자신의 비리를 무마하기 위해 민수와의 결혼을 허락하면서 그녀를 입막음 한다. 하지만 시설을 방문한 자원봉사자의 신고로 성폭력 문제가 드러나고 그녀는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민수와 함께 지내던 시설을 떠나 피해자 쉼터로 격리된다. 쉼터활동가는 수희를 친절하게 대하고 존중하지만, 그것은 독립적 인격체가 아닌 상처받은 성폭력 피해 장애인에 대한 보살핌일 뿐이다.

쉼터관리자는 엄마처럼 다정스레 수희의 몸을 씻겨주면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한다. ‘뱃속의 아이는 입양 보내야 한다. 뇌성마비와 지적장애인 부부는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편견이 남편, 아이와 함께 하는 가정을 꿈꾸던 수희의 행복을 산산조각 낸다. 보금자리를 꿈꾸던 그녀의 얼굴에서 해맑은 희망은 사라졌다.

   
▲ <숨> 포스터.   

눈으로 드러나는 폭력을 다루는 건 굉장히 쉬운 일입니다. 제가 더 폭력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성폭력의 피해 당사자인 수희의 삶을 놓고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하고 주변사람들이 계획을 짜고 휘두르는 것이었어요. 그것이 선이든 악이든, 당사자의 의견과 의지는 무시한 채 수희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 자체가 폭력적이라고 생각했죠.”

영화 <>'장애인 성폭력'이라는 사회적 부조리에 신경을 곤두세운 관객에게 목사내외의 만행과 그 반대편의 정의라는 이분법 대신, 수희의 거친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한다. 사건 속의 피해자로서 대상화하기보다, 그들이 원하는 삶과 행복이 무엇일까에 대해 귀를 기울이고 생각해 보라는 얘기다. 물론 그것은 상당한 인내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한마디 말을 내뱉기 위해 가쁜 숨을 몰아쉬어야 하는 수희를 기다려주어야 하고, 그들이 장애인이기 전에 욕망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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