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언론’이 저지르는 끔찍한 테러, 영화 <더 테러 라이브>

최근 개봉된 <더 테러 라이브(이하 더 테러)>는 서울 도심에서 벌어지는 충격적인 테러사건과 그 이면에 잠복한 구조적 테러를 다룬 ‘테러의 이중주’다. 마포대교를 폭발시키고 시민들을 인질로 잡는 테러는 눈앞에 드러나지만, 그 뒤에는 눈에 띄지 않는 또 다른 테러가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목 그대로 테러 상황을 ‘생중계’해 보여주는 이 영화는 기자, 앵커, 방송국, 뉴스 등이 주요 등장인물이자 소재다. <더 테러>에서 ‘언론’은 어떤 테러 사건을 시청자들에게 생중계하는 미디어지만, 그 자체가 또 다른, 훨씬 심각한 테러를 자행하는 주체가 된다.

 

▲ 언론이 자행하는 '테러'를 담은 영화 <더 테러 라이브> 포스터. ⓒ 씨네2000

<더 테러>는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윤영화의 데일리 토픽’을 진행하는 윤영화(하정우 분)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윤영화는 잘 나가는 마감뉴스 앵커로 5년 동안 승승장구했지만, 현재는 라디오로 밀려나 시사 프로그램을 맡은 지 1주일이 됐다. 윤영화는 세제개편안을 주제로  청취자와 의견을 나누다가 자신을 건설 현장 노동자라고 밝힌 사람으로부터 ‘테러 예고’를 듣게 된다. 마포대교에 폭탄을 설치했다는 청취자의 말을 장난으로 여긴 윤영화가 “그냥 폭파하세요”라며 조롱한 순간, 엄청난 굉음과 함께 다리는 정말로 폭발한다.

테러범 단독 중계 ‘특종’, 윤영화에게 일생일대의 기회

기자 출신 윤영화는 순간 이 테러 사건이 ‘특종’이 될 것이라는 것을 직감한다. 윤영화는 서둘러 경찰에 신고하려는 담당 PD를 저지하면서 “‘데일리 토픽’을 청취율 최고의 프로그램으로 만들 수 있다”며 단독 중계를 설득한다. ‘SNC 방송국’, 그것도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저절로 굴러들어온 테러범과의 통화를 생중계한다면 회사는 물론 자신에게도 엄청난 이득이 될 것이라는 계산을 한 것이다. 윤영화는 테러범 박노규에게 ‘독점 생중계’를 제안한다.

반듯하고 신뢰할만한 앵커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윤영화는 사실 사리사욕으로 똘똘 뭉친 인물이다. 정기적으로 뇌물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아내 이지수 기자(김소진 분)가 잡은 특종을 자신이 한 것처럼 꾸며 상을 받는 등 비도덕적인 일도 거리낌 없이 한다.

특종을 가로챈 일이 들통 나면서 라디오 부서로 좌천되고 아내에게 이혼까지 당한 그는 이번 ‘테러범과의 단독 연결’이 곧 엄청난 시청률 확보와 자신의 자리를 되찾을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라고 생각하게 된다. ‘특종’만이 TV뉴스 앵커로 복귀하고 아내와 재결합할 수 있는 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 '신뢰도 1위'의 국민 앵커 윤영화(하정우 분)는 사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방송을 멋대로 이용하는 인물이다. ⓒ 씨네2000

라디오 PD에게 ‘데일리 토픽’을 띄워주겠다고 한 약속을 팽개친 윤영화는 시청률에 눈이 먼 보도국장 차대은(이경영 분)과 짜고 라디오 부스에 뉴스 스튜디오를 꾸며 생중계를 시작한다. SNC 방송국에 독점 방송을 해 주는 대가로 21억원을 입금하라는 테러범의 요구도 순순히 승낙한다. 시청률이 오르고 광고만 잡을 수 있다면 이들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이들에게 시민들의 안전이나 공익은 뒷전이며, 전파는 사익을 챙기기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

“약자 편에 서겠다”는 거짓말과 ‘좋은 그림 만들겠다’는 탐욕

테러범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다. 3년 전 마포대교 확장공사 현장에서 특근수당 2만5000원을 더 벌려다가 추락해 죽은 인부 3명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라는 것이다. 당시 국제행사 준비를 위해 경찰과 구조대가 모두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인부들은 제대로 구조되지 못했다. 하지만 어느 언론도 이 사고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자, 범인은 이 억울한 죽음을 알리기 위해 치밀하게 테러를 계획하고 방송을 이용한 것이다.

그가 선택한 사람은 많은 시청자들의 신뢰를 받아 온 앵커 윤영화였다. 뉴스가 끝날 때마다 “약자의 편에 서겠다”고 다짐하던 그의 입을 통한다면, 자신의 요구가 파급력을 얻으리라고 믿은 것이다. 하지만 윤영화는 폭파 예고를 묵살하고 욕을 퍼붓는 등 기대와 다른 태도를 보인다.

‘국민앵커’ 윤영화는 시민들의 안전이 위협받는 순간인데도 경찰에 상황을 신고하지 않고 특종 욕심에 생중계를 결심한다. 더구나 테러범을 잘 구슬려 국민에게 사과하게 만들고 자수까지 유도하면 그가 바라는 “좋은 그림이 나올 것”이라며 시나리오까지 미리 짠다. 사실을 사실대로 보도해야할 언론이 사건에 개입해 상황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통제하고 조작까지 하려는, 언론의 탐욕과 오만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하지만 상황은 윤영하의 예상대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그가 귀에 꽂은 인이어에 테러범이 폭탄을 설치했다는 것을 안 뒤로 윤영화는 오히려 범인에게 휘둘리는 처지가 된다.

 

▲ 사리사욕으로 똘똘 뭉친 윤영화(하정우 분)와 차대은(이경영 분)은 '비도덕적인 언론인'의 모습을 상징한다. ⓒ 씨네2000

“방송이 우선이지 사람이 우선이냐”고 말하는 보도국장 차대은 역시 시청률에 집착하느라 공공의 이익을 저버리는 빗나간 언론인의 전형이다. 윤영화가 테러범 생중계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려는 것처럼 차대은 역시 이를 ‘본부장’으로 승진할 수 있는 발판으로 생각한다. 아무렇지 않게 마포대교 위 인질들을 포기해버리자고 말하고, 범인을 자극하는 멘트를 만들어 윤영화에게 읽도록 강요하는 장면 등에서 언론인의 양심과 저널리즘의 가치는 찾아보기 어렵다.

자신이 내린 지시를 따르지 않고 윤영화가 멋대로 방송을 이끌어가자, 결국 차대은은 윤영화의 비리가 담긴 자료를 다른 방송국에 넘긴다. 테러 사건에 SNC 방송국이 연루된 책임을 윤영화 개인에게 모두 뒤집어씌우겠다는 것이다. 이번 생중계만 대박나면 “위(본부장)로 올라가는 것뿐 아니라 건너편 국회로도 입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차대은은 한국 언론계에 널려 있는 이른바 폴리널리스트를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시청률 우선주의로 드러난 미디어의 삐뚤어진 ‘욕망’

<더 테러>에서 ‘SNC 방송국’은 대중매체의 포악한 욕망을 그대로 표출한다. 다리가 폭발한 위급한 상황에서 방송은 ‘경악, 충격, 테러, 붕괴, 침수’ 등과 같은 자극적은 단어를 쉬지 않고 쏟아낸다. 시청자의 이목을 한시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폭발로 다리가 기울면서 자동차가 물에 잠겨 사람이 죽어가는 장면까지 그대로 생중계한다. 겉으론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우지만, 실제는 높은 시청률을 위해 경쟁적으로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장면과 단어를 선택한다.

SNC 방송국뿐만 아니라 다른 방송국들도 시청률에 매달려 테러범에 술수에 놀아난다. 단독 중계를 하고 싶으면 돈을 달라는 범인의 요구는 언제든지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으며, 경쟁 방송국에게 물을 먹은(낙종한) 이후에는 윤영화를 깎아 내리는 방식으로라도 시청률을 확보하려고 몸부림친다.

<더 테러>는 한국 사회의 차별과 불평등, 이에 대항해 테러라는 극단적 수단을 동원한 개인의 저항, 그리고 이런 상황마저 시청률과 사익에 이용하는 언론 등 테러의 중층 구조를 들춰낸다. 영화는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부패한 정치인들과 실패한 사회 시스템을 비판하고, 나아가 공익을 저버리고 사익에만 몰두하는 언론이 얼마나 위험해 질 수 있는가를 경고한다. 시청률과 광고 확보에 목을 매는 언론과 사리사욕에 눈먼 언론인이 바로 이 사회의 진짜 위험한 테러집단이라는 것이다. 러닝타임 97분. 15세 관람가. 7월 3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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