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netflix '코미디 로얄'

공개 코미디의 재조명

KBS ‘개그콘서트’, SBS ‘웃찾사’, MBC ‘개그야’. 지상파를 대표했던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들이다. 공개 코미디란 스튜디오를 대학로 소 공연장처럼 구성하고 코미디언들이 방청객에게 콩트 형식의 코미디 공연을 선보이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지상파에는 각 방송사를 대표하는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들이 방영되어 왔다.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은 오랜 기간 대한민국 코미디를 대표하며 수많은 유행어를 탄생시켰고, 스타 예능인들을 발굴해 냈다. 그러나 2010년도에 들어서면서부터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은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2021년에는 지상파 마지막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가 종영됐고 지난해 9월에는 TVN의 ‘코미디빅리그’마저 폐지 수순을 밟았다. 더 이상 공개 코미디는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여론이 지배적이던 작년 겨울, 공교롭게도 2주간의 기간을 두고 두 개의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재단장을 마치고 2년 만에 돌아온 KBS의 ‘개그콘서트 2’와 글로벌 OTT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코미디 로얄’이다. 두 프로그램은 같은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이지만 형식에서 큰 차이점을 보인다. ‘개그콘서트 2’의 경우, 기존 개그콘서트‘의 콩트 형식을 유지하되, 코너의 개편을 통해 변화를 주었다면 ‘코미디 로얄’은 코미디언들이 코미디로 배틀로얄 (여러 명의 선수가 동시에 경기를 시작하여, 살아남은 1인이 승자가 되는 프로레슬링의 룰)을 벌이는 새로운 유형의 공개 코미디를 기획하였다. 같은 시기에 각자 다른 전략을 선택한 두 프로그램은 자연스럽게 비교 대상이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는 두 프로그램 중 코미디 로얄이 공개 코미디에 더욱 적합한 전략을 취했다고 생각한다.

netflix 예능 '코미디 로얄' 포스터. 출처 netflix 공식 홈페이지
netflix 예능 '코미디 로얄' 포스터. 출처 netflix 공식 홈페이지

왜 코미디 로얄에 주목했나

‘코미디 로얄’이 높은 점수를 가져간 이유는 공개 코미디 퇴보의 원인으로 지적되어 온 구조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이 퇴보한 이유는 명료하다. 재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재미가 없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 원인을 코미디언들의 기량 저하나 코미디 전반에 대한 관심 저하에서 찾아보는 것은 온당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KBS 공채 개그맨들이 유튜브에 개설한 ‘숏박스’는 274만 명의 구독자를 가지고 있고, 또 다른 유튜브 코미디 콘텐츠인 ‘피식대학’은 구독자 271만 명을 기록하며 ‘2023년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예능 작품상을 수상했다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결국 공개 코미디의 쇠퇴 원인은 다른 곳에서 찾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당사자인 코미디언들은 방송사의 과도한 규제를 이유로 꼽는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지상파 방송사들은 지나치게 선정적이거나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주제의 코미디에 갖가지 규제를 가해 왔다. 이런 표현 억제의 답답한 구조 속에서 공개 코미디가 점차 경쟁력을 잃어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비교적 규제에서 자유로운 OTT라는 플랫폼에서 코미디는 사랑받는 예능 콘텐츠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인가. 야심 차게 출발한 ‘코미디 로얄’을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

코미디 로얄 출연진 20인 포스터. 출처 netflix 공식 홈페이지
코미디 로얄 출연진 20인 포스터. 출처 netflix 공식 홈페이지

코미디 로얄, 무엇이 다른가

‘코미디 로얄’과 기존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들 간의 차이점은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먼저 열려있는 출연진 구성이다. 일반적으로 방송사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출연진은 해당 방송사의 공채 코미디언만으로 구성된다. 콩트 코너들도 이들이 내놓는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방식이다. 그러나 코미디 로얄은 출연진 구성에서 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방식을 선택했다. 서로 다른 방송사 출신의 코미디언들을 모아 팀의 전략을 수립하는 마스터들과 실제로 코미디 배틀을 벌이는 팀원들을 구성했다. 기존 방송사 출신들이 아닌 코미디 유튜버들에게까지 문호를 개방한 것도 신선했다. 두 번째 차이점은 코미디를 풀어내는 방식이다.

프로그램을 하나의 공연으로 상정하고 사전에 준비한 여러 개의 다양하지만, 형식에서는 균일한 콩트 코너들을 순차적으로 선보이는 것이 기존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문법이다. 그러나 ‘코미디 로얄’은 코미디 배틀이라는 방식을 도입해 라운드를 달리하며 콩트, 로스팅(상대방을 풍자하여 웃음을 자아내는 코미디 방식), 웃음 참기 등 다양한 코미디 형식을 선보여 기존 공개 코미디와의 차별을 시도했다. 마지막으로는 플랫폼이다. ‘박나래의 농염주의보’나 ‘SNL KOREA’ 등 OTT에서 제작된 코미디 프로그램은 이전에도 더러 있었지만, OTT와 공개 코미디의 조합은 처음 시도된 일이다. 글로벌 OTT 점유율 1위인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예능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제작비로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하는 넷플릭스이기에 기존 공개 코미디에서 볼 수 없는 제작 규모를 보여줄 것이라 예상되었다.

정영준 팀의 원숭이 개그를 보고 분노한 이경규. 출처 코미디 로얄 공식 예고편 갈무리
정영준 팀의 원숭이 개그를 보고 분노한 이경규. 출처 코미디 로얄 공식 예고편 갈무리

코미디 로얄, 자유가 불러온 부작용

많은 기대 속에 공개된 ‘코미디 로얄’. 그러나 시청자들의 반응은 대부분 실망스럽다는 평이었다. 특히 프로그램 도중에 나온 몇몇 장면들이 논란을 빚었다. 문제상황은 초반 1라운드에 발생했다. 정영준 팀은 ‘원숭이 무리의 짝짓기’라는 주제로 코너를 구성했다. 원숭이 분장을 한 코미디언들이 어떠한 맥락도 없이 성행위를 하는 모습만을 반복해서 보여준 이 코너는 웃음은커녕 불쾌감만 불러일으켰다. 시청자들의 비판적 반응은 현재까지 ‘코미디 로얄 원숭이’가 포털 연관검색어 1위인 것에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코미디언들의 멘토 격인 ‘마스터’ 역할의 이경규 역시 분노를 참지 못하고 나라 망신이라며 신랄한 비판을 내놓았다. 지상파가 아닌, OTT에서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을 제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은 자유로운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논란은 건전한 상식을 벗어난 억지는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할 수도 없으며, 시청자들에게 웃음은커녕 거부감만 줄 뿐이라는 것을 똑똑히 보여준 사례였다.

netflix 드라마 '더 글로리'의 '동은 엄마'로 분장한 코미디언 황제성. 출처 코미디 로얄 공식 예고편 갈무리
netflix 드라마 '더 글로리'의 '동은 엄마'로 분장한 코미디언 황제성. 출처 코미디 로얄 공식 예고편 갈무리

코미디 로얄, 로얄이라고 하기엔 빈약한 코미디

‘코미디 로얄’은 무엇보다도 코미디가 빈약했다. 1라운드인 K-코미디 배틀에서는 각 팀이 준비한 콩트로 대결을 펼쳤다. 제한 시간 2시간 동안 준비한 코너로 공연하고 상호 간에 점수를 매기는 방식이었다. 대부분의 팀들은 타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이나 유튜브 채널에서 해오던 캐릭터를 활용했다. 자신의 필살기를 꺼내 들었지만, 이는 오히려 역효과였다. 추가한 구성이 딱히 눈에 띄지 않아, 개그가 예측되고 기시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2라운드인 로스팅 배틀에서는 코미디언들이 로스팅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듯 보였다. 특히 탁재훈이 마스터로 있는 코미디언 팀은 로스팅 내내 팀원들 간의 합이 맞지 않았다. 로스팅 내용 또한 맥락 없는 이경규 성대모사의 남발과 신체를 이용한 저질 코미디로 구성되어 방청객과 동료들의 야유를 받았다. 로스팅과 같은 스탠드 업 코미디는 무엇보다 코미디언의 본질을 꿰뚫는 입담이 중요한데 엄지윤, 이재율 등 몇몇을 제외하고는 코미디언 다운 재치와 풍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마지막 3라운드는 ‘캐릭터 로얄’이었다. 출연자들이 기발한 분장을 통해 상대방을 웃게 만들어 탈락시키고, 끝까지 안 웃은 1인이 우승을 차지하는 서바이벌이다. 분장으로 웃음을 주는 코미디답게 화제의 드라마 ‘더 글로리’의 동은 엄마부터, MZ 세대들이 사랑하는 웹툰 ‘빵빵이의 일상’의 빵빵이, '지하철 빌런'으로 유명세를 치른 1호선 자르반까지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했다. 저마다 특이한 비주얼로 신 스틸러 역할을 한 캐릭터 들이었기에 출연자들의 코스프레는 SNS상에 공유되며 화제가 되었다. 제작진들이 준비한 워터 고스트(물귀신) 시스템과 마스터 찬스 또한 탈락자들을 적재적소에 잘 활용했다는 점과, 논란이 된 원숭이 개그를 유쾌하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호평받았다. 그러나 준비한 개그 소재가 떨어지자, 배틀은 점점 지루해졌다. 그 원인은 웃음 참기 설정이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웃음 참기를 소재로 한 MBC ‘코미디 하우스’의 ‘웃지마(웃지 않는 드라마)’와 ‘왓챠’의 ‘노키득존’과 비교해 보자. 웃지마의 경우 정해진 콩트를 웃음을 참으며 연기한다는 설정이 부여된다. 노키득존 또한 출연자들에게 각종 게임에 참여하게 하여 웃게끔 만드는 상황을 계속해서 부여했다. 이처럼 웃음 참기 콘텐츠에서는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상황 부여가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코미디 로얄’에서는 개그만으로 승부를 가린다는 설정 때문인지 이러한 장치들이 배제되었다. 가장 웃긴 코미디언을 가리기 위해 개그 이외의 웃을 요소를 배제한 것은 타당하다. 하지만 이것이 어떻게 실현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보다 객관적인 예측과 대비가 이루어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스터 이용진의 대사. 출처 코미디 로얄 공식 예고편 갈무리
마스터 이용진의 대사. 출처 코미디 로얄 공식 예고편 갈무리

코미디 로얄, 다음 주자는 누구인가

관찰 예능과 버라이어티 예능이 주류를 이루는 오늘날의 콘텐츠 시장에서 공개 코미디는 오랜 기간 고전을 면치 못했다.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2003년, ‘개그콘서트’의 최고 시청률은 49.8%인 것에 반해, 폐지 직전 2020년 6월 ‘개그콘서트’의 평균 시청률은 2%대에 그쳤다. 재단장을 마치고 돌아온 ‘개그콘서트 2’ 역시 현재 3%대 시청률에 머물러있다. 소폭의 상승을 보였지만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이 성공적으로 돌아왔다고 보기에는 역부족인 수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코미디 로얄’이 거둔 성과는 이례적이다. 프로그램에 대한 혹평과는 별개로, 국내 넷플릭스 TOP10 순위 전체 1위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일단 흥행 성적만을 놓고 보았을 때 코미디 로얄이 시도했던 공개 코미디와 새로운 장르의 융합은 성공적이었다. 이는 공개 코미디 또한 어떻게 만드냐에 따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코미디 로얄이 만들어낸 화제가 프로그램의 재미 때문만이 아니라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무엇보다 새로운 포맷에만 집중해 공개 코미디의 본질인 개그가 부실했던 점은 뼈아픈 실책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미디 팬들에게 코미디 로얄의 새로운 시도는 의미가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코미디 로얄이 거둔 반쪽의 성공은 공개 코미디의 가능성을 입증했고, 그 과정에서 겪은 시행착오는 추후 탄생할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에 교훈으로 작용할 테니 말이다.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코미디 로얄과 같은 거침없는 도전이 필요하다. 막장 드라마를 욕하면서도 보는 것처럼, 설령 부족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대중들은 기존의 방식을 답습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방식의 코미디를 원한다. 그리고 그 반복된 시행착오가 공개 코미디의 발전을 이루어 낼 것이다. 필자는 다음 등장하는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에도 긴 불평불만을 늘어놓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과감하게 새로운 시도를 하는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이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다. 현실에 대한 통쾌하고 재치 있는 풍자를 통해 속을 뻥 뚫리게 해주고, 배꼽을 잡게 만드는 유머로 지친 하루의 시름을 잠시라도 잊게 만들어 줄 그런 코미디 프로그램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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