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그 자녀 이야기] ②가족의 해체와 재구성

전편: ①14살, 한국에 처음 발 디뎠다

후편: ③ ‘낯선 언어, 문화로 고립되는 아이들

지난 8월 9일 오전 8시,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진은광(14) 군이 나왔다. 방학이지만 검정고시 보충 수업이 있어 학교에 가는 길이었다. 호텔에서 룸메이드(호텔에서 손님들의 객실을 정리·정돈하는 일)를 하는 부모님은 이날 은광 군보다 한 시간 일찍 집을 나섰다.

은광 군은 탈북민 어머니와 중국인 아버지를 둔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이다. 중국 헤이룽장성에서 태어나 살다가 7살에 한국에 들어왔다. 지난 2년 동안 은광 군이 다니고 있는 학교는 서울시 구로구 오류동에 있는 ‘남북사랑학교’다. ‘남북사랑학교’는 탈북 배경 청소년들이 다니는 비인가 대안학교다. 은광 군의 집에서 버스로 약 40분 정도 걸린다. ‘남북사랑학교’는 일반적인 학교의 모습과 다르다. 운동장도, 경비원도 없는 ‘공부방’에 가깝다. 같은 건물 2층에는 지역아동센터가 있다.

진은광 군은 탈북민 어머니, 중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이다. 은광 군이 다니는 ‘남북사랑학교’는 서울시 구로구 오류동에 있다. 이선재 기자
진은광 군은 탈북민 어머니, 중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이다. 은광 군이 다니는 ‘남북사랑학교’는 서울시 구로구 오류동에 있다. 이선재 기자

교실에 들어온 은광 군은 하루 앞으로 다가온 초졸 검정고시를 준비하려 책을 폈다. 비인가 대안학교는 졸업해도 학력을 인정받지 못해 검정고시를 치러야 한다. 은광 군은 얼마 전 치른 모의시험에서 국어 과목에서 95점을 맞았다고 자랑했다.

그래도 중국 문화는 그의 일부분이다. “살아온 만큼의 딱 절반을 중국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가끔 자신도 모르게 자기를 중국인이라고 소개하기도 하지만 이제 중국이 그립지는 않다. 은광 군은 가장 친한 친구에게만 자신을 “과거에는 중국인이었지만 지금은 한국인”이라고 설명한다.

진은광 군이 초등학교 졸업 학력 검정고시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문제집을 풀고 있다. 이선재 기자
진은광 군이 초등학교 졸업 학력 검정고시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문제집을 풀고 있다. 이선재 기자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의 뿌리, 탈북민 어머니

은광 군이 한국어를 잘하게 되고, 스스로를 한국인이라고 생각하게 된 건 탈북민 출신인 어머니 덕분이다. 은광 군은 중국보다 북한을 더 가깝게 느낀다. 은광 군은 어머니가 불러주는 북한 노래에 익숙하고 북한 음식 중에서 인조고기밥(콩을 갈아 얇은 전처럼 만들어 밥을 싼 음식)을 가장 좋아한다.

은광 군은 어머니가 어떻게 아버지와 만났는지도 정확히 안다. 그는 “아빠가 엄마를 샀죠”라고 말했다. 어른들은 이를 ‘매매혼’이라고 부른다. ‘매매혼’은 중국인 남성이 비용을 지불하고 북한 여성과 혼인 관계를 맺는 것을 뜻한다. 북한과 접경한 중국에서는 흔한 일이다.

‘매매혼’이 정확히 얼마나 발생하는지 집계한 통계는 없다. 팔려 간 북한 여성들은 중국에서 무국적자로 살기 때문이다. 일부 학자들은 ‘매매혼’을 통해 중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북한 여성이 수만 명 수준일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매매혼’은 북한 사회 구조의 변화에 따라 증가했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과 중국의 경계에서 일하는 북한 여성이 늘어났다. 일을 구하는 과정에서 브로커에게 속아 중국인 남성에게 팔려 가는 경우가 빈번하게 생겼다.

은광 군의 어머니도 브로커에 속았다. 그가 처음 중국행을 결심한 건 일자리 때문이었다. 북에서 남편과 이혼 후 홀로 아들을 키웠다. 은광의 큰 형이다. 큰아들이 14살이 되었을 때, 수입이 줄었다. 아들을 친척 집에 맡기고 딱 3년만 중국에서 돈을 모아 돌아오려 중국행을 결심했다.

‘매매혼’ 브로커는 북한 여성의 불안정한 지위를 이용한다. 중국에 몰래 들어간 북한 여성은 공안에 발각되면 강제 북송되어 북한 감옥에 가야 한다. 이를 이용해 브로커는 북한 여성을 협박한다. 은광 군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브로커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중국인 농부와 원치 않는 결혼 생활을 시작한 은광 군의 어머니는 내내 북한으로 돌아갈 생각만 했다. 북한에 두고 온 큰아들이 눈에 선했다. 은광 군을 임신했을 때도 ‘내 새끼’가 아닌 ‘중국 아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고 첫 나흘 동안 안지도 않고 젖도 주지 않았다.

그의 생각이 바뀐 건 은광 군을 처음으로 품에 안은 순간이었다. 은광 군의 어머니는 “‘어머나 나이(내) 새끼네’ 싶었다”라고 회상했다. 은광 군을 북에 두고 온 큰아들처럼 ‘엄마 없는 아이’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내놓은 새끼마다 다 왜 이런 슬픔을 줘야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중국에서 7년 동안 아들을 키웠다.

한국에서 다시 모인 가족

중국에서 은광 군과 함께 자란 또 다른 형이 있다. 작은형 은성(20) 씨다. 은성 씨의 친부모는 모두 중국인이다. 북에서 낳은 큰아들을 두고 온 어머니는 중국인 남편이 데려온 아들 은성 씨를 기르다, 은광 군을 낳았다. 나중에 한국에 들어올 때는 은광 군은 물론 은성 씨도 함께 데려왔다.

은광 군의 어머니가 중국에서 한국행을 결심한 건 무국적 신분 때문이었다. 그는 중국에서 7년 동안 신분 없이 살며 여러 일을 했다. 그러다 요양원에서 일하면서 사망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죽을 때도 신분이 필요했다. 이름 없이 죽고 싶지 않았다. 죽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되지도 않으면, 나중에 북에 있는 아들이 자신의 소식을 들을 수조차 없을 것 같다고 느꼈다.

그는 홀로 한국에 입국한 뒤 하나원(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을 거쳐 한국에 정착했다. 정착한 지 1년 뒤 은광 군을 먼저 데려왔고 그 후 은광 군의 아버지를 데려왔다. 이듬해 은성 씨를 한국으로 데려왔다.

탈북민 여성이 한국에 입국하는 이유는 무국적 신분에서 오는 불안정성, 자녀의 교육 문제 등이다. 가족 가운데 가장 먼저 한국에 정착하는 것은 탈북민 여성이다. 한국에서 자리 잡기까지 짧게는 1년, 길게는 10년이 걸리기도 한다. 그동안,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은 가족, 특히 어머니와의 분리를 경험하며 방황한다.

‘남북사랑학교’에 다니는 지민호(20) 씨의 어머니도 초등학교 5, 6학년 때 말없이 한국으로 떠났다. 그의 어머니는 어린 민호 씨에게 자신이 불법체류자이자 탈북민인 사실을 말하지 않고 떠났다. 민호 씨는 그의 어머니가 한국에 간 이유를 듣지 못했다. 그는 “어머니가 떠난 후 아무도 나를 돌보지 않았다”며, 이후 “중학교를 자퇴하는 등 방황의 시기를 겪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상봉한 어머니와도 갈등을 겪는다. 떨어진 시간만큼 서로 유대감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호 씨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주준남(19) 군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와는 3살 때 헤어져 16살 때 다시 만났다. 언어도 생활도 문화도 다른 상태로 만난 어머니는 “남 같았다”고 준남 군은 말했다. 한국어가 서툰 준남 군은 “어머니와 많이 싸웠다”라고도 말했다. 그는 ‘남북사랑학교’ 기숙사에 산다. 집에는 잘 가지 않는다.

낯선 곳에서 연고 없이 정착해야 하는 탈북민 부모는 자녀를 돌볼 여력이 없다. 이들은 자녀 양육의 상당 부분을 학교에 의지하고 있다.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에게 학교는 교육의 공간이자 집이며 사회다.

그렇다면,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까. 3편에서는 교육 현장의 상황과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이 한국 생활에 적응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짚어본다.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이 겪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들이 사회에 통합되지 못하는 원인을 밝히기 위해 당사자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북한이탈주민은 북에 남아 있는 가족이 있거나, 탈북 과정에서 트라우마를 겪었기 때문에 신분을 드러내는 것을 매우 꺼린다. 그들의 자녀의 신분을 노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약 한 달 동안의 설득 끝에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 4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중 11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설문조사는 지난 3월부터 7월까지 5개월 동안 탈북민 대안학교, 탈북민 교회(담임 목사가 탈북민이거나 남한 출신 목회자가 탈북민 사역을 목적으로 만든 교회), 민간 단체인 남북 교육개발원의 도움을 받아 진행됐다.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을 다룬 기존 보도는 개별적 사례만 다뤘다. 수십 명을 설문해 전반적인 실태를 파악한 보도는 처음이다.

인터뷰에 응한 11명은 모두 중국 출생으로 10대 6명, 20대 5명이다. 취재 과정에서 통일부와 교육부, 탈북청소년교육지원센터, 남북하나재단 등 정부와 단체의 공식 문서를 참고했다. 그 밖에도 학계의 연구 보고서와 논문을 참고했다. 2011년부터 탈북민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본 교사, 탈북민 인권 변호사, 연구자, 북한연구소 소장 등 전문가들도 인터뷰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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