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그 자녀 이야기] ①제3국에서 태어난 탈북민의 아이들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이 겪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들이 사회에 통합되지 못하는 원인을 밝히기 위해 당사자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북한이탈주민은 북에 남아 있는 가족이 있거나, 탈북 과정에서 트라우마를 겪었기 때문에 신분을 드러내는 것을 매우 꺼린다. 그들의 자녀의 신분을 노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약 한 달 동안의 설득 끝에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 4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중 11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설문조사는 지난 3월부터 7월까지 5개월 동안 탈북민 대안학교, 탈북민 교회(담임 목사가 탈북민이거나 남한 출신 목회자가 탈북민 사역을 목적으로 만든 교회), 민간 단체인 남북 교육개발원의 도움을 받아 진행됐다.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을 다룬 기존 보도는 개별적 사례만 다뤘다. 수십 명을 설문해 전반적인 실태를 파악한 보도는 처음이다.

인터뷰에 응한 11명은 모두 중국 출생으로 10대 6명, 20대 5명이다. 취재 과정에서 통일부와 교육부, 탈북청소년교육지원센터, 남북하나재단 등 정부와 단체의 공식 문서를 참고했다. 그 밖에도 학계의 연구 보고서와 논문을 참고했다. 2011년부터 탈북민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본 교사, 탈북민 인권 변호사, 연구자, 북한연구소 소장 등 전문가들도 인터뷰했다. (편집자 주)

<기사 차례>

① '14살, 한국에 처음 발 디뎠다

② 원치 않는 이별을 경험한 가족, 한국에서 모이다

③ ‘낯선 언어, 문화로 고립되는 아이들


북한이탈주민의 근본적인 정체성이 변화하고 있다. 2015년부터 탈북민을 부모로 둔 ‘제3국 출생 탈북 학생’의 수는 북한 출생 탈북 학생의 수를 뛰어넘었다. 이들은 주로 청소년 시기에 혼자 혹은 부모와 함께 한국으로 넘어온다. 그러나 ‘제3국 출생 탈북민 자녀’의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다.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은 북한에 주소, 직계가족, 배우자, 직장 등을 두고 있는 사람(북한이탈주민)에게만 적용된다. 결국 제3국에서 태어난 탈북민 ‘자녀’에 대한 실태 파악이 어려워 제도와 법률의 공백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4월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2022년 탈북학생 통계 현황’에 따르면 제3국에서 태어난 탈북 배경 학생은 1426명이다. 초중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전체 탈북 학생 2061명 중 69.2%를 차지한다.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은 부모 중 한 명이 북한 출신이면서 북한과 한국이 아닌 곳에서 태어난 청소년(청소년기본법상 9세에서 24세 이하)을 뜻한다. 2015년에 이미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은 같은 해 전체 탈북 청소년 2475명의 절반을 넘었다.

한국의 학교에 다니는 북한 출생 탈북 청소년 인구는 지난 10여 년 동안 절반 정도로 줄었다. 반면 학교에 다니는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 인구는 2015년 이후 오히려 증가했다. 그래픽 이선재
한국의 학교에 다니는 북한 출생 탈북 청소년 인구는 지난 10여 년 동안 절반 정도로 줄었다. 반면 학교에 다니는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 인구는 2015년 이후 오히려 증가했다. 그래픽 이선재

한국교육개발원의 이런 통계를 제외하면,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의 실상을 알려주는 자료는 거의 없다. 이들을 조사할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이하 ‘북한이탈주민법’)은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을 탈북민에 포함하지 않는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조사하는 통계에는 학생이 교사와 면담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탈북 배경이 드러나는 경우만 들어가 있다. 출신을 밝히지 않은 청소년, 학교 밖 청소년까지 합치면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취재팀은 지난 3월부터 7월까지 대안학교 학생 29명, 탈북민 교회 소속 청소년 10명, 일반 학교 학생 8명 등 모두 47명의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을 대상으로 직접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한국어 응답은 16건, 중국어 응답은 31건이었다. 설문에는 여성 28명, 남성 19명이 응답했다.

태어난 땅을 떠난 나이, 14살

조사 결과,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이 한국에 입국한 나이는 평균 14살이었다. 중국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건너오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입국 시점을 기준으로 가장 어린 나이는 6살, 가장 많은 나이는 23살이었다. 설문에 응한 이들의 현재 평균 나이는 18.5살이었다.

이들이 한국에 입국한 이후 지금까지 국내 체류 기간은 평균 4.5년이었다. 국적은 ‘이중 국적’(한국·중국)이 19명으로 가장 많았고, 그다음 ‘한국 국적’ 15명, ‘중국 국적’ 7명 순이었다. 자신의 국적을 ‘잘 모른다’고 응답한 사람은 6명이었다.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 4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응한 이들의 성별, 나이, 국적. 그래픽 문준영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 4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응한 이들의 성별, 나이, 국적. 그래픽 문준영

전체 47명 중 친아버지의 출신국을 ‘중국’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40명이었다. 2명은 ‘북한’ 출신, 1명은 ‘한국’ 출신이었고, 나머지 4명은 응답하지 않았다. 이에 비해, 친어머니의 출신국을 ‘북한’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38명이었다. 4명은 ‘중국’ 출신, 1명은 ‘한국’ 출신, 1명은 ‘러시아’ 출신이었고, 무응답은 3명이었다.

이들 가운데 현재 아버지 또는 어머니 가운데 한 사람과 지내는 한부모 가정인 경우는 47명 가운데 21명이었다. 한부모 가정인 경우, ‘친어머니와만 산다’고 답한 이는 18명, ‘친아버지와만 산다’고 답한 이는 2명, ‘새어머니와만 산다’고 답한 이는 1명이었다.

취재팀이 설문조사한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 가운데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국적이 다른 경우가 많았다. 특히 친어머니는 북한 출신, 친아버지는 중국 출신인 경우가 가장 많았다. 그래픽 이선재
취재팀이 설문조사한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 가운데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국적이 다른 경우가 많았다. 특히 친어머니는 북한 출신, 친아버지는 중국 출신인 경우가 가장 많았다. 그래픽 이선재

자신을 중국인으로 생각하는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은 대체로 자신을 중국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 한국에서 직업을 가지고 계속 살게 되더라도 나는 중국인이라고 생각한다’라는 문항에 전체 47명 중 62%인 29명이 ‘매우 그렇다’ 또는 ‘그렇다’라고 응답했다.

취재팀이 설문 조사한 47명의 응답자 중 62%가 ‘자신을 중국인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래픽 이선재
취재팀이 설문 조사한 47명의 응답자 중 62%가 ‘자신을 중국인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래픽 이선재

자신을 중국인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은 ‘한국어를 잘 못 한다’고 응답할수록 높았다. ‘한국어가 능숙하지 않다’고 답한 20명 중 80%는 자신을 중국인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한국어가 능숙하다’고 답한 27명은 ‘자신을 중국인이라고 생각한다’라는 문항에 52%가 ‘아니다’ 또는 ‘전혀 아니다’라고 답했다.

실제로 이들 대부분은 중국에서 태어났다. 전체 응답자 47명 중 약 80%인 38명이 헤이룽장성, 지린성, 랴오닝성을 비롯한 중국에서 태어났다고 응답했다. 나머지 9명은 본인의 출생 지역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거나 중국이 아닌 다른 제3국에서 태어났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자신의 미래와 한국을 연결하지 않았다. ‘출신국으로 돌아갈 의향’을 물었을 때, 전체 응답자의 49%가 ‘매우 그렇다’ 또는 ‘그렇다’라고 응답했다. ‘잘 모르겠다’라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 23%였다.

출신국으로 돌아갈 의향’이 있냐는 질문에 취재팀이 설문조사한 47명의 응답자 중 49%가 ‘매우 그렇다’ 또는 ‘그렇다’라고 응답했다. 그래픽 이선재
출신국으로 돌아갈 의향’이 있냐는 질문에 취재팀이 설문조사한 47명의 응답자 중 49%가 ‘매우 그렇다’ 또는 ‘그렇다’라고 응답했다. 그래픽 이선재

어머니의 출신국인 북한과의 심리적 거리도 멀었다. ‘북한 출신 학생과 뿌리가 같다고 느끼는지’ 묻는 문항에서 59%가 ‘아니다’ 또는 ‘전혀 아니다’라고 답했다. 특히 스스로 중국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북한과의 심리적 거리가 멀었다. ‘중국인 정체성을 가졌다’는 29명 중 66%가 ‘북한 학생과 뿌리가 같지 않다’고 응답했다. 이들에겐 한국은 물론 북한도 낯선 나라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외로움을 표현했다. 응답자 대부분은 한국에서 또래 친구를 사귀고 싶어 했다. 전체 47명 중 91%가 ‘나는 되도록 한국인 친구를 많이 사귀고 싶다’라는 문항에 ‘매우 그렇다’ 또는 ‘그렇다’라고 응답했다. ‘한국 사람이 많은 일반 학교에서 공부해 보고 싶다’라는 문항에는 60% 학생이 긍정적으로 응답했다. 부정적으로 응답한 학생은 32%로, 28%포인트 차이가 난다.

뒤늦게 들어온 한국, 적응하기 어려운 학교생활

14살에 입국한 이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어려움을 겪는다. 설문 응답자의 절반 가까운 49%가 전학 경험을 갖고 있었다. 참고로, 2017~2022년 교육부 자료를 보면, 국내 중고등학생의 평균 전학률은 4.7%다.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들은 또래보다 10배 더 많은 비율로 학교를 옮겨 다니고 있는 셈이다. 이들이 꼽은 전학 이유 가운데는 ‘수업을 따라가기 어렵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실제로 설문 응답자 중 44%에 해당하는 응답자가 ‘학교에서 한국어가 능숙한지’를 묻는 문항에 ‘그렇지 않다’ 또는 ‘매우 그렇지 않다’라고 답했다. 뒤이어 한국어 사용 능력 중 ‘대화’, ‘책 읽기’, ‘글쓰기’ 중 어떤 것이 어려운지 물었다. ‘세 항목 모두 어렵다’고 응답한 비율이 30%로 가장 높았다.

입국할 때 나이가 많을수록 한국어를 어려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4살이 넘어 한국에 들어온 응답자의 58% 이상이 ‘한국어가 능숙하지 않다’고 답했다. 반면 14세 미만 응답자의 86%는 ‘한국어가 능숙하다’고 답했다.

가장 의지하는 사람은 어머니와 선생님

‘가장 큰 도움을 주는 사람’을 복수 응답으로 물었을 때, ‘어머니’가 30%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그다음 ‘선생님’(29%), ‘친구’(18%), ‘아버지’(13%)의 순이었다.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은 어머니가 한국에 입국한 뒤 어머니의 초청으로 한국에 들어오거나, 어머니와 함께 한국에 입국한다. 그들은 한국 생활 중 어머니에게 가장 많이 의지한다. 그래픽 문준영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은 어머니가 한국에 입국한 뒤 어머니의 초청으로 한국에 들어오거나, 어머니와 함께 한국에 입국한다. 그들은 한국 생활 중 어머니에게 가장 많이 의지한다. 그래픽 문준영

이는 입국 동기와 관련이 있다. 취재팀이 심층 인터뷰한 11명 중 10명은 탈북민 어머니와 함께 한국에 왔거나, 한국에 먼저 온 탈북민 어머니가 초청해 입국한 경우였다. 어머니를 중심으로 한국 입국과 정착이 시작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입국 이후 어머니의 돌봄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는 제각각이었다. 취재팀이 인터뷰한 진은성(20), 진은광(14) 형제는 먼저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 어머니를 따라 한국에 입국했다. 입국할 때 중국어밖에 할 줄 몰랐던 두 형제는 어머니의 노력으로 이제 완벽하게 한국어를 구사한다. 반면 주준남(19) 군, 지민호(20) 씨, 신하윤(20) 씨는 여전히 중국어로만 소통한다. 가족의 돌봄을 충분히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이들은 한국어를 빠르게 습득하기 어려웠다.

이번 취재를 통해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의 일반적 유형을 추론해 볼 수 있다. 이들 대부분은 중국에서 태어나 어머니를 따라 평균 14세에 한국에 입국한다. 입국 후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는 한국·중국의 이중 국적을 유지한다. 이들은 스스로 중국인이라고 생각하며 출신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동시에 한국 또래 집단에 소속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한국어를 잘 못하는 이들은 또래 집단에 속하기 어렵거나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또래 학생들보다 더 자주 학교를 옮긴다. 이들이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길은 멀고 험하다.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의 한국 사회 정착을 도우려면, 이들이 어떻게 한국에 들어왔고 어디에 있는지 더 자세히 알아야 한다. 2편에서는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이 겪는 가족의 해체와 재구성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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