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그 자녀 이야기] ③한국 사회에서 고립되는 아이들

전편: ①14살, 한국에 처음 발 디뎠다

전편: ②원치 않는 이별을 경험한 가족, 한국에서 모이다

“‘순수’ 한국인이요?”

한국인 친구가 있냐는 취재팀의 질문에 지민호(20) 씨는 중국어로 되물었다. “없어요. 여기서는 불가능하죠. 여기에 선생님을 제외하고 한국인이 아무도 없잖아요. 건너 건너 아는 한국인은 딱 한 명 있어요. 친구의 친구. 그 애는 일반 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민호 씨는 막대사탕을 문 채 말했다. 작년 여름 한국에 들어온 민호 씨는 현재 ‘남북사랑학교’ 고등부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남북사랑학교’는 탈북 배경 청소년들이 다니는 서울시 구로구의 한 대안학교다.

지난 4월 23일 서울시 구로구 오류동에 있는 탈북 배경 청소년 대안학교 ‘남북사랑학교’ 고등부의 지민호 씨가 교실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박성동 기자
지난 4월 23일 서울시 구로구 오류동에 있는 탈북 배경 청소년 대안학교 ‘남북사랑학교’ 고등부의 지민호 씨가 교실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박성동 기자

남북사랑학교에 다니는 학생 45명 가운데 37명이 중국에서 태어났다. 교실 한구석에 놓인 작은 책장엔 검정고시 참고서와 중국어로 된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책장 맨 위 칸에는 누군가 먹다 남은 ‘산사’ 열매 간식이 놓여 있었다. 산사는 중국 동북부의 헤이룽장성, 지린성, 랴오닝성에서 주로 자라는 과일이다.

일반 학교 적응 가로막는 언어 장벽

탈북 청소년은 출생지에 따라 북한 출생, 한국 출생, 제3국 출생 청소년으로 나뉜다. 탈북 청소년 가운데 한국어 수준이 가장 낮은 집단은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이다.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 무지개청소년센터에서 2021년에 시행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의 한국어 수준 평가 평균 점수(3.35)는 북한 출생 탈북 청소년의 점수(4.01)보다 낮다. 성장기를 해외에서 보낸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의 대부분은 한국에 들어와서야 한국어를 배운다. 부족한 한국어 실력을 갖춘 학생들에게 한국 학교에서 받는 모든 수업은 버겁다. 이들이 또래 한국인들이 다니는 일반 학교에서 공부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남북사랑학교 초중등부에 다니는 이주은(17) 양도 언어 문제로 일반 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주은 양은 13살에 어머니와 함께 입국했다. 입국 당시 한국어를 할 줄 몰랐다. 갓 입국한 주은 양은 일반 학교에 입학했지만, 같은 반 학생들이 주은 양을 괴롭혔다. “욕 있잖아요, 무슨 뜻인지 못 알아들었어요. 지금 생각해도 뭐라고 했는지 모르겠어요.” 한국어를 할 줄 몰라 갑갑한 상황에 친구의 괴롭힘까지 더해지자, 주은 양은 공부에 흥미를 잃어버렸다.

주은 양은 세 곳의 일반 학교를 전전하다가, 결국 대안학교로 향했다. 한 학년을 유급한 그는 남북사랑학교에서 중졸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이 학교에선 검정고시에 초점을 두고 가르친다. 비인가 대안학교는 인가 대안학교와 달리 졸업해도 학력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취재팀이 올해 3월부터 7월까지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학 경험이 있다고 답한 인원은 23명으로 전체 응답자의 절반에 달했다.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이 가장 많이 꼽은 전학 이유는 ‘수업이 어려워서’, ‘공부가 어려워서’ 등이었다.

한국 친구 없는 한국 생활

대안학교는 탈북 배경을 가진 청소년들이 기댈 언덕이다. 다만, 이 학교에서만 시간을 보내면, 또래 한국인 친구를 만날 기회는 더 줄어든다.

심층 인터뷰한 11명 중 일반 학교에 다니고 있거나 다닌 적 있는 학생은 5명이었다. 이들 5명 가운데 3명은 현재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래픽 문준영
심층 인터뷰한 11명 중 일반 학교에 다니고 있거나 다닌 적 있는 학생은 5명이었다. 이들 5명 가운데 3명은 현재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래픽 문준영
비인가 대안학교를 다니는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 4명은 “한국 친구가 없다”고 답했다. 그래픽 문준영
비인가 대안학교를 다니는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 4명은 “한국 친구가 없다”고 답했다. 그래픽 문준영

심층 인터뷰에 응한 비인가 대안학교 학생 4명은 "한국인 친구가 있냐"는 질문에 없다고 답했다. 이들은 3년 넘게 한국에서 살았다. 그러나 그동안 마음을 털어놓거나 도움을 요청할 만한 한국인 친구를 단 한 명도 사귀지 못했다. 주변엔 본인과 비슷한 배경을 가진 중국 출생 친구뿐이었다. 그들과 중국어로 대화한다.

지민호 씨는 지난해 한국에 들어왔다. 입국하자마자 비인가 대안학교에 입학했다. 학교 기숙사에 사는 민호 씨는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낸다. 유일하게 한국인과 교류할 수 있는 시간은 학교 근처 공원에서 농구할 때다. 또래 학생이나 동네 어르신들과 농구 게임을 하고 나선 각자 뿔뿔이 흩어진다. 그 이상의 관계는 맺기 어려웠다.

익명을 요청한 A 씨는 중·고등 검정고시를 모두 비인가 대안학교인 ‘우리들학교’에서 준비했다. “외부에 나가서 또래 애들을 만나는 게 아직 많이 두려워요. 좀 나이가 있으신 분들이면 편하게 대할 수 있는데… 왜 그런지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비인가 대안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웠지만, 한국 친구들과 어울리는 법을 배우진 못했다. 한국에 온 지 무려 7년이 넘었지만, 또래 친구와 마음의 거리는 여전히 멀다. 대안학교의 어느 교사는 A 씨에게 일반 학교에 전학 가보라고 권유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 친구와 억지로 어울릴 필요가 없는 우리들학교에 남아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가족’과 ‘미래’를 놓고 깊어지는 고민

취재팀이 인터뷰한 학생들은 자신을 어느 나라 사람으로 생각하는지에 따라 태어난 곳인 중국과 사는 곳인 한국에 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이들은 대부분 출신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태어나 유년기를 보낸 중국을 더 편안한 곳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심층 인터뷰 대상자 11명 전원에게 출신국으로 돌아갈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5명은 한국에 남고 싶다고 답했다. 6명은 아직 고민 중이거나 중국에 돌아가고 싶다고 답했다. 그래픽 문준영
심층 인터뷰 대상자 11명 전원에게 출신국으로 돌아갈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5명은 한국에 남고 싶다고 답했다. 6명은 아직 고민 중이거나 중국에 돌아가고 싶다고 답했다. 그래픽 문준영

출신국으로 돌아갈 의향이 있냐는 취재팀의 질문에 일반 학교에 다니는 방정(18) 양은 큰 고민 없이 “그렇다”라고 답했다. 방정 양은 중국으로 돌아가 가족으로부터 독립된 삶을 살기를 바랐다. 중국에서 태어난 방정 양이 1살일 때 어머니는 한국으로 떠났다. 14살이 되던 해 어머니의 부름을 따라 한국에 도착했지만, 집에는 새아버지와 처음 본 동생이 있었다. “생각보다 생활이… 불편해요. 한국어 몰라서 엄마가 또… 말 잘 안 돼요. 재미없어요.” 방정 양은 말했다.

방정 양에겐 한국의 모든 게 불편했다. 말은 통하지 않고, 새로운 집은 어색했다. 방정 양은 주말에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드라마를 보거나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받는다. 연락하는 친구는 중국에서 알던 친구들이다.

중국에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 중 한국 국적을 이미 취득한 경우도 있다. 김정효(24) 씨는 어머니의 뜻으로 한국 국적을 갖게 된 후 경북 영천에서 군 복무를 마쳤다. 군 생활 내내 선임의 괴롭힘을 겪었다. 선임은 정효 씨의 발음을 트집 잡아 소리를 지르고 화냈다. 전역 후 정효 씨는 대학교로 복학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중국 가고 싶은 마음이 100%예요.” 정효 씨는 말했다. “친가 쪽 친척도 계시고, 17년을 중국에서 살았으니 중국 환경이 더 편해요.”

정효 씨가 중국에 가고 싶어도, 한국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어머니다. 어릴 적 어머니와 여러 차례 이별을 겪었던 정효 씨는 아들이 떠나지 않길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했다. 가족과 함께 사는 삶을 꿈꾸며 도착한 한국에서 적응하고자, 정효 씨는 한국어 공부에 몰두했다. 그럼에도 정효 씨 마음 한편에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이 있다.

한국어는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능력 중 하나다. 하지만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에게 ‘외국어’인 한국어를 배우는 일은 쉽지 않다. 언어 장벽, 그리고 이로 인한 또래와의 단절로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은 한국 사회 외곽에서 겉돌고 있다.

주류 된 제3국 출생 지원할 법 체계 필요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에 대한 규정은 북한이탈주민법이나 다문화가족지원법, 청소년복지지원법 등 어디에도 명확하게 나와 있지 않다. 제3국 출생을 지원할 책임도 통일부와 교육부, 여성가족부 등에 흩어져 있고, 심리 상담 같은 부수적인 지원책도 중복돼 이뤄지고 있다.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을 아예 이주배경청소년으로 보고 다문화 가정 지원체계 아래 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분단이라는 특수한 맥락이 있는 탈북민과 그 자녀들을 외국인으로 취급하는 데 대한 현장의 반감은 크다.

제3국 출생을 탈북민이나 다문화 등 어느 범주에도 넣지 않고, 탈북민 2세까지 교육지원을 해주는 방안도 있다. 탈북민인 지성호 국민의힘 의원은 탈북민 자녀라면 출생지에 상관없이 교육지원 대상에 포함하는 북한이탈주민법 개정안을 올해 2월 발의했다. ‘탈북민 자녀’라는 표현을 법에 명시하고 제3국 출생도 자연스럽게 이 범주 안에 넣는 방안이다. 하지만 이 경우 남한에서 태어난 자녀까지 지원 대상에 포함하게 돼 예산 문제와 역차별 논란이 있어 논의가 진척되지 않고 있다.

국내 다른 취약계층과 역차별 논란을 피해 사회통합을 추구해야 한다는 과제도 있다. 지난해부터 통일부는 대학교에 입학한 3국 출생에게 한 학기 등록금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내년부터는 입학 정원 안에서 대학교 특례입학도 적용된다. 고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대학교는 모집 정원의 10% 이상을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으로 선발해야 하는데,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을 ‘사회적 배려자 대상’에 포함했다. 북한 출생 탈북민 자녀는 국립대학은 등록금 전액, 사립대는 절반을 지원받고 정원 외 특례입학 혜택을 받고 있다.

하지만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제3국 출생에게 북한이탈주민이 받는 다른 지원까지 주면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며 “(탈북민이 아니라) 중국 정체성을 가진 탈북민 자녀도 많은데 지원을 더 확대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병역의무 면제, 2000만 원 안팎의 취업장려금 및 주거지원금 등 탈북민에게 정부가 제공하는 다른 혜택까지 제3국 출생 북한이탈주민에게 지급하는 건 무리라는 것이다.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을 교육하는 현장에서도 복지지원만 확대하는 정책은 정답이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비인가 대안학교인 우리들학교의 윤동주 교장은 “우리 사회가 탈북민을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으로 생각하니 통일되면 안 된다는 여론까지 많아졌다”고 지적했다. 제3국 출생을 탈북민과 똑같이 지원하면 소외계층에게는 역차별이 될 수 있는 탓에 반감을 불러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데다, 인당 수천만 원씩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는 방안은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윤 교장은 “이들이 ‘자력으로’ 대학교에 진학하고 취업도 할 수 있도록 기초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정부가 정말 해줘야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이 겪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들이 사회에 통합되지 못하는 원인을 밝히기 위해 당사자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북한이탈주민은 북에 남아 있는 가족이 있거나, 탈북 과정에서 트라우마를 겪었기 때문에 신분을 드러내는 것을 매우 꺼린다. 그들의 자녀의 신분을 노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약 한 달 동안의 설득 끝에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 4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중 11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설문조사는 지난 3월부터 7월까지 5개월 동안 탈북민 대안학교, 탈북민 교회(담임 목사가 탈북민이거나 남한 출신 목회자가 탈북민 사역을 목적으로 만든 교회), 민간 단체인 남북 교육개발원의 도움을 받아 진행됐다.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을 다룬 기존 보도는 개별적 사례만 다뤘다. 수십 명을 설문해 전반적인 실태를 파악한 보도는 처음이다.

인터뷰에 응한 11명은 모두 중국 출생으로 10대 6명, 20대 5명이다. 취재 과정에서 통일부와 교육부, 탈북청소년교육지원센터, 남북하나재단 등 정부와 단체의 공식 문서를 참고했다. 그 밖에도 학계의 연구 보고서와 논문을 참고했다. 2011년부터 탈북민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본 교사, 탈북민 인권 변호사, 연구자, 북한연구소 소장 등 전문가들도 인터뷰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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