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부천소사지역자활센터 수미인 자활근로사업단

북한이탈주민의 기초생활수급자 비율은 일반 국민보다 훨씬 높다. 북한인권정보센터(NKDB)가 지난해 발간한 ‘2023 북한이탈주민 경제사회통합 실태’ 보고서를 보면, 2023년 북한이탈주민의 생계비 수급률은 29.0%에 달했다. 10년 전인 2013년(43.1%)에 비해 많이 낮아졌지만, 2022년 일반 국민의 생계비 수급률 4.8%와 비교해 6배 넘는 비율이다.

저소득층 북한이탈주민을 중점 지원하는 자활근로사업단은 전국에 총 14곳이 있다. 그 가운데서도 경기도 부천시에 있는 부천소사지역자활센터는 자활근로사업단 ‘수미인’을 운영한다. 신체적, 심리적 어려움을 겪던 북한이탈여성들은 수미인에서 직물 제품을 만들며 자립을 준비한다. 지금까지 서른 명 이상의 북한이탈여성이 수미인을 거쳐 갔고, 그중 90% 이상이 자립에 성공했다.

<단비뉴스>는 지난해 12월 두 차례에 걸쳐 부천소사지역자활센터를 찾아, 2015년부터 수미인을 운영해 온 송예순 센터장과 윤경 사회복지사, 그리고 현재 수미인 사업단에 참여 중인 북한이탈여성 두 명을 만났다. 북한이탈여성들은 <단비뉴스>에 익명 보도를 요구했다. 또 지난해 11월에는 수미인 사업단에 참여하다 2019년 자활기업 ‘수미인협동조합’을 창업하며 자립에 성공한 북한이탈여성 김명화 대표와 직원 이창화 씨도 만났다.

 

‘자활(自活)’. 자기 힘으로 살아간다는 뜻이다. 자신의 노동으로 수입을 창출하여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면 자활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엔 신체적·심리적 어려움 탓에 취업이 어려운 사람들도 많다. 이들이 좌절하지 않도록, 지역사회에서 최후의 보루가 되어주는 곳이 지역자활센터다.

지역자활센터는 저소득층에게 최장 5년의 근로 기회를 제공하고, 그에 따른 자활 급여를 지급하는 사회복지시설이다. 1996년 전국 5곳으로 시작한 지역자활센터는 1998년 구제금융 사태 이후 필요성이 높아져 현재는 전국에 총 250곳으로 늘어났다. 2023년에는 전국에서 5만 1195명이 자활사업에 참여했다. 지역자활센터가 지급하는 참여자들의 급여는 보건복지부와 지자체로부터 지원받는다.

면 생리대 만들며 자활을 꿈꾸다

경기도 부천시 소사역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부천소사지역자활센터가 있다. 센터는 제빵, 카페, 공예 등 다양한 분야의 자활근로사업단을 운영하여, 부천시에 사는 저소득 주민 160명의 자립을 돕고 있다. 센터가 운영하는 10여 개 사업단 중에는 북한이탈여성을 중점 지원하는 ‘수미인’ 사업단이 있다. ‘손이 아름다운 사람들’이라는 뜻의 수미인 사업단은 수공예로 만든 면 생리대와 텀블러 백 등 직물 제품을 온라인에서 판매한다.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에 있는 부천소사지역자활센터. 조승연 기자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에 있는 부천소사지역자활센터. 조승연 기자
수미인 자활근로사업단에서 일하는 이들이 면 생리대를 만들고 있다. 윤경 사회복지사 제공
수미인 자활근로사업단에서 일하는 이들이 면 생리대를 만들고 있다. 윤경 사회복지사 제공

수미인이 시작된 2015년 이래, 부천시에 거주하는 약 35명의 북한이탈여성이 수미인에서 일했다. 참여자 대부분에게 수미인은 첫 직장이었다. 이들 가운데 90% 이상은 수미인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곳에 취업하거나 스스로 창업하여 자립했다.

현재 수미인 사업단에서 일하는 이는 모두 10명이다. 이 가운데 3명이 북한이탈여성이다. 한국 출신 6명과 필리핀 출신 1명도 함께 일한다. 원래 북한이탈주민이 더 많았으나, 코로나19 이후 한국에 오는 북한이탈주민의 수가 급감하면서, 수미인의 북한이탈주민 비중도 줄었다. 코로나19 직전 해인 2019년까지만 해도 1047명이었던 국내 입국 북한이탈주민이 2022년 67명으로 줄었다.

수미인을 만든 사람들

2015년 부천소사지역자활센터가 남북하나재단의 탈북주민 자활근로사업 공모에 선정되면서, 수미인 사업이 시작됐다. 송예순 부천소사지역자활센터장이 당시 배경을 설명했다. “그때 부천에 약 520명의 북한이탈주민이 있었는데, 남성보다 여성의 일자리 여건이 더 열악했어요. 여러 곳에 물어보니, 북한 여성의 손재주가 좋다더군요. 수공예 사업을 하면 딱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송 센터장은 북한이탈주민의 자활에 초점을 둔 사업이 꼭 필요하다고 봤다. 남북의 문화적, 언어적 차이로 인해 대인관계의 어려움이나 자존감 하락을 겪는 탈북주민들이 많은데, 이들에게 맞춤하여 자립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이 지난해 발간한 ‘2023 북한이탈주민 정착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북한이탈남성 고용률이 72.3%인데 비해, 탈북 여성의 고용률은 56.6%였다. 탈북 남성의 월평균 임금은 338만 9000원이었지만, 탈북 여성의 임금은 210만 원이었다. 북한이탈 주민 내부에서도 성별 격차가 상당한 것이다.

송예순 부천소사지역자활센터장은 수미인 자활근로사업단을 이끌어왔다. 조승연 기자
송예순 부천소사지역자활센터장은 수미인 자활근로사업단을 이끌어왔다. 조승연 기자

69년생 북한이탈여성 ㄱ 씨는 수미인에서 일자리 격차를 극복했다. 그는 2000년 북한을 떠나 중국으로 넘어간 뒤 2017년 한국에 홀로 왔다. 꼭두새벽의 추위를 견디며 농사 일을 했던 어린 시절의 영향으로 지금까지도 그에겐 과민성 방광 증상이 있다. 화장실을 시시때때로 가야 하는 그가 한국에서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는 많지 않았다. 학교와 병원의 청소일을 찾아다녔지만, 북한 출신에다 경력이나 자격증도 없어 면접에서 번번이 떨어졌다. ㄱ 씨는 2019년 수미인에 들어왔다. 그는 수미인에서 재봉틀을 처음 배웠다. “취업에 필요한 경험이나 자격증이 없고, 심지어 몸도 아픈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수미인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ㄱ 씨는 말했다.

75년생 북한이탈여성 ㄴ 씨도 2006년 중국으로 넘어간 뒤 2023년 1월 한국에 홀로 왔다. 한국에서 일자리를 구하려 했으나, 오래 앓고 있던 갑상선 질환과 부정맥 탓에 고된 일은 하기 어려웠다. 그는 한국 입국 후 약 반년 동안 인천시의 한 쉼터에서 지냈다. 2023년 수미인에 들어온 ㄴ 씨에게 이곳은 신체적·심리적인 안정을 주는 곳이기도 하다. “집에 들어가면 혼자인데, 여기 오면 같이 웃어줄 사람이 있어서 좋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가족같이 느껴진다”고  ㄴ 씨는 말했다.

이들을 곁에서 도우며 사업 실무 책임을 맡은 이도 북한이탈주민이다. 수미인 사업단 담당자인 윤경 사회복지사는 탈북하여 2008년 한국에 왔다. 2009년부터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인 유은복지재단 나눔공동체에서 일했고, 2011년 대학에서 사회복지학 공부를 시작해서 2년 만에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2015년 부천소사지역자활센터에 채용됐고, 그때부터 수미인 사업단을 맡았다.

윤경 사회복지사는 2015년부터 자활근로사업단 수미인을 담당해왔다. 조승연 기자
윤경 사회복지사는 2015년부터 자활근로사업단 수미인을 담당해왔다. 조승연 기자

수미인에서 일하는 이들은 윤경 사회복지사를 ‘친정 엄마’라고 부른다. 그가 북한이탈여성의 처지를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기 때문이다. “북한이탈여성 중 상당수는 몸과 마음에 남은 상처로 인해 한국 정착의 시작 단계부터 다양한 어려움을 겪어요. 그런 이들에게 안정적으로 일할 기회를 제공하고, 주변 이웃과 어울릴 기회를 마련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지요.”

부천소사지역자활센터는 자활근로 참여자들을 위해 웃음 치료, 대인관계 교육, 인지행동 치료, 정서적 자활 프로그램 등도 제공하고 있다. “센터에 오는 이들 가운데 우울증 약을 먹는 경우가 절반이 넘는다. 그들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각자 내면의 힘을 키울 수 있도록 돕고 있다”라고 송예순 센터장은 설명했다.

수미인 참여자들은 1일 8시간, 주 5일 근로 기준으로 약 140만 원의 월급을 받는다. 여기에 더하여, 성과급이나 자격증 수당을 추가로 받을 수도 있다. 사업단이 생산한 제품으로 발생한 매출은 참여자들의 자산 형성 지원이나 자활사업 활성화를 위해 쓰인다.

자활근로 참여자들이 교육 프로그램을 듣기 위해 부천소사지역자활센터의 강의실에 모여 있다. 사진 왼쪽, 분홍색 재킷을 입은 이들은 수미인 사업단에서 일하고 있다. 윤경 사회복지사 제공
자활근로 참여자들이 교육 프로그램을 듣기 위해 부천소사지역자활센터의 강의실에 모여 있다. 사진 왼쪽, 분홍색 재킷을 입은 이들은 수미인 사업단에서 일하고 있다. 윤경 사회복지사 제공

여성과 환경을 위한 면생리대

수미인의 주력 상품은 다회용 면생리대다. 윤경 사회복지사는 2016년 말 수미인 참여자들과 함께 유기농 원단을 사용한 면 생리대 제품의 개발을 시작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승인 기준과 절차가 까다로웠지만, 면 생리대의 안전성을 3년에 걸쳐 꾸준히 보완한 결과, 2019년 10월 식약처의 의약외품 인증을 받을 수 있었다.

수미인이 제작하는 면 생리대의 특징은 유기농 목화솜으로 만든 특수 원단이 생리대 겉면은 물론 흡수체에도 사용된다는 점이다. 수원여대 패션디자인실용화센터와 산학연계를 통해 고안된 꽃 패턴을 적용해 디자인한 점도 이채롭다. 사용기한이 36개월에 이르는 수미인 면 생리대는 쿠팡, 인터파크 등 다양한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되고 있다.

수미인 자활근로사업단이 제조하는 다회용 면 생리대는 다양한 꽃무늬 패턴으로 디자인했다. 수미인 제공
수미인 자활근로사업단이 제조하는 다회용 면 생리대는 다양한 꽃무늬 패턴으로 디자인했다. 수미인 제공

자활기업 ‘수미인협동조합’

수미인 사업단 참여자 중 일부는 직접 창업했다. 지역자활센터는 자활근로사업단 참여자 중 참여 의지, 아이템, 기술력 등 몇 가지 조건에 부합하는 참여자에게 창업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들이 창업에 성공하면, 재정적으로 지역자활센터로부터 독립된 ‘자활기업’을 직접 운영할 수 있다. 임금의 출처도 달라진다. 자활센터 사업단에서 일하는 이들은 정부와 지자체의 재정에서 월급을 받지만, 자활기업 직원들은 스스로의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수미인협동조합’의 김명화 대표도 그 궤적을 밟아 자립했다. 2015년부터 수미인 자활근로사업단에 참여했던 그는 동료 두 명과 함께 2019년 9월 독립해 창업했다. 북한이탈주민들이 모여 만든 수미인협동조합은 직물로 만든 팥찜질팩과 목욕수건을 판매한다. 이들 제품은 수미인 근로사업단에서 만든 면 생리대와 함께 수미인 공식 홈페이지에서 팔리고 있다. “아직 수입이 많지는 않지만, 우리가 만든 제품이 한국의 다른 제품들과 경쟁하고 있다는 점은 뿌듯하다”고 말하며 김 대표는 웃었다.

김명화 수미인협동조합 대표가 재봉기로 팥찜질팩을 만들고 있다. 조승연 기자
김명화 수미인협동조합 대표가 재봉기로 팥찜질팩을 만들고 있다. 조승연 기자
수미인협동조합 직원 이창화 씨가 목욕수건을 만들고 있다. 조승연 기자
수미인협동조합 직원 이창화 씨가 목욕수건을 만들고 있다. 조승연 기자
수미인 사업단과 협동조합이 만드는 면 생리대와 텀블러 백 등 다양한 제품에 대한 설명을 수미인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수미인 홈페이지 갈무리
수미인 사업단과 협동조합이 만드는 면 생리대와 텀블러 백 등 다양한 제품에 대한 설명을 수미인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수미인 홈페이지 갈무리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맞춤형 자활 사업

더 많은 독립과 자립을 위해, 윤경 사회복지사는 수미인에서 일하는 북한이탈여성을 북돋우며 독려한다. 기초수급자의 자격을 잃어 생계비 수급이 끊길까 걱정해서, 아예 직업을 안 가지려는 탈북주민이 없지 않다. 그런 이들에게 윤경 사회복지사는 “수급에 목매면 딱 거기까지밖에 못 산다. 더 힘든 일도 겪었는데 무조건 자립할 수 있다”고 말해준다.

수미인 자활근로사업단의 상징은 진달래다. 윤경 사회복지사의 아이디어였다. 진달래는 수미인의 로고와 면 생리대에도 들어가 있다. 진달래는 봄을 알리는 꽃이다. 해발 1,000미터 이상의 산지에서도 자라며 강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북한이탈여성이 어려움을 딛고 일어나 활짝 피어나길 바란다는 소망을 담아 진달래를 수민인의 상징으로 삼았다”고 송예순 센터장은 말했다.

직물 제품을 만드는 수미인의 대표 상징에는 진달래 문양이 있다. 수미인 홈페이지 갈무리
직물 제품을 만드는 수미인의 대표 상징에는 진달래 문양이 있다. 수미인 홈페이지 갈무리

수미인 사업단이 판매하는 제품들은 이곳 수미인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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