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계약 연장 위해 갑질 당해도 참는 경비원들

지난 5월 10일은 서울시 강북구 아파트 경비원 고(故) 최희석 씨의 3주기였다. 최 씨는 입주민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강북구노동인권네트워크는 지난 5월 8일부터 10일까지 아파트 경비원의 갑질 근절을 촉구하는 3주기 추모주간 캠페인을 진행했다.

지난 5월 10일 서울시 강북구청 앞에서 경비원 고(故) 최희석 씨 3주기 추모 문화제가 열렸다. 지수현 기자
지난 5월 10일 서울시 강북구청 앞에서 경비원 고(故) 최희석 씨 3주기 추모 문화제가 열렸다. 지수현 기자

최 씨 사고를 계기로, 관련 법 개정은 신속히 이뤄졌다. 일명 ‘경비원 갑질 방지법’이라 불리는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이 2021년 10월부터 시행됐다. 경비원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정해 법에서 정하지 않은 허드렛일을 시킬 수 없도록 보호한다는 취지였다.

그럼에도 경비원 대상 갑질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의 한 아파트에서 일하던 경비원이 아파트 관리소장의 갑질에 고통을 호소하며 목숨을 끊었다. 지난 5월에는 서울시 마포구 아파트 경비원에게 갑질을 일삼았던 입주민이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는데, 해당 입주민은 소송 과정에서도 피해 경비원을 괴롭히며 가해를 계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비원 갑질 방지법은 일단 경비원이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지 않도록 보호한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 법만으론 현실에서 일어나는 광범위한 갑질의 유형을 전부 포괄하지 못한다. 이 법은 입주민의 갑질을 방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서울시 강남구 갑질 사건에서는 아파트 관리소장이 갑질 주체로 지목됐다. 또 갑질을 당한 경비원의 고용 형태에 따라서도 처벌 근거에 차이가 있으며 해법도 달라진다. 임득균 노무사는 “강북구 사건이 강남구 사건과 가장 다른 부분은 고용 형태가 직접고용이었다는 점으로, 가해자를 처벌하기가 좀 더 쉬웠다”고 말했다.

경비원 갑질 사건 구조 비교. 그래픽 지수현

사실 갑질 방지법이 제정되기 전에도 경비원을 보호할 법령은 있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으로 불리는 근로기준법 제76조는 상사의 무리한 업무 지시 등 괴롭힘 행위를 금지한다. 또한 공동주택관리법 제65조는 입주자대표회의 등 관리 주체의 부당한 지시나 명령으로부터 경비원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경비원 대상 갑질을 처벌하는 법령과 적용상의 문제점. 그래픽 지수현

문제는 법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간접고용’과 ‘단기계약’이라는 경비원의 고용 특성 때문이다. 간접고용은 실제 사용자와 서류상 사용자를 분리해, 가해자가 근로기준법 제76조의 적용을 피해갈 수 있게 한다. 경비원의 상사에 해당하는 아파트 관리소장이나 입주민이 서류상 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처벌받지 않는 것이다. 경비원을 단기계약 형태로 고용하는 것은 공동주택관리법 제65조를 무력화할 수 있다. 계약을 연장해야 하는 경비원이 갑질을 신고할 것이라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중요한 것은 법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경비원 고용 특징① : 간접고용

아파트 경비원 고용은 간접고용 방식이 대부분이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선임한 관리소장이 경비원을 직접 고용‧관리하는 것이 ‘직접고용’ 방식이고 그 외에 하도급을 맡기는 방식이 ‘간접고용’ 방식이다. 자치관리를 하는 아파트에서는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경비용역회사에 하도급을 주고, 위탁관리를 하는 경우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위탁관리회사를 선정하거나 위탁사가 경비용역회사에 2차 용역을 주기도 한다.

간접고용을 하면 서류상 사용자와 실제 사용자가 달라진다. 서류상으로는 위탁관리회사나 용역회사가 경비원의 사용자가 되지만 실제 사용자는 아파트 관리소장이기 때문이다. 시민단체인 ‘직장갑질119’에서 지난 3월 발간한 “경비노동자 갑질 보고서”를 보면 간접고용 형태로 경비원을 고용하는 아파트의 비율이 전체의 90%를 넘는다.

간접고용 구조에서는 서류상 사용자와 실제 사용자가 다르다. 그래픽 지수현 
간접고용 구조에서는 서류상 사용자와 실제 사용자가 다르다. 그래픽 지수현 

간접고용은 갑질 가해자를 처벌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갑질 처벌 규정인 근로기준법 제76조의2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정’은 서류상 사용자를 대상으로 적용된다. 강남구 갑질 사건에서 가해자로 지목됐던 아파트 관리소장은 실질적으로 업무를 감독하는 사람이지만 서류상 사용자가 아니었다. 해당 사건을 조사한 노동부 강남지청 임효준 감독관은 “(관리소장이 아닌) 경비용역업체를 대상으로 시정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파트 경비원이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정의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사용자성이 넓게 인정돼야 한다. 홍기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4월 괴롭힘 행위자의 범위를 넓히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이 통과되면 입주민이나 아파트 관리소장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경비원 고용 특징② : 단기계약

경비원의 계약 기간은 1년 이하의 단기계약인 경우가 많다. 지난 2019년 11월 아파트 경비노동자의 고용 실태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는데, 전체 응답자 3150명 가운데 94%가 1년 이하 단기계약을 맺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비원은 1년 이하의 단기계약을 맺는 경우가 94%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래픽 지수현
경비원은 1년 이하의 단기계약을 맺는 경우가 94%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래픽 지수현

단기계약은 갑질을 당한 경비원이 신고를 주저하게 만든다. 신고를 했다가 혹여나 계약을 연장할 때 불이익을 받을까 우려하기 때문이다. 정의헌 전국아파트경비노동자사업단 대표는 “부당한 일을 당하더라도 계속 일을 하기 위해서는 참고 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지난 5월 10일 경비원 고(故) 최희석 씨 3주기 추모 문화제에서 정의헌 전국아파트경비노동자사업단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지수현 기자
지난 5월 10일 경비원 고(故) 최희석 씨 3주기 추모 문화제에서 정의헌 전국아파트경비노동자사업단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지수현 기자

실제로 갑질 금지법 시행 이후에도 법의 실효성이 크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월 31일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토교통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21년 10월부터 지난 3월까지 공동주택관리법 위반으로 단속된 건수는 1건뿐이었다. 

경비원이 갑질에 맞서 권리를 주장하려면 고용의 안정성이 먼저 확보돼야 한다. 최 씨 3주기 추모제 참석자들은 경비원의 초단기 계약을 근절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5월 10일 경비원 고(故) 최희석 씨 3주기 추모 문화제에서 참석자들이 ‘단기계약 반대’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지수현 기자
지난 5월 10일 경비원 고(故) 최희석 씨 3주기 추모 문화제에서 참석자들이 ‘단기계약 반대’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지수현 기자

고용유지하면 지원금? 효과는 ‘글쎄’

경비원의 고용안정을 국가에서 보장할 수는 없을까. 경비원을 보호하는 지자체 조례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노원노동복지센터에서 지난해 10월 펴낸 “노원구 아파트 노동자·주민 상생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아파트 노동자 지원 조례를 두고 있는 곳은 전국적으로 100여 곳이다. 그러나 58.6% 정도만 조례에 기반해 실제 사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고용안정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는 사업은 일부에 불과했다. 경비원의 고용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곳은 부산 수영구‧충남 당진‧아산시 3곳이었다. 

경비원 고용유지지원금 사업을 실시한 지자체들은 실제 고용안정 효과를 거뒀다. 고용유지 규모가 가장 큰 곳은 충남 아산시로, 2021년과 2022년 각각 9000만 원, 5000만 원의 예산을 투입해 각각 경비원 94명과 53명이 일자리를 유지했다. 다만 올해는 사업을 하지 않았다. 부산 수영구와 충남 당진시에서도 한해 최소 1080만 원에서 최대 8800만 원의 예산으로 10명 내외의 고용유지 효과를 냈다.

3개 지자체에서 실시한 경비원 고용유지지원금 정책의 예산과 효과. 그래픽 지수현
3개 지자체에서 실시한 경비원 고용유지지원금 정책의 예산과 효과. 그래픽 지수현

그러나 경비원 고용유지지원금 정책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따른다. 우선 청소 노동자를 비롯한 타 직군과의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다. 권진성 부산 수영구의원은 “예산이 수반되는 조례는 구청과 협조가 필요하다”면서 “특수 직역을 보호하기 위한 재정 지원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원금의 효과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충남 아산시는 이런 이유로 지난해를 마지막으로 사업을 종료했다. 아산시청 일자리경제과 이민상 주무관은 “통상 1년 단위로 계약을 연장하기 때문에, 고용을 유지한 것이 지원금의 영향인지 입증하기 어렵다”고 했다.

기존 사업 활용한 인센티브 방식 지원 사례도

최근에는 ‘인센티브’ 방식으로 경비원 고용유지를 지원하는 지자체도 있다. 고용유지지원금 사업을 별도로 시행하는 대신, 기존 아파트 지원사업을 활용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지자체는 아파트 시설 보수‧유지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여기에 ‘경비원 고용유지’ 항목을 집어넣어 별도의 예산을 쓰지 않고도 고용안정 효과를 낼 수 있다.

서울시 강북구는 올해 경비근로자의 근로 환경 개선을 지원하는 사업인 ‘모범단지 공동주택 지원사업’의 심사기준에 ‘근로자 고용유지’ 조항을 넣었다. 해당 사업은 100점이 만점인데, 구는 고용유지에 35점을 배점했다. 정책 효과를 높이기 위해 고용유지 기간에 따라 점수를 차등화했다. 서울시 노원구도 마찬가지로 ‘아파트 경비‧미화원 기본시설 지원사업’을 심사할 때 고용유지 실적을 평가하고 있다.

서울시 강북구의 경비원 고용유지 인센티브 정책. 그래픽 지수현
서울시 강북구의 경비원 고용유지 인센티브 정책. 그래픽 지수현

갑질 대응 돕는 노동자지원센터

갑질 사건이 죽음으로 번진 배경에는 피해를 본 개인이 직접 대응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안성식 강북구 노동자종합지원센터장은 “경비원 입장에서는 갑질에 대응하려고 해도 처음 당하는 상황이라 대응하기 어렵다”며 “문제가 생긴 경비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난 3월 갑질 사건이 벌어진 강남구에는 경비원을 지원하는 조직이 없다. 강북구 노동자종합지원센터도 최 씨 사건 이후 문을 열었다.

강북구 노동자종합지원센터는 법이 보호하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최소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센터에서 첫 번째로 시행한 사업은 노동자 대상 상담 서비스다. 센터는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경비원 갑질 사건이 있는지 파악하고 언론 보도도 모니터링한다. 또 소식지를 배포하며 관내 아파트 경비원들과 꾸준히 접촉한다. 분산돼있는 경비원들이 갑질 문제에 조직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아파트노동자 조직화 서울공동사업단 소식지. 노동자지원센터는 관내 아파트 경비원을 대상으로 소식지를 배포한다.
아파트노동자 조직화 서울공동사업단 소식지. 노동자지원센터는 관내 아파트 경비원을 대상으로 소식지를 배포한다.

경비원의 이해를 대변하는 단체가 없다는 것도 문제다. 노동자 개인보다는 단체를 통해야 일자리나 처우 문제에 관해 효과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갑질 대응도 마찬가지다. 노동센터에서 경비원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아파트경비노동자 공동사업단’을 구성했지만, 경비원 당사자의 자발적인 참여로 만들어진 조직은 아니다. 경비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단체가 조직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임의 단체일 뿐이다.

경비원과 달리 아파트 관리소장은 단체를 만들어 갑질에 대응한다. 관리소장들의 이익단체인 ‘대한주택관리사협회’는 지난 2020년 관리소장 피살 사건 이후 협회 차원에서 삭발식을 벌이며 가해자 엄벌과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안 센터장은 “경비원도 근로기준법 등에 의거해 갑질에 대응할 수 있지만 (경비원 고용 특성 때문에) 법 적용 여부가 불확실하다”며 “경비원도 이해를 대변해주는 단체가 필요하다”고 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