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안전한 산은 없다] ① 관리 미흡한 산사태취약지역 제도

 

산림청에 따르면 올해 여름 산사태로 난 인명 피해는 총 18건이다. 13명이 숨지거나 실종·매몰됐고 5명이 다쳤다. 산사태는 매년 인명피해를 일으키진 않지만, 한 번 발생하면 큰 피해를 준다. 2020년에는 9명이 숨졌는데, 한 펜션에서 삼대가 매몰되는 끔찍한 사고까지 있었다.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의 산사태 발생 원인은 주로 집중호우다. 최근 들어 집중호우는 '극한 호우'로 바뀌어 가고 있다. 기후위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르면 이러한 극한 호우의 발생 횟수는 앞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기후위기로 인한 이전과는 다른 극한 호우 상황에서 한국은 산사태 피해를 예방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취재팀은 산사태 취약지역 제도부터, 수도권 인근의 산지 난개발 현장까지 커지는 산사태 위험에 우리 사회가 제대로 대처하고 있는지 점검했다. (편집자주)

<기사 차례>

① 관리 미흡한 산사태취약지역 제도

② 작은 마을이 사각지대에 놓였다…위험해도 방치

➂ 난도질 된 수도권 산, 산사태에 무방비 노출돼

 

지난 8월 13일, 취재팀이 찾은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에는 사람만 한 바위 수백 개가 마을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벌방리는 지난 7월 15일 새벽에 발생한 산사태로 두 명의 실종자가 발생한 곳이다. 기록적인 폭우로 마을 뒤 부용산 꼭대기에서 토사와 바위가 밀려 내려왔다.

산사태 이후 마을을 덮쳤던 바위를 굴착기로 한곳에 모아놨다. 키 160cm 정도인 기자와 비교해보면 바위의 크기를 실감할 수 있다. 사진 정호원
산사태 이후 마을을 덮쳤던 바위를 굴착기로 한곳에 모아놨다. 키 160cm 정도인 기자와 비교해보면 바위의 크기를 실감할 수 있다. 사진 정호원

산사태가 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벌방리 주민들은 충격에 빠져있었다. 벌방리에서 57년 살았다는 주민 황성조(80) 씨는 "평생을 살았지만 산사태가 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박우락(62) 이장은 "마을이 생긴 지 대략 500년 가까이 되었는데, 이런 산사태는 없었다"고 했다.

임도도 없고, 개발도 안 한 산에서 갑자기 산사태가 터진 이유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예상치 못한 산사태의 원인으로 기후변화를 꼽는다. 산사태의 원인은 지진, 화산 등 다양하지만, 한국의 산사태는 주로 집중호우로 인해 발생한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한국에서 시간당 50mm 이상의 집중호우가 늘었다. 1990년대 1년에 112회이던 것이 2010년대 168회로 증가했다.

산림청 산하 산림ICT 연구센터 유송 연구사는 취재팀과의 인터뷰에서 총 누적 강우가 200mm 이상이 되면 전국 어디든 산사태가 발생할 위험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기상청 자동기상관측시스템(AWS)에 따르면 지난 7월 14, 15일 이틀 동안 경북 예천에 쏟아진 비는 243mm였다. 유 연구사는 "지역에 따라 (지형이) 달라 특정한 수치를 말하기는 어렵다"면서도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라 앞으로 극한 강우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산사태 피해 80% 이상 산사태취약지역 밖에서 발생

산림청은 지방자치단체들과 협력하여 산사태취약지역을 지정한다. 산사태취약지역은 산사태 발생으로 인명과 재산 피해가 우려되는 지역을 관리하는 제도이다. 올해 7월 기준으로 전국에 2만 8천 194곳이 지정됐다. 산림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평균 82%가 넘는 산사태가 지정된 취약지역 밖에서 일어났다.

매년 산사태가 발생한 곳 가운데 사전에 산사태취약지역으로 지정돼 관리가 되고 있던 곳은 18%에도 미치지 못했다. 자료 재구성 이선재
매년 산사태가 발생한 곳 가운데 사전에 산사태취약지역으로 지정돼 관리가 되고 있던 곳은 18%에도 미치지 못했다. 자료 재구성 이선재

취재팀은 올해 산사태 피해가 가장 컸던 충남, 충북, 경북을 중심으로 올해 8월 기준 산사태 취약지역 상세 주소와 올해 발생한 산사태 피해지 상세 주소를 산림청과 각 지자체에서 확보했다. 산림청은 산사태 취약지역의 상세 주소는 공개했지만, 피해지역의 상세 주소는 공개하지 않았다. 산사태 피해지역의 관리 주체는 지자체라는 이유를 댔다.

산림청은 취재팀에게 산사태 피해지역 주소를 마을 단위인 ‘리’(里) 단위만 제공했다. 그러나 리 단위 정보는 불완전하다. 한 마을에서 산사태가 여러 번 나도, 리 단위로는 한 곳으로 집계되기 때문에 이 정보는 산사태 피해 상황을 제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없다.

이에 취재팀은 충남, 충북, 경북 각 기초지자체에 직접 산사태 피해지역의 상세 주소를 요청해 받았다. 산사태 피해지역 상세 주소는 피해 복구를 위해 각 지자체 공무원이 국가 재난관리 정보시스템(NDMS)에 입력한 기준으로 집계되었다. 이 정보를 이용해 얼마나 산사태취약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하는지 시각적으로 표시해 보았다.

정확한 산사태 피해지 상세 주소의 제공 여부는 기초지자체 담당 공무원의 의사에 따라 달랐다. 취재팀은 산사태 피해지는 사유지이므로 정확한 주소는 공개하지 말아 달라는 지자체 공무원의 요청에 따라 아래의 지도에는 리 단위의 주소까지만 공개하기로 했다.

충북에서는 391건의 산사태 피해가 발생했다. 산사태 피해지 상세 주소를 받지 못한 충주시는 산사태 비교에서 제외했다. 또한 일부 상세 주소를 받지 못한 제천시 5곳, 진천군 9곳을 제외했다. 산사태 피해지와 취약지역의 주소를 비교해 본 결과, 취약지역과는 13곳이 겹쳐 일치율이 3.3%에 그쳤다.

충남에서는 122건의 산사태 피해가 발생했다. 산사태 피해지와 취약지역은 10곳이 겹쳐 일치율은 8.2%였다.

취재팀은 올해 사상자가 발생했던 경북에서는 예천군, 봉화군을 포함해 상주시, 울진군, 칠곡군, 김천시까지 6곳만의 산사태 피해지역 상세 주소를 얻을 수 있었다. 6개 기초지자체에서 1024건의 산사태 피해가 발생했는데, 취약지역과 피해지가 일치하는 곳은 39곳으로 일치율은 3.8%였다.

그 외 경북 기초지자체 담당 공무원은 산사태 피해지의 상세 주소를 공개하지 않았다. 사유지는 소유주의 동의를 받아야 공개할 수 있다는 이유를 댔다.

전체 산사태의 80% 이상이 취약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곳에서 일어나는 이유는 애초에 산사태취약지역으로 지정된 곳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교수가 2009년 소방방재청의 용역을 받아 연구한 결과를 보면, 산사태로부터 관리가 필요한 지역은 전국적으로 100만 곳으로 추정됐다. 산림청은 내년에 산사태취약지역을 4만 5천 곳으로 확대하기 위한 예산을 편성했지만, 전체 위험지역을 포괄하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다.

산사태취약지역 자체가 적다 보니, 산사태 위험에 노출된 곳이 추가로 취약지역에 지정되려면 치열한 경쟁을 통과해야 한다. 산사태취약지역 지정을 위한 기초조사는 산사태가 우려되는 지역 1만 8천 곳을, 실태조사는 기초조사에서 위험도가 높다고 평가된 7천 2백 곳을 대상으로 한다. 산림보호법 제45조 제7항은 기초조사를 5년에 한 번씩 하도록 규정하지만 산림청은 매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배정받은 예산을 기준으로 사전에 정해둔 취약지역 추가 계획에 맞추기 위해 매 단계에서 탈락 지역이 발생한다.

산사태취약지역 조사 대상지는 잠재적인 피해 규모에 따라 우선순위가 정해진다. 국민의힘 홍문표 의원실이 산림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산사태취약지역 조사 기준 1순위는 ‘주요 보호시설 및 주택지 등 인명피해가 우려되는 지역’이다. 주요 보호시설은 병원이나 양로원, 유치원이나 학교 등이다.

산사태취약지역 조사 기준 1순위는 "주요 보호시설 및 주택지 등 인명피해가 우려되는 지역"이다. 표 지수현
산사태취약지역 조사 기준 1순위는 "주요 보호시설 및 주택지 등 인명피해가 우려되는 지역"이다.  그래픽 이선재

결국 인구가 적은 지역은 취약지역 선정에 불리하다. 산사태취약지역 제도가 공공성보다 효율성을 강조하는 탓에 작은 마을은 산사태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인다. 2편에서는 작은 마을이 산사태로부터 어떤 위험에 놓였는지 전문가와 실증 분석을 통해 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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