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안전한 산은 없다] ② 현실과 동떨어진 산사태 피해 예방책

과연 이번에 산사태를 피한 경북 지역의 다른 마을들은 산사태로부터 안전할까? 지난 9월 9일, 취재팀은 녹색연합 서재철 전문위원과 함께 올해 인명피해를 낸 산사태가 발생한 곳과 지형이 비슷한 마을을 찾았다. 취재팀이 찾은 예천군의 A마을은 지난 7월 산사태가 발생했던 예천군 벌방리와 지형이 비슷하다. A마을은 17가구만 사는 작은 마을이다.

지난 7월 경북 예천 벌방리의 산사태 현장(왼쪽)과 지난 9월 취재팀이 찾은 경북 예천의 A마을(오른쪽)은 유사한 지형 특성을 보인다. 카카오맵 위성사진, 그래픽 지수현 
지난 7월 경북 예천 벌방리의 산사태 현장(왼쪽)과 지난 9월 취재팀이 찾은 경북 예천의 A마을(오른쪽)은 유사한 지형 특성을 보인다. 카카오맵 위성사진, 그래픽 지수현 

두 곳 모두 마을 입구에 콘크리트로 만든 인공수로가 있다. 콘크리트 수로는 자연 상태의 하천보다 배수 용량이 적다. 마을 전체에서 사면을 깎아 농경지로 활용하는 인위적인 개발의 흔적도 찾아볼 수 있었다. 산지에 인위적인 훼손을 가하면 여러 갈래로 분산돼 있던 계곡의 흐름이 바뀐다. 그 영향으로 산에서 내려오는 물의 속도가 빨라져 산사태 위험을 키운다. 두 마을 모두 폭우가 내릴 때 토석류로 인한 피해가 예상되는 지형이다. 토석류는 산사태로 흙과 돌이 물과 함께 하류로 세차게 흘러 내려가는 현상을 말한다.

위험한데 취약지역 지정 안 돼

취재팀이 자문을 구한 산림 재난 전문가 정규원 산림기술사(농학 박사)는 A마을에서 산사태를 유발할 수 있는 정성적인 요인을 구체적으로 분석했다. 산림청은 산사태 위험도를 산의 경사도나 바위의 종류 등에 대한 정량적인 측정값에 따라 1~5등급으로 판정한다. 하지만 정량적 지표로만 피해를 예측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실제 산사태 피해는 각 산의 구조적인 측면에 따라 달라진다.

A마을의 산사태 위험 요소들. 드론 촬영 녹색연합, 그래픽 지수현

A마을 뒷산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수평으로 낸 산림 관리용 도로인 임도다. 계단식이 아닌 수평식 임도는 빗물이 잘 배출되지 않아 폭우에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땅을 쌓아 올려 만든 ‘성토면’이 깎이면서 토석류로 발전하기도 한다.

A마을 오른쪽 산의 중간부에는 묘지가 있다. 이 묘지는 산지에서 흐르는 물의 방향을 교란하면서 원활한 배수를 방해할 수 있다. 숲을 이루는 나무의 구성을 보면 나무의 밀도가 높고 과거 벌채한 흔적도 확인된다. 숲을 가꾸는 작업이 적절히 이뤄지지 않으면 숲의 저수 능력이 떨어져 산사태 위험을 키운다.

산 위쪽에 있는 바위는 물을 흡수하지 않고 그대로 흘려보내기 때문에 산 아래로 이어지는 나무의 구성이 중요하다. 지금의 나무 구성은 시간당 최대 100mm가 넘는 집중호우가 올 때 빗물을 흡수할 여력이 부족하다고 정 박사는 말했다. 이런 여러 위험요소 가운데 일부만 작동하더라도 큰 토석류가 마을을 덮칠 수 있다.

분석을 종합하면, A마을은 산사태의 위험에서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다. 국가는 이곳을 산사태취약지역으로 지정해 보호해야 한다. 산사태취약지역으로 지정되면 후속 관리가 이뤄진다. 사방댐이나 옹벽 등 사방시설을 설치하는 '구조물 대책'과, 주민 연락망을 구축하고 대피소를 지정하는 '비구조물 대책'을 병행한다.

하지만 현재 A마을은 산사태취약지역으로 지정돼 있지 않다. 산사태취약지역 조사 기준에 비추어보아 인구수가 적어 취약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산사태취약지역은 주요 보호시설이나 주택지 등 인명피해가 우려되는 지역을 우선적으로 조사해 지정하도록 되어 있다. 인구수가 산사태취약지역 지정의 기준이 되는 셈이다.

대피소도 믿을 수 없다…산사태 영향권 안에 대피소 지정한 곳도

산사태취약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해서 안전한 것도 아니다. 취재팀은 같은 날 산사태취약지역으로 지정된 경북 안동시의 B 지번에 연결된 마을도 찾았다. 이 마을에는 30여 가구가 산다. 마을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주민 ㄱ씨는 "이 마을에 4년째 살고 있지만, 근처에 산사태취약지역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인근에 있는 경로당이 대피소라는 것 역시 금시초문이라고 말했다.

지난 9월 9일 취재팀이 방문한 경북 안동시의 산사태취약지역 B 지번. 인근에 30여 개의 가구가 있다. 카카오맵 위성사진, 그래픽 지수현
지난 9월 9일 취재팀이 방문한 경북 안동시의 산사태취약지역 B 지번. 인근에 30여 개의 가구가 있다. 카카오맵 위성사진, 그래픽 지수현

더구나 대피소로 지정된 경로당은 산사태 예상 피해 구역 안에 있었다. 정규원 박사는 B 지번 인근 마을 전체가 산사태로 인한 예상 피해 구역이라고 분석했다. 정 박사는 비가 많이 오면 마을 주민 전체가 사면이 평평한 산 아래로 대피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부실한 운영 탓에 누구도 이런 사실을 몰랐다.

산사태취약지역 B 지번 뒷산에 흐르는 계곡은 한 지점으로 모인다. 토석류는 계곡을 타고 마을 전체를 덮칠 수 있는데 대피소가 예상 피해구역 안에 있다. 드론 촬영 녹색연합, 그래픽 지수현
산사태취약지역 B 지번 뒷산에 흐르는 계곡은 한 지점으로 모인다. 토석류는 계곡을 타고 마을 전체를 덮칠 수 있는데 대피소가 예상 피해구역 안에 있다. 드론 촬영 녹색연합, 그래픽 지수현

주민들도 모르는 산사태 취약지역

주민들 사이에 투명한 정보 공유가 이뤄지지 않는 것은 B 지번 인근 마을만의 문제는 아니다. 일반 시민들은 기본적으로 산사태취약지역 정보에 접근하기 어렵다. 산림청은 산사태정보시스템을 통해 산사태위험지도를 제공한다. 그런데 이 지도는 산사태취약지역이 어디인지는 알려주지 않고 대피소만 나와 있다. 산림청에 직접 정보공개를 청구하면 취약지역 주소를 받을 수 있지만 정확한 지번이 아니라 '리'(理) 단위의 불완전한 정보만 제공한다.

산림청 산사태방지과 이정철 주무관은 "산림청 내부에서 상세 주소를 가지고 있지만, 지정권자가 아니어서 리 주소까지만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했다. 지정권자는 산림청 소관 국유림은 지방산림청장이고, 공·사유림과 타 부처 소관 국유림은 기초자치단체장이다.

지번까지 표시된 상세 주소를 열람하기 위해서는 각 지자체 담당과에 정보공개를 청구해야 한다. 시군구청 홈페이지 등을 통해 산사태취약지역을 고시하는 것은 지자체의 선택 사항이다. 홈페이지에 고시하더라도 특정 연도 자료가 없는 등 들쑥날쑥한 경우가 많다. 이렇게 많은 산사태를 겪고 있는데도 전국 산사태취약지역 상세 주소를 한눈에 볼 방법은 없다. 산사태취약지역 정보의 문턱이 높은 이유는 재산권 때문이라는 것이 산림청의 설명이다. 이 주무관은 "취약지역 자료가 외부에 공개되면 (인근 주민들이) 땅값이 떨어진다며 반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취약지역의 관리 범위가 모호하다는 문제도 있다. 취약지역으로 지정된 곳에서는 인접한 민가를 대상으로 별도의 관리가 이뤄지는데, 이 민가의 범위는 정해진 기준이 없다. 주민은 산사태취약지역의 상세 주소를 알아도 자기 집이 영향권에 들어가는지 알 수 없다. 특히 산이나 밭의 구체적인 지번이 취약지역으로 지정되는 경우 관리 범위를 파악하기 더욱 어렵다. 산이나 밭은 여러 방향으로 민가가 연결되기 때문이다.

산사태취약지역 B지번 인근의 또 다른 산사태취약지역. 이렇게 산사태취약지역이 산 한 가운데 지정된 경우 여러 방향으로 민가가 연결된다. 카카오맵 위성사진, 그래픽 지수현 
산사태취약지역 B지번 인근의 또 다른 산사태취약지역. 이렇게 산사태취약지역이 산 한 가운데 지정된 경우 여러 방향으로 민가가 연결된다. 카카오맵 위성사진, 그래픽 지수현 

경북 안동시청 산림과 홍나영 주무관은 "산사태취약지역 근처에 구체적인 구역을 정해놓고 보호하는 것은 아니고, 민가가 있는 경우 인적 사항을 찾아보고 산사태가 우려될 때 문자를 보내는 식"이라고 말했다.

사방시설 설치율 낮아 대피 훈련 활성화해야

산사태취약지역의 두 가지 대책, '구조물 대책'과 '비구조물 대책'은 상호보완적이다. 사방시설이 미비해 구조물 대책이 작동하지 않는 곳에서는 비구조물 대책인 대피 시스템을 활성화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다.

실제로 사방시설 설치율은 낮다. 홍문표 의원실이 산림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산사태취약지역 2만 8천 194곳에 설치된 사방댐은 3천 696곳으로 설치율이 13%에 불과하다. 사방시설이 없다면 대피 훈련이라도 실시해야 하지만 평소 훈련이 제대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B 지번을 관할하는 안동시 풍천면 행정복지센터 정명근 주무관은 "대피 명령을 할 때 대피소를 안내하고 평소에는 딱히 하지 않았다"면서 "사전에 대피소를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실제 대피 상황에서 훨씬 효과가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산사태취약지역 제도의 불투명한 운영은 제도의 취지에도 어긋난다. 산사태취약지역을 지정하는 목적은 산사태를 예방해 인명과 재산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인명 피해를 예방하려면 주민의 협조가 필요한데도 정작 해당 지역 주민이 어디가 취약지역으로 지정됐는지, 자기 집이 영향 지역에 포함되는지 사전에 알지 못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종합적인 제도 정비가 필요한 이유다. 3편에서는 난개발로 산사태에 취약해지고 있는 수도권의 모습을 다룬다.

산림청에 따르면 올해 여름 산사태로 난 인명 피해는 총 18건이다. 13명이 숨지거나 실종·매몰됐고 5명이 다쳤다. 산사태는 매년 인명피해를 일으키진 않지만, 한 번 발생하면 큰 피해를 준다. 2020년에는 9명이 숨졌는데, 한 펜션에서 삼대가 매몰되는 끔찍한 사고까지 있었다.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의 산사태 발생 원인은 주로 집중호우다. 최근 들어 집중호우는 '극한 호우'로 바뀌어 가고 있다. 기후위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르면 이러한 극한 호우의 발생 횟수는 앞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기후위기로 인한 이전과는 다른 극한 호우 상황에서 한국은 산사태 피해를 예방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취재팀은 산사태 취약지역 제도부터, 수도권 인근의 산지 난개발 현장까지 커지는 산사태 위험에 우리 사회가 제대로 대처하고 있는지 점검했다. (편집자주)

<기사 차례>

① 관리 미흡한 산사태취약지역 제도

② 작은 마을이 사각지대에 놓였다…위험해도 방치

➂ 난도질 된 수도권 산, 산사태에 무방비 노출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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