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2023 대산농촌재단 장학생 하계연수

지난달 5일 오전 10시 경남 함안군 가야읍의 피카그린 농장. 구불구불하고 길쭉한 선인장과 작고 동그란 모양의 다육식물이 가득한 온실을 지나자 2000평 규모의 블루베리밭이 나왔다. 진초록색 이파리와 진보라색 블루베리 열매가, 막 잦아든 보슬비에 촉촉이 젖었다. 인접한 꽃밭에는 달리아와 칸나, 백일홍 등이 빨강, 노랑, 연분홍의 빛깔을 뽐냈다. 오르막길로 조금 더 가자, 푸른 잔디 위에 아담한 목조건물이 보였다. 카페와 목공·꽃꽂이 등의 수업 공간이 있는 곳이다. 블루베리 수확과 친환경 꽃꽂이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복합농업체험공간 피카그린은 정경숙(66) 대표와 남편 이광수(70) 씨, 아들 이상엽(37) 실장 등 가족이 운영한다.

대산농촌재단이 지난달 4일부터 3박 4일 동안 진행한 장학생 하계연수 일정의 하나로, 연수생 13명이 피카그린 등 농업농촌 혁신 현장을 탐방했다. 연수단은 응용생물학, 식량자원학 등을 전공하는 대학생 9명과 농업 전문 언론인을 꿈꾸는 대학원생 4명으로 구성됐다.

소비자가 직접 따서 다회용기에 담아가는 블루베리

경남 함안의 복합체험농장 피카그린의 다육식물 온실, 블루베리 농장과 수업공간, 꽃밭 등의 모습. 김지영 기자
경남 함안의 복합체험농장 피카그린의 다육식물 온실, 블루베리 농장과 수업공간, 꽃밭 등의 모습. 김지영 기자

“농민들은 농산물을 생산하는 것뿐만 아니라 탄소를 줄이고 산소를 생산하는 일을 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오히려 기후변화의 최전방에서 피해를 제일 많이 입고, 제일 애써서 싸우고 있거든요.”

이상엽 실장은 기후위기를 체감하는 농민으로서, ‘지속가능성’을 중요하게 고려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피카그린 농장은 블루베리를 ‘픽유어오운’(Pick Your Own) 방식으로 수확한다. 먹을 사람이 직접 따간다는 얘기다. 블루베리가 익는 6월이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미리 신청받고, 고객들이 직접 농장에 와서 블루베리를 수확하도록 한다. 이렇게 하면 농산물 포장과 유통 과정에서 생기는 탄소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농장에서는 일회용 포장 용기를 무료 제공하지 않고, 고객이 다회용기를 직접 가져오도록 안내한다. 쓰레기를 줄일 수 있고, 가족 단위 고객에게 자녀 교육 효과도 있을 것으로 기대해서다. 한 방문객은 “평소 혼자서 텀블러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생각을 했는데 농장에서 이런 노력을 하는 것을 보고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는 후기를 올리기도 했다. 개인 용기를 가져오지 않은 고객은 생분해되는 친환경 용기를 살 수 있다. 그 판매대금은 동물구조단체에 기부된다. 이 실장은 “단순히 농촌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 보호 등을 농업과 농촌의 가치로 포함하는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피카그린에서는 박과 식물인 수세미를 활용해 친환경 꽃꽂이 수업도 한다. 꽃을 고정하는 용도로 쓰이는 스펀지인 ‘오아시스’가 미세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환경오염을 일으키기 때문에, 자연산 수세미로 대체하는 것이다. 수업에서는 땅과 꽃의 생장 원리를 설명해 생태 보호 인식을 높인다. 농작물을 키우는 과정에서 농약을 쓰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는 이 실장은 “앞으로 비닐하우스를 줄이고 영구적으로 쓸 수 있는 시설을 만들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피카그린 농장의 사업 현황과 친환경 철학을 설명하는 이상엽 실장과 농장에서 제공한 비빔밥을 먹기에 앞서 음식 사진을 찍고 있는 연수생들. 비빔밥은 정경숙 대표가 누룩으로 만든 조미료를 사용해 요리했다. 김지영 기자
피카그린 농장의 사업 현황과 친환경 철학을 설명하는 이상엽 실장과 농장에서 제공한 비빔밥을 먹기에 앞서 음식 사진을 찍고 있는 연수생들. 비빔밥은 정경숙 대표가 누룩으로 만든 조미료를 사용해 요리했다. 김지영 기자

피카그린 농장은 1977년 이광수 씨가 가야읍의 옛 지명을 따 창업한 동동바구 농장을 2016년 서울 직장생활을 접고 합류한 이 실장이 개명한 것이다. ‘초록을 수확한다’(pick a green)는 뜻이다. 건강 문제로 귀향한 이 실장은 도시 사람들에게 농사를 통한 치유와 휴식을 제공하고 환경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열아홉 가구가 유기농으로 뭉친 산들바다공동체

지난달 6일 오후에는 연수생들이 전북 부안군 변산면의 산들바다유기농업영농조합법인(이하 산들바다공동체)으로 향했다. 공판장에 들어서는 길목에 넓은 논밭이 펼쳐져 있는데, 붉은색 깃발들이 ‘친환경 농지’임을 알리고 있었다. 항공방제를 할 때 이곳에는 농약을 뿌리지 말라는 의미라고 한다. 산들바다공동체는 정회원 열아홉 농가가 약 18만 평 농지에서 유기농 재배를 하고 있다. 국가가 인증하는 유기농은 농약을 거의 쓰지 않되, 화학비료는 일부 사용할 수 있는 재배 방식이다. 그러나 산들바다공동체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전혀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전북 부안군 변산면의 산들바다유기농영농조합 농지에 꽂힌 깃발. 친환경 농지이므로 드론 등을 이용한 항공방제 때 주의해 줄 것을 요청하는 의미다. 산들바다유기농영농조합 제공
전북 부안군 변산면의 산들바다유기농영농조합 농지에 꽂힌 깃발. 친환경 농지이므로 드론 등을 이용한 항공방제 때 주의해 줄 것을 요청하는 의미다. 산들바다유기농영농조합 제공

산들바다공동체가 이토록 엄격하게 유기농을 고집하는 이유는 농약과 화학비료가 토양을 오염시키는 문제를 심각하게 보기 때문이다. 농업을 살리려면 우리 토양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과거 농민회 활동에 참여했던 부안의 토박이 농민들부터 갖고 있었다고 한다. 조합 안에는 생산부터 가공, 처리, 저장 등 전 과정을 직접 할 수 있는 공장이 있다. 산들바다공동체는 농사를 짓는 1차 생산 외에 농산물을 가공하는 2차 생산에도 공을 들인다. 유기농으로 재배한 우엉, 작두콩 등을 공장에서 직접 가공해 우엉차, 작두콩차 등으로 납품한다. 이렇게 하면 가공품 자체로는 큰 이윤이 남지 않아도 생산원가를 보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2차 생산까지 하면서 부족해진 일손은 지역 주민들과 협력해 채워나간다.

산들바다유기농영농조합의 공장 내부 모습. 채소액을 상품으로 가공, 생산하는 과정이다. 산들바다조합은 제조공정과 관련해 해썹(HACCP), 즉 식품안전관리인증도 받았다. 박시몬 기자
산들바다유기농영농조합의 공장 내부 모습. 채소액을 상품으로 가공, 생산하는 과정이다. 산들바다조합은 제조공정과 관련해 해썹(HACCP), 즉 식품안전관리인증도 받았다. 박시몬 기자

이 공동체는 농사 경력과 관계없이 구성원이 원하는 작물과 생산량을 신청하고, 농사 규모가 작은 회원부터 약정량을 배분하는 방식으로 ‘상생과 연대’의 정신을 실천한다. 한살림생산자연합회장을 지낸 이백연(67) 전 산들바다공동체 이사는 “유기농을 가능케 한 것도 결국 이 공동체 정신”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 농지를 다 유기농화해야 한다는 원칙을 정할 때는 내부 논란이 굉장히 많았다”며 “논의를 통해 합의구조를 만들어가야 했는데 그러려면 서로에 대한 믿음이 꼭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산들바다공동체는 ‘한살림’이라는 소비자-생산자 협동조합에도 가입돼있어 절임배추, 벼, 시금치, 미니 단호박 등을 한살림 유통망을 통해 판매한다.

연수생인 임선주(23·전남대) 씨가 유기농업을 할 때 주변 관행농가에서 비산되는 농약이나 드론 방제 피해는 없는지 묻자 이 전 이사는 “우리나라 인증제도가 결과 중심이라 철저히 해도 조금만 농약 성분이 나오면 바로 인증취소가 된다”고 답했다. 이 전 이사는 “그래도 의도가 있었는지 아닌지를 포괄적으로 검증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고, 자체적으로도 농약이 넘어올 수 없게 둑을 세우거나 이격거리를 확실히 만드는 등의 노력을 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산들바다공동체의 이백연 전 이사가 대산농촌재단 연수생을 대상으로 강연하고 있다. 이 전 이사는 지속 가능한 농업경영모델을 제시한 공로로 제30회 대산농촌상 농업경영부문을 수상했다. 박시몬 기자
산들바다공동체의 이백연 전 이사가 대산농촌재단 연수생을 대상으로 강연하고 있다. 이 전 이사는 지속 가능한 농업경영모델을 제시한 공로로 제30회 대산농촌상 농업경영부문을 수상했다. 박시몬 기자

쌀 제품 브랜드화, 커피 찌꺼기 천연비료 협력도

지난달 4일 오전에는 연수단이 경기도 평택시 오성면 신리마을을 찾았다. 친환경 쌀을 재배하는 농가가 만든 오성 친환경 영농조합법인과 그 쌀을 가공해 빵, 차, 과자 등을 개발하는 미듬영농조합법인을 견학했다. 쌀 부산물을 활용해 쌀겨효소찜질, 아가동물 먹이주기 등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초록미소마을과 마을주민이 주주로 참여하는 농업회사법인 신리황금뜰 이야기도 들었다.

이 지역에서 3대째 농사를 짓는 전대경(53) 미듬영농조합 대표는 쌀 가공식품을 스타벅스, 뚜레쥬르, 씨지브이(CGV), 쿠팡, 마켓컬리 등에 납품해 쌀 소비 감소에 대응하고 있다. 쌀카스텔라, 먹물치즈치아바타 등으로 유명한 쌀빵 브랜드 ‘바비브레드’도 이 조합이 만들었다. 조합은 2009년 라이스칩이 스타벅스 메뉴에 선정된 것을 시작으로 14년째 스타벅스와 협업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15년에는 경기도 지역 농산물인 옥수수, 고구마, 감자로 구성한 ‘옥고감’ 제품을 스타벅스에 납품했다. 또 스타벅스에서 나오는 커피 찌꺼기를 지역 농업인에게 무상 제공하고, 커피를 천연비료로 쓴 쌀을 스타벅스에 다시 공급하는 순환 구조를 8년째 지속 중이다.

대산농촌장학생 연수단에게 경기도 평택시 오성면 신리마을의 농업법인과 상품을 소개하는 전대경 미듬영농조합 대표와 조합 브랜드인 바비브레드의 쌀빵 제품들. 김지영 기자
대산농촌장학생 연수단에게 경기도 평택시 오성면 신리마을의 농업법인과 상품을 소개하는 전대경 미듬영농조합 대표와 조합 브랜드인 바비브레드의 쌀빵 제품들. 김지영 기자

미듬영농조합은 신리마을과 관련된 전시와 출판 등 지역문화 활동도 20년 동안 꾸준히 해오고 있다. 전 대표가 기획해 2019년 출간된 <쌀을 닮다>는 마을주민 인터뷰와 신리마을 토속 요리법, 신리마을 역사 이야기를 사진작가 강진주, 여행작가 이현주가 담았다. 이 책은 미식 책 분야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구르망 월드 쿡북 어워드’에서 1등상을 받기도 했다. 전 대표는 현재 쌀의 생장에 관한 그림책 <쌀이 온다> 출판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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