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인터뷰] 김태원 송학 학교 발전위원회 위원장

비가 내리면, 소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만든 농다리가 물살에 떠내려갔다. 그럴 때마다 윗마을 남학생들은 바지를 걷어 올려 아랫마을 여학생들을 등에 업고 불어난 시냇물을 건넜다. 김태원(64) 씨가 충북 제천 송학중학교를 다니던 무렵엔 그런 우정과 낭만이 있었다. 지역의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어울려 얼마든지 잘 지낼 수 있었다. 그 시절엔 송학중학교의 학급 당 학생 수가 180명을 넘었다.

그것은 옛날 일이다. 2022년 가을, 송학중은 폐교 위기에 처했다. 당시 송학중에 재학 중인 1~2학년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2년간 신입생을 단 한 명도 받지 못한 것이다. 3학년 학생은 단 두 명이었다. 그들마저 졸업하는 2023년 2월이 되면, 한 명의 재학생도 없는 송학중은 자연스레 폐교 절차를 밟게 될 것이었다.

그랬던 학교가 되살아났다. 2023년 3월, 무려 6명의 신입생이 송학중을 찾아왔다. 기적 같은 일의 중심에는 송학중학교의 교직원들이 있었다. 그리고 김태원 씨가 있었다. 그는 ‘송학 학교 발전위원회’의 위원장이다. 처음에는 얼떨결에 직책을 맡았지만, 본업인 농사일까지 미뤄두고 ‘학교 부활’을 위해 나섰다. 재미가 붙었고, 성과도 생겼다. 작은 학교는 폐교당하지 않았다.

김태원 송학 학교 발전위원장이 충북 제천시 송학중학교 교정에 서서 웃고 있다. 문준영 PD
김태원 송학 학교 발전위원장이 충북 제천시 송학중학교 교정에 서서 웃고 있다. 문준영 PD
제천시 송학면에 위치한 송학중학교의 본관. 문준영 PD
제천시 송학면에 위치한 송학중학교의 본관. 문준영 PD

학생이 사라진 지역 학교

2022년 가을 무렵만 해도, 농촌 마을의 작은 학교가 문 닫는 일은 그리 놀라운 소식이 아니었다. 한국교육개발원의 자료를 보면, 2000년도 중학교 학급당 학생 수는 38명이었는데, 2022년도에는 25명까지 줄었다.

학생 수가 줄어들자 문을 닫는 학교가 생겨났다. 충북교육청이 관련 통계를 집계한 1970년 이후 지금까지 충북 지역에서 문을 닫은 학교는 모두 261개교다. 제천시에서만 지금까지 39개 학교가 문을 닫았다.

“그 전부터 (인구가) 서서히 줄어갔는데, 그걸 사람들이 체감하지 못한 거죠. 아니, 그런 일에 관심이 없었다고 해야겠네요.” 5월 20일 <단비뉴스>를 만난 김 씨가 말했다.

송학면의 주민들이 기억하는 송학중은 작은 학교가 아니었다. 송학중은 1971년 개교 이래 지금까지 6021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송학면 주민의 대부분이 이 학교를 졸업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들 사이에서 폐교 위기감이 처음 번진 것은 2022년 봄이었다. 인근에서 유일한 초등학교인 송학초등학교 6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한 중학교 배정 예비조사 결과, 송학중으로 진학하려는 학생이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해진 이유는 복합적이었다. 우선 지역의 학령인구가 감소했다. 몇 명 남지 않은 아이들은 더 좋은 학습 환경을 제공하겠다는 부모의 손에 끌려 마을을 떠났다. ‘학구제’도 문제였다. 송학중은 송학면 무도1리와 무도2리에 거주하는 학생만 받을 수 있었다. 반면, 무도1리와 2리의 학생에겐 다른 선택권이 있었다. 그들은 송학중에 진학하지 않고, 제천 시내의 다른 중학교에 입학할 권리를 갖고 있었다. 학구제는 작은 마을을 근거로 한 중학교에 매우 불리했다.

입학 희망자가 없다는 예비조사 결과가 나온 2022년 봄, 송학면 주민들과 송학중 동문 사이에서 ‘내년에 학교 문을 닫는다’라는 소문이 퍼졌다. 추진력이 강한 사람을 찾아 학교를 살릴 작은 위원회를 마련하자는 이야기를 누군가 꺼냈다. 송학중을 졸업한 이들은 정년퇴직 후 농사를 지으며 지내던 김태원 씨를 적임자로 떠올렸다.

작은 학교의 지킴이가 된 토박이

김 씨는 제천에서 태어나 송학초등학교, 송학중학교, 제천고등학교를 나왔다. 고등학교 졸업 직후, 시험을 치러 제천 시청의 공무원으로 일했다. 제천 시청에서 만 40년을 근무하고 나이 예순에 정년퇴직했다. 제천을 떠났던 유일한 시기는 군 복무 기간뿐이다. 그야말로 ‘제천 토박이’다. “아마 그게 (학교) 발전위원장으로 추대된 이유인 것 같다”고 말하며 김 씨는 웃었다.

2022년 여름 무렵, 김 씨는 모교인 송학중학교 근처에 위치한 집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다. 그저 평화롭게 소일하는 은퇴 생활이었다. 어느 날, 동문 친구들이 그를 제천 시내의 식당으로 불러냈다.

예닐곱 명이 모인 자리에서 그들은 ‘학교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위원회를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김 씨는 단칼에 거절했다. 학교 동문 가운데 유명한 사람에게 맡기라고 그들에게 말했다.

김 씨는 퇴임 직전, 제천시 의회사무국 국장으로 일했다. 그에 앞서 시청의 여러 부서에서 실무를 맡았다. 폐교 위기에 놓인 학교를 되살리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정책적 논쟁을 거치게 될 것이고, 적지 않은 예산도 필요했다. 그런 일을 감당하려면 고위 정치인 출신이 적임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적어도 자신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그 책임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동문 친구들이 자꾸 권해도 김 씨는 고개를 가로젓기만 했다.

그 마음을 흔들어 놓은 후배가 있었다. 거절하는 김 씨에게 어느 후배가 말했다. “위원장 자리를 안 맡을 거면, 그냥 이사 가세요.” 물론 농담이었지만, 그 말이 김 씨의 마음에 걸렸다. 한 지역에서 평생을 살았는데 정작 지역을 위한 일을 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진 재주는 없지만, 행정은 조금 해봤으니까, 지역 주민들과 함께 뭐라도 해보면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결국 승낙을 했죠.” 그 자리를 떠올리며 김 씨가 말했다.

김태원 송학 학교 발전위원장이 사무실 벽면에 걸려 있는 송학중학교 동문회 사진을 가리키고 있다. 문준영 PD
김태원 송학 학교 발전위원장이 사무실 벽면에 걸려 있는 송학중학교 동문회 사진을 가리키고 있다. 문준영 PD

이왕 맡은 일이라면 최선을 다하겠다고 김 씨는 다짐했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사람들을 모아 회의를 하려니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회의했다. 어느 날엔 회의가 길어졌다. 식당은 문을 닫았다. 장맛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24시간 편의점이 눈에 들어왔다. 김 씨와 위원회 간부들은 편의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커피를 사고, 편의점 주인에게 양해를 구한 뒤 편의점 의자에 앉아 회의를 이어갔다. 사정을 뒤늦게 알게 된 이현호 송학중 교장이 학교의 빈 교실을 제공해 주기 전까지, 송학 학교 발전위원회의 회의실은 식당이었고, 길가의 편의점이었고, 빵집이었다.

학교를 지켜라

2022년 8월 18일, 송학 학교 발전위원회가 정식으로 발족했다. 9월이 되자 김 씨는 이현호 송학중 교장과 함께 송학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대일 홍보를 시작했다. 시간이 맞으면 두 사람이 함께, 때로는 교직원들과 함께 학생 가정에 직접 방문했다, 이현호 교장은 학부모에게 진심 어린 편지를 전달했고, 김 씨는 장학금을 약속했다.

그 장학금은 송학 학교 발전위원회가 마련한 돈이었다. 김 씨를 비롯한 위원회 사람들이 동분서주하며 모금하여 ‘송학 학교 발전 기금’을 마련했다. 송학초·중학교의 동문은 물론, 송학면의 주민들, 심지어 인근 식당의 사장을 찾아가 모금을 부탁했다. 송학산 중턱에 있는 사찰인 강천사는 무려 5000만 원을 기부했다. 작은 돈도 모았다. 모금 계좌가 적힌 현수막을 내걸었더니, 1만 원짜리 기부금이 들어왔다. 그조차 감사했다고 김 씨는 말했다. “만 원이든 십 원이든 정말 감사하죠.”

제천시 송학면 길거리에 송학초·중학교 발전기금을 모금한다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문준영 PD
제천시 송학면 길거리에 송학초·중학교 발전기금을 모금한다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문준영 PD

모금 활동 외에도 김 씨는 다른 학교 사례를 인터넷으로 검색해 정보를 수집했다. 충북 괴산과 제주도의 학교를 직접 방문했다. 이를 바탕으로 사례 발표회를 열어, 폐교를 막은 우수 사례를 동문 및 교직원들과 공유했다. 제천 시청 공무원들과 여러 차례 협의하여, 학교 통학 버스도 개통했다.

이런 활동에는 비용이 들어간다. 서류를 출력하고, 현수막을 제작하고, 모범 사례를 찾아 다른 지역을 찾아가는 일에는 시간과 에너지는 물론 적지 않은 돈이 필요했다. 그 일을 김 씨는 무보수로 감당하면서, 오히려 자신의 주머니를 털었다. 지난해 여름 이후 지금까지 학교 발전위원회와 관련한 업무로 김 씨가 지출한 돈은 약 1500만 원이다.

“언젠가 꼽아보니, 한 달에 25일 동안 발전위원회 일로 활동했어요. 그러다 보니 제 돈을 많이 썼죠. 부자는 아니에요.” 부자는 아니지만, 이 일은 반드시 투명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래서 어수룩하게 돈을 받을 수도, 쓸 수도 없다. 발전위원회의 운영비로 사용하라고 돈을 건네는 이들을 김 씨는 모두 거절했다.

대신 모든 돈은 학교로 간다. 발전기금을 모으는 일은 발전위원회가 맡았지만, 그 돈은 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송학중학교로 바로 전달되고 있다. 그 돈으로 학교는 전교생에게 각자 월 50만 원씩 지급할 장학금을 마련했고, 방과 후 활동을 위한 당구장이나 스크린 골프 연습장도 만들었다.

이제 송학중에는 6명의 1학년 아이들이 있다. 11명의 교직원 수와 비교하면 여전히 많지 않은 학생이지만, 그들 덕분에 학교는 활기를 찾았다. 체육 시간이 되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운동장에 울려 퍼진다. 김유미 송학중 교사는 “창밖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학교가 살아났다는 것을 실감한다”고 <단비뉴스> 기자에게 말했다.

송학중학교 학교 내부 모습이다. 문준영 PD
송학중학교 학교 내부 모습이다. 문준영 PD

학교가 사라지면 마을은 어떡하나요

송학중을 살리려는 김 씨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이 없지는 않았다. 작은 학교를 폐교하는 게 경제적 이치에 맞는다는 이유였다. 김 씨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지역의 학교에서 지역의 미래를 보았다.

“모교보다는 송학면을 생각했어요. 지금 송학중이 폐교되면 젊은 사람들이 송학면에 더 안 들어올 테니까요.” 김 씨가 보기에 학교는 지역 재생의 핵심 고리다. 학교를 살려서 지역에 인구를 유입시키고, 나아가 지역을 되살리자는 것이 김 씨의 계획이고 소망이다.

송학중학교 정문에 서 있는 김태원 송학학교발전위원장. 문준영 PD
송학중학교 정문에 서 있는 김태원 송학학교발전위원장. 문준영 PD

신입생을 성공적으로 유치해 올해를 무사히 넘겼지만, 그렇다고 학령인구 감소라는 근본적 문제까지 해결한 것은 아니다. 송학중과 송학면의 미래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 김 씨는 충북 괴산의 백봉초등학교를 벤치마킹하려 한다. “그 학교는 전학 오는 가족에게 집을 제공해 주고 있어요. 송학면에 주거용 건물이 늘어나 더 많은 사람을 수용하고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게 되면 지금보다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죠.” 최근 그는 시청에 주거용 건물을 지어달라고 요청하는 진정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송학중은 되살아났지만, 김 씨의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다음 단계를 향해 묵묵히 움직이고 있다. 6월 27일 <단비뉴스>와 통화한 김 씨는 여전히 바빴다. “학생들은 요즘 방과 후 수업을 하고 있어요. 저는 29일에 교육감을 만나고요, 7월에는 시장님을 만나러 가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요즘도 휴대전화를 머리맡에 두고 잔다. “내 전화는 24시간 개방되어 있어요, 학교와 관련된 일이라면 언제든지 연락받을 수 있도록 열어둬요.” 그 소망과 계획을 따라 학교와 지역을 살리고 싶다면, 농협은행 421023-51-045751로 후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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