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인터뷰] 정은령 SNU팩트체크센터장, 글렌 케슬러 워싱턴 포스트 ‘더 팩트 체커’ 편집장

상(上) : 전 세계 사실 추적꾼들이 서울에 모인 이유

지난달 28일부터 30일까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글로벌 팩트 10’(Global Fact 10)이 열렸다. ‘글로벌 팩트’는 전 세계 ‘팩트체커’(fact checker·사실 확인자)가 모여 지식을 공유하고 협력하는 컨퍼런스다. 올해로 열 번째를 맞은 ‘글로벌 팩트 10’은 서울대학교 언론정보연구소 산하 SNU팩트체크센터와 국제팩트체킹연맹(IFCN) 공동 주최로 열렸다. 미국의 비영리 언론 연구소인 포인터연구소 산하에 있는 국제팩트체킹연맹은 전 세계 팩트체커를 연결하는 유일한 조직이다. SNU팩트체크센터는 19대 대선을 앞두고 2017년에 설립되었다. 현재 32개의 언론사와 제휴를 맺고 있다.

<단비뉴스>는 ‘글로벌 팩트10’ 기간 동안 두 명의 팩트체크 전문가를 만나 인터뷰했다. 정은령 센터장은 2017년 SNU팩트체크센터 설립 당시부터 센터장을 맡아 ‘글로벌 팩트10’을 공동 주최할 수 있을 수준으로 키워냈다. 글렌 케슬러(Glenn Kessler·63세) 기자는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팩트체크 코너인 ‘더 팩트 체커’(The Fact Checker)의 수석 기자와 편집장으로 활동해왔다. 그는 미국 정치 분야 팩트체크의 선구자로 불린다.

자국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팩트체커들의 연대의 장, ‘글로벌 팩트’

정은령 센터장은 동아일보에서 20년 가까이 기자 생활을 한 후 미국 메릴랜드 주립대에서 언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터뷰는 지난달 29일 행사장 내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이선재 기자
정은령 센터장은 동아일보에서 20년 가까이 기자 생활을 한 후 미국 메릴랜드 주립대에서 언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터뷰는 지난달 29일 행사장 내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이선재 기자

확증 편향은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만 믿는 현상이다. 최근 소셜 미디어의 확산으로 사람들의 확증 편향은 더 강해졌다. 일례로 코로나19 백신 개발 당시,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백신 음모론이 확산했다. 백신을 맞으면 조종 당한다는 음모론까지 나돌았다. 여러 반박 자료가 나왔지만, 음모론을 믿는 사람은 자기 생각을 쉽게 바꾸지 않았다. 팩트체커는 이 확증 편향을 깨는 데에 힘을 쏟는다. 소셜 미디어에서 나도는 가짜 정보들을 검증하고 진짜 사실이 무엇인지 차근차근 증명한다.

정치인의 말도 마찬가지로 검증 대상이다. 어떤 의견이 틀렸음을 증명해야 하니, 대부분 팩트체커는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한다. 실제로 공격받은 팩트체커도 있다. 악성 댓글과 메일에 시달린다거나 개인 신상정보가 온라인에 나돌고, 심한 경우 물리적 폭력까지도 당한다. 정 센터장은 “‘글로벌 팩트’는 자국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팩트체커들이 모여 서로 연대하고, 힘을 얻어가는 장”이라고 설명했다.

SNU팩트체크센터는 제휴 언론사들의 사실 검증 보도를 모아놓은 일종의 팩트체크 플랫폼이다. 사진에 있는 것처럼 정치인 등의 발언을 언론사들이 검증한 내용을 한꺼번에 보여준다. 참여하는 언론사들이 팩트체크의 기본 원칙을 준수하는지 모니터링도 한다. 출처 SNU팩트체크센터 갈무리
SNU팩트체크센터는 제휴 언론사들의 사실 검증 보도를 모아놓은 일종의 팩트체크 플랫폼이다. 사진에 있는 것처럼 정치인 등의 발언을 언론사들이 검증한 내용을 한꺼번에 보여준다. 참여하는 언론사들이 팩트체크의 기본 원칙을 준수하는지 모니터링도 한다. 출처 SNU팩트체크센터 갈무리

이번 ‘글로벌 팩트 10’에는 전 세계 70여 개국에서 온 약 550명의 사람이 모였다. ‘글로벌 팩트’에선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계를 형성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플랫폼 기업들과 팩트체커들과의 대화도 여럿 진행됐다. 질의응답 시간에는 다양한 펙트체커가 자국의 상황을 공유하며 다른 나라에서 온 팩트체커와 함께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했다. 컨퍼런스가 끝나 자국으로 돌아가도 이 연대는 계속되며, 지속적인 팩트체킹을 할 힘을 주는 것이다.

아시아만의 특수성을 담으려고 노력한 ‘글로벌 팩트 10’

이번 ‘글로벌 팩트 10’은 아시아에서는 처음 열리는 행사였다. 정 센터장은 “‘글로벌 팩트’가 처음 아시아에서 열린 만큼 아시아만의 경험이 드러나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아시아 국가들은 대부분 식민 통치와 군부 독재를 경험했다. 식민 통치와 독재 아래서 객관성과 사실성을 추구한 경험이 있는 나라와 그런 경험이 없는 나라는 다르다. 한국은 과거 일제 식민 통치 시절의 신문지법은 물론 군부 독재 하의 언론 통폐합 등 다양한 언론 탄압을 경험했다.

지금도 언론 탄압은 현재 진행형이다. 중국, 특히 홍콩의 상황이 대표적이다. 정 센터장은 “(이런 억압은) 결코 과거의 일만은 아니다.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겪고 있는 것이라서 서로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래서 아시아 패널들이 좀 더 무대에 올라갈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컨퍼런스 이튿날인 29일에 열렸던 “중국요인, 국가선전 및 반중정서의 복잡성을 해체하다”라는 제목의 분과회의에는 홍콩, 일본, 대만 출신 팩트체커가 연사로 나섰다. 같은 날 “잔해 속 진실”이라는 제목의 전체 회의 세션에는 두테르테에 맞선 필리핀 팩트체커가 연사로 참여했다.

과거와 현재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은 왜 중요할까? 정 센터장은 이런 경험을 공유하고, 공감하면서 “진실을 다루는 저널리스트에게는 항상 위험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고 말했다. 진실을 다루는 일이 위험하다면, 역설적으로 그만큼 그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다.

한국의 팩트체크 수준은 어느 정도?

한국은 팩트체크의 후발 주자다. 미국은 1980년대부터 팩트체킹을 해왔다. 2017년 SNU팩트체크센터 설립 이전, 언론사들이 개별적으로 팩트체크를 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활발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래도 “6년 전에 비하면 적어도 센터와 제휴한 언론사들의 팩트체크 수준은 상당히 높아졌다”는 것이 정 센터장의 생각이다. 2017년 처음 SNU팩트체크센터에 올라온 제휴 언론사의 팩트체크의 근거 자료는 1개 정도였다. 현재 센터 제휴 언론사의 팩트체크 콘텐츠가 제시하는 근거 자료는 평균 7개까지 늘었다.

정 센터장은 “여전히 코멘트 몇 개에만 의존해서 기사를 쓰는 경우도 많다”면서 팩트체크에 더 깊은 취재가 뒤따라야 한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몇 개의 코멘트만 인용해 진위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취재를 통해 종합적인 사실 확인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는 “취재원이 누구인지, 어떤 취재 과정을 거쳤는지 밝혀 투명성을 확보하고 왜 이것을 취재하게 되었는지 맥락을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셜 미디어상의 허위 조작 정보, 무시해서는 안 된다”

글렌 케슬러 편집장은 2011년 ‘더 팩트 체커’ 코너를 개설하기 이전에는 10년 동안 워싱턴포스트의 외교 분야 담당 기자로 활동했다. 인터뷰는 ‘글로벌 팩트 10’ 마지막 날인 지난달 30일 진행했다. 조벼리 기자
글렌 케슬러 편집장은 2011년 ‘더 팩트 체커’ 코너를 개설하기 이전에는 10년 동안 워싱턴포스트의 외교 분야 담당 기자로 활동했다. 인터뷰는 ‘글로벌 팩트 10’ 마지막 날인 지난달 30일 진행했다. 조벼리 기자

글렌 케슬러 편집장은 미국 팩트체크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본인만큼 오랫동안 팩트체크를 해온 사람은 거의 없다고 자부할 정도다. 특히 정치 분야 팩트체크에 강하다. <워싱턴포스트>의 ‘더 팩트 체커’는 2011년 만들어졌다. 그 시작은 2008년 미국 대선이었다. 케슬러 편집장은 미국 대선을 검증하기 위한 일회성의 팩트체크 코너를 신설했다. 그런데 선거가 끝난 뒤에도 팩트체크 코너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큰 성공이었다. 당시 워싱턴 포스트 편집장이 고정 코너로 만들 것을 제안했고, 그렇게 만든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런 그에게도 최근 몇 년간의 언론 환경 변화는 낯설다. 그는 “2011년 팩트체크 코너 신설 당시에도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있었다”면서 “그때도 허위 조작 정보가 소셜 미디어에서 떠돌았지만 지금 수준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팩트체크의 방향도 달라졌다고 덧붙였다. 예전에는 정치인들의 말만 검증하면 됐지만, 이제는 소셜 미디어의 정보들을 검증해야 한다. 페이스북, 트위터는 물론 틱톡, 인스타그램, 왓츠앱 등 여러 통로로 허위 조작 정보가 퍼지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글렌 케슬러 편집장이 ‘글로벌 팩트 10’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Photo Credit The Poynter Institute and the IFCN
지난달 28일 글렌 케슬러 편집장이 ‘글로벌 팩트 10’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Photo Credit The Poynter Institute and the IFCN

허위 조작 정보를 이용하는 정치인들

더 큰 문제는 정치인들이 소셜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가짜 정보를 퍼뜨린다는 점이다. 케슬러 편집장은 지난달 30일 오전 인터뷰 직전에 열린 “브라질리아 및 의회 의사당 점거 폭동 보도의 교훈”이라는 분과회의에 연사로 나서 소셜 미디어의 허위 조작 정보가 어떻게 정치적 폭동을 부추겼는지 설명했다.

2021년 미 의회 폭동 발발 전,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선거가 조작되었다는 허위 조작 정보를 계속 올렸다. 케슬러 편집장은 “미 의회 폭동에서 기소된 사람 중 650명은 극단주의 단체 소속이 아닌 일반인이었다”면서 “한 일반인은 허위 조작 정보를 지속해서 올렸던 트럼프 전 대통령을 탓하는 편지를 판사에게 보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일반인들이 소셜 미디어 속에서 군중 심리에 휩쓸렸다는 것이다. 허위 조작 정보의 확산이 잘못된 믿음으로 이어졌고, 이는 결국 미 의회 폭동이라는 실질적인 테러 행위로 이어졌다. 미국 만의 상황이 아니다. 지난 1월 브라질에서도 대선 결과에 불복한 전임 대통령 지지자들이 폭동을 벌였다.

법을 만들어 팩트체커를 억압하려는 시도도 있다. 케슬러 편집장은 “인도에서는 팩트체커들이 활동하려면 정부에 의무적으로 등록하게 해서 정부 지원만을 받는 법안이 추진됐었다”며 “많은 팩트체커는 해외 민주주의 단체들로부터 지원금을 받는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해외의 자금 지원을 받지 못한다”며 팩트체커 등록제는 일종의 ‘블랙리스트’와 같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근거한 토론 어려워…팩트체커의 역할 더 중요해져”

정은령 센터장과 케슬러 편집장 모두 “현재 소셜 미디어에서 나도는 허위 조작 정보는 교묘하게 잘 편집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정 센터장은 “허위 조작 정보라는 것이 완전히 100% 거짓말이라기보다는 90% 정도의 사실에 교묘하게 맥락을 뒤섞어서 대중을 현혹한다”고 말했다. 케슬러 편집장도 “과거에는 모두가 같은 뉴스를 봤다. 어떤 신문은 진보적, 어떤 신문은 보수적이었을지라도 정보의 일관성은 담보되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내가 원하는 대로 소셜 미디어 팔로우를 설정할 수 있다. 왜곡된 세계관을 형성하는 음모론만 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은령 센터장은 “(허위 조작 정보 확산으로) 사실에 근거한 토론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은 민주주의에 분명한 위협”이라고 말했다. 이럴수록 팩트체커의 역할은 중요해진다. 케슬러 편집장은 “(팩트체크를 할 때) 큰 물줄기에 종이로 만든 조각배를 띄워 보내는 심정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라면서, 그런데도 “팩트체커는 사람들에게 발언의 진짜 맥락과 내용을 이해시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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