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인터뷰] 헤일리 윌리스 뉴욕타임스 시각탐사팀 기자

홍콩에 있던 <뉴욕타임스> 아시아 지부가 지난 2021년 서울로 이전했다. ‘홍콩 민주화 시위’가 폭력적으로 진압된 이후 미국 언론사가 홍콩에서 자유롭게 취재·보도할 수 없는 환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시아 지역을 취재하는 <뉴욕타임스> 기자들은 서울에 모이게 되었다. 시각탐사팀(visual investigation)의 헤일리 윌리스(Haley Willis·25) 기자도 마찬가지였다.

헤일리 기자는 <단비뉴스>가 지난 5월 ‘새로운 방법과 형식으로 새로운 보도 장르를 열다’를 통해 소개한 피버디 수상작 ‘분노의 날’을 공동으로 취재·보도했다. 25세의 젊은 나이에 벌써 두 개의 퓰리처상과 한 개의 피버디 상을 받았다. <단비뉴스>는 그를 만나 어떻게 기자가 되었는지, 시각탐사팀이 추구하는 저널리즘이 무엇이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물었다.

뉴욕타임스 아시아 지부는 서울시 종로구의 SC제일은행 본점 건물 12층에 있다. 아시아 지역을 취재하는 30여 명의 기자들이 일한다. 그 건물 1층 로비에서 헤일리 기자를 만났다. 정호원 PD
뉴욕타임스 아시아 지부는 서울시 종로구의 SC제일은행 본점 건물 12층에 있다. 아시아 지역을 취재하는 30여 명의 기자들이 일한다. 그 건물 1층 로비에서 헤일리 기자를 만났다. 정호원 PD

인권 연구소의 학생, 저널리스트가 되다

헤일리 기자는 스스로 말하길 “평범하지 않은 경로를 통해” 기자가 됐다. 그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UC Berkeley)에서 사회학과 미디어를 전공했다. 처음에는 인권 문제에 관심을 뒀다. 다니던 학교의 로스쿨 산하 인권연구소에서 3년 동안 조교로 일했다. 인권 침해가 발생한 현장의 영상을 시간 순서대로 배치하고 위성사진을 분석하는 작업을 주로 맡았다. 시각 분석 작업을 바탕으로 인권 단체인 국제 엠네스티와 함께 인권 감시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러던 2019년 <뉴욕타임스>의 시각탐사팀에서 1년짜리 ‘펠로우십’(fellowship·연구원)을 시작했다. 1년간의 ‘펠로우십’을 마치고 2020년부터 <뉴욕타임스> 시각탐사팀의 영상 기자(video journalist)가 되었다.

인권 운동과 언론의 차이

올해로 4년 차 기자가 된 그는 “세상이 더 좋게 바뀔 것이란 희망”을 갖는 것이 인권 운동과 언론, 두 분야의 공통 목표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는 “최종 결과물을 어떤 목적으로 만드는지에 차이가 있다”라고 말했다. 인권 운동은 어떤 사안에 관해 특정한 관점을 갖고 접근한다. 직접적인 행동의 변화를 끌어내기 위해 그는 인권 침해 보고서를 작성했다.

헤일리 기자는 지난 6월 한국을 찾았다가 8월 초에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번 방문에는 한국계 미국인인 어머니와 함께 했다. 정호원 PD
헤일리 기자는 지난 6월 한국을 찾았다가 8월 초에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번 방문에는 한국계 미국인인 어머니와 함께 했다. 정호원 PD

저널리즘은 다르다. 기사는 행동의 변화를 직접 촉구하지 않는다. 그는 기후위기를 예로 들었다. “기후위기가 심해지고 있으니 환경 보호를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운동이다. 이에 비해, “해양에 쓰레기를 버리는 기업이 있다.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는 기후위기와 관련 있다”라고 상황을 정확히 짚어주는 것이 저널리즘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선 언론이 독립적이어야 한다. 만약 언론이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이지 않고 종속되면 특정한 관점을 가질 수 있다. 관점을 가지면 치우치게 된다. 치우치면 정확한 사실을 밝혀내지 못한다. 그는 “(저널리즘에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독자 혹은 시청자가 잘 알 수 있도록 (사실을)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그가 사회 운동보다 저널리즘을 더 좋아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영향력이다. 사람들이 기사를 읽으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도록 돕는 점이 좋다고 그는 말했다. 예를 들어, 2021년 5월 헤일리 기자는 아프리카의 모잠비크의 상황을 보도했다.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IS(이슬람국가)가 모잠비크를 공격한 후, 수천 명의 민간인이 곤궁한 생활에 처한 상황을 보여준 보도였다. 그는 “아마 그 보도를 통해 모잠비크라는 나라의 이름을 처음 들어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보도를 통해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간다는 점이 (저널리즘의)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새로운 취재 보도의 방법

국제 이슈는 언제나 그의 흥미를 자극했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이슈를 외국인이 잘 보도하는 것은 힘들다. 보도 경쟁에서도 우위를 차지하기 힘들다. 모든 나라에는 그 지역을 잘 알고 있는 숙련된 저널리스트들이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취재·보도 방법은 포화 된 국제뉴스 시장의 돌파구가 되었다. <뉴욕타임스>의 시각탐사팀은 ‘오픈 소스 저널리즘’(Open Source Journalism)을 추구한다. 인터넷에 이미 공개된 정보를 다양하게 활용해 정보를 얻는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사진과 영상부터 경찰의 무전 기록까지 인터넷으로 찾을 수 있다. 구글의 위성사진 서비스인 ‘구글 어스’(Google Earth)도 활용한다. 인터넷 정보를 활용하기 때문에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국제적 이슈를 보도할 수 있다.

헤일리 기자는 이런 취재 방식에 대해 “인터넷의 어디에서 정보를 찾을 수 있는지, 그런 정보를 어떻게 연결할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에서 폭탄이 터진 영상을 확보했다면, 그 영상 안에서 특징적인 건물을 포착한다. 그 건물을 ‘구글 어스’에 검색해 위성사진을 확인한다. 영상 안에 찍힌 건물과 폭탄과의 각도를 파악해 어디서 정확히 폭탄이 터졌는지 확인할 수 있다.

헤일리 기자는 인터넷 공개 정보를 활용하는 법을 직접 보여줬다. 만약 케냐 나이로비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유튜브에 ‘Nairobi dash cam’(나이로비 블랙박스 영상)을 검색한다. 짧게는 1분, 길게는 몇십 분 단위의 블랙박스 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와 있다. 현지인들이 촬영한 이런 영상을 통해, 기자는 현장을 직접 가보지 않고도 기본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정호원 PD
헤일리 기자는 인터넷 공개 정보를 활용하는 법을 직접 보여줬다. 만약 케냐 나이로비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유튜브에 ‘Nairobi dash cam’(나이로비 블랙박스 영상)을 검색한다. 짧게는 1분, 길게는 몇십 분 단위의 블랙박스 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와 있다. 현지인들이 촬영한 이런 영상을 통해, 기자는 현장을 직접 가보지 않고도 기본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정호원 PD

‘오픈 소스 저널리즘’이 현장 직접 취재를 배척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를 겸한다. 가령 우크라이나 부차 민간 마을에서 있었던 러시아 군의 대학살을 자세한 증거와 함께 폭로한 <뉴욕타임스>의 보도는 현장 취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헤일리 기자는 “구글에 공개된 폐쇄회로화면(CCTV)으로도 (학살 현장을) 볼 수 있었지만, 이 보도에서는 현장에 있던 동료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CCTV 영상을 수집한 것이 결정적이었다”며 현장 취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기사는 올해 퓰리처상 국제 보도부문에서 수상했다.

열린 팀 문화

발품을 파는 전통적 취재 방법을 벗어나 인터넷의 무수한 정보를 찾아다니는 새로운 방식은 ‘열린 조직 문화’를 바탕으로 구현된다. 헤일리 기자는 자신이 소속한 시각탐사팀의 장점으로 “자유로운 소통”을 꼽았다. <뉴욕타임스> 시각탐사팀에서 일하는 저널리스트는 15명이다. 취재기자는 물론 위성사진 분석가, 그래픽 디자이너, 비디오 편집자가 함께 일한다. 하나의 보도에 10명 정도가 참여한다. 팀 외곽에서 보도를 돕는 이들까지 합하면 40여 명이 함께 일할 때도 있다. 각자의 개성이 강하지만, 모든 팀원이 밀착해 일한다. 밀착 협력을 위해 자유롭게 소통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자유롭게 서로 묻고, 돕고, 배운다.

그 덕분에 <뉴욕타임스> 시각탐사팀은 짧은 시간 동안 탁월한 성취를 이뤘다. 2017년 팀이 만들어진 이후 지금까지 4개의 퓰리처상, 4개의 에미상, 1개의 피버디 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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