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초·중등 교차수업 위해 교원자격제도 개선 필요

충북 제천시에 있는 청풍초중학교는 2004년부터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통합해 운영하고 있다. 조벼리 기자
충북 제천시에 있는 청풍초중학교는 2004년부터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통합해 운영하고 있다. 조벼리 기자

초등학교와 중학교, 중학교와 고등학교, 심지어는 초·중·고를 통합해서 운영하는 학교들이 있다. 이른바 ‘통합운영학교’다. 통합운영학교에 해당하는 초·중학교, 중·고등학교, 초·중·고등학교는 전국에 118개교가 있다. 주로 농어촌 면 지역이나 도서벽지 소재 학교다. 학령인구가 감소하면서 지역에 있는 소규모 학교들이 존폐 위기에 놓였다. 학교급이 다른 둘 이상의 학교를 통합해서 학교 운영을 효율화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이 1997년 초·중등교육법에 만들어졌다. 이 조항을 근거로 1998년부터 통합운영학교 8개교가 출범했다.

통합운영학교 중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통합한 초·중학교는 전국에 60개교가 있다. 그런데 중·고등학교와 달리 초·중학교는 학교급에 따라 교원자격제도가 다르다. 현행법상 교원자격이 다른 교원은 교차지도가 불가능하고, 교육과정도 달라 통합교육이 어렵다. 초·중 통합운영학교의 교육과정 통합을 위한 정책 마련은 답보 상태다. 학교를 통합할 수 있는 근거는 만들어 놓고 통합 운영을 위한 실질적인 제도는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다.

전국 초·중학교 60곳, 통합교육과정 운영 실태는?

<단비뉴스>는 전국 초·중학교 60개교의 통합교육과정 운영 실태를 전수 조사했다. 조사 대상인 통합교육과정의 범위는 교과 활동과 창의적 체험학습으로 한정했다. 창의적 체험학습은 자율 활동, 동아리 활동 등 학생의 소질과 공동체 의식을 기르는 활동이다. 통합교육과정 이외에 운동회나 졸업식 등 학교 행사를 통합 운영하는지도 함께 조사했다. 조사 기간은 지난달 7일부터 이달 7일까지 약 한 달이다.

전국 초중학교의 통합적 교육과정 현황

▲ 위 지도의 장소 아이콘을 클릭하면 학교별 통합교육 현황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픽 조벼리 기자

초중학교 60곳 중 40곳인 66.7%가 통합교육과정을 한 건도 운영하지 않았다. 경북 영덕군 남정초중학교 김종남 교무부장은 “소규모 학교라서 선생님 수가 국영수사과 합쳐서 5명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교육과정이 달라 연계 수업까지 진행할 여건이 안 된다”고 말했다. 전남 완도군 금당초중학교 김민재 교사는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나이 차 때문에 교육과정과 수업방식이 달라 함께 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초중학교 60곳 중 10곳인 16.7%가 교과 활동을 통합하거나 연계해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통합적 교육과정을 위해 출범한 초·중 통합운영학교에서 사실상 교과 통합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 셈이다. 인천청호초중학교 하재현 초등 교무부장은 “초중등교육법상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함께 한 교실에서 수업을 할 수 없다. 교원 자격조건에 제한이 있어 초등교원이 중학생을 가르칠 수 없고, 중등교원도 초등학생을 가르칠 수 없다”고 말했다.

창의적 체험학습을 통합 운영하는 학교는 15곳으로 25%였다. 입학식, 체육대회 등 학교 행사를 통합 운영하는 학교는 43곳으로 71%였다. 경기 연천군에 있는 군남초중학교 한진택 교사는 “본교는 전교생이 채 100명이 안 되는 소규모 농촌학교다. 학교 행사와 프로젝트 활동을 통합 운영하면서 학생들이 다양한 성격의 학생들과 만나서 교류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교육과정·교원자격 달라 ‘학교 통합’에 그쳐

통합교육이 이뤄지기 어려운 배경에는 교차지도가 불가능한 교원자격제도가 있다. 정미경 한국교육개발원 초중등교육연구본부장은 지난달 5일 <단비뉴스>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통합운영학교라고 해도 초등학교와 중학교 각각의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교육과정 운영, 교원 배치 등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고, 행정적으로 교사에게 부담만 가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서로 다른 급의 교육에 관한 교원의 이해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제천덕산초중학교 경윤정 교사는 “교육대와 사범대의 교류가 드물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과과정이 달라 교원들이 서로 어떤 교육과정이 이루어지는지 잘 모른다. 관련 연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교육과정 통합이 어려운 이유는 교원들이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급의 수업 경험이 없으니 새로운 시도가 없다”고 말했다.

교무실이나 건물을 분리해 운영하는 것도 통합교육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교무실을 통합 운영하는 학교는 단 10곳으로 16.7%였다. 나머지 50곳은 교무실을 분리 운영하고 있었다. 정미경 본부장은 “통합교육을 위해 교육과정 재구성을 하려면 교원 간 긴밀한 소통이 필요하다. 교원양성교육부터 서로 다른 경험을 하고, 교직문화도 서로 다른 두 학교급의 교사가 교무실이나 건물을 분리해서 사용하고 있는 경우 함께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는 일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통합교육을 위한 업무 부담이 크다는 점도 해소해야 할 문제다. 교육과정 재구성을 하려면 교원들이 회의 시간을 별도로 확보해야 한다. 충북 제천시에 있는 청풍초중학교 홍범 초등 교무부장은 “통합 수업을 하면 솔직히 선생님들이 힘들다. 수업 재구성부터 주제 선정까지 고려해야 하고, 수업 시간이 변동되다 보니 수업 운영에도 어려운 점이 많다”고 말했다.

“교과 통합 이전에 소통하는 분위기 조성해야”

농촌 소규모 학교에서 학생들이 경험하는 인간관계의 폭은 매우 좁다. 유치원 때부터 만난 친구들을 거의 10년 동안 만나기 때문에 다양한 성격을 가진 타인을 접할 기회가 드물다. 농촌에 있는 소규모 학교일수록 통합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충북 제천시 청풍초중학교 교정. 왼쪽에 있는 초등학교 건물과 오른쪽에 있는 중학교 건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조벼리 기자

충북 제천시에 있는 청풍초중학교는 2004년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통합됐다. 하지만 통합교육을 시작한 것은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는 작년 3월부터다. 의지를 가진 교원들이 수업 시간을 피해 모여 통합교육방식을 고민했다. 작년 2월 통합교육 연구학교로 선정된 뒤부터 교과를 연계한 주제 중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함께 진행하는 과학 수업에서 지질에 관해 배우면서 단양 지역의 석회동굴에 관해 알아보는 등 지역사회를 알아가도록 수업을 재구성했다.

전교생이 44명인 청풍초중학교에서 학생들은 통합교육을 통해 수업과 교우관계 모두에서 폭넓은 경험을 하며 성장한다. 17명의 교원들도 하나의 교무실에서 서로 다른 문화를 접하며 새로운 교육방식을 고민한다. <단비뉴스>는 통합교육 구성에 참여한 청풍초중학교 교사 3명을 지난달 8일 만나 통합교육의 가치와 어려움에 관해 들었다.

청풍초중학교 입구에 초중 통합 연계 교육과정 운영에 관한 홍보물이 세워져 있다. 조벼리 기자

통합교육을 진행하게 된 배경에는 학습 여건의 한계와 이를 개선해 보겠다는 교직원들의 자발적인 의지가 있었다. 지민경 중등 교무부장은 학생 수가 적기 때문에 학습 여건과 체험활동에 대한 한계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지 부장은 “학생들이 교육적 여건에서 갖는 한계를 깨려고 교직원들이 의지를 갖고 시간을 내서 만나서 고민하다가 나온 것들이 통합·연계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교원들은 통합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서로 도우며 성장하는 과정을 목격했다. 김성호 음악교사는 통합 수업을 하며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중학생들은 초등학생들과 수업하면 조금 더 주체적으로 활동을 이끈다. 남을 살필 줄 알게 되면서 배려심이 깊어지고, 갈등을 관리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통합운영학교에서는 교과과정을 통합하려는 시도가 없다. 통합교육을 위한 업무 지침이나 시스템은 관할청마다 다른데, 업무 지침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민경 중등 교무부장은 통합교육을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려면 통합교육이 교원의 업무 부담으로 작용하는 시스템부터 개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 부장은 “현행 시스템에서는 교과 통합을 무리하게 시도하면 교원들에게 시간적 여유나 의지 자체가 생기기 어렵다”고 말했다.

교차 수업이 불가능한 교원자격제도도 통합교육의 걸림돌이다. 홍범 초등 교무부장은 통합운영학교에 발령이 난 교원들은 교차 수업을 일부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 부장은 “교원 자격이 다르다 보니 초등 담임 선생님이 아프거나 출장을 갈 때 대신할 교사가 부족해 문제가 생긴다. 초등 교원 자격증을 가진 선생님만 수업을 대신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초등과 중등을 엄격히 구분하는 교원자격제도가 벽

현행 제도에서는 초등과 중등의 교원 자격을 엄격히 구분해 학교급이 다른 학교의 수업은 진행할 수 없다. 통합운영학교에서는 이런 교사 자격을 일부 완화해야만 원활한 학교 운영이 가능하다. 정미경 본부장도 “복수자격 취득을 위한 교원양성체제 개편이 필요하다. 그에 앞서 교육청과 학교에서 통합운영학교 교원을 위한 연수를 실시하고, 교원양성기관에서는 통합운영학교의 교육과 학급 관리에 대한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초중등교육법을 보면 통합운영학교의 교직원 배치 기준은 관할 교육청이 정할 수 있다. 그러나 교육청 수준에서도 통합운영학교에 대한 규정이 명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충북교육청 정책기획팀 관계자는 “교육과정 통합은 교사자격 문제가 있어 사실상 전국적으로 어려운 상태다. 교사자격은 초중등교육법, 공무원임용법과 관련 있어서 교육부에서 법령 개정을 검토해야 하는 사항이다. 제도를 개선해야 17개 시도가 공통으로 운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통합운영학교 교원을 위한 별도 교육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조성철 대변인은 “초등과 중등은 학급 운영부터 생활지도 기준, 발달 수준에 따른 지도법 차이 등 학교 시스템 전반의 차이가 크다. 교대와 사대의 차이를 고려해 별도 교육과정을 거쳐 통합운영학교 교원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2020년 10월 서동용 의원은 유은혜 전 교육부장관에게 통합운영학교의 교원자격 문제에 관해 질의했다. 국회 영상 회의록 갈무리

2020년 10월 26일 국회에서 통합운영학교의 교원 자격 완화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당시 교육위원회 소속 서동용 의원은 유은혜 교육부 장관에게 “교차수업이 안 되면 시골학교는 중학교 선생님들이 수업시수를 채울 수 없어 문제가 생긴다. 교원자격제도의 큰 틀을 흔들지 않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이에 관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물었다.

유은혜 당시 교육부 장관은 이에 대해 “통합운영학교 교원에 대해서는 시도교육청과 협의해서 복수자격 취득연수와 같은 제도를 마련하려고 계획하고 있다. 그런 부분들이 해소될 수 있도록 하는 법령 개정도 준비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3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제도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교육부 교원양성연수과 관계자는 “현재 초중 통합운영학교 교원에 대한 교육부 차원의 연수 과정은 진행하지 않고 있으며 관할청마다 다르게 진행하고 있다. 초중통합운영학교 교원자격 신설에 관한 논의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통합운영학교 위한 국가적 지원 강화돼야

“학령인구 감소뿐만 아니라 신도시 과밀학급 문제와 같이 변화하는 교육환경 속에서 통합운영학교는 좋은 대안입니다. 제도가 도입된 지 25년이 지났지만, 통합운영학교를 위한 지원체계도 부족하고 현장의 이해도 여전히 낮다 보니,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서동용 의원은 지난달 30일 <단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통합운영학교가 지역의 사정에 맞게 활성화될 수 있도록 국가적 지원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 의원은 통합교육을 위한 구체적인 개선방안으로 “교원양성제도를 비롯해 통합운영학교를 위한 교육과정 설계, 다양한 행정적, 재정적 지원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통합운영학교 수는 출범 당시 8개교에서 2021년 기준 118곳으로 늘어났다. 학령인구가 감소하면서 농어촌뿐만 아니라 대도시에서도 통합운영학교가 문을 열고 있다. 2019년 서울에서 통합운영학교가 처음 문을 연 뒤 2030년까지 10개교가 통합운영학교로 지정될 계획이다.

저출산, 지역 소멸의 영향으로 생겨난 통합운영학교가 앞으로는 지역을 불문하고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통합운영학교가 통합적 교육을 제대로 실시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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