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2023 ‘글로벌 팩트 10’…전 세계 팩트체커들의 연대

 “팩트체커(사실 확인자)의 사명은 진실을 파악해서 기록하는 것입니다. 허위 정보가 범람하는 환경 속에서 팩트체커들은 결속력을 다지고 진실을 추구해야 합니다. 사실은 중요합니다. 앞으로도 중요할 것입니다.”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글로벌 팩트 10’(Global Fact 10) 개회식에서 앤지 드로브니크 홀란(Angie Drobnic Holan) 국제팩트체크연맹(IFCN·International Fact Checking Network) 신임 사무국장이 한 말이다.

앤지 홀란은 미국 비영리 팩트체크 기관인 폴리티팩트의 편집장이었다. 이날 행사에서 2015년 IFCN 출범 이후 최초의 여성 사무국장으로 취임했다. Photo Credit The Poynter Institute and the IFCN
앤지 홀란은 미국 비영리 팩트체크 기관인 폴리티팩트의 편집장이었다. 이날 행사에서 2015년 IFCN 출범 이후 최초의 여성 사무국장으로 취임했다. Photo Credit The Poynter Institute and the IFCN

‘글로벌 팩트’는 세계 최대 팩트체크 컨퍼런스다. 미국 포인터 재단에 근거를 둔 IFCN이 매년 개최국을 바꾸어 진행했다. 지난해 개최된 ‘글로벌 팩트 9’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렸다. 올해는 서울에서 열렸는데 아시아에서 개최된 것은 처음이다. 이번 ‘글로벌 팩트 10’은 서울대학교 언론정보연구소 산하 SNU팩트체크센터와 IFCN이 공동으로 주최했다.

‘글로벌 팩트 10’에는 75개국에서 550여 명의 팩트체커와 언론인, 학자, 플랫폼 기업 관계자 등이 대면으로 참석했다. 온라인으로는 80개국에서 774명이 참석했다. 지난달 28일부터 30일까지 사흘 동안 60여 개가 넘는 회의가 열렸다. 매일 기조 발표를 중심으로 크게 ▲팩트체킹의 현황 ▲선거와 민주주의 ▲인공지능과 미래를 주제로 회의들이 진행되었다.

허위 정보 대응의 도전과제는 ‘확증 편향’

확증 편향은 자신의 신념에 부합하는 정보만 믿는 현상이다. 전 세계 팩트체커들이 현재 마주한 가장 큰 장애물이다. 첫날인 28일 오전 기조 발표도 확증 편향과 허위 정보에 관한 내용으로 진행되었다. 미디어 심리학자인 이은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가 “힘겨운 싸움? 허위 정보 대응의 도전과제”라는 주제로 최신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정보이용자들은 확증 편향에 기반해 정보를 처리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은 원래 가졌던 생각과 들어맞는 정보일수록 중요하다고 느낀다. 기존의 생각과 들어맞는 정보면 사실 확인도 소홀히 한다. 허위 정보가 기존의 생각과 부합할수록, 그 정보를 검증 없이 믿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은주 교수가 ‘효과적인 미디어 리터리시 교육’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미디어가 제공하는 정보를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을 뜻한다. Photo Credit The Poynter Institute and the IFCN
이은주 교수가 ‘효과적인 미디어 리터리시 교육’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미디어가 제공하는 정보를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을 뜻한다. Photo Credit The Poynter Institute and the IFCN

이은주 교수는 허위 정보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으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교수는 “(연구 결과) 사람들은 허위 정보의 유해성과 효용성을 함께 설명할 때 거짓과 진실을 보다 잘 분별했다. 또 ‘미디어 리터러시’를 교육할 때 영상과 질문을 활용하면 정보 이용자의 학습 능력이 향상된 결과를 얻었다. 허위 정보가 얼마나 해로운지 설명하면서 허위 정보를 어떻게 다룰지 구체적인 대응 방법을 설명할 때 정보의 사실과 거짓을 판별하는 능력이 향상됐다”고 설명했다.

“한국 팩트체크 걸림돌은 정치적 양극화”

28일 오후에는 한국의 팩트체킹 현황에 관한 패널토론이 진행됐다. 패널들은 한국 언론의 독립성을 저해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토론했다. 최원석 미디어 정보 리터러시 오픈 네트워크 연구원은 “한국 언론의 독립성이 약화되는 원인은 정치적 양극화에 따른 정파적 압박과 재원, 조직, 인력의 취약성”이라며 “최근 한국 정부가 가짜뉴스 신고센터를 출범하는 등 공식 석상에서 가짜뉴스라는 용어를 다시 사용하고 팩트체크 관련 예산을 삭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 팩트체크 기관의 독립성 확보를 위한 자원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왼쪽부터 최원석 미디어 정보 리터러시 오픈 네트워크 연구원, 이경원 SBS 기자, 박태인 중앙일보 기자, 정은령 SNU펙트체크센터장,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가 토론하고 있다. 사진제공 SNU팩트체크센터
왼쪽부터 최원석 미디어 정보 리터러시 오픈 네트워크 연구원, 이경원 SBS 기자, 박태인 중앙일보 기자, 정은령 SNU펙트체크센터장,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가 토론하고 있다. 사진제공 SNU팩트체크센터

한국 팩트체크의 취약점이 정치 양극화에서 비롯된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경원 기자는 “작년 대선 당시 양쪽 진영 후보의 사실 검증 횟수를 각각 7개로 맞췄다. 팩트체크의 질보다 정치적 균형을 우선시한 것이다. 정치적 양극화가 극심한 상황에서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고 말했다. 또한 “정파적 언론사가 정치적 지향에 맞는 후보에게 유리한 보도를 하는 행태가 팩트체크라는 단어를 오염시키고 있다”며 팩트체크의 정치적 독립성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허위 조작 정보의 진실 판정을 소송을 통해 해결하려는 현상도 한국 언론이 풀어야 할 숙제다. 박태인 기자는 “‘가짜뉴스’의 진실 판정을 언론이나 팩트체커가 아닌 시험을 통과한 엘리트에게 의존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며 이는 “진실 판정의 사법화”라고 말했다. 박 기자는 실제로 진실 판정을 둘러싸고 판결이 나오더라도 논란이 해결되기보다는 각자 입맛에 맞는 부분을 자기 주장의 논거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했다.

정은령 센터장은 “언론사의 정치적 지향은 다양할 수 있으나 불편부당성과 비당파성이라는 원칙은 모든 언론사에 공유되어야 한다”며 팩트체크를 위축시키려는 움직임에 언론사들이 공동으로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

‘푸틴의 트롤’에 맞서 싸우다

컨퍼런스 이튿날인 29일의 기조 발표 제목은 “푸틴의 트롤에 관하여”였다. ‘푸틴의 트롤’은 친러시아 성향으로 허위 조작 정보를 유포하는 단체이다. 소셜 미디어에서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주로 독재, 극우를 옹호하고 코로나19 백신이 해롭다는 러시아의 프로파간다를 퍼뜨리기도 했다. ‘푸틴의 트롤’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전쟁을 일으킨 푸틴이 “사실 평화를 원한다”는 선전 정보를 퍼뜨렸다. 이들의 정체를 처음으로 파헤친 기자가 있다. 바로 핀란드 출신의 제시카 아로(Jessica Aro·42세)다.

제시카 아로는 오랜 시간 동안 친러시아 인터넷 ‘트롤’을 조사해 왔다. 트롤이란 말 자체는 북유럽 신화의 거인을 뜻한다. 인터넷 공간에서의 트롤은 의미가 사뭇 다르다. 그는 인터넷 트롤은 “상대방을 괴롭히고 논쟁을 벌이는 사람으로 생각하면 쉽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랫동안 러시아 트롤의 정체를 뒤쫓았고, 조직적으로 허위 조작 정보를 생산하는 러시아의 공장을 발견했다. 탐사 보도의 결과물로 “푸틴의 트롤: 러시아의 세계 정보 전쟁의 최전선에서”라는 저서를 내기도 했다.

지난달 29일 제시카 아로가 대담을 하고 있다. Photo Credit The Poynter Institute and the IFCN
지난달 29일 제시카 아로가 대담을 하고 있다. Photo Credit The Poynter Institute and the IFCN

러시아 트롤들을 쫓는 과정에서 그는 폭력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고국인 핀란드의 친러시아 단체들에게 공격받았다. 제시카 아로는 “(자신에 대한) 허위 조작 정보가 핀란드어로 된 사이트에만 300개가 있었다”며 “조회 수가 2백만 가까이나 됐다”고 말했다. 그 내용 중에는 제시카 아로가 정신이상자이며, 범죄자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물리적 위협도 느낀 적이 있다. 그는 “길거리를 걸어갈 때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하며 따라다녔던 사람도 있었다”고 밝혔다. 제시카 아로는 폭력을 피해 잠시 핀란드를 떠나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내 두려움 때문에 독자들의 알 권리가 침해받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내가 포기한다면, 그 자체가 러시아의 영향을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독자들을 러시아의 영향력 아래에 두고 싶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에서 언론인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란 사회자의 질문에 제시카 아로는 “이야기를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널리스트가 끊임없이 진실을 이야기한다면, 마침내 그 진실이 독자에게 닿을 것이라는 희망을 그는 버리지 않고 있다.

제시카 아로가 발표를 마친 후 질의응답을 진행하던 도중에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선재 기자
제시카 아로가 발표를 마친 후 질의응답을 진행하던 도중에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선재 기자

“AI 저널리즘의 핵심 가치는 투명성과 정직성”

마지막 날인 30일에는 “AI와 저널리즘: 한국의 학계, 기관, 뉴스룸의 노력”을 주제로 한 분과회의가 열렸다. 2015년 기사를 작성하는 로봇 기자를 개발한 김동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조교수는 “뉴스 생성 과정에서 알고리즘이 압도적인 신뢰도를 바탕으로 인간의 일을 대체하고 있다”며 “로봇 기자가 활용하는 방대한 데이터의 사실확인을 위해 교차검증과 레퍼런스 삽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2018년부터 뉴스룸 AI 전담팀을 운영한 김태균 연합뉴스 콘텐츠인큐베이팅 팀장은 날씨 기사에 특화된 AI 서비스를 운영하며 “30분 걸렸던 기사를 5분 만에 처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AI가 질문의 맥락과 관련이 없거나 사실이 아닌 내용을 옳은 답처럼 내놓는 이른바 ‘AI 환각 현상’이 뉴스 제작의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기자들이 AI를 취재에 활용할 때 사실 검증이 더욱 중요해졌고, AI 뉴스 제작 과정을 독자들에게 알릴 때 투명성과 정직성이 보다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구글의 생성형 AI 서비스 버트(BERT)를 활용한 기사 분석 서비스를 개발한 오세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책임연구원은 서비스 개발 과정과 활용 방안을 설명했다. 오세욱 연구원은 “주관적 표현에 대한 기준을 정리해서 추출하면 버트를 통해 기사 내 주관적 표현을 찾는 분석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광고성 기사와 낚시성 제목을 검출하는 모델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세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책임연구원이 구글의 생성형 AI 서비스 ‘버트’(BERT)를 활용해 기사분석 서비스를 개발한 과정을 발표하고 있다. 이선재 기자
오세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책임연구원이 구글의 생성형 AI 서비스 ‘버트’(BERT)를 활용해 기사분석 서비스를 개발한 과정을 발표하고 있다. 이선재 기자

소셜미디어 플랫폼도 허위 정보 확산에 책임이 있다

‘글로벌 팩트 10’의 마지막 기조 발표는 요엘 로스(Yoel Roth) 전 트위터 신뢰 및 안전 책임자가 맡았다. 요엘 로스는 작년 10월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한 이후 트위터를 떠났다. 이날 요엘 로스는 “머스크, 트위터, 거짓 및 허위 정보의 미래”를 주제로 발표했다.

요엘 로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트위터 계정 영구 정지 결정은 내부 절차에 따른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요엘 로스는 “트위터는 뉴스 정보가 전달되는 플랫폼으로서 2019년에 공익 정책을 마련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문제가 되는 콘텐츠를 삭제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그가 수용하지 않아서 정책에 따라 계정 영구 정지라는 결정을 내렸다. 앞으로 트위터는 허위 정보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방법에 대해서도 더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요엘 로스는 트위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트위터 계정을 영구 정지 처분하는 등 허위정보 방지책을 세웠다. 지금은 UC버클리대학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에서 일하고 있다. Photo Credit The Poynter Institute and the IFCN
요엘 로스는 트위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트위터 계정을 영구 정지 처분하는 등 허위정보 방지책을 세웠다. 지금은 UC버클리대학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에서 일하고 있다. Photo Credit The Poynter Institute and the IFCN

로스는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 이후에는 트위터 내부에서 모호성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로스는 “2015년 트위터는 앱스토어 카테고리를 소셜네트워크에서 뉴스로 변경했다. 세계에서 트위터의 역할은 현재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지난 15년간의 역할이 많이 달라졌다. 연구자들의 데이터 접근이 불가능해졌고 투명성 프로세스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단기 투자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트위터는 책임감 있는 경영을 위해 원래의 투명성 프로세스를 복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로스는 특히 소셜미디어 플랫폼이 허위 정보 유포에 직접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스는 “페이스북에 올라온 게시물의 진위여부를 감별하고 책임을 지는 것은 페이스북의 파트너인 팩트체크 기관이다. 메타는 허위 정보를 확산시킨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파트너들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트위터는 서비스 약관에 기업 차원의 조치를 포함했다. 허위 정보 유포에 대해 우리를 비판해야 한다고 밝혔고 결과적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고 말했다.

‘글로벌 팩트 10’은 전 세계 언론인, 학자, 플랫폼 기업이 연대하는 장이었다. 참가국 수로는 2014년 글로벌 팩트가 시작된 이래 최대 규모인 75개국에서 참여했다. 사흘 동안 열린 회의에서 각국의 팩트체커들은 허위 정보 확산에 대응하기 위한 방법을 논의했다. 틱톡, 메타, 유튜브, 등 플랫폼 기업 관계자들이 허위 정보 대응 방안을 밝히고 언론인들의 질문을 받기도 했다. 내년에 개최될 열릴 ‘글로벌 팩트 11’ 개최지는 올해 9월 발표될 예정이다.

상(上) : 전 세계 사실 추적꾼들이 서울에 모인 이유

하(下): "'탈진실의 시대'에 사실 확인은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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